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13화 (113/325)

113화. 왕과의 만남 (2)

“멕시코에서 말입니까?”

“그래. 카포가 너한테 흥미가 생겼나 봐.”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내게 흥미를 느꼈다?

애초에 내 이름이 어떻게 그 사람한테 흘러 들어간 것일까?

“로이. 메데인의 카포가 어떻게 제 이름을 알고 있는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화진이랑 메데인은 옛날부터 거래를 하던 사이였어. 그런데 책임자가 너로 바뀌었잖아. 자연스레 네 이름이 상부에 올라간 거지. 그리고 너, 골든 마피아와도 친분이 꽤 있던데? 그 외에도 네가 드러날 만한 일은 많았지.”

골든 마피아와 나의 관계까지도 알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리턴 컴퍼니에 관한 것도 카포가 조금은 알고 있는 눈치야. 솔직히 네 이름이 그쪽에 안 퍼지는 게 이상하지. 메데인 카르텔의 정보력을 우습게 보지 마.”

하긴.

돈이 썩어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바로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라는 인물이다.

그리고 내가 메데인을 도운 적도 있고, 리턴 컴퍼니의 실장이라고 밝히며 이곳저곳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던가.

모르는 게 이상한 거지.

“제가 리턴 컴퍼니의 실소유주라는 건….”

“걱정하지 마. 그건 모르고 있으니까.”

과연 이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내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악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무엇 하나 예측할 수 없는 만남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멕시코로 가면 카포를 바로 만나볼 수 있는 건가요?”

“2주 후에 온다고 했어.”

2주 후면 태혁이 경기가 끝난 뒤다.

“그럼, 제가 그 전에 가 있으면 되겠군요.”

“그렇지. 그리고… 카포 성격 알지? 앞뒤 없는 사람이니까, 성질 건드리진 마. 여차하면 총부터 꺼내는 사람이니까.”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매우 성격이 포악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불같은 성질을 못 이겨 나중에 콜롬비아의 장관을 죽이는 등, 막장 전횡을 보이다 결국 DEA 손에 사살된다.

즉, 파블로와의 만남은 결코 유쾌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과연… 세기의 마약왕은 내게 어떤 얼굴을 보여 줄까?

* * *

“안 만나보셔도 되겠습니까?”

“예. 그놈이 집중하고 있을 때 만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냥 링 위에서 어떻게 활약을 하나, 지켜볼 생각입니다. 얼굴 보는 건 이기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내 대답을 들은 강철중이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왜요?”

“하하. 왠지 두 분이 닮으신 거 같아서요.”

“그런가요?”

“예. 김태혁 씨도 가끔 옆에서 지켜보면, 사장님과 판박이일 때가 있더군요.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태혁이와 내가 닮았다라-.

나는 오히려 정반대라고 생각했는데, 제3자의 눈에는 우리가 닮아 보이나 보다.

“그런데 메인 이벤트가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오늘 사람이 참 많이 모였네요? 태혁 씨가 이번에 승리를 하게 되면 눈도장을 제대로 찍을 거 같습니다.”

“아. 모르시겠네요. 이번에 태혁이와 붙는 상대가, 아마추어에서 꽤 이름을 날렸던 복서에요. 그리고 신인왕도 받은 전적이 있고요.”

강철중은 좀 의외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신인왕까지 받았다고요? 그런 루키가 이제 데뷔전을 치르게 되는 태혁 씨와 붙는단 말입니까?”

저런 반응을 보일 만도 하다.

한참 랭킹전에 뛰어들어야 할 복서가, 이제 막 복서로서의 길을 걷는 초짜와 붙게 생겼으니 말이다.

“제가 힘 좀 썼죠.”

하지만 무더기로 쏟아지는 돈다발 앞에서 랭킹전을 상관이나 할 것 같은가?

내 말뜻을 헤아린 강철중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태혁 씨를 믿으시나 봅니다.”

“강철중 씨는 태혁이 실력을 잘 모르시죠?”

“예. 운동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그랬군. 그래서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이려나.

이 양반이 오늘 놀랄 일 하나가 생길 것 같다.

“한번 지켜보세요. 우리 태혁이가 얼마나 날아다니는지.”

“예, 기대하겠습니다.”

강철중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진행자가 링 위로 올라와 메인 이벤트 전 경기 순번을 알려 주었다.

오늘의 메인이벤트는 WBC 헤비급 타이틀전이다.

현재 세계 헤비급 복싱을 주름잡고 있는 사람이 누구겠는가?

바로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다.

오늘 경기는 마이크 타이슨의 두 번째 방어전이 있는 날이다.

무하마드 알리에 맞먹을 정도로, 워낙 센세이션을 일으킨 복서라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타이슨은 한창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이런 빅매치가 있는 날에 태혁이가 링 위에 오르는 건, 복서로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그나저나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베팅을 먼저 해야 하는데, 지금쯤이면 베팅을 받는 사람들이 오지 않나?

“오랜만입니다, 미라클맨.”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꽁지머리를 하고 있는 다니엘 로페즈가 내 앞에 있었다.

골든 마피아의 핵심 인물이자, 이곳 골든 아레나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아. 미스터 로페즈. 반갑습니다.”

“하하. 타이슨 경기를 보러 오셨습니까? 그동안 방문이 뜸하시기에, 언제쯤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죄송합니다. 요즘 일이 많이 바빠서요.”

“아닙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니까요.”

로페즈는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로 인해 좌불안석이 된 강철중은 은근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로페즈가 그를 만류했다.

“젠틀맨. 괜찮습니다. 저도 오늘은 조용히 경기나 관람하려고 온 거니까요. 부담 갖지 않아도 돼요.”

강철중도 로페즈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이곳 골든 아레나의 움직이는 큰 손이지 않은가?

당연히 불편한 자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또 말을 저렇게 해 주니, 엉덩이를 좌석에서 뗄 수 없었다.

“그럼….”

강철중이 다시 자리에 앉자, 로페즈가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타이슨에게 돈을 거실 겁니까?”

“아뇨. 오늘은 타이슨 경기를 보러온 게 아닙니다.”

“호오. 메인 이벤트를 보러온 게 아니라면….”

난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 제 동생이 데뷔를 하는 날이라서요.”

“이럴 수가. 그게 정말입니까?”

로페즈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오늘 순서를 보니까, 첫 번째 경기를 하게 될 겁니다.”

“잠깐. 첫 번째 경기라면… 저번에 신인왕을 받았다는 앤드류 로저와, 데뷔전을 치르게 될 그 동양인 친구?”

“예. 그 동양인 친구가 바로 제 동생입니다.”

내 대답에 로페즈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말했다.

“이런. 왠지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어요. 한창 랭킹전을 뛰어야 할 신인왕이 이제 막 데뷔를 하게 된 동양인과 싸우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거든요. 상위 랭킹전을 하기 전에 몸도 풀고, 돈도 좀 벌어보려는 심산인가 싶었는데….”

아마 아레나에 모여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 로페즈처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하. 맞습니다. 몸도 풀고, 돈도 벌려는 거죠. 제가 거부할 수 없는 금액을 파이트머니로 이미 줬거든요.”

“이런, 이런. 그런 반칙을 쓰시다니. 설마, 조작 경기는 아니겠죠?”

로페즈가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런 치사한 짓을 내가 왜 하겠는가?

“걱정하지 마세요. 경기만 잡은 겁니다. 그리고 앤드류 로저 선수에게도 이미 말을 해 두었습니다. 상대방을 가차 없이 짓밟아 버리라고요.”

“하하. 동생을 강하게 키우시겠다는 겁니까?”

“아뇨. 그 정도의 각오를 하고 있지 않으면 1라운드도 버티지 못할 테니까요.”

내 말에 로페즈는 안색이 조금씩 굳어 가기 시작했다.

“그 말씀은 동생분이 그만큼….”

“예. 아주 강합니다. 누구도 보지 못한 무자비한 실력으로 순식간에 링을 지배하게 될 겁니다. 두고 보세요. 곧 제 동생이 세계를 제패하게 될 테니.”

몸도 작고 힘도 약한 동양인이 세계를 재패한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로페즈는 꽤 진지하게 내 말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전 미스터 김이 헛소리를 하실 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미스터 김의 통찰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테니까요.”

음….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렴 어떤가?

내 동생은 분명히 해내고 말 것이다.

“혹시 동생분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태혁 김입니다.”

“태혁 김이라…. 그 이름, 꼭 기억해 두겠습니다.”

“오늘 플레이하는 것만 보셔도 그 이름이 잊히지 않을 겁니다.”

로페즈는 한껏 기대감에 부푼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이거 정말 오늘 경기를 놓칠 수 없겠군요. 그래서, 동생분이 몇 라운드에 승리한다고 보십니까?”

“당연히 1라운드죠. 1라운드 KO로 승리하게 될 겁니다.”

내 말을 들은 로페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 손을 튕겼다. 그러자 총알 같이 몇 사람이 달려오더니,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태혁 김에게 베팅하도록 하지. 1라운드 KO로. 그리고 이쪽 분도 똑같이 해 드려.”

“알겠습니다.”

로페즈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들은 다시 빠르게 사라졌다.

“그럼, 이제 느긋하게 경기를 관람하면 되겠군요. 과연 1라운드에 승리를 하게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로페즈는 빅매치라도 보는 사람마냥 등을 의자에 기대고 눈을 크게 떴다. 그 옆에 있던 강철중도 링 위에 올라오는 태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팬덤이 좀 있는지, 앤드류 로저가 등장했을 때는 환호성이 들렸다. 하지만 태혁이가 등장하자 그 환호성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간간히 야유까지 들려왔다.

동양인이라는 차별이 아직 깊게 뿌리를 박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혁이는 전혀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집중력을 놓지 않고 있는 날카로운 모습이 실로 인상적이었다.

땡-!

라운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인파이팅을 구사하는 앤드류 로저가 탱크처럼 태혁에게 달려들었다.

떠오르는 루키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처럼, 묵직한 파괴력과 빠른 스피드를 동시에 구사하는 복서였다.

태혁이보다 키가 좀 작긴 했지만, 상대의 안으로 파고드는 기술은 가히 월드 클래스였다. 그러나….

번쩍-!

“다, 다운!!”

일순 경기장 안에 정적이 흘렀다.

환호성을 지르던 관중들도 모두 입을 쩍 벌린 채, 쓰러져 있는 앤드류 로저를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앤드류 로저가 무시무시한 돌파력으로 순식간에 태혁이의 가슴팍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뻗어 올린 어퍼컷은, 분명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펀치.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태혁이는 깃털처럼 스텝을 밟아 앤드류 로저의 사각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뻗은 라이트가 로저의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관자놀이를 그냥 맞아도 그 충격은 대단하다.

급소이지 않은가?

그런데 무방비로, 그것도 시야가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쳤으니 방어의식이 작동하기도 전에 데미지를 입게 된다.

태혁이의 무서운 점은 바로 저것이다.

상대방을 유도할 수 있는 만큼 유도한 다음, 사각으로 사라져 주먹을 뻗는다. 그리고 그 공격에 맞은 상대는 대부분 일어나질 못한다.

몇 번을 봐도 전율이 이는 카운터 공격이다. 아마 전문가가 아니라면 앤드류 로저가 그리 강해 보이지도 않는 펀치에, 왜 쓰러져 있는지 절대 이해하질 못할 것이다.

하지만 로페즈와 강철중은 지겹도록 복싱을 봐온 사람들이지 않던가?

“뭐, 뭡니까? 저 카운터는! 저런 공격은 내 평생 본 적이 없어요!”

과연 로페즈가 경악 어린 목소리를 터트렸다.

그건 강철중도 다르지 않았다.

“사장님! 저, 저건 너무 사기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저 찰나의 순간에 사각으로 피해서 카운터를 날릴 수가! 도대체 동체 시력이 얼마나 뛰어나기에…!”

동체 시력도 동체 시력이지만, 저 빠른 몸놀림을 가능케 하는 태혁이의 괴물 같은 몸도 한몫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1라운드에 끝날 거라고.”

때앵-!!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기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앤드류 로저는 충격이 꽤 컸는지, 아직도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관중들은 김태혁이라는 남자에게 뜨거운 환호성을 보냈다.

짧고도 굵은, 그것도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솔직히 태혁이의 저 카운터 공격을 몇 번이나 본 나로서도 가슴이 떨리는데, 저 공격을 처음 본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사각에서 치는 카운터.

태혁이를 트레이닝시켜 주고 있는 관장은 그 기술을 블랙 카운터라고 부른단다. 아마 그 관장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인지, 이름까지 다 지어주었다.

좀 낯간지러운 이름이긴 하지만, 썩 괜찮은 이름인 것 같았다.

블랙 카운터. 그리고 그것을 유일하게, 자유자재로 날릴 수 있는 선수가 바로 김태혁.

그 이름이 조만간 세계 전역에 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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