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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05화 (105/325)

105화. 자살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3)

“이거, 혹시 그놈인가?”

문득 스치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내 머리채를 잡다가 팔이 부러진 그놈.

대양 그룹 회장 아들이라고 했던가?

“누구 짐작 가는 사람이라도 있으십니까?”

아직 심증일 뿐이지만, 만일을 위해 확인을 해 놓는 게 좋겠지?

“동욱아.”

“예, 형님.”

“대양 그룹 회장 아들 쪽을 털어봐.”

“대양 그룹 회장 아들이요?”

“그래. 그쪽 식구가 몇인지는 모르겠다만, 그중에 내 나이뻘에 천강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놈이 하나 있을 거야.”

김동욱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다, 천강 대학교라는 이름에 대충 짐작을 한 눈치였다.

“그쪽 아들과 마찰이라도 있으셨나 봅니다.”

“어. 내가 그 아들내미 팔 하나를 부러뜨렸거든.”

내 말에 김동욱은 살짝 미소를 보였다.

“하하. 농담이시죠?”

하지만 난 저런 농담은 하지 않는다. 내 진지한 얼굴에 김동욱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혀, 형님. 설마 정말로….”

“그렇게 됐어. 그리고 내가 먼저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쪽이 건드려서 그렇게 된 거야.”

내가 처음 여의도를 잡았을 때부터 김동욱은 내 옆에 있었다.

2년이 넘도록 함께 했으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형님.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김동욱을 내가 붙잡았다.

“뭐가 그렇게 급해. 일단 밥부터 먹고 하지?”

“아… 예, 형님.”

무슨 일을 시키면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려는 스타일이라 그런가.

일 이야기라면 바람처럼 움직인다.

“자자. 다들 많이 먹고, 많이 마셔.”

“예, 형님!!”

조직원들은 행복 가득한 얼굴로 술과 고기를 입에 넣으며 불어나는 배를 부여잡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잠시 딴생각에 빠졌다.

정말 대양 그룹 쪽에서 움직인 것이라면….

새끼들. 사람 잘못 건드린 거다.

* * *

“대양 그룹?”

“예. 그쪽에 대해서 좀 알고 계신 게 있나 하고요.”

명동에 있는 성일환의 사무실을 정말 오랜만에 방문하는 것 같다.

이 양반은 매일 입에 달고 살던 술을 끊는다고 요즘 권용일이 준 차를 달여 마시고 있다.

어울리지도 않는 신선놀음이다.

“어디 보자…. 대양 그룹이면 좀 간당간당한 곳 아닌가?”

“위험하다고 하면….”

“거기 회장이 무리하게 사업 벌이다가 몇 개 말아 먹었거든. 그래서 회사 부채가 좀 많아. 이미 은행에서는 대출 신청을 받지도 않는 상태고.”

“그렇다는 건 사채를…?”

“그런 셈이지.”

대양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버티는 중이다, 이건가?

그래도 명색이 그룹인데, 은행에서도 받아 주지 않는 것을 보면 자금 사정이 알만하다.

역시, 어디 누구네 식구 지갑 내력을 쭉 훑어볼 수 있는 건 명동밖에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채의 천국이 바로 명동이지 않던가?

“저희에게서 돈이 나갔습니까?”

“아직은. 근데 다른 곳에서 안 빌려주면 우리한테 오겠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돈이 좀 많냐? 흐흐.”

콘트라 게이트로 얻은 마약 중 일부를 한국에 옮긴 상태다. 그로 인해 권용일은 완전히 돈방석에 앉아 있는 상태. 하지만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내가 미국에서 다루고 있는 마약의 양이 30톤에 달하지 않던가?

1톤당 1억 달러의 가치가 있으니, 30톤을 전부 팔게 되면 3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이윤이 남게 된다.

내년까지 벌게 될 돈이 5억에서 7억 달러 정도.

앞으로 5년 안에는 30톤의 마약을 모두 처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혹시, 대양 그룹이 쪼인 해 오면 제가 거래를 주선해도 되겠습니까?”

성일환은 담배를 하나 물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 새끼들이랑 뭔 일이라도 있었냐?”

“사소한 다툼이 있긴 했습니다.”

“다툼?”

“예. 제가 대양 그룹 회장 아들 팔을 작살냈거든요.”

내 말에 성일환은 물던 담배까지 뱉어내며 박장대소했다.

“진짜?”

“예. 어제는 웬 차 한 대가 갑자기 나타나서 절 들이받으려고까지 했습니다. 아무래도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좀….”

처음에는 실실 웃고 있던 성일환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떤 새끼가 감히….”

난 어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성일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끊었다던 술을 잔에 따른 뒤, 단번에 들이켰다.

“동욱이가 알아보는 중이라고?”

“예. 알아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음…. 확실히 이진용 방식은 아니네. 진용이었으면 차 한 대로 끝내진 않았겠지. 애들을 무더기로 동원하든가 했을 거야.”

성일환도 이진용은 아닐 거라고 못을 박았다.

하긴. 내가 알고 있는 이진용이라면 그런 시시한 거로 날 죽이려 들지 않았을 터.

아무튼, 누가 범인인지 확실히 모르는 이상 속단하기는 일렀다.

“나도 알아볼게. 근처 조직들을 털다 보면 대양 그룹에서 청부 맡은 조직이 있긴 할 거야.”

청부업이라는 건 확실한 곳에서 하지 않으면 들키기에 십상이다.

자고로 입이 무거워야 하는 것이 바로 청부업인데, 고만고만한 조직에 맡겼다가는 명동 내에서 소문이 쫙 퍼지게 된다.

“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괜찮아. 아무튼, 먼지 나오는 거 있으면 연락할게. 그리고 당분간 애들 좀 데리고 다녀. 그러다가 또 뭔 일 나면 안 되니까.”

귀찮지만, 어쩔 수 없나.

성일환 말대로 당분간은 조직원들을 대동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 *

이번 연도가 끝날 때까진 학교에 안 가려고 했었지만, 아무래도 그놈 면상을 다시 봐야 할 것 같아 강의 시간에 맞춰 이동했다.

물론, 부담스럽게도 열정 넘치는 조직원들이 모두 차를 끌고 나와 대학교까지 나를 안전하게 보필해 주었다.

다른 날 같았으면 그냥 다 물러가게 했겠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형님!!”

“다녀오십시오!!”

조직원들은 모두 하차해 내게 인사를 하는 것도 절대 잊지 않았다. 덕분에 대학교 입구에서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아, 알겠으니까 얼른들 가.”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저희는 학교 안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학교 안에서?

이것들이 어디서 미친 발상을.

“안 돼! 그랬다가는 또 이상한 소문이….”

“형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형님의 안전을 위해서 저희는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형님께서 반대하셔도 저희는 학교 안에서 대기할 겁니다!”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했다는 말을 듣고, 조직원들은 단 한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고 있었다. 참 충성스러운 놈들이 아닐 수 없겠으나, 어찌 보면 나를 제일 피곤하게 만드는 놈들이기도 하다.

“강의실까지 쫓아오지 마라….”

“예, 형님!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겠습니다!”

내가 타협할 수 있는 적정선은 여기까지다.

어차피 내가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들어올 놈들이니, 강의실까지 쫓아오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괜히 학교를 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나는 강의실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어?”

“김태산?”

“왔네?”

강의실에 발을 들이자, 조잘조잘 얘기를 나누고 있던 학생들이 전부 입을 다물고 내게 시선을 옮겼다.

순간 찾아온 정적이 조금 낯설었지만, 난 조용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내가 온 걸 알았으면 슬슬 입질이 올 텐데….

콰앙-!

“김태산이 누구야!!”

과연.

예상대로 미끼를 문 녀석들이 나타났다.

저 상판대기처럼 어깨 넓은 놈들이 험한 목소리로 강의실 안에 들어왔다.

“너야?”

그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던 남자가 내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딱 봐도 운동께나 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유치한 짓을 벌일 줄이야.

난 덩치들 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놈을 보았다.

팔이 부러져서 당분간 학교는 못 나올 줄 알았더니, 의외로 회복력이 빠른가 보네.

역시, 세상 물정 모르고 아빠 등 뒤에 숨는 버릇이 여기서도 나오는 것 같았다.

“동석아. 이 새끼가 맞아?”

“어. 맞아. 그 새끼가 다짜고짜 내 팔을 이 꼴로 만들었다니까?”

다섯에서 여섯 명 정도 되는 건가.

피지컬로는 내가 밀릴 것 같지만, 덩치로 싸움을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나저나 저놈은 제 잘못도 잊은 모양이다.

처음부터 주먹을 날리고 생판 모르는 남의 머리채 잡은 게 누군데?

“이거, 미친 새끼 아니야? 넌 뭔데 우리 동석이 팔을 분질러 놔?”

슬슬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 생각인가 본데, 여기서 소란을 피울 순 없다.

“강의실에서 지랄들 하지 말고, 다 따라 나와.”

난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나섰다. 그러자 놈들이 황당하다는 듯 날 바라보며 조소를 터트렸다.

“오냐. 그래.”

“야야. 가자.”

어디서 이놈들을 상대해야 하나….

설마 내가 대학교 와서 싸움을 할 줄이야. 여기가 무슨 고등학교도 아니고.

“여기서 맞고 엄마한테 가서 징징대지 마라. 오늘 네 두 팔이 부러져야, 속이 편할 거 같으니까.”

천강 대학교에 이런 뒷골목 같은 구역이 있었다니.

애들이 싸울 때 주로 모인다는 학교 뒤편이, 딱 이렇게 생기지 않았나 싶다.

쓰레기를 버리는 곳 같은데, 뒤로는 철장이 있어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한 마디로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것이었다.

“동석아. 이 새끼 어디부터 부술까?”

“두 팔이랑 두 다리 전부. 이 새끼 두 번 다시 못 걷게 만들어. 뒤는 내가 책임질게.”

“정말이지?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 생기는 건 아니지?”

“나 못 믿어? 나 하동석이야. 내가 그깟 일하나 처리 못 할 줄 알아? 잔말 말고 가서 저 새끼 밟아 놓기나 해!”

“으응. 그, 그래.”

덩칫값도 못 하는 새끼.

하지만 세상은 덩치 크다고 해서 제일이 아니다.

결국 누가 더 돈이 많냐, 누가 주도권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서 위아래가 달라지지 않던가.

하동석의 명령이 떨어지자 큰 덩치를 자랑하는 다섯 명이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냥 반항하지 말고 있어라, 응?”

“괜히 그러다 목 부러져서 훅 가는 수가 있으니까.”

도대체 이런 새끼들이 어떻게 천강 대학교에 온 건지 원.

하긴. 천강 대학교가 재벌 집 아들이라면 무조건 오는 곳도 아니지 않은가.

재벌 집 아들이라면 벌써 해외에 나갔겠지.

하동석 저 새끼는 분명 해외 나갔다가 사고라도 쳐서 돌아온 게 분명하다.

“괜히 한 사람씩 와서 나가떨어지지 말고 한꺼번에 와라.”

오랜만에 몸을 풀게 생겼군.

난 윗옷을 벗어두고 소매를 반쯤 걷었다. 저런 놈들이야 맨주먹으로 싸울 수 있겠지만, 혹시라도 위험하면 손도끼라도 꺼낼 생각이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허세를 부려!!”

가장 앞에 있는 놈이 먼저 달려들었다. 황소처럼 어깨를 내밀어 돌진하는 것을 보니, 잡기 공격이 특기인 것 같은데….

유도, 아니면 레슬링인가.

빠각-!

하지만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닌지, 너무 허점이 많다.

나는 무릎을 치켜 올려 상대의 턱을 가격했다. 그리고 놈의 얼굴이 정면으로 훤히 드러나는 순간, 라이트를 뻗어 안면을 강타했다.

“커헉-!”

이것으로 한 명.

다음은….

“이 새끼가!!”

콰직-!!

두 명.

“무, 무슨!”

콰콱-!

이것으로 세 명째인가.

방금 전 내 발에 얼굴이 가격당하고 쓰러진 놈을 보며 확신했다.

이놈들이 운동을 배우긴 했으나, 날 위협할 정도의 실력은 되지 못한다.

아마 이들은 글러브를 끼거나, 혹은 대련장에서 안전함을 보장받는 룰로 보호를 받았을 터. 하지만 난 너희들과 걸어온 길이 다르다.

그 본질부터가 틀리다는 것이다.

회귀 전부터 나는 목숨을 넘나드는 싸움을 거듭하며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런데 내가 고작 이런 놈들에게 쓰러지겠는가?

“뭐, 뭐야. 저런 놈을 어떻게 이기라고….”

슬슬 꼬랑지를 내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하동욱은 여전히 여유만만이었다.

“하하. 너, 꽤 잘나가는 깡패라고 하던데 진짜인가 보네.”

그리고 박수까지 치며 웃는 것을 보니, 역시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건가.

“내가 설마 고작 이 인원만 데려왔겠냐? 오늘 여기 살아서 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

아니나 다를까.

하동욱의 뒤로 족히 열 명은 넘는 놈들이 각자 손에 연장을 들고 나타났다.

딱 봐도 저놈들은 대학생이 아니다.

분명 하동욱의 의뢰를 받고 움직인 조직원들일 것이다.

이건 좀 위험하겠는데?

저 정도 인원들이 연장을 들고 덤벼든다면….

“어? 찾았다.”

바로 그때 내게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그 익숙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가가 절로 호선을 그리기까지 했다.

“회장.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오늘처럼 정식이가 이렇게 반가울 날이 또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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