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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58화 (58/325)

58화. 한 방에 뻥튀기.

로이와의 거래도 끝났고…. 나는 따로 권용일에게 20만 달러가 아닌, 200만 달러로 거래량을 늘렸다고 보고를 올렸다.

내 예상대로 권용일은 알아서 하라며 권한을 넓혀 주기까지 했다. 그런 권용일의 결정에 가장 놀란 것은 바로 김아름이었다.

“권용일 회장님께서 이제까지 다른 사장님들에게는 절대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도록 하셨죠.”

김아름은 권용일을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하긴, 저 여자가 영감님에게 큰 형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이 좀 웃기긴 하겠다.

“하하. 큰 형님이 저를 좀 귀여워하시긴 하죠. 아무래도 제가 막내이다 보니….”

“회장님께서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 여자나, 저 강철중에게는 무슨 농담 한 번 던지기가 어렵다. 저렇게 차갑게 대꾸를 하거나 묵묵히 넘어가기만 하니….

“김 사장님이 화진파에 들어오신 지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세운 업적을 보면 회장님께서 큰 기대를 가지실 만도 하죠.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그…런가요?”

“예. 그러니 아까 전에 있었던 일은 잊어 주십시오. 제가 놀란 눈치를 보인 건 김 사장님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그렇게 행동한 사장님이 없던 터라 그랬던 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김아름은 로이와 거래를 하던 중 있었던 일을 내게 사과했다.

정말 철저히 사무적으로 사람을 대한다.

물론, 나도 그게 편하고 좋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김아름 씨.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예. 말씀하세요.”

“라스베가스에서 스포츠 도박을 많이들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국에서 브로커를 이용해 라스베가스 스포츠 도박을 하는 사람이 있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김아름은 잠깐 말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그쪽 방면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따로 알아봐 드릴까요?”

이럴 땐 참 편한 여자다.

뭔가를 물어보고 대답해 줄 때, 만일 자신이 모르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알아봐 주려고 한다.

“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더 좋은 건 왜 그걸 묻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 *

김아름은 브로커를 알아보면서 내게 돈도 전달했다.

총 20만 달러의 돈을 따로 가방에 챙겨 두고 그녀가 브로커를 알아볼 동안, 나는 아레나에 들어가 권투 경기를 관람했다. 그것도 상당한 가격을 자랑하는 티켓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왜냐하면 오늘의 메인이벤트는 무려 토마스 헌즈와 마빈 해글러의 미들급 통합 타이틀전이기 때문이다.

80년대 복싱 시장이 호황을 누리도록 만든 전설의 F4.

슈가 레이 레너드, 로베르토 두란, 토마스 헌즈, 그리고 마빈 해글러.

이 넷이 없었다면 오늘의 복싱 시장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들의 존재감은 가히 대단하다.

그런데 내가 F4들의 대결을 직접 보게 되다니.

운 좋게도 날짜가 잘 맞았다. 하지만 난 이미 이 둘의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있다.

마빈 해글러의 3R TKO 승.

80%가 넘는 도박꾼들이 토마스 헌즈의 승리를 점쳤다. 그 이유로는 헌즈가 웰터급 세계챔피언 윌프레도 베니테즈를 간단하게 잡고, F4 중에 하나인 로베르토 두란을 2R KO로 승리했기 때문.

토마스 헌즈가 누구인가?

플리커 잽이라는 파이팅 스타일로 5체급을 제패한 선수다. 그와 동시에 히트맨이란 별명을 가지게 된 파이터고….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마빈 해글러가 철저한 인파이팅으로 토마스 헌즈를 침몰시킨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으니, 흥미가 좀 떨어지긴 한다. 그러나 이 양반은 아닌가 보다.

줄곧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던 강철중은 아레나에 입장하면서부터 얼굴빛이 확 달라졌다. 애써 티를 내려 하진 않지만, 씰룩이는 그의 입술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사람도 피가 끓는 남자가 아닌가?

이런 명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릴 것이다.

“베팅?”

저번과 마찬가지로 왼쪽 뺨에 점이 나 있던 동아시아인이 내게 다가와 판을 내밀었다. 강철중이 경계하며 저 남자를 쫓아내려 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런 그를 제지했다.

“오케이.”

남성은 강철중의 눈치를 슬쩍 살피다 내 얼굴을 보고는 아는 척을 했다.

“아. 저번에 봤던 그분이시군요. 그렇지 않아도 놀랐습니다. 그때 경기를 적중시킨 걸 보고요.”

그때 잠깐 본 것뿐인데, 기억력이 좋다.

하긴. 나 같은 동양인이, 그것도 조금 어려 보이는 녀석이라 쉽게 기억에서 잊히진 않겠지.

“기억하시네요. 이번에도 크게 놀랄 준비하세요. 마빈 해글러의 3R 승리로 걸겠습니다.”

“정말이세요? 혹시 모르시나 본데 마빈 해글러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별로 없답니다.”

역시, 내 예상대로군.

그렇다면 나야 땡큐지.

“괜찮아요. 이번에도 제 감을 한 번 믿어보죠. 얼마까지 걸 수 있나요?”

“기본 베팅금액이 1만 달러, 최고 베팅 금액은 75만 달러까지입니다.”

기본 베팅이 1만 달러라니. 역시 도박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들이구나.

거기다가 최고 베팅 금액을 75만까지 올려 버렸다.

80년대 물가를 생각해 보면 엄청난 돈지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저런 건 푼돈쯤으로 여기는 도박꾼이 라스베가스에는 많았다. 그러니 크게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오늘 경기는대충해도 평균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F4들의 경기니까.

“20만 달러를 걸겠습니다.”

“2, 20만이요?”

이 남자는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며 되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을 대신했다.

“대단하시네요. 그 정도의 액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으시다니.”

이 사람은, 방금 내가 내놓은 금액이 전재산이란 것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지만 이럴 땐 그냥 여유로운 얼굴로 웃어 주는 게 정답이다.

물론, 나도 속으로 쫄리긴 하다.

혹시라도 내가 미래를 잘못 알고 있는 거라면?

그대로 20만 달러가 공중분해 되는 것이 아닌가.

좀 떨리긴 했지만, 나는 남자에게 20만 달러가 들어 있는 가방을 건넸다. 그러자 남성 뒤에 있던 백인 두 명이 대신 받아 안에 있는 돈을 빠르게 세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의 역할은, 경호와 양도 금액의 확인 작업을 겸하는 것으로 보였다.

“20만 달러. 확실하게 받았습니다.”

확인이 끝나자, 남자는 검은 티켓을 건네며 말했다.

“이번에도 제가 한 번 더 깜짝 놀랄 일이 생겼으면 좋겠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워커 김입니다.”

“아. 미스터 김. 그렇군요. 저는 응우옌 찌엣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보시면 제이슨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응우옌 찌엣?

이름을 보니 베트남 사람 같은데, 왜 저 이름이 익숙하게 들리는 걸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럼, 또 뵙겠습니다, 미스터 김.”

응우옌 찌엔, 다른 이름으로는 제이슨이라 불리던 남자가 그렇게 내 돈을 들고 떠났다.

왜 자꾸 저 뒷모습에 눈이 가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20만 달러를 맡겨서가 아니라, 저 남자의 이름을 분명 어디서 들어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착각이려나.

나는 생각을 접어 두고, 메인이벤트 전에 있는 자잘한 경기로 시선을 돌렸다.

* * *

“20만 달러, 너무 크게 거신 게 아닌지….”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경기만 관전하고 있던 강철중의 말이었다.

이 사람도 영어를 할 줄 아는 건가?

내 눈빛을 읽었는지 강철중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대충 지켜만 봐도 무슨 상황인지 알겠더군요.”

이 남자의 과거에 대해서는 내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미국에 자주 들락날락하며 여러 간부의 곁을 경호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모든 게 다 자연스러웠으니까.

“제가 다 잃을 거로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도박의 끝은 결국 패망이지 않습니까.”

틀린 말이 아니다.

도박의 끝은 항상 패망이다. 도박이라면 말이다.

내가 하고 있는 건 도박이 아니다. 이미 정해진 대로 흘러가고 있는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챙길 수 있는 건 전부 챙기는 것이다.

“강철중 씨는 누가 승리할 거라고 보시는데요?”

“저야 당연히 헌즈라고 봅니다. 슈가 레이 레너드에게 패배를 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 보인 행보는 대단하지 않습니까? 로베르토 두란이 링 위에서 농락당하는 걸 보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처음으로 이 남자와 대화를 해 볼 수 있는 공통관심사가 생겼다.

나도 복싱을 좋아하고, 강철중도 복싱을 매우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물론 헌즈가 확실히 강하긴 하죠. 하지만 미들급은 다릅니다. 로베르토 두란이 헌즈에게 패배한 건 체급 차이가 큰 것도 있지만, 플리커 잽에 너무 견제를 당해 주춤거린 점도 큽니다. 그러나 마빈 해글러는 맷집부터가 달라요. 헌즈가 날리는 견제용 플리커 잽을 오히려 역이용해, 강한 돌파력을 보여 줄 겁니다.”

“흠…. 사장님 말씀도 틀리진 않군요. 마빈 해글러가 탱크처럼 앞만 바라보고 달려드는 경향이 있긴 하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이제까지 헌즈는 그런 타입의 인파이터들을 모조리 쓰러뜨렸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지 않을까요?”

우리는 서로 갑론을박하며 누가 더 강하다는 남자들의 유치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덧 메인이벤트가 시작되었다.

헌즈와 해글러, 두 사람이 링 위에 올라서면서 시끄러웠던 관중석이 침묵에 빠졌다.

때앵-!

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폭풍 전야처럼 조용했던 관중들은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세기의 대결 중 하나로 뽑히는 헌즈와 해글러의 파이트가 시작된 것이다.

* * *

“와아아-!!”

해글러의 3R TKO 승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두 선수에게 보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대로 승패가 결정되긴 했지만, 토마스 헌즈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난 옆에 있던 강철중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찢어진 상처 부위를 치료 받고 있는 헌즈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강철중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정확하지 않습니까? 3R 마빈 해글러의 승리를 예측하고 그 큰돈을 베팅하기까지 하셨으니…. 이건 단순히 운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군요.”

“하하. 그럼 제가 무슨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진심을 담은 내 농담에 강철중은 고개를 흔들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게요. 미래에서 왔다는 말이 딱 어울리시는군요.”

“하하. 잘됐으니,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오늘은 제가 크게 한턱 쏘겠습니다. 이제 내려가죠.”

“예, 사장님.”

강철중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살펴봤다. 하지만 저렇게 뚫어지라 쳐다봐도 찾아낼 수 있는 건 없다.

“적중금을 찾으러 왔습니다.”

저번에 보았던 그 여직원이 오늘도 똑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내 티켓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의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리면서 이내 크게 감탄을 터트렸다.

리액션이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에서 볼법한 그런 감탄성이었다.

“와우, 엄청나시네요!”

몇 번이나 더 티켓을 확인하던 여직원은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무려 20만 달러나 거시고 이 어려운 걸 적중해 내시다니.”

“오늘은 제가 정말 운이 좋네요.”

“그러게요. 오늘 토마스 헌즈가 승리한다에 80%가 넘는 베팅금이 몰렸거든요.”

올레!

난 크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애써 참고 내색조차 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얼마 정도 나올까요?”

“아아. 이거 정말 금액이 크네요. 무려 250배나 금액이 뛰었어요. 그럼, 총 5천만 달러를 획득하셨다는 건데, 10%의 수수료를 빼면 4,500만 달러입니다.”

4,500만 달러!

솔직히 10% 수수료는 좀 너무한 감이 있다.

그래도 아무렴 어떤가?

20만 달러가 4,500만으로 뻥튀기되었다.

그것도 고작 단 한 경기 만에!

이것이 바로 라스베가스의 도박판이라는 게 다시 한번 실감이 난다.

“4500만….”

옆에 있던 강철중은 아까부터 입을 다물지를 못한다.

“전액 현금으로 주실 수 있겠죠?”

“아아. 지금 당장은 좀 어려워요. 좀 기다려 주세요. 이렇게 많은 금액이 적중된 건 오랜만이라 저희도 바쁘게 움직여야겠네요.”

“예. 부탁 좀 드릴게요. 대신, 팁은 넉넉히 남기겠습니다.”

“어머. 센스도 있으시고. 최대한 빨리해 드리겠습니다.”

팁을 가리키는 내 손짓에 직원은 광대가 승천했다.

4,500만 달러를 챙겼으니, 못 줘도 1,000달러는 줄 것이란 기대감이 가득해 보였다.

물론, 그녀가 얼마나 일을 빨리 처리해 주느냐에 따라 내 팁 가격이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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