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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01화 (101/325)

101화. 지독한 놈 (1)

대진 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화진파가 취한 행동은 협상이 아니었다. 이미 그들이 오성파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이상, 협상은 없다.

우리가 취할 행동은 오직 하나.

연장을 드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내가 창고 안으로 들어오자 50명에 달하는 조직원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그들 모두 10명의 간부가 보낸 조직원들이다. 그것도 정예 중의 정예만 뽑아 보내 준 것이었다.

난 그들을 대충 훑어봤다.

생김새와 몸의 균형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투기가 이들이 결코 보통 조직원이 아님을 깨닫게 해 준다.

“다들 준비는 됐나?”

“예, 형님!!”

간부들 때문에 반항을 하는 놈이 나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이들은 내 명령을 기계처럼 따를 것이다.

난 검은 가죽 장갑을 양손에 끼며 말했다.

“그럼, 가자.”

* * *

대진 기업은 건설업을 주종으로 삼고 몸집 불리기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회사 몸집만 잔뜩 불려 놓고, 돈이란 돈은 다 긁어모은 다음에 내뺄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성파에 화진파까지 엮이면서 굉장히 일이 복잡해졌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군부까지 관련이 되어 있으니, 아마 대진 기업 사장은 지금쯤 똥줄이 타고 있을 것이다.

“반항하는 놈만 제압한다. 직원들은 건드리지 않아도 돼. 우리가 들어가면 오성파 끄나풀들이 알아서 덤벼들 거야.”

난 조직원들을 전부 하차시키고 주의사항을 알려 주었다.

그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내 뒤를 따랐다.

나는 대진 기업 입구에 서서 닫혀 있는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에 있는 조직원 하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콰앙-!

그는 냅다 발길질을 날려 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리고 목청을 높여 우리가 왔음을 알렸다.

“김민식 사장, 나와!!”

대진 기업 사장, 김민식.

오늘 우리가 잡아야 할 놈의 이름이다.

“얼른 하고 가자. 큰 형님이 기다리신다.”

“예, 형님!!”

나를 따르는 조직원이 50명이나 있다. 그것도 혼자서 세 명 분은 너끈히 해내는 이들이 아닌가? 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우르르 안으로 들어가 회사 안을 헤젓는 조직원들을 지켜보았다.

“꺄아악-!”

“다들 나와!”

“허튼짓 하는 새끼들은 다 뒤질 줄 알아!”

혼란 그 자체였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조직원들 때문에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만 봉변을 당했다. 하지만 아직도 회사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조금 놀랍긴 하다.

그냥 겉모습만 유지를 하고 있는 것인가?

“너희들 뭐야!”

“저 새끼들 막아!”

슬슬 나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위층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오성파 조직원들과 부딪힌 모양이다.

내가 올라가기 전에, 위층은 내 쪽 똘마니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나는 그저 벌벌 떨고 있는 직원들을 안심시키면 된다.

“협조만 잘하시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혹시, 김민식 사장 오늘 출근했습니까?”

내가 부드럽게 물어보자 열 명이 조금 넘어 보이는 직원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조직원이 쇠파이프로 책상 하나를 부수면서 거칠게 위협했다.

“지금 형님이 물어보시잖아! 김민식 그 새끼 오늘 왔냐고!”

이럴 땐 쓸모가 있군.

하지만 대놓고 칭찬을 할 순 없으니, 난 손을 들어 흥분한 조직원을 진정시켰다.

“좋게 말할 때 말씀해 주세요. 저도 더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습니다.”

협박이 통했는지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 사장님은 아마 5층에….”

“5층이요?”

난 뒤에 있는 조직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기 무섭게 조직원 여러 명이 빠르게 계단으로 달려갔다.

“김민식 사장이 탈출을 하진 않겠지요?”

“입구를 막으셨으니… 아마 쉽진 않을 겁니다.”

날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건가.

조만간 김민식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그저 아무 일도 없게만 해 주신다면….”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대진 건설은 화진 건설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시작할 거라서요. 그때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물론, 퇴사를 요청하시는 분들도 절차에 맞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이들 눈에 불안감보다는 안도감이 앞서 보였다.

직장에서 해고당하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혹시라도 경찰을 부른다거나,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경찰은 백 번 불러도 오늘은 오지 않을 예정이거든요.”

이미 이곳 주변 경찰들에게는 사전 협의가 끝난 상태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경찰들도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직원들은 말귀가 빨랐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벌써 누가 이 회사의 주인인지 실감한 모양이다.

“형님. 위층에 있는 오성파 조직원들은 전부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래?”

조직원의 말에 따라 난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과연 열다섯 정도 되는 오성파 조직원들이 복도에 쓰러진 채 신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다 정리된 거 맞아?”

“예, 형님. 다른 곳도 뒤져봤는데, 이놈들 말고는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대진 건설에 박아둔 조직원들이 별로 없다.

오성파가 방심하고 있던 건가.

“그래. 김민식은?”

“위층에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데려오게 할까요?”

“데려와.”

“예, 형님.”

대진 건설의 김민식이라.

기억에도 없는 놈이니, 그다지 대단한 것도 없는 놈일 것이다.

난 김민식이 올 때까지 쓰러진 오성파 조직원들을 둘러보았다.

언뜻 봐도 제대로 반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당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우리 쪽 화력이 압도적이라는 건데, 이건 단순히 머릿수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니다.

실력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 이거 놔!”

“입 닥치고 따라와!”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김민식이 도착한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중년 남성 하나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난 그를 끌고 온 조직원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 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것이… 이놈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창문 밖으로?

그만큼 절박했다는 건가.

그냥 순순히 따라오면 될 것인지, 괜히 매를 벌다니.

“김민식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화진파의 김태산이라고 합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김민식은 우물쭈물하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내 나이가 어리다는 걸 간파한 것이리라.

“지금 형님이 말씀하시잖아, 이 새끼야!”

조직원의 고성에 김민식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 예. 바, 반갑습니다.”

이제 좀 대화가 되는 듯싶다.

“이거, 첫 만남부터 거칠어진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오래전부터 시작된 전쟁인데,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죠. 사장님도 피 말리는 하루하루이시지 않았습니까?”

“….”

말이 없는 걸 보니, 내가 틀린 말을 한 게 아닌 것 같았다.

“행동이 좀 거칠긴 했지만, 다 사정이 있었다는 걸 이해해 주십시오. 솔직히 말해서, 사장님도 감히 우리 화진파를 상대로 장난질을 치지 않았습니까? 그것만으로 사장님은 죽어도 할 말이 없으시겠죠.”

“그, 그건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닙니다! 다 오성파에서…!”

“하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숨 잘 쉬고 살아 계시는 거죠.”

김민식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난 서류 하나를 그의 앞에 던진 뒤 말을 이었다.

“그동안 미뤄 두었던 계약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이 회사가 문제점이 참 많다는 겁니다. 그거, 다 뒤집어쓰고 가 주셔야 할 것 같네요.”

“예에?!”

김민식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쩍 벌렸다.

“그, 그건 너무 부당합니다!”

“부당이요?”

난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도대체 뭐가 부당하다는 겁니까?”

목소리를 떨면서도 끝까지 할 말은 다 하는 김민식이었다.

“제, 제가 그걸 다 뒤집어쓰다니. 너, 너무 하십니다!”

이 남자. 진심인가?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서 발이 나가고 말았다. 김민식은 얼굴에 발을 맞고 뒤로 쓰러졌다.

“이 새끼가 지금 나랑 장난하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난 김민식에게 계속해서 발길질을 날리며 욕 한 바가지를 퍼부었다.

그런 다음 조금 진정이 되자 조직원들에게 말했다.

“뭐해? 이 새끼 일으켜.”

“예, 형님!”

머리뿐만이 아니라 얼굴 전체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김민식의 꼴이 참말이 아니었다.

“이보세요, 김민식 사장님. 지금 얻다 대고 부당하다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 겁니까? 이거 전부 당신이 해 먹은 거잖아. 그런데 지금 그걸 우리한테 뒤집어씌우겠다는 거야? 이거 보니까 오성파 때문이 아니라 전부 당신이 벌인 짓이구먼. 우리가 깡패라고 지금 우습게 보는 거지?”

김민식은 착각에 빠져 있다.

오성파가 무슨 말로 꼬드겼는지는 모르겠으나, 김민식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오성파나, 화진파가 대진 건설로 뒷돈을 챙긴 건 하나도 없다. 전부 김민식이 제 배를 불리려고 벌인 짓일 뿐.

그런데 이놈은 피해 의식에 빠져 자신이 저지른 죄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정신 좀 차리라고 밟아 놓은 것이다.

“이제 좀 상황 판단이 됩니까? 당신이 저지른 거, 당신이 다 책임지라고 우리가 여기 온 거야. 아니면 여기서 책임지게 해 줄까? 그 손목부터 어디 한번 다 잘라봐?”

난 김민식 뒤에 있는 조직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들은 망설임 없이 김민식의 팔을 붙잡고 손도끼를 꺼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세요!”

정신이 번쩍 드는지, 김민식은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빌기 시작했다.

난 빙긋 미소를 지으며 다시 부드럽게 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김민식 사장님. 처음부터 잘 좀 하시지 그랬습니까?”

“자, 잘못했습니다. 뭐든지 할 테니, 부디….”

“잘 알겠습니다. 여기서 사장님이 죽을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받으셔야죠? 저희도 담보는 챙겨야겠네요.”

“예? 다, 담보요?”

난 조직원들에게 굳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잘라.”

“예, 형님.”

“자, 잠깐만! 으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고 있는 김민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눈까지 뒤집어지며 거품을 물고 괴성을 지르더니, 결국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형님. 기절한 거 같은데요?”

그냥 겁만 준 건데, 벌써 기절한 건가.

하긴. 생살을 도끼로 찍는다는데 멀쩡할 리 없지.

“그 정도로 끝내. 어차피 진짜 자를 것도 아니었어.”

“예, 형님. 그럼, 이놈 깨울까요?”

“이따가 깨워. 지금 여기서 깨면 또 난리 친다.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예, 형님.”

조직원들은 내 명령에 따라 기절한 김민식을 끌고 갔다.

난 질질 끌려나가는 김민식을 보며 한가지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만약 이런 행위가 검찰청 내에서도 가능했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물론,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사법부의 존재는 무의미해진다.

경찰, 검찰 내부에서 폭력이 비일비재한 80년대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차차 사라지게 된다. 내가 검사질을 할 땐 조사실에서 폭력을 휘두르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내가 잡고자 했던 놈들에게 이와 같은 짓을 했다면 그들이 순순히 모든 걸 불고 알아서 감옥에 들어갔을까?

난 뚝뚝 침을 흘리고 있는 김민식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도 검사 시절 때의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무른 생각이다.

“창고로 돌아가면 종이랑 펜 하나씩 준비해라. 저 양반, 오늘 유서 한 장 써야 되니까.”

내 말을 들은 조직원들이 잠시 멈칫거리다 이내 대답했다.

“예, 형님.”

그들도 익숙한 일이라 그런지 딱히 놀란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김민식 팔을 자르지 않은 걸 아쉬워하는 눈치까지 보였다.

역시, 깡패는 깡패라는 건가.

난 조직원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서며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점점 난 이곳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지독한 놈이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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