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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71화 (71/325)
  • 71화. 모든 곳에 어둠이 있다. (2)

    “저희 아버지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태산 씨는.”

    “…예?”

    잠깐. 이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다.

    “저희 아버지께서 항상 그러셨죠. 이 나라가 망해도 사는 기업. 바로 그런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거기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그런 기업을 세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실장님께만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아니죠?”

    “하하. 물론입니다. 아들들을 쭉 불러서 설교할 때 주로 하는 말씀이시죠.”

    이런 사상은 이철호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건가.

    하긴. 천성이 장학생들을 각 공공기관에 뿌려 호위대를 만드는 건 이철호 때부터 시작한 일이다.

    그가 뿌려 놓은 씨앗을 수확하게 되는 사람이 바로 이강찬이라는 것.

    이강찬 개인이 가지고 있는 야망도 있겠지만, 이철호가 가지고 있던 야망도 그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실장님은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아니라고 하면 속물처럼 보이려나요?”

    “제 출신을 잠깐 잊으셨나보네요.”

    이강찬은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대놓고 웃으면 내게 실례라도 될까 봐 작게 웃는 걸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아버지는 진짜 저런 회사를 만들기 위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계세요. 아마 차기 회장이 될 사람이 큰 득을 보게 되겠죠.”

    “차기 회장이라…. 그게 실장님일까요?”

    갑작스러운 내 물음에 이강찬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평상시 모습을 돌아와 미소를 띠었다.

    섣부른 대답은 하지 않겠다는 건가.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걸 물었네요.”

    나는 정중히 사과를 했다. 상대가 껄끄러워하는 질문을 한 건 내 잘못이니까. 하지만 숨기기만 하던 이강찬이 속내를 드러냈다.

    “하하. 아닙니다. 사실, 태산 씨는 제가 회장 자리에 욕심이 있는지, 없는지가 궁금하신 거 아닌가요?”

    이강찬은 앞에 있던 물잔을 들고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었다.

    “제가 막내아들이란 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세간에서 저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나도 잔을 들어 입을 적신 다음 말했다.

    “솔직하게?”

    이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게.”

    상대가 솔직하게 말하라는데, 속마음을 숨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떠오르지 못하는 별. 장래가 없는 썩은 동아줄. 요약하자면 이 정도겠네요.”

    이토록 내가 솔직하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이강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제 지옥에서 천당으로 저 양반을 끌어와 줄 차례다.

    “하지만 이방원도 똑같이 그런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요?”

    쓴웃음을 짓고 있던 이강찬의 표정이 달라졌다.

    “실장님이 이방원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내 물음에 이강찬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물을 들이켰다. 그렇게 한동안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말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이강찬의 입이 열렸다.

    “태산 씨.”

    “예, 실장님.”

    “태산 씨는 정말 무섭게 사람을 꿰뚫어 보고 계시네요.”

    이강찬은 힐끗 미소를 보이며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둘만의 대화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실장님. 언제나 둘만의 대화로 이어 갔으면 좋겠군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쭉 이 대화를 나누자는 제안이었다.

    이강찬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걸로 이강찬의 킹메이커로써 한 발 담글 수 있게 된 것일까?

    * * *

    오사카에 위치한 닌텐도 본사는 아직 으리으리한 높이의 건물을 자랑하진 못했다. 지금 슬슬 붐을 일으키고 있는 시기니, 조만간 이들도 거대한 성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기획팀 팀장 나카무라 류이치라고 합니다.”

    이강찬에게 손을 건넨 건 닌텐도 기획팀의 팀장이었다.

    명함은 실장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기업 회장의 아들인데 고작 팀장 따위를 보냈다는 건….

    “반갑습니다. 전략팀 실장 이강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잠시 말문이 막힌 이강찬을 대신해, 나는 가지고 있던 명함을 꺼내 상대에게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리턴’사 실장 김태산이라고 합니다.”

    이강찬과 나카무라 둘 다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처음 듣는 회사명이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여기 앉으시죠.”

    우리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나카무라는 칼 같이 자르고 나섰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귀사와의 거래를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한국은 훌륭한 수익 모델이 되지 못하다는 게 저희 쪽 평가입니다.”

    “팀장님.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전쟁 이후 100년은 걸릴 복구를 빠르게 단축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발전은 멈춘 것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죠. 이 나라의 미래는 아주 밝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이강찬의 말에 나카무라는 조금 비웃는 듯한 어조를 풍기며 대답했다.

    “군부가 독재하는 나라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실장님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군부가 독재하는 나라.

    대한민국이 수익 모델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강찬도 이에 대해서는 반박할 말이 없는지 침묵을 지켰다.

    나카무라는 승자라도 된 것처럼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사와의 거래는 아직 보류하고 싶다는 게 우리 회사 측 입장입니다. 먼 길을 찾아오셨는데, 실망스러운 대답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천성과 함께 대한민국에도 시장을 넓히고 싶군요.”

    “팀장님. 잠시만….”

    “죄송합니다. 급한 회의가 있어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나카무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강찬은 실망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날 선 화살을 내게 돌렸다.

    “왜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까?”

    저 일본인과 이강찬이 나눈 대화를, 통역사의 전달을 통해 듣던 나는 등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상대는 실장님이 천성 회장님의 아들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 못해도 본부장은 나와야 한다는 건데, 팀장을 보냈어요.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건….”

    “명백한 거절이죠. 닌텐도와 컨택하면서 알고 계시지 않았나요? 저쪽은 처음부터 우리와 거래할 생각이 없었어요.”

    이강찬은 살짝 상기된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가망이 없으니 가만히 지켜만 보신 겁니까? 정말 그러셨다면 제가 태산 씨를 잘못 본….”

    난 이강찬의 불만을 중간에 잘라 버렸다.

    “승산이 없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오늘은 그냥 누가 나오는지만 확인한 겁니다. 본 게임은 다른 곳에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실, 저도 이런 방법까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좀 강압적인 방법을 쓰지 않으면 닌텐도와의 거래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강찬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이 양반으로서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방법을 쓰려는 것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닌텐도쯤은 쥐락펴락할 수 있는, 그런 곳과 먼저 거래를 할 생각입니다.”

    * * *

    야마구치 구미는 약 580개가 넘는 하위 조직을 다스리고 있다.

    쉽게 말해서 연합 형식이라는 건데, 연합 오야붕 중에서도 대표로 선출된 8명의 오야붕이 조직을 지탱하는 중이다.

    그들은 마치 그룹의 이사회처럼 투표를 통해 야마구치 구미를 이끌어 갈 총대장 즉, 쿠미쵸를 뽑는다.

    그런데 쿠미쵸를 뽑는 중에 반란이 일어나면서 일본의 지하 세계를 장악한 야마구치 구미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김종관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태산이라고 합니다.”

    김종관은 한인교포로 권용일이 예전부터 일본에서 고용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영감은 부산에 길이 열리는 대로 김종관을 통해 야쿠자와 거래를 할 심산이었던 것.

    김종관이 중간 다리를 맡았다는 건데, 이곳에 대해서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내게는 큰 도움이 아닐 수 없다.

    “사장님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화진파의 불세출이신 분을 여기서 뵙게 되네요.”

    “과찬이십니다.”

    “편하게 김 실장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사장님을 모시라는 큰 형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김종관은 나이가 서른 중반 정도로 보였다.

    깡패 생활을 했다기보다는 권용일이 이런 쪽을 일을 시키기 위해 따로 고용한 사람 같았다.

    “예.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저희가 거래를 하게 될 곳이 어디입니까?”

    “츠요시 구미입니다.”

    츠요시 구미이라-.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우리의 거래대상이 야마구치 구미이니, 여긴 떨거지 조직 중 하나라는 건데….

    “그렇군요. 거래 물목은 뭡니까?”

    “스테로이드제, 그리고 순정 코카인입니다. 이 두 개는 우리가 상대에게 건네는 것이고, 우리가 받아야 할 건 헤로인과 메스암페타민입니다.”

    “메스암페타민이라면 히로뽕?”

    “예. 잘 알고 계시네요.”

    당연하지. 이 바닥에서 내가 수십 년을 굴렀는데….

    마약이라면 아직도 그 종류를 다 외우고 다닌다.

    그나저나 헤로인에 메스암페타민이라-.

    특히 메스암페타민은 엄청난 중독성을 자랑한다.

    코카인이나 헤로인도 중독 위험이 크지만…. 메스암페타민 즉, 히로뽕은 한 번 맞으면 돌이킬 수가 없다.

    마약중독자를 치료하는 센터에서도 히로뽕을 맞은 환자는 99%가 회생 불능이라고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혹여 가까스로 치료에 성공했다고 해도, 또다시 약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헤로인은 코카인과 가격이 대충 비슷하고…. 아이스는 질이 어떠냐에 따라 가격이 다를 텐데요. 결정체가 잘 만들어져 있답니까?”

    메스암페타민은 짧게 얼음, 혹은 아이스라고 부른다.

    얼음과 비슷하게 생겼고, 얼음 결정체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회귀 전에, 간혹 관리가 안 되어 있는 사이트나 카페에 얼음을 판다는 글을 발견하면 신고를 해 달라는 홍보를 한 적이 있다.

    그중 열의 아홉은 마약 판매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질은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판매하는 스테로이드제의 퀄리티가 워낙 좋은 터라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은 이미 받아보셨나 봐요?”

    “예. 스테로이드제는 이미 확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코카인도 순정으로 판명이 나서 야상(ヤ-さん)과 거래를 틀 수 있었던 겁니다.”

    야쿠자들도 약의 퀄리티를 확인했다는 건데, 그렇다면 거래는 순조롭게 끝낼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이곳까지 온 건 고작 약이나 팔자는 게 아니다.

    닌텐도 일만 아니면 솔직히 빨리 약만 넘기고 한국으로 돌아갈 텐데, 이미 천성에 발이 묶인 이상 그 사슬을 끊어 놓아야겠다.

    “요즘 야마구치 구미 상황이 어떻습니까? 아직도 서로 총질하고 있나요?”

    “예. 이치와 카이와 여전히 전쟁 중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군요.”

    역시, 예상대로 위험한 곳이 됐다.

    거기다가 하필이면 오사카에 이치와 카이가 둥지를 틀고 있어서 여기야말로 핫플레이스다. 그래도 일은 끝까지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대한 거리에 활보하지 않고 조용히 다니면서 일을 처리해야겠다.

    “혹시 와타나베 요시노리를 알고 계십니까? 야마구치 구미의 간부 중 하나일 텐데….”

    김종관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야마구치 구미 휘하의 야마켄 구미 2대 쿠미쵸입니다.”

    “그 사람이 중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조직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갑자기 그걸 왜….”

    김종관은 불안한 목소리를 흘렸다. 나는 그런 그에게 환한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와나나베 요시노리를 좀 만나봐야 해서요.”

    앞으로 몇 달만 있으면 야마구치 구미의 쿠미쵸가 되는 와타나베를 미리 만나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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