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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03화 (103/325)

103화. 자살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1)

노일영 대표의 첫인상은 내 예상대로였다.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이랄까. 겉으로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온갖 계산을 다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저 양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진용의 얼굴이 저절로 떠오르기까지 한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자자. 이리로 앉으세요.”

자세가 깍듯한 것을 보니, 어지간히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다.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커피로 하겠습니다.”

노일영의 눈짓에 비서로 보이는 사람이 밖으로 나갔다.

이제 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 건 나와 노일영, 단둘 밖에 없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리턴 컴퍼니에서 저를 돕겠다고 했다던데….”

이필기에게 들은 걸 말하는 것이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리턴 컴퍼니와 화진은 노일영 대표님을 지지합니다. 앞으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입니다.”

노일영의 눈빛이 반짝였다. 내게서 확답을 들었으니, 그는 이제 내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물을 것이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더는 대기업들이 보수 정당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은 진보 정당이 무조건 이길 거라고 확신하는 거죠.”

“대표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노일영은 어깨를 축 내리며 힘없이 말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자신이 없군요. 비록 양 김이 서로 싸우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국민의 표는 그 둘에게 쏠려 있으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대선 직전에 모든 게 뒤집어지지 않던가.

북한이 대한민국 항공기를 폭파시키며, 대선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진보 정당의 영웅들이 서로 개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북한이 비행기까지 터트려주니 국민들은 없던 안보 불감증도 생겨난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레 보수 정당에 표를 몰아주게 되는 거고….

물론, 노일영 대표는 역대 최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이 된다. 이 기록은 내가 회귀하기 전에도 깨지지 않았다.

그러니 노일영 입장에서는 자신이 없을 수밖에 없다. 현재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지원을 약속해 주셨으니, 쉬지 않고 뛰어볼 생각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노일영 대표님은 반드시 대통령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씀은 마치 리턴 컴퍼니가 저를 대통령으로 꼭 만들어 줄 것처럼 들리는군요.”

딱히?

내가 할 일은 그냥 이 양반한테 돈 몇 푼 쥐여주고 임기 내내 생색내는 것이다.

굳이 리턴 컴퍼니가 나서지 않아도 이 양반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뭐…. 그건 대표님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아무튼, 저희는 대표님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후방에서 열심히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저는 그럼 전방에서 열심히 싸워야겠군요.”

노일영은 비서가 가져온 차를 천천히 음미하다 본론으로 들어갔다.

“선거 자금은… 좀 많이 들지도 모릅니다.”

“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그럼, 거두절미하고 묻겠습니다. 정확히 리턴 컴퍼니가 제게 원하는 것이 뭡니까?”

원하는 거라.

꽤 많지.

뽕은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건… 대선이 끝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하셔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긴장이 되는군요.”

“억지스러운 걸 요구하거나 그러진 않을 겁니다. 저희는 그저 이 나라의 대세가 되실 분과 손을 잡고 싶을 뿐. 크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과 손을 잡는 것만큼 막강한 권력이 또 있을까?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앞으로 리턴 컴퍼니와 화진의 도움을 기대하겠습니다.”

노일영은 웃는 얼굴로 내게 손을 건넸다. 난 그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예.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다들 오랜만이다?”

고작 몇 달 밖에 안 됐지만, 왠지 몇 년만에 연합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 같았다. 아. 이제 연합 간부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건가.

다들 졸업하고 연합 일에는 손을 뗐으니까.

“회장님도 신수가 아주 훤하네.”

“그러니까. 재수 없게. 혼자 잘 먹고 잘사니까, 좋냐?”

이놈들은 날 보자마자, 그동안 날 괴롭히지 못한 걸 한꺼번에 푸는 것 같았다.

난 공격이 거세지기 전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뭐하고들 지냈어? 세린이 빼고는 다 공부 때려치웠다고 들었는데.”

내 말에 이놈들은 얼굴이 어두워지기는커녕 실실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공부와는 어울리지도 않았잖아.”

“맞아. 그리고 나는 아버지 사업을 대신해야 돼서, 공부는 안 해도 돼.”

“난 요즘 기술 배우고 있어서.”

그래도 한량처럼 살고 있진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최정식은 아까부터 안색이 좋지가 않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넌 어떻게 지냈는데?”

내 근황을 물은 건 바로 이세린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그런지, 이세린은 전보다 훨씬 더 감각적인 몸매와 빛나는 얼굴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힐끗거리는 놈들이 많더니, 다 이세린 때문인가 보다.

“나야 뭐…. 그냥저냥 살고 있지.”

“대학교도 들어갔다며? 그리고 아직도 화진파에 있는 거니?”

간부들은 내가 대학에 들어간 것도, 아직 화진파에 남아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화진파 내에서 내 영향력이 상당한 것도 알고 있다.

이 녀석들에게는 딱히 내 일을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이 중에서 몇몇은 나와 같이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저번에 기사 봤어. 대진 건설을 화진에서 인수한다며? 그럼, 이제 깡패 짓은 그만두는 거야?”

벌써 기사가 나갔나.

아무튼, 이세린은 매일 신문을 읽는다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나 보다.

“맞아. 여기가 미국도 아니잖아. 그리고 특히 조직폭력배에게는 국민들이 민감해하니까. 아마 다음 정부부터는 깡패들 잡으려고 난리를 칠 거야. 그래야 민심을 안정시키고 지지율을 올릴 수 있을 테니까.”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행하는 게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다.

노일영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선포한 것도 범죄와의 전쟁이지 않던가.

지지율 높이기에는 그만한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아, 물론 화진은 그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지만 말이다.

“그렇구나. 그럼, 화진파는 화진 기업이 되는 건가?”

“그런 셈이지.”

내 말을 듣고 있던 간부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독하네. 깡패라는 걸 숨기고 기업이 되는 거잖아. 아는 사람이야 알겠지만, 대부분 화진 기업을 그냥 신생 기업으로만 생각할 거 아니야.”

“뭐, 그걸 노리고 하는 거겠지? 너희도 알다시피 대기업이나 재벌들이 깡패보다 더 양아치 같은 구석이 있잖아.”

“합법적으로 깡패짓을 하겠다는 거네?”

씁쓸한 말이지만 저 말이 맞다.

조직형 기업이란 곧 합법적으로 깡패짓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지.”

내 대답에, 어울리지 않게 줄곧 입을 열지 않고 있던 최정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회장.”

“응?”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더니,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말해 봐.”

정식이는 살짝 난색을 표하더니, 이내 속내를 밝혔다.

“나도… 화진파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응? 진심인가?

이게 웬 횡재야.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정식이 화진파로 들어온다고?

난 흥분한 마음을 애써 티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정식에게 물었다.

“정말이냐?”

“응. 오랫동안 고민을 해봤어. 그렇지 않아도, 나 아는 형님들이 조직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스카우트도 했었어.”

“그런데 나한테 이런 말을 꺼낸다는 건….”

정식이는 그제야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씨익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왕 그 길을 가려면 확실한 곳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냐? 화진파라면 우리나라 거대 조직이잖아. 그리고 너도 거기에 있고.”

난 음흉한 미소를 보이며 정식이에게 말했다.

“내 밑으로 들어오게 될 텐데, 괜찮겠냐?”

“다른 허접한 놈들보다 차라리 네 밑으로 들어가는 게 훨씬 나아.”

오호. 그렇단 말이지.

원래대로라면 정식이는 화진파가 아니라, 다른 소규모 조직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나와 인연을 맺으면서 녀석의 미래가 바뀌었다.

최정식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하면 저놈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해결이 될 줄이야.

“정식이 너라면 언제나 환영이지.”

“정말?”

당연하지.

칼만 들면 귀신으로 변하는 놈인데, 이놈을 옆에 끼고 다니면 어디 가서 맞아 죽을 일은 없을 거다.

“그래. 정말로.”

“고맙다. 안 받아 주면 어떡하나 고민했는데.”

고맙긴. 오히려 내가 땡큐지.

난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

“내일 이쪽으로 와.”

“여의도?”

“그래. 내 사무실 있는 곳이야. 그쪽으로 오면 뭐부터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 줄게.”

“그래. 고마워,”

정식이는 내가 준 명함을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난 더 지원하는 사람이 없는지 간부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그러다 이세린과 눈이 딱 마주쳤다.

“…왜?”

“아니야, 아무것도.”

이세린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이세린도 있었구나.

지금 당장 쓸 순 없지만, 이세린이 미국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면 그때부터 써야겠다.

“그런데 연욱이는? 그 새끼는 왜 안 왔어?”

처음에는 어차피 양아치들이라며 무척이나 싫어하던 놈이, 나중에 가서는 가장 친해진 게 바로 연욱이다. 하지만 그놈은 지금, 밖으로 마실 따위를 나올 수 있는 사치조차 부릴 수 없었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지옥 같은 공부를 견디느라 지금쯤 죽을 맛일 거다.

“알잖아. 그놈 법대 간 거. 한가롭게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그런가. 아! 맞다. 그런데 너희들 군대는 어떻게 할 거냐?”

좋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갑자기 찬물이 확 끼얹어졌다.

젠장. 잊고 있었는데.

“군대…. 언젠간 가야겠지.”

“그러게. 우리 다음에 날 잡아서 같이 지원할까?”

속 편한 소리 한다.

그나저나 군대라….

이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인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한담?

* * *

“오늘 오후 6시에 모두 집합한다. 알겠나?”

아무리 막장으로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시험 시간에 빠질 순 없다. 그래서 오랜만에 대학교를 오게 되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집합령이 떨어졌다.

오후 6시라….

그냥 안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할 일이 태산이지 않은가.

곧 있으면 대선도 있고 대진 건설 인수에, 그 외에도 밀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애들 놀이에 놀아 줄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왜 대답들이 없어!”

생긴 건 미래의 학생 주임처럼 생겨 먹은 놈이 가오를 잡겠다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는 수 없이 1학년 학생들이 대답했다.

“예, 선배님.”

“새끼들이 군기가 다 빠져가지고 말이야. 아무튼, 늦으면 다 뒤질 줄 알아.”

윽박지르던 선배가 강의실 밖으로 나가자, 조용하던 학생들이 불만 어린 목소리를 터트렸다.

“아. 갑자기 무슨 집합이야.”

“그동안 모이게 한 적도 없더니.”

“그 소문이 사실인가? 이번에 있잖아. 그 대양 그룹 회장 아들이 복학했다며. 그 3학년 오빠 있잖아.”

“들었어. 완전 날라리라던데. 학교도 거의 안 오고.”

“완전 또라이라던데. 그동안 안 모여서 좋았는데, 이제 약발이 다 된 건가.”

학생들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있던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학기 초기에는 깡패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지금은 반신반의한 모양이다. 그냥 지금처럼 이렇게 조용히 지내면 된다. 그럼, 소문도 저절로 사라지게 될 터.

저번에 한 번 크게 덴 바람에, 더는 조직원들을 학교에 데려오지 않는다.

강의도 다 끝났고, 이제 일어나 볼까?

“어디가? 6시까지 모이라고 했을 텐데. 설마, 집에 가는 건 아니지?”

그런데 웬 덩치 큰 놈 하나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이빨을 드러낸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누구지, 동기인가.

아니면 선배?

“집에 일이 있어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선배들의 말을 개똥으로 듣고 그냥 집에 가겠다고?”

말투를 보니, 학생들이 수군거리던 그 싸가지가 맞는 모양이다.

“네.”

내 짧은 대답에 상대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나 참. 잠깐 학교 좀 비웠다고 이런 미친놈이 다 나타났네. 하늘 같은 선배 말을 무시하고 그냥 가겠다, 이거지?”

“뭐가 하늘 같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갈 건데요?”

“뭐야!? 이런 호로 같은 새끼가!”

이놈은 갑자기 냅다 주먹으로 내 배를 가격했다.

순간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머리에 있던 뚜껑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 뭘 꼬라 봐. 너 같은 새끼가 나한테 뭘 어쩔 수 있을 거로 생각하냐?”

난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새끼를 죽여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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