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94화 (94/325)
  • 94화. 폭풍전야 (1)

    미국에서의 일은 거의 다 끝났다.

    이제 마무리만 잘해 놓고 가면 당분간은 미국에 올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로이를 만나는 것이고….

    “니카라과에서 넘어온 코카인의 질이 상당히 좋아. 이것저것 다 섞어서 팔면 1톤당 1억 달러는 벌 수 있을 거야.”

    어차피 코카인을 순정으로 파는 일은 드물다.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순정을 살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적은 것.

    그러니 화약 제품들을 코카인에 섞어 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저렴하게 파는 것이다.

    부작용은 가히 엄청나겠지만, 마약상들이 그걸 신경이나 쓰겠는가?

    “1톤당 1억 달러라…. 엄청나네요.”

    “그렇지? 네가 갖고 있는 30톤의 마약이면, 30억 달러는 거뜬히 벌 수 있다는 거야.”

    30억 달러면 대충 셈을 해도 한화로 3조원이 훌쩍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중요한 건 루트군요. 그 많은 걸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를 모르니까요.”

    “우리 메데인이야 뭐, 직접 나르고 직접 파는 곳이니까 상관없어. 하지만 너는 브로커를 거처야 돼. 그러다 세력이 커지면 그땐 네가 직접 파는 거고.”

    브로커를 거치면 수수료가 나간다. 그것도 브로커마다 달라서 수수료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너랑 나는 같은 배를 탄 사이니까, 그건 내가 도와줄게.”

    “로이가요?”

    “그래. 네가 제대로 루트를 뚫어 놓을 때까진 판매는 내가 책임져 주지. 우리 쪽에서 네 걸 살 수도 있고, 아니면 네 약이 필요한 딜러들과 연결해 줄 수도 있어.”

    로이 덕분에 수고스러운 일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한 배를 탄 동무다, 이건가?

    “고마워요, 로이.”

    “아냐. 이게 다 나중에 나 좋아지라고 하는 일이니까.”

    로이는 차기 카포가 되겠노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다.

    “메데인 쪽에서 이렇다 할 얘기는 없어요?”

    “지금 어수선해. 미 정부에서 메데인 카르텔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고 있으니까. 이러다 여론몰이까지 발 벗고 나서면, 끝장나는 건 한순간이지.”

    아무리 메데인 카르텔이라고 해도 미국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마약을 쉬지 않고 뿌리고 있으니, 인간의 욕심이란 항상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것이다.

    “메데인 쪽에서 로이한테 해코지를 하거나….”

    “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그쪽에서 날 죽이진 않아. 물론, 날 희생양으로 쓸 순 있겠지. 그래도 내가 순순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야.”

    꽤 자신감을 보인다.

    나도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까지 로이가 잘 버텨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믿고 있겠습니다, 로이. 그리고 철저히 준비하셔야 해요. 할 수만 있다면 메데인 수뇌부 쪽과 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아. 나도 알아. 한 번에 해치운다, 이거지?”

    이 남자는 바보가 아니다.

    난 조금 마음을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예. 바로 그겁니다.”

    “알겠어. 어차피 차기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진 미국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그전까지 나도 내 사람들을 만들어 놓을게.”

    로이는 웃으며 대답을 했다.

    가끔 보면 이 사람이 정말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 자리는 잔혹한 자만이 앉을 수 있는 왕좌다. 그런 자리를 로이 같은 사람이 쟁취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렇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게 아니겠는가?

    * * *

    “훈련은 잘 돼?”

    “또 왔어? 요즘 하루에 한 번은 꼭 오는 것 같다?”

    “네가 트레이닝 받는 건 처음 보는 거잖아.”

    난 태혁이가 다니고 있는 체육관을 찾았다.

    유명한 곳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체육관이라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태혁이는 여기 트레이너가 정말 좋다면서 한사코 이곳에 다니겠다며 우겼다.

    맘 같아서는 여러 프로 선수들을 배출한 명트레이너를 소개해 주고 싶었지만, 태혁이가 저리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은 시간을 내 직접 체육관 방문을 한 것이었다.

    “태혁이의 형님이시라고요?”

    “아, 예. 반갑습니다. 워커 김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태혁이의 트레이닝을 맡고 있는 마이클 깁슨이라고 합니다.”

    마이클 깁슨은 중년의 흑인 남성으로 이 체육관의 관장이다.

    “태혁이는 어떤가요? 잘하고 있나요?”

    마이클은 고개를 끄떡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태혁이가 처음 체육관을 찾아와 프로 복서가 된다는 말을 꺼냈을 때, 부끄럽지만 속으로는 비웃었습니다. 미스터 김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동양인이 프로 복서가 되는 건, 자살행위라는 걸.”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동양인은 프로 복서가 돼도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태혁이의 실력을 보니, 온몸에 전율이 일더군요. 저 아이는 분명 복싱 역사에 한 획으로 자리 잡을, 엄청난 복서가 될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과연 태혁이의 실력을 본 사람이라면 저런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지금은 프로 복서가 돼서는 안 됩니다. 태혁이는 다듬어질 필요가 있어요. 그전까진 프로 복서를 시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태혁이가 가진 원석을 잘 가공해 보겠다는 건가.

    솔직히 지금 실력을 가지고도 충분히 복싱 시장에서 간판스타가 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안 된다… 이겁니까?”

    “예. 전설적인, 이 세계 최고의 프로 복서가 되기 위해선 지금은 자중할 때입니다. 저 아이의 힘을 더욱 날카롭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해요.”

    왜 태혁이가 이 사람을 트레이너로 골랐는지 알 것도 같다.

    이 사람은 태혁이가 가진 힘의 겉면만 보고 판단한 게 아니다. 그 속까지 꿰뚫어내, 안에 있는 원석을 밖으로 빼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 원석의 광채에 감탄하도록.

    “태혁이가 준비되면 언제든 이쪽으로 연락 주십시오. 모든 비용은 여기서 청구가 될 겁니다.”

    “하하. 든든한 스폰서까지 있고, 정말 태혁이는 복 받은 아이군요.”

    내가 사무실 번호를 건네자, 마이클의 눈빛이 반짝였다.

    돈 걱정 없이 선수를 키울 수 있는 것만큼, 트레이너로서 행복한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김.”

    마이클과의 대화를 끝내고, 나는 링 위에서 섀도복싱 중인 태혁이에게 다가갔다.

    “연습 잘하고. 형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래? 이번에는 좀 오래 있다 가긴 하네. 엄마 외롭겠다.”

    “어머니 걱정은 하지 마. 가게 때문에 바쁘셔서 내 얼굴 보는 시간도 없으실 걸?”

    “하하. 그렇게 잘 돼?”

    “그쪽 상권은 곧 어머니가 다 먹는다고 보면 돼.”

    세상 누구보다 어머니 일이라면 가장 기뻐하는 태혁이다.

    녀석 입이 헤벌쭉 벌려지기까지 했다.

    “아무튼, 내가 챔피언 벨트 잔뜩 따고 금의환향할 때까지 몸 건강히 기다리라고 해.”

    “그려. 혹시라도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김아름 씨한테 연락하고.”

    김아름 이름이 나오자 태혁이는 안색을 굳혔다.

    “으응. 근데 그 누나 너무 무서워. 얼굴은 예쁜데, 뭐랄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그 맘, 충분히 이해한다…. 난 거의 매일 보잖아.”

    난 태혁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링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아무튼, 형 내일 가니까 나올 거지?”

    “응, 그럴게. 조심히 들어가!”

    나는 체육관을 나와 곧장 호텔로 향했다. 내일 떠나야 하는데, 짐도 아직 싸지 못했다.

    내 개인 짐이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때 선물 사 오라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덕분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 * *

    “미국에는 또 언제 오시는 거예요?”

    권윤아는 라스베이거스 공항까지 나와 주었다. 그 옆에 김아름까지 있으니, 두 미녀의 배웅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참 묘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항상 덩치들의 배웅만 받아서 그런가…?

    “글쎄요. 아직은 잡힌 계획이 없습니다. 그래도 윤아 씨를 보기 위해서라면 자주 와야겠는데요?”

    내가 말해 놓고도 소름이 끼치는 멘트였지만, 권윤아는 매우 좋아하는 눈치다.

    난 슬쩍 김아름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럼 그렇지.

    뭔가를 기대한 내가 이상한 거겠지.

    “김아름 씨.”

    “예, 사장님.”

    “로이와 강철중 씨에게도 말은 잘해 놓았어요. 앞으로 좀 많이 바빠질 예정이니까, 필요하면 직원들도 많이 뽑아 두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두 미녀 사이에 끼어 있던 태혁이는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분은 누구셔?”

    “응? 아. 그게….”

    눈치 빠른 권윤아가 내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안녕하세요. 혹시 태산 씨 동생분…?”

    “아, 네.”

    “반가워요. 전 태산 씨 여자 친구 되는 사람이에요.”

    “…예?”

    나와 태혁이가 동시에 반문했다.

    여자 친구라니?

    태혁이는 배신감 어린 눈빛을 내게 보냈고, 난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권윤아를 바라보았다.

    “태혁 씨 이야기는 태산 씨에게 자주 들었어요. 프로 복서 준비 중이라고 하시던데. 나중에 경기하실 때 응원 갈게요!”

    “아…. 가, 감사합니다.”

    태혁이는 날 슬쩍 바라보더니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무래도 딱딱하고 차가운 김아름 보다는, 살근살근한 권윤아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꼭 다시 오셔야 해요.”

    “예. 윤아 씨.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태혁이 너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김아름 씨, 잘 부탁드릴게요.”

    “예, 사장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난 세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객기 일등석에 몸을 실자마자 쌓여 있던 긴장감이 전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비행기 안에서 곤히 잠든 것 같다.

    * * *

    86년의 한국은 폭풍전야의 그것과도 같은 시기다.

    87년이 되면 6월 민주항쟁과 더불어 6.29 선언까지 나온다.

    현 정부가 무너지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라는 것.

    그 전까지는 문제가 없으나, 그 후부터가 문제다.

    차기 대통령이 될 노영일은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조직폭력배를 쥐 잡듯 잡게 될 터.

    그때까지 대비하지 못하면 화진파도 그 난리를 온전히 피해갈 순 없을 것이다.

    “장사가… 정말 잘 되고 있네요.”

    “말도 마라. 손님들이 매일 줄 서서 먹고 있잖니.”

    어머니 가게는 내 생각 이상으로 호황을 맞이했다.

    단순히 닭갈비의 유행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굉장한 인기다.

    “가게를 넓히던가, 아니면 새로 가게를 내시던가 해야겠는데요?”

    “그래야 되나…. 괜히 다른 곳에 점포를 냈다가, 손님들이 분산돼서 오히려 장사가 더 안되는 건 아닌지….”

    가게를 넓히는 방법도 있겠지만, 지금 이 건물의 위층은 사무실이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당장 넓히기는 힘들었다. 그렇다면 체인점을 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겠는가?

    “여기랑 거리가 떨어진 곳에 내야죠. 마음 정하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잘 해결해 드릴게요.”

    “어이구. 우리 아들. 이 어미 때문에 고생이구나.”

    어머니는 밝게 웃으시며 내 손을 꼭 붙잡으셨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분이셨지만, 요즘 들어 얼굴에 화색이 도시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근데 학교 공부는 어떻게 하려고? 요즘 일 때문에 바빠서 학교도 제대로 못 갔잖아. 그러다가 퇴학이라도 당하면….”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그 문제는 이미 해결해 뒀어요.”

    학교 측은 이미 권용일이 손을 써둔 상태다. 굳이 권용일이 아니더라도, 그런 건 이제 내가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학교 선생들도 내가 퇴학당하는 걸 결코 바라지 않는다.

    내가 없어지면 학교가 다시 옛날 그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걸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대학교로 진학을 할 것인지, 아니면 학교는 다니지 말고 조직 일에 신경을 쓸 것인지….

    딱히 대학을 다닐 필요가 없을 것 같긴 한데….

    “어머니.”

    “응?”

    “어머니는 제가 대학에 갔으면 좋겠어요?”

    내 질문을 들은 어머니는 곧바로 답을 내놓으셨다.

    “당연하지. 이 어미도 못 갔고, 태혁이도 학교는 안 다니잖아. 너라도 가면 이 어미의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아무래도 오늘부터 어느 대학을 갈 것인지 고민해 봐야겠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의 소원이라면 꼭 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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