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67화 (67/325)

67화 거리의 제왕 (3)

이창호의 말문이 열린 건, 술 세 잔을 연거푸 들이켠 다음이었다.

“요즘 우리 구역에 날파리들을 보내고 있다던데. 한번 해 보자고 그러는 건가?”

권용일은 넉살스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누구는 안 그랬나? 내가 덜 했으면 덜 했지, 더 하진 않았을 거야. 그쪽이 우리 사업장 엎은 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권용일과 이창호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기는 듯한 눈빛 싸움이 벌어졌다.

먼저 꼬리를 내린 건 이창호였다.

속이 타긴 했는지 그는 자꾸만 잔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아니,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오성파는 화진보다 우세한 대조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지금 우위에 있는 건 화진이다. 오성이 아니라는 것.

“원하는 게 뭐야? 우리 쪽 애들 건드리는 이유가 뭐냐고. 설마, 정말 한 판 붙어 보자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화진이 위에 있다고는 하나 권용일이 바보도 아니고, 오성파와 전면전을 벌이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도발을 했다는 건 이창호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함이라는 건데….

과연 우리 영감님이 저 늙다리에게 무엇을 뜯어낼지 새삼 기대가 되었다.

“내가 뭘 원해서 일부러 그런 줄 알아? 그냥 혈기 왕성한 놈들이 마음대로 날뛰는 거지.”

“혈기왕성? 마음대로 날뛰는 새끼들을 네가 가만히 지켜만 본다고?”

날 선 이창호의 목소리에 권용일은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허허. 나도 나이가 들었잖아. 그 젊은 놈들이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이 늙은이가 뭘 어쩌라고? 그러다가 내가 죽기라도 하면 그쪽이 책임질 거야?”

“참나. 요즘 아주 지랄이 풍년이네.”

이창호는 작게 투덜거리며 쭉 들이켠 잔을 강하게 내려놓았다.

“지금 말해. 안 그러면 나 진짜 갈 데까지 가는 수가 있어.”

“아이고, 무서워라. 이 사람아. 난 정말 억울하다니까?”

권용일의 장난이 슬슬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저러다가는 이창호가 동귀어진할 생각으로 오성파 전체를 움직인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성파와 화진파가 함께 자멸하고, 청룡파가 전부 먹어 치운다는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이 자식이 정말 끝까지…!”

이창호의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처럼 보였다. 저러다가 밖에 있는 놈들이 전부 안으로 들어와 깽판이라도 치면 더 골치 아프다.

하지만 역시, 권용일도 멈춰야 하는 때를 알고 있다.

“미안하이. 내가 정말 힘이 없어서 그래. 그러니까 그쪽이 좀 도와줘. 애들이 그렇게 부산을 가고 싶어 하는 걸 억지로 말리고 있긴 한데, 계속 그러다가는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야.”

권용일의 본심이 나왔다.

결국, 그가 원하던 건 부산.

오성파가 시작된 곳이자, 오성파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부산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화진파는 오래전부터 부산에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지만, 오성파가 눈을 번뜩이고 있는 터라 그냥 입만 다시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 영감님이 역전의 기회를 살려 부산에 발을 담가 보려는 것이다.

당연히 이창호의 반응은 싸늘할 수밖에 없으리라.

“뭐? 부산을? 이것들이 지금 누구를 병신으로 아나.”

“허허. 우리 애들이 부산 바다 보면서 있고 싶다잖아. 이 늙은이가 그런 걸 어떻게 막아?”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이창호와는 달리 권용일은 여전히 익살스럽게 잘만 말하고 있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이 새끼야. 어디 한 번 우리 나와바리에 들어오기만 해 봐. 아주 작살을 내줄 테니까.”

“너무 그러지 말어. 다 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리고 내가 언제 부산을 통째로 달라고 했나? 그냥 저기 밑에 섬나라 원숭이들이 재롱 피우는 거 좀 보자는 거지.”

잠깐.

우리 영감님이 원하는 건 단순히 부산에 세력을 확장하는 게 아니었나.

저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저건 일본 야쿠자들과 루트를 만들어 보겠다는 소리다.

권용일의 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던 이창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쳤구먼. 쪽바리 새끼들이랑 뭐 좀 해 보겠다는 거야?”

“그쪽도 가끔 하잖아.”

“그래서? 그게 배 아파서 너도 하시겠다?”

이창호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제안이다. 저것도 결국 화진파를 불리려는 속셈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한 판 붙자. 응? 너 죽고 나 죽고 해 보자고.”

“허허. 사람 참 성질도 급하기는. 고작 이런 일에 열불이나 내고. 이창호 다 죽었네. 다 죽었어.”

“입 닥치고 똑바로 들어. 더는 우리 쪽 구역 넘보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날로….”

“요즘 약 필요하지?”

오. 이거 꽤 재밌게 나오는데?

권용일의 저 한 마디가 조잘조잘 시끄럽게 떠들던 이창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필요해, 안 필요해? 짭새 새끼들이 다 털고 튀었다며? 거기다가 인천에서도 잡것들한테 다 털리고.”

이창호는 이를 빠득 물며 권용일을 노려보았다. 내가 봐도 얄미워 죽겠는데, 저 양반은 오죽하겠는가?

거기다가 이창호도 인천에서 약이 털린 일에 대해 화진파를 의심하고 있을 터. 그런데도 저 영감이 뻔뻔하게 나오니 더욱 화가 날 것이다.

그런데도 이창호가 화를 꾹 참으며 입을 다물고 있는 건 그만큼 약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얼마큼 줄 수 있는데?”

결국, 이창호는 자존심을 버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권용일도 상대를 깎아내리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허허. 싸게 던져 줄게. 그러니까 통행세 받았다 생각하고 길 좀 열어줘. 내 이렇게 부탁함세.”

최소한의 자존심은 챙겨 준 것이었다.

“후우-. 시발. 내가 거부하지 못할 걸 이미 알고 왔구먼.”

“내가 말했잖아.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서로서로 잘되면 좋지 않겠나? 그래도 우리가 동창인데.”

동창!

이제야 이 어색한 만남의 실마리가 풀렸다.

권용일과 이창호가 동창이었다니.

이건 전혀 몰랐던 일이다.

이철호 회장도 그렇고, 역시 대한민국에서 학연?지연?혈연은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인가?

“동창 같은 소리하고 있네. 아무튼, 이번 한 번만이야. 또 내가 밖으로 나오게 만들면 그땐 다 끝장 보는 거다.”

“아이고. 이 사람아.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나야 그저 밑에 애들 눈치 보는, 이빨 다 빠진 놈이야.”

권용일은 다시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살벌하게 말을 주고받긴 했지만, 둘 다 원하는 걸 얻었다.

권용일은 야쿠자와의 루트를, 이창호는 부족했던 약을.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창호가 손해이긴 하지만, 지금은 누가 더 많은 약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힘의 차이가 달라지지 않던가.

그 약으로 만들어내는 자금력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니까.

“똘마니들은 다 내보내고 오랜만에 동창끼리 술이나 마실까?”

권용일의 말에 이창호는 옆으로 고갯짓을 보였다.

줄곧 고래 싸움에 낀 새우처럼 자리에 앉아 있던 나와 이재욱에게 그만 밖으로 나가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우리 둘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미 이럴 걸 예상이라도 했는지, 이재욱은 따로 마련된 방으로 나를 인도했다.

“하하. 두 분 다 나이에 맞지 않게 팔팔하지 않으십니까?”

첫 대면부터 친근함을 드러내는 게, 아무래도 친화력이 높은 모양이다.

그는 자리에 앉은 내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은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한잔할까요?”

내 나이를 알고 있을 텐데, 상관없다는 듯 스스럼없이 대한다.

뭐랄까. 현란한 입담과 사람을 홀딱 넘어오게 하는 친화력으로 먹고사는 타입이랄까.

깡패라는 인식보다는 세일즈맨처럼 보였다.

“감사합니다.”

뭔가 구린 냄새가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가지 없이 반응할 순 없었다.

나는 깊게 생각할 것 없이 그가 건네는 잔을 받았다.

“저희 오성파도 오성파지만, 청룡파부터 그 외 조직들에 김태산 씨의 이름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그런가요?”

난 심드렁하게 받아치며 육회를 한 점 입에 넣었다.

아까 그 두 영감 때문에 진수성찬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배를 주리기만 했다.

“예.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연합 창설부터 시작해, 단기간에 그 많은 구역을 정리했으니…. 놀랄 만도 하죠.”

“뭐, 유명해졌다고 해서 기분이 좋은 건 아닙니다. 이쪽 세상이야 원래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게, 오히려 명줄이 더 길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건 그렇죠. 하지만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위에 올라간다면 상관없지 않습니까?”

육회를 집던 내 젓가락이 멈췄다.

저건 은연중에 이재욱 스스로 야망을 드러냄과 동시에 나를 은근슬쩍 떠보는 노림수다.

“그 말씀은 제가 더 위로 올라가야 안전하다는 겁니까?”

“글쎄요. 워낙 혜안이 밝으신 분이니, 금방 위로 올라가시겠죠.”

이재욱은 금방 말을 마무리 지으며 다른 화제로 돌렸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이번 일도… 역시 김태산 씨의 머리에서 나온 일입니까?”

이제야 조금 본성을 드러내는 이재욱이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저 눈은 나를 면밀히 탐색하고 있었다. 내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하지만 내가 무슨 척하면 다 하는 놈인 줄 아나 본데, 이번에는 잘못 짚었다. 나도 우리 영감님이 저렇게 이창호의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아뇨. 전 오성파의 큰 형님을 뵈러 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하하. 정말입니까?”

“예. 저희 큰 형님이 사람 놀라게 하는 걸 좋아하셔서요. 그리고 어떤 소문이 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일을 제가 했다고 볼 순 없습니다. 그냥 운이 좋았고, 큰 형님이 토스를 잘 받아주셨기 때문이죠.”

이재욱은 술을 홀짝 마시며 말했다.

“부풀린 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도 했지만, 오늘 권용일 형님이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김태산 씨 말이라면 웃통 벗고 거리에서 춤도 출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만한 신뢰를 받고 있으시다는 건 결코 운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권용일이 진짜 웃통 벗고 춤출 사람은 아니지만, 이재욱에게는 나름 강렬하게 와 닿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권용일 형님께서도 계속 발을 넓히려고 하시는군요. 옆에 유능한 인재가 있어서 그런지, 요즘 자꾸 서두르시는 것 같습니다.”

나를 추켜 세워주면서 권용일의 속내를 파악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도 모르는 일이다.

권용일이 나와 한 번도 상의하지 않은 일을 이창호 앞에서 터트린 거니까. 물론, 그 영감이 뭘 하려는 건지 대충 예상이 가긴 하다만….

“너무 그렇게 비행기 태우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야쿠자와 손잡고 일하는 건 오성파도 똑같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합니다만…. 이러다가 밥그릇 다 빼앗기는 건 아닐지 걱정이 돼서 하는 말입니다, 하하.”

“야쿠자와 깊게 교류를 나눌 생각은 없습니다. 크게 경계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재욱은 다시 나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경계하지 말라고 하면 더 경계할 사람이지 않은가.

“아닙니다. 제가 경계한다고 해서 바뀌는 게 있을까요? 그저 김태산 씨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전부에요.”

탐색은 끝난 건가.

좀 더 파고들 줄 알았더니, 이재욱은 시답잖은 이야기만 꺼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슬슬 지루해질 틈에 조직원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와 이재욱에게 조용히 뭔가를 속삭였다.

“형님들께서 나오셨다고 합니다.”

권용일과 이창호의 숨 막히는 회담이 드디어 끝난 건가.

나는 이재욱과 함께 밖으로 나와 각자의 어른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재욱은 차에 탑승하고 있는 이창호에게 뛰어가기 전, 내게 손을 건넸다.

“다음에는 단둘이 또 뵙도록 해요, 김태산 씨. 전 태산 씨에게 흥미가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말하는 게 조금 끈적한데….

기분 탓인가.

“예…. 감사합니다.”

“그럼….”

이재욱은 내게 정중히 인사를 올린 뒤, 이창호가 있는 차량으로 뛰어갔다.

그래. 너 언제 한 번 또 보자.

이리저리 쓸 데가 많은 놈이니까.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어? 얼른 오지 않고.”

내가 잠깐 이재욱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영감님은 그새를 못 참고 목청을 높였다.

나는 점점 멀어지는 이창호의 차를 슬쩍 바라보다 권용일에게 달려갔다.

그렇지 않아도 저 영감과 할 이야기가 많지 않던가.

갑자기 일본이라니….

뭔가 이것도 나한테 덤터기를 씌울 것만 같은 건, 단순히 기분 탓이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