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레이건이 준 대박 (3)
“어, 어떤 방법을 말하는 것이오?”
호기심이 폭발한 올리버 노스는 재촉하듯 내게 물었다. 이란 문제를 해결할 만한 방법.
이란에게 무기를 팔고, 그 돈으로 콘트라 반군을 돕는 건 미국에게 상당히 득이 되는 작전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이 발각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 회사 측에서는 이란 문제를 확실히 해결할 만한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리고 이란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다른 일도 처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회사라면… 리턴 컴퍼니?”
“예. 맞습니다.”
“그 다른 일이라는 도대체 뭐요?”
한창 극에 달한 궁금증이 훤히 보일 정도다. 여기서부터는 밀당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난 짐짓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로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았군요. 부디 제 말은 다 잊어 주십시오.”
내가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려고 하자, 올리버는 덥석 내 팔을 잡으며 강제로 나를 앉혔다. 이 양반, 힘이 아주 장사다.
“하하. 그러지 말고 좀 더 이야기합시다. 정말 궁금해서 그런 거니까.”
“하지만… 제가 함부로 떠들고 다닐 수 없는 내용입니다. 외부인에게 함부로 떠벌렸다는 게 알려지면….”
올리버도 내 사정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어깨를 토닥였다.
“나도 다 알지. 어디나 기밀 엄수는 필수이니까. 그럼, 이건 어떻소? 그쪽 회사 사람들과 정식으로 미팅을 하는 것이?”
“미팅… 이요?”
“그래요. 미팅. 비즈니스 미팅처럼 서로 만나서 조언을 구하고 싶소만.”
좋아. 제대로 입질이 왔다. 하지만 단번에 낚는 건 재미가 없다. 좀 더 미끼를 흔들며 애를 태워야, 더욱 세게 찌를 물게 될 것이다.
“음…. 중령님께는 죄송하지만, 비즈니스 미팅이라는 게 아무래도 서로 오가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이니….”
내가 한 번 더 튕기자 올리버도 뭔가를 결심한 듯 보였다.
그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주변을 슥 살펴보다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사실…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난 백악관에서 일하고 있다오. 이 정도면 서로 교환할 만한 게 있다고 생각되는데?”
스스로 백악관 소속이라는 것까지 밝혔다. NSC를 돌려 말한 것 같지만, 그 말이 곧 스스로 알아채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듣고도 계속 당기기만 한다면, 상대는 밧줄을 집어 던지려고 할 것이다.
“백악관이라면…!”
난 더욱 놀란 척을 하며 쩍 벌려진 입을 가렸다.
올리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내게 말했다.
“사실 NSC라 봄이 더 맞지만…. 어떻소,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이거… 보통이 아니신 분 같다 싶었는데, 역시 제 눈이 맞았군요. 물론입니다. NSC 소속의 중령님이시라면 충분히 서로 오갈 게 있겠지요.”
NSC는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법을 무시한 채 은밀히 진행하는 일들이 많다. 당연히 사업가들에게는 NSC가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배를 채워주는 돈 통으로 볼 터.
NSC 소속, 거기다가 중령 정도의 직급이라면 어떤 회사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저 양반이 보이는 것처럼 어깨에 힘을 꽉 주고 있는 것이다.
“제 명함입니다.”
나는 공손히 올리버에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그러자 그는 좀 거만한 자세로 내 명함을 살폈다.
“실장?”
“예.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중령님께서 원하시는 날짜에 맞춰, 회사 대표님과 만남을 주선해 드리겠습니다.”
회사 대표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제안에, 올리버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듯했다. 이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건수다. 절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시간이 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만나보고 싶소만.”
“그럼, 어디가 편하시겠습니까?”
“SA호텔이라고 아시오? 거기 근처에 레스토랑 하나가 있는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만한 곳이지.”
“아-.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쪽으로 내일 언제쯤 가면 되겠습니까?”
올리버는 시계를 바라보며 뭔가를 중얼거리다, 내게 대답했다.
“오후 6시가 어떻소?”
“좋습니다. 그럼, 그때 대표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쉽게, 쉽게 가서 좋군. 그럼, 그때로 알고…. 이만 난 먼저 가도록 하겠소. 가족들이 기다려서 말이오.”
“아, 시간을 빼앗은 거 같아 죄송합니다.”
“아니오. 내일 봅시다.”
올리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나는 굽히고 있던 허리를 천천히 들며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띠었다.
첫 번째 단추가 아주 잘 맞은 것 같아 만족스럽다.
* * *
존 반디는 정장 넥타이를 곧게 정리하며 의자에 앉았다. 이런 일이 익숙한지, 그에게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나왔다. 저런 컨디션이라면, 충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존. 제가 시킨 대로만 하면 됩니다. 최대한 저한테 대화의 주도권을 넘기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 부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서 한 번 더 말하면 너무 꼰대 같아 보이려나.
난 잔소리를 멈추고 올리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 마음이 바뀌어서 안 오는 건 아니겠지?
“아. 이거 늦어서 미안합니다.”
다행히 올리버는 약속한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저놈도 출세욕에 눈이 먼 사람 중 하나다.
“아닙니다, 중령님. 반갑습니다. 리턴 컴퍼니의 대표 톰 윈스턴 이라고 합니다.”
존 반디는 내가 미리 만들어 준 명함을 꺼내 상대에게 건넸다. 올리버는 그것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일단 식사부터….”
존 반디의 제안에 올리버는 사안이 급한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오. 가볍게 와인이나 한잔하면서 얘기하도록 합시다.”
반디는 여유롭게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하하. 조금 일이 급하신 모양입니다. 좋습니다. 여기 레스토랑이 추천하는 와인은 저도 즐겨 마십니다. 가볍게 한잔 하시지요.”
오. 생각 이상으로 존 반디가 내 대리 역할을 아주 잘해 주고 있다.
우리는 지배인이 추천하는 와인을 하나 시킨 뒤, 올리버가 원하는 대로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여기 제 실장에게 따로 이야기를 전해 받았습니다. 이란 문제로 인해 저희와 상의하고 싶으신 게 있다고….”
“그렇소. 여기 워커 김 실장이 내게 이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있다 했소. 당신의 리턴 컴퍼니에서 말이오.”
“하하. 이런…. 미스터 김이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존 반디는 날 슬쩍 노려보는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미스터 김이 드린 말씀은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쪽 사업으로 정부에 로비를 한번 해 볼까 싶었는데…. 중령님이 도와주신다면 이란 문제와 더불어 콘트라 반군에 대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와인잔을 들이켜던 올리버는,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들고 있던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코, 콘트라 반군!”
“왜 그러시죠? 니카라과 공화국에서 친미 성향을 띠는 게 콘트라 반군입니다. 거길 미국이 돕고 있는 건 예전부터 다 알려진 사실이지 않습니까? 아, 물론 볼랜드 법안이 통과되면서, 콘트라를 지원하는 일이 공식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말이죠.”
“그 말은 마치 우리가, 비공식적으로 콘트라 반군을 돕고 있다는 듯한 얘기군요.”
“아닙니까?”
올리버는 딱히 반박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고는 와인잔을 들이켰다.
“속 시원히 말하겠소. 어차피 조언을 구하러 온 쪽은 나니까. 우리가 콘트라 반군을 비공식적으로 돕긴 했다만, 아주 미미하오. 큰 자금이 필요하다는 소리지.”
더는 숨기지 않겠다는 듯이 올리버가 현재 사정을 밝혔다. 과연 내 예측대로다. 이제 다시 존 반디의 연기를 감상할 시간이다.
“역시, 그러셨군요. 그래서 우리 회사가 중령님께, 아니 현 정부에 필요하다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저희와 손을 한 번 잡아보시는 게?”
올리버는 조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난 아직 그쪽에게 들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하하. 물론입니다. 사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만한 방법이 나온 곳은 제가 아니라 바로 이 친구거든요. 이 친구와 잘 상의를 하신다면, 전체적인 그림을 쉽게 그리실 수 있을 겁니다.”
존 반디는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올리버가 내게 흥미를 갖도록 유도했다.
정말 술과 여자만 아니었다면, 대성할 배우인데….
“그럼, 어디 한 번 들어봅시다. 나도 슬슬 답답해질 노릇이니까.”
이제부터가 올리버를 진짜 구워삶아 줄 때다.
“이란이 지금 레바논에 인질을 잡아 둔 이유가 뭐 때문인지 아실 겁니다.”
“그야 우리가 수출 제재를 걸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쓸데없는 말은 다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얼른 들어갑시다.”
원하는 바다. 나도 질질 늘어놓고 싶은 생각이 요만큼도 없다.
“이란과 협상을 해서 무기를 팔면 됩니다. 인질 교환을 조건으로 내거세요. 그리고 미제 무기를 넘긴다고 이란을 꼬신다면…? 분명, 그쪽에서는 예스를 할 겁니다.”
올리버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가 애써 제재를 걸었는데 무기를 팔자? 우리가 그런 생각도 안 해 본 줄 아시오?”
“물론 하셨겠지요. 하지만 정가에 팔자는 게 아닙니다. 세 배가 넘는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겁니다. 그리고 그 차익으로 콘트라 반군을 지원해 주는 겁니다. 이렇게만 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 의견에 올리버는 움찔거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것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는 걸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사실, 올리버 노스가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그리고 NSC에 의제를 넣어 대통령의 승인을 어떻게 받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직 올리버는 내가 건넨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기에 내가 기회를 잡을 수 있던 것이다.
“그거… 꽤 괜찮은 생각인데?”
“예. 이보다 좋은 아이디어는 없을 겁니다. 어차피 적국에 비싼 값으로 무기를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이익을 챙기는 건 전략의 기본입니다.”
“그렇지…. 그 세 배가 넘는 가격이라면, 차익으로 콘트라 반군을 도와주고 사회주의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을지도….”
미군이 그 후진국에 있는 콘트라 반군을 돕는 이유는 딱 하나다. 냉전 시대가 종식되긴 했지만, 사회주의 나라가 늘어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레이건은 극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사회주의라면 이를 가는 사람이라는 건데, 그것 때문에라도 니카라과 공화국을 장악한 사회주의 정권의 붕괴를 원하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계획을 세운다면 충분히 좋은 그림이 나올 겁니다. 그러니 우리 회사가 돕게 해 주십시오.”
나의 말에 올리버는 길게 고민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다 더 좋은 의견은 아마 없을 것 같소. 이란에게 세 배가 넘는 가격으로 무기를 팔고, 그 차익을 이용해 콘트라 반군을 돕는다라-. 이보다 명쾌한 답이 또 어디 있겠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리턴 컴퍼니가 이 일에 끼어들게 된다고 해서 크게 득을 보는 일은 없을 텐데?”
올리버로써는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갑자기 아무런 관계도 없는 리턴 컴퍼니가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이 사람이 모르는 게 있다.
이번 사건으로 50톤이 넘는 마약이, 바다를 건너 미국에 뿌려지지 않던가. 일이 그렇게까지 흘러갈 거라고는 올리버도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저희 회사도 정부와 든든한 연줄이 생긴다면 안심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미 정부를 도울 수 있는 일이 많이 생긴다면 오히려 환영입니다. 이게 모두 세계의 수호자 미국을 위한 일이니까요.”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애국심이다. 설사 그런 게 없다고 해도 스스로는 애국심이 넘치는 줄 안다. 그리고 올리버 노스는 천생 군인이다.
훗날 청문회에서 이 모든 게 조국을 위한 일이었으며,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을 뻔뻔스럽게 입에 담지 않던가?
“하하. 그 말이 맞아. 이게 다 조국을 위한 일이지. 개인의 이득을 챙기는 것이 아닌….”
“예. 바로 그겁니다. 그럼, 저희와 함께 손을 잡아주시겠습니까?”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 존 반디와 내 손을 번갈아 맞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소. 이 내용은 보고를 올린 다음, 승인을 받도록 하겠소. 만일 승인이 떨어지면 그때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하도록 합시다.”
다행히 올리버 노스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것으로 된 건가.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