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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60화 (60/325)
  • 60화. 사냥 시작 (2)

    급하게 비행기를 취소했지만, 나는 다시 비행기표를 잡아야 했다.

    한국이 아닌 LA로.

    거래는 라스베가스에서 이루어졌어도, 실제로 약이 나오는 곳은 LA의 외진 곳이었다.

    김아름과 강철중을 대동한 나는 LA행 비행기를 타고, 메데인 카르텔의 지부로 향했다.

    “어서 와. 그런데 타이밍이 별로 좋지 못했어. 손님 맞이하기에는 집안 꼴이 엉망이라.”

    메데인 카르텔의 LA지부, 우리를 반긴 로이 루스테 말대로 창고 안이 완전히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거기다가 로이는 왼쪽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총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하하. 보다시피 이렇게 됐어.”

    일방적으로 벌집을 만들어 놓고 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창고 곳곳에 박혀 있는 총알 자국들과 바닥에 나 있는 핏자국이 그걸 증명한다.

    기습이라도 당한 건가.

    “미안하게 됐어. 아무래도 약은 주지 못할 거 같아. 대신, 돈은 돌려줄게.”

    나는 손을 저으며 총탄이 뚫고 간 자국으로 가득한 소파에 앉았다.

    지금 내가 돈이나 돌려받자고 온 게 아니다.

    권용일은 스테로이드제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불상사가 생겼다곤 해도…. 그 영감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그 책임을 내게 돌릴 것이다.

    권용일이 내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간부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미친 듯이 나를 물어뜯으려고 할 놈들이다.

    그러므로 방법은 두 가지다.

    다른 거래처를 찾던가, 아니면 강탈한 놈들에게서 우리가 다시 빼앗든가.

    “로이.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겁니까?”

    로이 루스테는 고개를 흔들며 잔에 담긴 술을 벌컥 들이켰다.

    “나도 맘 같아서는 복수를 해 주고 싶어. 그런데 그놈들의 창고가 어디인지 우린 몰라.”

    “그 말은 누가 당신을 공격했는지 모른다는 겁니까?”

    “모를 리가 있겠어? 칼리 놈들이야.”

    역시, 그놈들이었나.

    칼리 카르텔. 유일하게 메데인 카르텔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콜롬비아 조직.

    질베르토와 미겔 로드리게스 형제를 중심으로 한 조직이다. 칼리 카르텔은 메데인 카르텔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나중에 질베트로가 정부와 손을 잡고 메데인 카르텔을 무너뜨려 최후의 일인자가 된다.

    하지만 아직은 칼리 카르텔이 메데인에게 밀리고 있는 시기. 대낮부터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을 보니, 어지간히 약이 필요하긴 했나 보다.

    곧 있으면 86년이 다가온다.

    바로 86년 멕시코 월드컵이 시작되는 해이다. 그리고 아시안 올림픽부터 세계 올림픽까지 줄을 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약이 잘 팔리고 비싼 값에 후려칠 수 있는 황금 시기라는 건데, 이 때문에 마약의 제국이라고 불리는 메데인 카르텔이 공격 목표가 된 것일 수도 있다.

    메데인이 새로운 스테로이드제를 공급하고 있다는 소문이 분명 칼리 쪽에도 들어갔을 터.

    그들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을 것이다.

    “칼리 놈들이라면… 그들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몰라. 그러니까 이러고 있는 거지.”

    “사람 풀어서 찾아보기는 하셨고요?”

    “매일 하지. 그런데 이놈들이 워낙 꼭꼭 숨어서. 설사 그쪽 애들 몇 명 잡았다고 해도, 대부분 말단이라 그놈들은 아는 게 별로 없어.”

    겁도 없이 메데인 카르텔을 건드렸다는 건, 그만큼 칼리 카르텔이 꼬리를 잘 숨긴다는 뜻이었다.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아무리 메데인이라고 해도 무서워하지 않고 공격한다는 건가.

    하지만 이놈들을 밖으로 빼낼 방법이 아예 없진 않다.

    “로이. 저와 손 한 번 잡아 볼래요?”

    “응? 나 그런 쪽 취향 아닌데.”

    시답잖은 농담하기는. 이 상황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걸 보니, 로이의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겠다.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잖아요.”

    “하하. 농담이야. 그런데 내가 너와 손을 잡는다고?”

    “예. 칼리에게 복수는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도 그 약이 꼭 필요하고요.”

    팔에 총상까지 입었음에도 줄곧 웃는 얼굴만 보여 주었던 로이의 낯빛이 달라졌다.

    조금 진지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는 낮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가 그놈들 본거지를 안 찾으려는 게 아니야. 못 찾고 있는 거지.”

    “제가 칼리를 밖으로 빼낸다면 도와주실 겁니까?”

    “당연하지.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야. 잘만 되면 네가 지불한 돈, 전부 다 돌려주고 약도 그냥 줄 수 있어.”

    돈도 돌려주고 약도 준다라-.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가 아닌가.

    “좋습니다. 제가 칼리의 본거지를 한 번 탐색해 보죠.”

    “하하. 쉽지 않을걸?”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요? 대신,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그놈들 머리에 총알 한 발씩 박아 줄 수만 있다면야 내가 뭘 못하겠어?”

    로이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이며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이것으로 우리의 두 번째 거래인가? 이번에는 꼭 성공하기를.”

    “반드시 그럴 겁니다.”

    난 로이와 잔을 부딪치며 성공을 기원했다.

    * * *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김아름과 강철중은 내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둘 다 나와 계약을 하기로 결정한 뒤부터, 전보다 훨씬 더 조심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자신들의 돈줄을 잡고 있는 보스가 되었으니, 조심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지금 모습은 그것과 조금 달랐다.

    “말씀들 하세요. 눈치만 보지 마시고요.”

    내가 먼저 운을 떼자 김아름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칼리 카르텔을 밖으로 빼내다니….”

    “불가능해 보입니까?”

    “메데인 카르텔도 찾지 못한 칼리의 본거지를 우리가 찾아낼 수 있을지….”

    김아름의 발언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1990년. FBI가 본거지를 급습해서 미국 지부에 있던 칼리 카르텔의 이인자, 미겔 로드리게스를 궁지에 몰아넣게 된다.

    미겔은 끝까지 저항해 보았지만, 결국 총에 맞고 사망한다.

    잡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칼리 카르텔의 꼬리가 FBI 손에 잡힌 이유는 정말 간단했다.

    칼리 카르텔의 의심을 피하고자, FBI는 동양인을 앞세워 비밀 거래를 주선.

    그것도 칼리 쪽에서 덥석 물만 한 액수를 내밀어 그들을 유인했다.

    FBI와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동양인이 거액의 돈을 내밀며 마약을 요구하자, 칼리 카르텔은 상대를 중국 삼합회 정도로 생각하고 거래를 받아들인 듯 했다.

    그 과정에서 마약이 저장된 본거지가 노출되었고, FBI는 그 먹음직스러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FBI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칼리 카르텔이라는 대조직의 꼬리를 잡으면서, 여러 나라에서 이 함정 수사를 받아들여 실상황에 적용했다.

    그중 우리나라도 포함이 되는데, 함정 수사에 대한 교육을 받을 때면 칼리 카르텔에 대한 이야기가 꼭 빠지지 않는다.

    물론, 이 사건으로 칼리 카르텔이 완전히 소탕된 것은 아니지만.

    “강철중 씨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칼리 쪽을 터는 건 좀 힘들지 않을까요?”

    강철중도 부정적인 반응부터 보였다. 그만큼 메데인 못지않게 칼리의 영향력이 크다 보니 겁부터 내는 것이다.

    “더군다나 성공을 했다고 해도, 나중에 칼리 쪽에서 우리에게 보복이라도 하면….”

    보복이라.

    콜롬비아나 멕시코 쪽 카르텔은 잔인한 보복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충분히 경계할 만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 더 철저히 해야겠습니다.”

    철저히, 누구도 나와 이 둘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겠다.

    “김아름 씨. 우리가 칼리 쪽과 거래를 한 적이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쪽이 우리의 얼굴을 알 가능성은?”

    “그거야… 사장님 얼굴은 모를 겁니다. 사장님 전에 이쪽 업무를 맡으셨던 분들의 얼굴은 알 수도 있겠지만, 사장님은 이번이 처음이시니까요.”

    “잘됐네요. 그럼,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회사부터 만들어 주시겠어요? 되도록 빠르게 말입니다. 일단 페이퍼 컴퍼니로 만들어 두셔도 됩니다.”

    아직도 내 의중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김아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하루 이틀 안에 가능할 겁니다.”

    “예. 얼른 해 주세요.”

    참다못한 김아름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사장님. 어떻게 할 생각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별거 없습니다. 그냥 미끼를 살살 흔들어서 그놈들이 물게 할 겁니다.”

    “미끼요?”

    “예. 4,500만 달러어치의 미끼라면, 그놈들도 못 이기는 척 나오지 않을까요?”

    그제야 둘 다 내 말뜻이 뭔지 조금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중 머리 회전이 빠른 김아름은 입을 천천히 벌리며 말했다.

    “설마… 그 돈으로 전부 약을 사시겠다는 건….”

    “단 일 푼도 쓸 생각이 없습니다. 단지…. 4,500만 달러를 들여 약을 사려고 하는 호구인 척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4,500만 달러를 들여 약을 사겠다고 브로커들에게 정보를 뿌리면, 그들은 미친 듯이 내게 달려들 것이다. 이 정도의 구매자를 만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블랙마켓이 있지 않나요? 이런 정보를 뿌릴 만한….”

    “어디든 있긴 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칼리가 걸려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걸려들도록 만들어야죠. 코카인도 사고 스테로이드제도 산다는 정보를 흘려주세요. 처음에는 좀 의심하겠지만, 다른 딜러들과 거래를 하려는 걸 보면 가만히 두고만 볼 순 없을 겁니다.”

    “값을 더 얹어서라도 사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야겠군요. 그래야 칼리에서도 입질이 올 테고요.”

    역시, 하나를 말하면 둘을 아는 여자다.

    “예. 바로 그겁니다.”

    처음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지금은 진중한 얼굴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내 김아름은 내게 확답을 내놓았다.

    “충분히 시도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장님 말씀대로 해 보겠습니다.”

    “예. 혹시 다른 조직이 걸리면 그땐 4,500만 달러어치의 물건이 있는지 확인부터 하세요. 그리고 좀 더 값을 얹더라도, 질이 좋은 스테로이드제를 구한다고 말을 흘리는 겁니다.”

    정보라는 건 대체로 마피아들끼리 더 잘 돌게 되어 있다.

    서로 다른 조직이라고 해도 무조건 싸우려고 하진 않는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네크워크가 구축되어 있다는 것.

    칼리는 우리가 던진 미끼를 한 번에 잡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조직과 어떻게 거래를 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정보를 긁어모으다가, 확신이 서면 그때 우리 앞에 나서게 될 터.

    이것 때문에 FBI도 처음에는 다른 조직과 거래하는 척을 하면서 애를 태웠다고 한다.

    “딜을 하겠다는 쪽이 있으면 저한테 먼저 말씀을 해 주세요. 제가 직접 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내가 직접 나선다고 하니, 김아름은 내게 주의를 주었다.

    “우리 쪽에서도 브로커를 앞세우면 됩니다. 굳이 사장님께서 나서실 필요까지는….”

    “아닙니다. 그래야 칼리 쪽에서도 더 신뢰를 하게 될 겁니다. 위험하긴 하겠지만, 이미 이쪽에 발을 담근 이상 어쩔 수 없죠.”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오기 전부터 각오한 일이다.

    이곳은 한국보다 더 살벌한 곳이지 않은가.

    한순간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미국이다.

    긴장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흥분감이 혈맥을 따라 도는 건, 역시 회귀 전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는 건가.

    마치 검사 시절 때 타겟 조직을 유인해 덮치는 것보다 더한 흥분과 짜릿함이 몰려온다.

    * * *

    김아름의 빠른 일 처리로 페이퍼 컴퍼니를 이틀 만에 만들었다.

    회사 이름은 리턴.

    이름이 좀 촌스럽지 않냐는 김아름의 핀잔을 듣긴 했지만, 난 이게 좋았다.

    리턴. 그 말대로 나는 이 시대로 돌아왔으니까.

    페이퍼 컴퍼니가 완성되는 사이 강철중은 블랙마켓에 정보를 뿌려댔다.

    무려 4,500만 달러어치의 구매자가 있다는 것을.

    이제 미끼는 강가 아래로 던져졌고, 미끼를 무는 고기를 건져 올릴 때였다.

    “사장님. 입질 하나가 왔습니다.”

    호텔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나를 깨운 건 강철중이었다.

    “칼리입니까?”

    “아닙니다. 다른 멕시코 카르텔입니다.”

    “그렇군요. 일단 가보도록 하죠.”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정장을 걸쳐 입었다. 그러자 강철중이 내게 다가와 뭔가를 슬며시 건넸다.

    “저번에 말씀하신 글록입니다.”

    난 빙긋 웃으며, 그가 건네는 총을 받아 허리춤에 넣었다.

    이제부터가 사냥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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