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사냥 시작 (3)
“처음 뵙겠습니다. 디에고 미에라라고 합니다.”
처음 생각하기로는 몸에 문신을 잔뜩 새기고 상당히 불량해 보이는 갱스터 말단 하나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중년의 신사가 멋들어진 정장을 입은 채로 내게 손을 건넸다.
카르텔 대부분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폭력적인 조직형태를 가진 것은 분명하다. 고위급이 아니고서야 이런 모습을 보이긴 힘든데….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워커 김이라고 합니다.”
나는 김아름에게 받은 명함을 상대에게 건네었다.
“으음. ‘리턴’ 컴퍼니는 처음 들어보는군요. 직책이… 실장? 그리고 저 뒤에 계신 두 분은….”
실장이란 직책은 내가 정한 것이다.
내가 대표라고 처음부터 밝히게 되면 어디에서부터 정보가 흘러갈지 모른다. 철저히 내 신분을 포장해, 대표라는 그림자를 찾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대표로 나설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뒤에서 모든 걸 지휘하는 대주주로 남을 뿐이다.
“이쪽 두 분은 제 부하직원입니다. 저희가 신생이라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앞으로 자주 듣게 되실 수 있게 바삐 활동 중입니다.”
“하하. 그렇군요. 4,500만 달러어치의 마약을 사겠다는 곳인데, 앞으로 자주 들을 것 같긴 합니다. 그만한 자금력이 있다는 소리니까요.”
이 중년의 남성은 나를 물끄러미 살펴보았다. 조금 의구심이 섞여 있는 눈빛이다.
내가 직책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걸 신경 쓰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별다른 말 없이 바로 일 이야기를 꺼냈다.
“4,500만 달러. 상당히 큰 금액이더군요. 이만한 약을 한꺼번에 공급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겁니다. 혹시, 금액을 나눠서 여러 조직에게 공급받을 생각입니까?”
“아뇨. 자잘하게 거래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희는 지금 당장 필요하니까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세세히 캐물으려 하는 디에고에게 난 입가를 비틀며 말했다.
“특이한 걸 물어보시는군요.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말씀드려야 합니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세세히 밝힐 필요는 없다. 조금은 튕겨 줘야 상대도 대화의 물꼬를 틀게 된다.
약간 가시 돋친 내 목소리에 디에고도 손사래를 치며 양해를 구했다.
“아-.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명확한 이유를 알아야 의심을 거두고 제대로 거래를 할 수 있을 테니, 드린 말씀입니다.”
“의심이라-. 4,500만 달러가 블러핑으로 보인다는 겁니까?”
“아무래도 다른 조직들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지요. 갑자기 4,500만 달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고객이 나타났으니까요. 그것도… 동양인이 말이지요.”
디에고가 슬며시 웃으며 동양인이란 단어를 꺼냈다.
인종차별을 하려고 꺼내는 말이 아니다.
특이하게 이런 쪽 세상에서는 인종차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만큼 다양한 인종의 마피아가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이들은 단순히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총이나 칼을 꺼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종에 관한 것만큼은 유독 조심을 하려고 한다. 특히 흑인을 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지금 디에고는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80년대 초반과 달리, 중반부터 중국의 마약 밀수량이 증가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주 거래처는 미국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쪽 마피아다.
그것 때문에 디에고가 나를 의문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왜 삼합회가 미국에 왔냐는 듯한 눈빛 말이다,
“제가 중국 사람인 줄 아시나 보네요. 전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이요? 거기가….”
“곧 있으면 올림픽을 하는 곳입니다.”
“음, 들어는 본 것 같습니다. 위치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름은 들어본 것 같네요.”
아직 우리나라의 이름조차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때다.
21세기에 들어서야 대한민국의 명성이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한다.
솔직히 이름을 날릴 수 있던 계기는 케이팝이나, 그 외 드라마의 인기 때문이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국의 도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 그것도 북쪽 지도자가 핵으로 협박을 한 역할이 컸을 것이다.
이것이 훗날 외국에 알려질 우리나라의 치욕적인 명성이다.
“다행히 알고 계시는군요. 지금은 아직 후진국에 불과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곧 선진국으로 거듭나게 될 겁니다.”
시답잖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디에고는 다시 슬쩍 운을 띄었다.
“그래서, 소규모 조직의 거래는 받지 않겠다는 뜻이시죠?”
이럴 때는 은근히 나도 경계를 푸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계속 튕기기만 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건, 이 사람이 내가 떠들고 있는 내용을 카르텔에게 퍼뜨려 주는 거다. 최후로는 칼리 카르텔한테 이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이고.
“좀만 있으면 올림픽이라고 시끄럽잖아요. 지금부터 몸 만들려는 선수들도 많고. 막상 올림픽이 시작되면 뒤늦게 약을 투여하려는 외국 선수들도 많을걸요? 이제까지 모든 올림픽이 다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까? 약을 하면 금메달, 안 하면 노메달.”
“하하. 잘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88올림픽은 아직 몇 년 더 남지 않았습니까?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너무 빠르다고 해야 할지….”
“그렇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찔끔찔끔 몰래 들여오는 게 쉽지가 않아요. 군부가 독재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경계가 꽤 심하거든요. 그래서 어렵게 날짜를 잡아 놓은 상태입니다. 한 번에 약을 들여오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는 겁니다.”
내 말을 조금 이해했을까.
디에고는 턱수염을 짧게 쓰다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요.”
“예. 군부 쪽 사람들이 좀 꽉 막힌 구석이 있어서요. 그래도 어떻게 잘 구워삶아서 약을 들여올 기회가 생기긴 했는데…. 늦어도 다음 달 안에는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급하게 약을 구하려고 하는 거예요. 값을 좀 얹어서래도요.”
값을 얹는다는 말이 와 닿았는지, 디에고의 눈빛이 반짝였다.
“값을 얹는다고요?”
“예. 원한다면 두 배, 아니면 세 배까지도 가능합니다. 그만큼 위쪽에서는 급하다는 거죠.”
또 한 번 반짝이는 디에고의 눈빛이었다.
“그렇게 비싸게 구입하면 막상 팔 때 손해가 될 수도 있을 텐데요.”
“마약에는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한국 쪽 유통은 이미 우리가 꽉 잡고 있습니다. 약만 받으면 열 배가 넘는 가격으로 팔 수 있어요.”
디에고는 대단하다는 듯이 휘파람을 불었다.
“열 배라니. 정말 악마가 따로 없군요.”
“하하. 스무 배까지 올려서 팔 때도 있는데요, 뭐.”
“스무 배…. 여기서는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지금이야 미국에서 스무 배가 넘는 가격으로 약을 팔진 않지만, 좀만 기다려 보면 안다.
주공급원이었던 메데인 카르텔이 무너지고, 잠깐 일인자에 올랐던 카일 카르텔까지 무너지면서 미국 마약값이 폭등하게 된다.
바로 그때를 노려, 제약 회사들이 줄줄이 마약 성분을 섞은 진통제를 팔아 어마어마한 이득을 챙긴다.
회귀 전에는 사람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칭했지만, 나는 미국이야말로 진짜 헬이라고 생각한 게 이 때문이었다.
정치권과 기업이 합심해서 국민을 약쟁이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지 않은가.
정작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대통령이란 작자는, CIA를 이용해 마약을 대량으로 미국에 유통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만들었다.
그게 바로 1986년도의 일인데, 이건 현재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영원한 오점으로 남게 된다.
사실, 그 정도면 탄핵을 당하고 징역형을 살아도 모자랄 판인데, 레이건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21세기처럼 언론이 많이 발달되지 않은 영향도 컸고…. 레이건이 국민의 지지와 언론 장악을 적절하게 하고 있어, 위기를 잘 모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저희가 이렇게 돈을 대량으로 푼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건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번에 듣기로, 어떤 조직에서 새로운 스테로이드제를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 약에 대해서 아십니까? 소문으로는 그게 도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디에고는 슬쩍 미소를 보이며 내 말을 받았다.
“정보망이 넓으신가 보군요.”
“예. 생각보다 저희가 발이 넓어서요. 꽤 긁어모으는 정보가 많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만…. 그 정도 약이면 4,500만 달러를 전부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나를 조심스레 떠본다. 이럴 땐 음흉한 속마음을 보여주는 게 좋다.
“그렇죠. 그 정도 약이면 보통 시세보다, 최소 30배에서 많으면 50배까지 고객에게 팔 수 있다는 소리니까요.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내 은근한 목소리에 디에고도 속삭이듯 내게 물었다.
“만일 그런 약이 있다면… 4,500만 달러를 전부 그쪽에 쓸 생각이십니까?”
“예. 정말 있다면 말이죠. 테스트를 거치긴 해 봐야겠지만, 솔직히 루머일 수도 있는 거라….”
“하하. 뒷거리에서 그런 루머를 퍼뜨렸다가는 그대로 사장 당합니다. 의외로 이쪽이 그 어느 곳보다 신뢰도가 굉장히 높아요.”
저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마약 시장만큼 신용도가 확실한 곳이 또 없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법보다 총이 더 앞서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약을 팔았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모두 신용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조직과 조직의 거래를 말하는 것이다.
조직과 서민의 거래에서는 가짜가 판을 치긴 한다.
“저도 압니다. 그런데 뭐든지 확실하게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은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서요.”
“아아. 이해합니다, 미스터 김. 위에서 압박하는 것만큼 숨 막히는 게 또 없죠. 저도 브로커이다 보니 여러 사람을 상대하느라 솔직히 힘들 때가 많습니다.”
디에고도 살짝 푸념을 늘어놓으며 내 말에 공감을 나타냈지만, 저건 가짜 가면일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는 후진국에서 온 동양인을 깔보기는커녕, 오히려 대화의 템포를 맞춰가며 흥미를 유도하는 사람이 일반 브로커라고? 그리고 제법 고급 정보를 많이 아는 것으로 보인다.
상당히 경험 있는 브로커라는 건데, 이 정도 베테랑이면 작은 조직에서 보냈을 리가 없다. 분명 이 사람이 어느 대조직과 연관이 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콘시글리어급 거물이거나….
“그러시군요. 이거, 제가 괜히 죄송합니다. 좀 불편하게 만들어 드린 건 아닌지….”
“하하. 아닙니다. 미스터 김은 막 나가는 어떤 사람들과는 다르게 매우 점잖으신데요? 그래서 처음에는 일본인이 아니신가 생각했습니다. 그쪽이 워낙 예의를 따지니까요.”
“엇. 저 말고 다른 한국인을 만나게 된다면, 일본 발언은 삼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저희가 그 나라에 안 좋은 감정이 많거든요.”
“이런. 제가 말실수를. 부디 너그러이 넘어가 주십시오.”
“괜찮습니다.”
‘분위기가 꽤 좋게 흘러간다.’라고 분명 디에고는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상대는 나를 잘 구워삶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내가 디에고를 요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 제가 다시 한번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지. 내일 다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저희야 빠를수록 좋아서요. 단, 오늘 안에 거래가 마무리될 수 있습니다. 지금 계속해서 저희가 정보를 뿌리고 있으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서둘러야겠군요. 이런 좋은 딜을 놓칠 순 없으니 말입니다.”
디에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건넸다. 난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미스터 김.”
“예, 내일 좋은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디에고가 밖을 나가면서 강철중과 김아름도 그제야 착석할 수 있었다.
어지간히 목이 탔는지, 김아름이 잔에 술을 따르고 단번에 원샷을 했다.
난 그런 김아름의 모습을 쳐다보다 슬쩍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그거… 꽤 센 건데.”
“휴. 죄송합니다. 그런데 보는 내내 너무 심장이 뛰길래….”
“그랬나요?”
반문하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김아름이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 지금 제일 궁금한 게 바로 사장님의 정체입니다. 정말 고등학교 2학년생이 맞으세요?”
“…예?”
김아름에 이어 묵묵히 있던 강철중도 맞장구를 쳤다.
“저도 그건 똑같이 묻고 싶습니다. 사장님은 보면 볼수록 너무 나이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이런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처럼 너무 자연스러우시니….”
조금 뜨끔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무슨 미래에서 온 사람도 아니고 말입니다. 아니지. 사실은… 두 분에게만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원래 50살까지 살다가 다시 18살로 돌아온 겁니다.”
김아름과 강철중은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한다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긴. 나 역시도 가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이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정말 나는 말 같지도 않은 인생을 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