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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73화 (73/325)

73화. 마치 내가 한 것처럼. (1)

“이쪽입니다, 사장님.”

오늘따라 김종관이 더 싹싹하게 구는 거 같은데….

단순히 기분 탓인가.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김 실장님이 같이 가 주시면 되지 않나요?”

“그, 그렇기는 합니다만….”

김종관은 짧게 한숨을 뱉으며 나를 인도했다.

넓은 저택처럼 크게 지어져 있는 스시집.

이곳에서 야마켄 구미 2대 쿠미쵸, 와타나베 요시노리를 만나기로 했다. 생각보다 빨리 그 작자가 미끼를 물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오늘은 가게를 운영하지 않는다. 돌아가도록.”

입구에 다다르자 검은 양복을 입은 떡대 두 명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김종관은 유창한 일본어로 상대에게 말했다.

“와타나베 쿠미쵸를 뵈러 왔습니다. 이미 약속을 잡아 놓은 상태입니다.”

두 떡대가 우리의 위아래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입구를 지나려는 나를 또 한 번 막아 세웠다.

“두 명만 들어갈 수 있다. 세 명은 안 돼.”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 나는 김종관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그는 내게 귓속말로 통역을 해 주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두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답니다.”

강철중을 데려가지 못한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강철중 씨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하지만… 사장님.”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삐삐라도 칠게요.”

나는 주머니에 있던 삐삐를 살짝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강철중도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나 내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사장님.”

“예.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조직원 중 하나가 앞장서며 길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가지.”

“이쪽으로 가면 된다고 합니다.”

조직원이 안내해 준 방은 미닫이문이 있고, 게이샤 두 명이 무릎을 꿇은 채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발을 디디자, 그 둘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방문을 열어주었다.

와타나베 요시노리라는 이름만 책에서 봤을 뿐, 사진은 본적이 없다. 그래서 난 그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과연 이 문 너머에 어떤 얼굴이 있을까 매우 궁금했다.

“왔군.”

방문이 열리면서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상석에 앉아 있었다. 좌우로 조직원인 듯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모두 무릎을 꿇은 채였다.

여기가 정말 스시집인지, 아니면 무기를 모아두는 방인지 모르겠다.

벽에 걸려 있는 장검들부터 시작해, 활과 갑옷들도 데코처럼 사방에 놓여 있었다. 더군다나 저 조직원들은, 각자 허리춤에 사시미 칼로 보이는 것을 차고 있었다.

“둘 중 어떤 놈이지? 감히 야마구치 구미의 쿠미쵸를 이름에 올린 녀석이?”

김종관의 안색은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미 퍼렇게 질려있었다. 그런데도 내게 꿋꿋이 통역을 하는 거 보니, 베테랑은 역시 베테랑이었다.

역시, 저기 상석으로 보이는 바닥에 앉은 사람이 와타나베인가?

“접니다. 명함은 이미 받아보셨겠지요?”

김종관의 통역에 와타나베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당연히 봤지. 어떤 미친놈인가 해서. 그러니까 네가 그놈이라는 거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를 보였다.

“예. 아마 제가 맞을 겁니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와타나베가 무언가를 소리쳤다. 그러자 양옆에 있던 조직원 여섯 명이 바람처럼 일어나, 칼을 뽑아 들곤 나와 김종관의 목에 들이댔다.

“잘 들어. 멍청한 놈아. 네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너 같은 찌꺼기가 입에 올릴 만큼 야마구치 구미의 쿠미쵸 자리는 가벼운 게 아니다. 잘 생각하고 입 놀리는 게 좋을 거야. 그럼 다시 질문을 해보지. 너, 어디서 나온 새끼냐?”

콕 찌르면 엉엉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처럼 보이던 김종관은 와타나베의 말을 바들바들 떨며 통역해 주었다. 아무래도 이 원숭이같이 생긴 놈이 나를 스파이라고 의심하는 모양이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와타나베에게 말했다.

“제가 준 명함을 봤으면 아실 텐데요. 저는 리턴 컴퍼니에서 나온 김태산 실장이라고 합니다.”

“그런 회사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어.”

“그러시겠지요. 신생이라 아직 이름을 날리진 못했습니다, 하하.”

와타나베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직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날카로운 칼날이 내 목에 닿으면서 피가 조금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이 새끼야, 지금 말장난이나 하자고 내 아까운 시간을 쪼갠 게 아니야. 어떤 새끼가 보냈는지만 말해.”

상당히 날카로운 칼이다.

살짝만 닿았는데도 벌써 피가 나오다니.

이거, 좀만 힘주면 그냥 목이 댕강 잘리겠는데….

“왜 다른 사람이 보냈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솔직히 안 무섭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알 수 없는 희열감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위기에 몰리면 몰릴수록 스릴감이 넘친다고 해야 하는 걸까.

가끔 보면 내가 변태인 거 같기도 하고….

“4대 쿠미쵸가 죽으면서 이미 내부 전쟁은 시작됐어. 서로 눈치 게임을 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경쟁자에게 첩자를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와타나베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온순할 줄 알았더니, 생각 이상으로 사나운 사람이었다.

하긴. 나를 의심할 만도 하다. 내가 뜬금없이 나타나 쿠미쵸 이야기를 꺼냈으니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 단순한 거래를 하러 온 것뿐입니다. 저도 그쪽처럼 아까운 시간 날리기 위해 여기 있는 거 아닙니다.”

내 말이 좀 도발적이었을까.

김종관은 내 눈치를 보며 선뜻 통역하지 못하고 있었다. 난 그런 김종관을 쏘아보며 말했다.

“뭐 하세요?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제 말을 그대로 전달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통역을 마친 김종관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에 반해 나는 최대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하. 거래라고?”

와타나베는 다시 조직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나와 김종관의 목숨을 위협하던 칼날이 전부 거두어졌다.

“한 번 들어나 보지. 무슨 말을 지껄이나.”

“하하. 이거, 첫 만남부터 피를 보다니…. 생각 이상으로 거친 면이 있으시네요.”

일본은 문화적으로 예의를 중시하는 나라다. 그래서 일본인만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또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야쿠자는 다르다.

이놈들은 거친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 준다. 그게 사무라이의 자세라나 뭐라나.

웃긴 건 노름판에서 시작된 야쿠자가 사무라이를 칭송하고, 정신을 계승한답시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야쿠자를 대할 때, 임협이니 협객이니 하는 등의 말을 좋아하는 것이다.

“말장난은 그만하라고 했을 텐데.”

와타나베는 언제라도 칼을 다시 뽑아 줄 수 있다는 듯 눈을 번뜩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원하는 것부터 먼저 말해도 될까요?”

와타나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을 대신했다.

“좋습니다. 혹시 야마구치 구미의 쿠미쵸가 되신다면 닌텐도라는 회사를 압박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닌텐도? 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군.”

그쪽 분야엔 아예 문외한이라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닌텐도가 그만큼 성장을 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만약 소니라고 했으면 금방 알아들었을지도 모른다.

“예. 소니만큼 큰 곳은 아니지만, 조만간 소니를 능가하는 회사가 될 겁니다. 아무튼, 가능하십니까?”

“웃기는 놈이군. 마치 나를 야마구치 구미의 쿠미쵸로 만들 수 있다는 듯이 말하다니.”

“예. 전 가능하니까요.”

통역하던 김종관이 눈을 크게 뜨며 나를 잠시 바라보다, 침을 꿀꺽 삼키며 상대에게 내 말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자 이제까지 여유로워 보이던 와타나베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무슨 말이지?”

“현재 와타나베 씨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세력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죽은 타케나카의 동생인 타케나카 마사시이지 않습니까?”

부정 못 할 사실일 것이다.

타케나카 마사히사가 이치와 카이의 습격을 받아 갑자기 죽으면서 그의 동생인 타케나카 마사시가 실권을 잡았다.

이거에 대해서 꽤 말이 많은데, 은연중에 마사시가 쿠미쵸 자리를 노리고 형인 마사히사를 죽였다는 소문이 있다.

“그런데?”

역시 부정을 하지 않는 걸 보니, 아직 더 내 이야기를 듣고 싶은 모양이다.

나는 와타나베가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건넸다.

“마사시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차기 쿠미쵸는 저절로 와타나베 씨에게 넘어갈 겁니다.”

“사, 사장님!”

하지만 먼저 놀란 건 와타나베가 아니라 김종관이었다.

나는 날카롭게 김종관을 노려보며 말했다.

“실장님은 지금 통역을 하러 온 겁니다. 한 번만 더 대화를 끊으시면….”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김종관이 마른침을 삼키는 게 전부 보일 정도다.

그가 내 말을 전달하자, 그제야 와타나베에게도 반응이 왔다.

“지금, 뭐라는 거야?”

양옆에 있던 조직원들도 경악 어린 눈빛을 띠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내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에 따라 이번 거래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이미 준비는 다 끝난 상태입니다. 와타나베 씨가 거래를 받아들이면 바로 행동에 들어갈 겁니다. 만일 이번 기회를 놓치시게 된다면, 앞으로 영영 야마구치 구미의 쿠미쵸 자리를 얻을 기회가 없을 겁니다.”

“도,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와타나베의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한 번 기세를 잡았을 때 몰아붙여야 한다.

“얼른 선택하세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만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마사시는 아무 일 없이 쿠미쵸 자리에 앉게 될 겁니다.”

눈동자를 잘게 떨며, 나를 바라보는 와타나베.

그는 여전히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 내가 도대체 뭘 믿고 네놈 말대로 하기를 바라는 거지?”

“하하. 글쎄요. 조금 부연 설명이 필요하신가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곧 있으면 마사시가 하와이로 떠날 겁니다.”

“하와이?”

“예. 저희가 그쪽에 깔아둔 미끼가 있거든요. 마사시는 그걸 물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마사시도 끝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사시는 아무 문제 없이 하와이에서 돌아올 겁니다.”

와타나베는 내가 당최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물리기엔 상당히 유혹적일 테니, 내가 그에게 적정선을 내어 준 것이다.

“일단, 오늘은 그만 물러나겠습니다. 혹시라도 다시 제게 연락을 하고 싶으시다면, 이 명함을 갖고 Y호텔로 오세요.”

나는 투숙 중인 호텔의 명함을 꺼내, 앉은 자리 앞으로 살짝 밀어놓았다.

그러자 양옆에 있던 조직원들이 나를 강제로 앉히려 했다. 하지만 와타나베가 그들을 제지하며 나를 놓아주었다.

“만약 내게 장난을 친 것이라면….”

“설마 제가 미쳤다고 이 일본 땅에서, 야마구치 구미의 차기 쿠미쵸를 건드리겠습니까?”

벌써 차기 쿠미쵸라고 불러주자, 와타나베는 힐끗 미소를 보였다.

“내가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예. 제 말대로 일이 흘러간다면 서두르셔야 합니다. 저도 이 일을 망치면 안 되거든요.”

와타나베는 나를 짧게 노려보다 손을 휘저었다. 이제 그만 밖으로 나가보라는 뜻이었다.

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와타나베에게 인사를 건넨 뒤, 방 밖을 나와 대궐처럼 넓은 스시집 대문을 나섰다.

“후아-!”

그러기 무섭게 김종관이 참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내게 달려들 것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사장님. 도대체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야마구치 구미의 쿠미쵸 자리는 또 뭐고… 거기다가 마사시를 처리하신다고 한 건….”

“김 실장님.”

“아, 예. 사, 사장님.”

“원래 그런 거 말해 주면 재미없잖아요. 그냥 한번 지켜보세요.”

“…예?”

난 고개를 갸웃거린 김종관을 뒤로 하고 강철중에게 다가갔다. 그는 내 목에서 흐르는 피를 보자, 눈을 크게 뜨며 손수건을 건넸다.

“사, 사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하. 서로 인사가 좀 격했어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너무 피를 많이 흘리신 건….”

칼이 살짝 살을 파고든 것뿐이다. 저렇게 심각한 눈으로 바라볼 필요까진 없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호텔에서 누가 저를 찾아온다면, 바로 말해 달라고 하세요.”

“아…. 예, 사장님. 그런데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묻는 강철중에게 익살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냥 오랜만에 연기 좀 하고 왔습니다.”

“…예?”

“얼른 가서 밥이라도 먹죠. 오랜만에 안 하던 짓을 했더니, 배가 다 고프네요. 일본 소고기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와규나 먹어볼까요?”

강철중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얼른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차에 타고 몸을 좌석에 기대었다.

이런 짓도 참 오랜만이다.

마치 영화 한 장면을 찍는 것처럼 능수능란한 연기를 펼쳐 와타나베를 속였다. 완전히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한 단계는 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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