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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72화 (72/325)

72화. 모든 곳에 어둠이 있다 (3)

야마구치 구미의 휘하 조직, 야마켄 구미 2대 쿠미쵸 와타나베 요시노리.

와타나베 요시노리의 성격을 빗대어 보자면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사람이다.

인내의 신이라고 불린 사람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이지 않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를 다스릴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바짝 엎드려 자신의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도요토미의 야망이 무너지자, 이에야스는 감추고 있던 칼을 꺼내 실질적으로 왜를 통일한 일인자가 됐다.

와타나베 요시노리도 비슷한 입장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전대 쿠미쵸들이 있을 땐 항상 바짝 엎드려만 있다가, 4대 쿠미쵸가 이치와 카이에게 살해당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는 10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은 야마구치 구미와 이차와 카이의 전쟁을 종결시키게 된다.

“와타나베 요시노리는 명색이 쿠미쵸입니다. 우리가 갑자기 만나 달라고 해서 만나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김종관 씨.”

“예, 사장님.”

“제가 설마 그것도 모르고 와타나베 요시노리를 만나겠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난색을 표하던 김종관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은 이 사람에게 따끔히 한마디를 해야 할 때다.

“와타나베 요시노리에게는 적당한 미끼를 뿌릴 겁니다. 그러니까 실장님은 제 말대로 하시면 됩니다.”

김종관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 이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그쪽에 어떤 미끼를 던지면 되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와타나베 요시노리에게 이 말만 전하면 됩니다. 안정적으로 야마구치 구미의 쿠미쵸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입니다.”

야마구치 구미 쿠미쵸란 말을 듣고 김종관은 경악 어린 눈빛을 짓고 있었다. 난 그런 그에게 명함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쪽에 이걸 전달해 주세요.”

김종관은 명함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턴… 컴퍼니?”

“예. 제가 거기 실장입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저 얼굴을 보니 왠지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만 전해 주세요.”

“사장님…. 제가 주제넘은 말을 하는 건 알지만, 그래도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방금 야마구치 구미의 쿠미쵸가 되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하셨습니까?”

“예.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사, 사장님. 야마구치 구미는 엄청난 조직입니다. 우리 화진파는 그쪽에 명함도 못 내밀어요. 그런데 어떻게 사장님이 와타나베를 도울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설사 그러겠다고 해도, 조금만 어긋나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여기서는 무작정 다그치기보다는, 부드럽게 진정시켜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김종관의 입장은 백 번 헤아리고도 남는다. 누가 봐도 내가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내가 확실한 방법도 없이 이런 일을 꾸몄겠는가?

“실장님이 걱정하시는 이유는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한 번 맡겨봐 주세요. 괜히 이런 짓을 벌이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김 실장님. 지금 당장 설명을 듣고 싶으시겠지만, 어차피 제가 말해봤자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니 제 말대로 해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김종관은 우물쭈물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 * *

풀이 죽은 모습으로 김종관이 돌아가자, 그제야 강철중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사장님. 이번 일은 너무 무리하시는 게 아닌지….”

강철중도 내가 무모한 짓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구구절절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 갑자기 사장님이 야마구치 구미의 일에 끼어드시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뭐…. 그 조직을 이용해서 멱살 좀 잡을 곳이 있어서요.”

“설마, 닌텐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강철중은 일본의 사정이 어떤지 잘 모르고 있다.

화진파가 천성을 쥐락펴락할 순 없지만, 야마구치 구미는 닌텐도쯤은 구워삶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연간 이익이 몇 조원에 달하고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조직원 수가 수천 명에 달한다. 거기다가 그들은 대낮에도 총을 쏠 정도로 거침이 없다. 물론 이것으로 그들을 압박할 생각은 아니지만, 야마구치의 힘은 그것만이 아니다.

만일 이들이 닌텐도를 압박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생각의 발단으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불가능할 거로 생각하십니까?”

“야마구치가 그정도로 힘이 강하단 말씀이십니까?”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럼, 더더욱 일이 힘든 게 아닐지…. 그 정도로 큰 조직이 사장님 말씀대로 움직여 줄까요?”

솔직한 사람이다.

내 비위를 맞추기보다는 직언을 아끼지 않는다.

“내기할까요? 과연 그들이 제 말을 들어줄지, 들어주지 않을지.”

강철중은 깜짝 놀라며 손을 빠르게 저었다.

“사장님과 도박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제가 라스베가스에서 사장님 실력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절 믿어보시겠다는 겁니까?”

“하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완전히 믿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만일,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신다면 사장님이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믿겠습니다.”

내 운을 시험이라도 해 보겠다는 건가?

뭐,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이번 일도 내가 정말 성공시킨다면, 강철중은 내가 무슨 짓을 벌이든 따를 것이다.

“좋습니다. 제 기억력이 굉장히 좋아요. 그 말씀, 꼭 기억해 놓을 겁니다.”

“예. 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번 일이 꼭 잘 됐으면 좋겠네요.”

“잘 될 겁니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강철중에게 말했다.

“저번에 먹지 못한 라멘이나 한 그릇 하러 갈까요? 제가 미리 알아둔 곳이 있는데.”

* * *

“김태산 씨.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길어봐야 3주에요. 딱 3주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내 말이 너무 뜬금없었는지 이강찬의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잠깐 눈을 감고 있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3주…. 그 정도 시간을 드리면 닌텐도와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겁니까?”

“예. 길면 3주, 짧으면 2주입니다.”

이강찬은 날 물끄러미 살펴보다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하하. 딱히 알아봤자 좋은 일은 아닙니다. 좀 어두운 부분이라 서요.”

괜히 알고 있다가 탈이 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강찬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실, 어떻게 하면 계약을 이끌어낼지 밤새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태산 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조금 불안하면서도 안심이 되는군요.”

난 그런 이강찬에게 슬쩍 돌을 던져보았다.

“닌텐도와의 거래를 꼭 성사시키고 싶으신가 봅니다. 아무래도… 형님들 때문인가요?”

이미 나를 겪을 만큼 겪은 탓인지, 이번에는 크게 놀라지 않는 반응이었지만….

“글쎄요. 전 제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조금 기분이 상한 건가. 난 금방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말을 했네요.”

“아닙니다. 솔직히… 찔리긴 하네요.”

처음에는 조금 경계를 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솔직하게 대답을 한다.

나를 신뢰하는 건지, 아니라면 여전히 나를 의심하면서 역으로 떠보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조만간 좋은 소식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앞으로 많이 바빠질 것 같아서요.”

“예. 그동안 저도 계속해서 닌텐도와 컨택을 해 보긴 하겠습니다. 태산 씨께서 뛰어다니는 동안, 저도 놀고만 있을 순 없죠.”

“감사합니다, 실장님.”

이강찬에게도 할 말은 다 했고, 이제 김종관의 깔끔한 일 처리만을 기다릴 뿐이다.

김종관이란 사람을 자세히 모르다 보니, 그가 과연 일을 제대로 해낼지 의문이다. 하지만 권용일이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지 않던가.

분명 김종관이 잘해낼 거라 믿었다.

* * *

“사장님. 야마켄 구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야마켄 구미가 운영하는 스시집에서 사장님을 뵙고 싶다더군요.”

생각보다 빨리 와타나베가 미끼를 물었다.

김종관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사장님께서는 사자 굴로 들어가시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총부터 꺼내는 놈들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내가 미쳤다는 듯 바라보는 김종관에게 옅은 미소를 보냈다.

“하하. 제가 옛날부터 이렇게 막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니 김 실장님도 각오 단단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일본어는 잘 하지 못해서, 통역해 줄 분이 필요하거든요.”

김종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그, 그 말씀은….”

“저와 함께 가셔야 한다는 겁니다. 통역은 해 주셔야죠.”

“사, 사장님!”

김종관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와 같이 야마켄 구역에 들어간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잔뜩 겁에 질려 있다. 역시, 이 사람 조폭은 아니구나.

“내일 저녁 약속인가요?”

“사장님. 저, 정말 저와 함께 가시는 겁니까?”

“예. 실장님. 그렇다고 다른 통역가를 쓸 순 없지 않습니까? 괜한 말이라도 새어 나가면 안 되니까요.”

김종관은 내 옆에 있던 강철중에게 시선을 옮기며 도와달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강철중에게 백날 저래 봐야 소용없다.

“아직 제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실장님. 내일 저녁인가요?”

힘없이 김종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면 하늘이라도 무너진 줄 알겠다.

“그럼, 내일 가는 거로 알고 있겠습니다. 장소가 어딘지는 김종관 씨가 알고 계시니, 안내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밖을 나가는 김종관이 조금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렇게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일본에서 일이 있을 때마다 김종관을 적절히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와타나베를 구워삶는지 옆에서 지켜본다면, 김종관의 생각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 * *

김종관은 방 안을 계속 왔다 갔다 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 그는 결국 마음을 정했는지, 방 밖을 나가 국제 라인이 깔린 통신소로 갔다.

한참 통화를 연결하기 위해 기다리던 김종관은 저 너머에서 소리가 들리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큰 형님. 저 김종관입니다.”

“어-. 종관이냐? 갑자기 무슨 일이야?”

“그게 형님….”

김종관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김태산이 일본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전부 일러바쳤다. 그 어린놈이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김종관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권용일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종관아.”

“예, 큰 형님.”

그리고 첫 마디는 매우 살벌했다.

“죽고 싶냐?”

“…예?”

권용일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에 김종관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태산이가 하려는 일은 전부 도우라고 했지? 그놈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르라고 말이야.”

“…예.”

“그런데 감히 너 따위가 지금 불복종을 하겠다는 거야? 그놈이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거냐?”

“혀, 형님. 그런 게 아니라….”

불안한 직감이 스쳐 지나간 김종관은 애써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늦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새끼야! 그럼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거야? 그놈이 너한테 뭔 미친 짓거리를 시킨다고 해도, 넌 그냥 입 닥치고 따르라고. 그래서 내가 널 거기로 보낸 거야!”

어떤 미친 짓거리를 해도?

그만큼 김태산을 신뢰한다는 건가.

그 권용일이?

김종관은 김태산이 이 정도의 신임을 받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제야 그는 잘못 건드려도 한참을 잘못 건드렸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 한번만 더 개소리해 봐. 그땐 내가 어떻게 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자고.”

안 봐도 견적이 나온다.

권용일이라면 똘마니들을 풀어서 김종관과 관련된 사람부터 전부 죽여 버릴 것이다. 이제까지 불복종을 한 사람들에게는 전부 그렇게 했으니까.

“왜 대답이 없어, 이 새끼야.”

수화기를 잡고 있던 손까지 벌벌 떨며, 김종관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 어떤 일이든 맡겨만 주신다면 다 해내겠습니다!”

싹싹 빌고 나서야 권용일의 차가운 목소리도 조금 사그라들었다.

“허허. 그래. 우리 종관이가 또 실수할 리 없지. 그러니까 이제 잘하도록 해. 혹시라도 또 그런 잡생각이 들면 언제든 나한테 말하고. 두 번 다시 생각이라는 걸 하지 못하게 해 줄 테니까.”

하지만 끝까지 살기를 감추지 않는 권용일이었다.

김종관은 다시 한번 허리를 연신 숙이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크, 큰 형님.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간신히 전화를 끊은 김종관은 십년감수한 사람처럼 한숨을 뱉었다.

오늘 삐끗 잘못했으면 골로 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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