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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57화 (57/325)

57화. 아메리카 드림 (3)

4천 달러로 바꾼 칩. 아주 잠깐이나마 나는 카지노 대박의 꿈을 꿨다.

내가 검사 시절 때 포커페이스로 유명하기도 해서 무지한 자신감으로 시작한 카드 게임이 문제였다. 거기다가 룰도 제대로 모르는 블랙잭을 건드렸다가 4천 달러를 그냥 적선하고 나왔다.

“끙. 다음부턴 이런 거 하지 말자, 형.”

“그, 그래….”

그래도 다행인 건 나와 태혁이가 이런 도박 게임에 흥미를 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4천 달러를 단 몇 판 만에 공중분해 시키다니….

“형, 나 이제….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 거지?”

“그렇지, 수속은 김 비서님이 여러 가지 도와주신다고 했고…. 너는 운동만 생각해.”

카지노 밖을 나온 태혁이가 라스베가스의 야경을 바라보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타지 생활이란 것이 쉽지 않음에도 무작정 강행한 점이 있었는데, 다행히 장기체류와 같은 부분을 김 비서가 처리할 수 있다고 했으니 안심이다. 그래도 타지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텐데, 내색하지 않는 게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그래. 이제부터 여기가 네 직장이야. 꼭 여기서 최고가 돼야 한다.”

“응. 걱정하지 마.”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이 녀석의 거주지와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체육관 등….

80% 이상의 복서들이 아마추어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프로까지 밟고 올라간다.

그 이유로는 스폰서의 눈에 들기 위함도 있고, 링 위의 감각을 쌓으면서 성장하려는 의도도 있다. 그리고 관중들에게 인지도를 올리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하지만 내 동생이 아마추어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다. 태혁이의 가장 든든한 스폰서는 바로 내가 될 것이며, 이놈 파이팅 스타일이면 분명 관중들의 흥미를 끌 것이다.

“태혁아. 너 대체로 스파링하게 되면 거의 노가드로 하지?”

“응? 아, 그게 안 좋은 버릇이라고 주변에서 많이 그러긴 하는데…. 난 그게 편해. 괜히 가드 올리고 있으면 오히려 시야가 좁아져서 펀치가 잘 안 보여.”

복서 중에 특히 동체 시력이 좋은 선수는 클린 히트를 거의 맞지 않을 정도로 악마 같은 방어력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예로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퍼넬 휘태커가 있다.

둘 다 작은 키로 상대 공격을 전부 피해 포인트를 얻고, 판정승을 이끌어 간다. 쉽게 말해서 좀 재미없는 경기로 승리를 가져간다.

그래서 퍼넬 휘태커는 무려 4체급 제패를 했으면서도,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프로모터들의 입김이 작용했다. 결국, 억지 판정패를 계속 당하게 된다.

휘태커가 어떻게 복싱 시장에서 매장당했는지 지켜본 메이웨더는 좀 다른 구도를 타는데, 초반에는 강펀치를 앞세워 KO승을 쌓았다. 그리고 챔피언 벨트까지 딴 다음에 철저한 디펜스 위주의 경기를 펼쳤다.

거기다가 특유의 입담으로 엄청난 어그로를 끌게 되면서, 가히 최고의 복싱 스타로 군림하게 된다. 그것도,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네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무조건적인 디펜스 위주의 경기는 흥행을 끌지 못해. 잘 알지?”

“알아. 그리고 형도 내 파이팅 스타일이 어떤지 알잖아. 난 가만히 주먹만 피하는 짓은 답답해서 못해.”

태혁이 말이 맞다.

저 녀석은 정말 노가드로 디펜스를 하면서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는 궤도로 카운터를 날린다. 전형적인 짐승형 타입인데, 정통 복싱과는 완전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

92년도에 프로로 전향해서 비인기체급인 페더급으로 대전료 1천만 달러를 찍은, 초신성 나심 하메드와 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심 하메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체급도 있겠지만, 이놈 펀치력은 헤비급에 준할 정도로 대단하다. 거기다가 스피드는 미들급과 동급이니, 내가 괜히 괴물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내 일 대충 끝나면, 너 체육관부터 알아보자. 숙소는 김 비서님이 알아봐 주실 것 같고….”

“응. 너무 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해.”

태혁이는 핫도그를 베어 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난 이 녀석이 꼭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 *

“이름은 로이 루테스. 아시겠지만, 가명입니다. 국적은 미국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메데인 카르텔 소속 조직원입니다. 외국인을 받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우리 영감님.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이다. 메데인 카르텔과 손을 잡은 상태라니….

메데인 카르텔이 누구인가.

콜롬비아 제1의 재벌로 등극한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만든 대형 카르텔 조직이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마약 하나로 자국인 콜롬비아, 멕시코, 브라질, 미국까지 장악한 거대 범죄 조직 두목이다.

이 사람의 재력은 어마어마한데, 쉽게 말해서 마약 밀수 하나로 우리나라 대기업 전체가 벌어들인 돈보다 더 수입이 많다.

웃음이 나오는 일이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콜림비아 정부 측에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워낙 많은 양의 마약을 뿌려댄 터라, 그중 가장 막심한 피해를 본 미국이 훗날 메데인 카르텔을 해체하기 위해 나서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메데인 카르텔이 절정에 달해 있는 시기다.

“메데인 카르텔이면… 굉장한 크기의 딜러네요.”

“메데인 카르텔을 알고 계세요?”

“모를 리가 없죠. 전 세계 80%의 마약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놈들인데.”

김아름은 안경을 살짝 추어올리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 세계 80%의 마약 시장을 메데인 카르텔이 점령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계세요?”

“아. 그건… 우연히 미국 신문에서 본 겁니다. 요즘 미국도 워낙 마약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잖아요.”

“그렇군요.”

김아름이 살짝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띠고 있어, 나는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건 어떻게 됐나요?”

“내일 중으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차명 계좌로 만들어 놓으신 거라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예. 부탁 좀 드릴게요.”

금융실명제가 아직 없다는 걸 이용해, 난 차명 계좌로 내 돈을 전부 넣어 두었다. 물론, 도움을 준 건 황규혁이었다. 과연 미래의 화진 금융 부사장답게 이런 쪽에는 황규혁이 빠삭하게 움직일 줄 안다.

물론, 검사 시절 진절머리나도록 봐온 그 과정을 나도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이 여전히 내 발목을 붙잡는다.

내 밑에 있는 조직원들을 시켜도 되는 일이지만, 황규혁이 자기가 확실히 해 주겠다며 선뜻 일을 받았다.

뭐, 나야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준 덕분에 편하고 좋았지만.

“여기입니다.”

좀 외진 곳에서 거래를 하나 했는데, 이놈들 생각보다 씀씀이가 크다. 그리고 간덩이도 꽤 부은 것 같다.

이런 5성급 호텔에서, 그것도 경찰서가 바로 앞에 있는 곳에서 거래할 생각을 하다니.

하긴. 호텔 직원만큼 입 무거운 사람이 또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별이 높은 호텔만큼 비밀성이 철저하게 보장된다. 그 때문에 옆방에 피해를 주거나 혹은 호텔 측 시설을 파손하지 않는 한, 저들은 방 안에서 사람을 죽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투숙객이 체크아웃을 하는 그 순간까지.

그래서 밀거래가 호텔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우리나라는 제외지만.

“사장님. 일단, 이거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강철중은 슬며시 내게 총 한 자루를 건넸다.

이건….

“성일환 사장님께서 언질을 주신 겁니다.”

저번에 말했던 글록 권총을 성일환이 강철중에게 준비하도록 시켰던 건가.

이 사람, 성일환과도 연결이 되어 있구나.

그렇지 않아도 총 하나 필요했는데,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쓸 일이 없도록 해야겠죠?”

내 가벼운 농담에 강철중은 사람 무안할 만큼 굳은 얼굴을 할 뿐이었다.

재미없기는.

“환영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창한 영어로 환영 인사를 해준다. 그 가운데에는 파마머리를 한 백인 남성이 우리를 반겼다. 대놓고 총기를 들고 있는 조직원도 여럿 보이고….

“오. 저번에 봤던 사람과는 좀 다른데? 책임자가 바뀐 건가?”

발음도 그렇고 생김새도 영락없는 미국인이다.

메데인 카르텔이 미국에도 지부를 놓고 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예. 이번에 새로 책임을 맡게 된 워커 김이라고 합니다.”

통역을 해 주려고 했는지 김아름은 조금 놀란 눈치로 날 바라보았다. 내가 괜찮다는 눈짓을 보내자 슬쩍 뒤로 물러났다.

“워커 김. 이름이 특이한데? 그리고 영어도 꽤 잘하는 걸 보니 여기서 좀 살았었나?”

워커. 좀 유치하긴 하지만, 내가 미래에서 과거로 걸어온 사람이라는 걸 은연중에 밝히기 위해 만든 이름이다.

“아니요. 그냥 열심히 공부만 한 것뿐입니다.”

“보통 발음이 구리기 마련인데, 엘리트인가? 코리안 엘리트?”

“그런 셈이죠.”

로이 루테스는 내게 잔을 건네며 술을 한잔하겠냐는 제스쳐를 보냈다.

저런 건 거부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감정이 상하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게 이쪽 놈들이니까.

“동양인이라서 그런가? 나이가 좀 어려 보이는데.”

“맞습니다. 제 나이가 좀 어리긴 해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거든요.”

구태여 나이를 숨기진 않았다. 로이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그건 그 뒤에 있던 조직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어떤 이는 나를 비웃는 듯 미소를 지었고, 또 어떤 이는 날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농담이지? 그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중책을 맡는다고?”

“저희가 나이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는 곳이라 서요.”

미국의 크립스나 블러드의 경우, 10대 구성원이 꽤 많다. 어린 나이로 조직에 입문하는 게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어린놈이 ‘중책’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를 보스의 아들로 착각하기도 한다.

로이는 내 뒤에 있던 강철중과 김아름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능력을 중시한다고? 우리 카포가 말하는 거랑 똑같네.”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말하는 건가.

하긴. 마약왕의 시초가 된 사람이니, 뭐가 달라도 달랐겠지.

“아무튼, 이제 그만 비즈니스 얘기로 돌아가 볼까?”

“원하는 바입니다, 로이.”

어울리지 않는 노란 파마머리의 로이는 손을 들어 조직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에 맞춰 조직원 한 명이 케이스 하나를 내 앞에 놓았다.

일련의 번호를 맞추자, 케이스가 열리며 안에는 주삿바늘과 함께 노란색 액체가 담긴 작은 병이 있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스테로이드제야. 어느 제약사에 의뢰해서 만든 건데, 역시 배운 놈이 낫긴 하네. 우리 같이 허접한 놈들이 만드는 것보다 백 배 더 낫더군.”

미국이 마약의 천국이 될 수 있었던 건, 부패한 정치권과 사람 목숨은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제약회사 덕분이었다.

제약회사가 무분별하게 마약성 진통제를 만들어 팔아 치우는 건 물론, 마피아와 카르텔의 의뢰를 받고 이런 마약을 서슴지 않고 만든다.

참, 미국이란 나라는 그야말로 꿈의 나라다.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나라. 실상은 찬란한 빛 속에 감추어진 썩은 어둠이다.

“어때? 때깔이 곱지?”

나로서는 이게 질이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좀 난감한 표정으로 있던 차에, 김아름이 약통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 몇 방울 떨어뜨렸다. 열심히 냄새도 맡고 있는 것을 보아, 뭔가를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짧은 시간에 확인을 마쳤는지, 그녀는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질은 괜찮습니다.”

“그걸… 그렇게 봐서 알 수가 있나요?”

“예. 무슨 문제라도…?”

“아닙니다.”

보면 볼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다.

“그쪽 레이디 실력은 내가 더 잘 알지. 나야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니까. 저번에는 내가 들이댔다가 대차게 까였다니까?”

로이 루스테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를 따라 웃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김아름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진 느낌이다.

“하하. 이거 나 혼자 쑥스럽게 웃어 버렸네. 아무튼, 그쪽에서 요청한 건 20만 달러어치인데, 돈만 주면 바로 그에 맞는 무게를 줄 거야. 1,000달러당 한 병이야.”

1,000달러에 한 병?

도둑놈 심보로군. 그런데 영감님이 주문한 건 고작 20만 달러라고?

20만 달러는 너무 적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

2000년대 올림픽 때까지 스테로이드제를 맞은 선수 구별이 꽤 힘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에는 기술 발달도 있겠지만, 제약회사가 만든 스테로이드제가 아닌가?

그들은 교모하게 도핑 테스트를 피해 나갈 수 있는 약을 만들기 위해 혼을 불태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이거, 올림픽 때 걸릴까요?”

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하하. 역시 목적은 그거였네. 아까도 내가 말했지? 제약회사에서 만든 거라고. 그것도 규모가 큰 곳에서 만든 거야. 아직은 안 걸려.”

아직은 안 걸린다라.

그렇다면 이번 올림픽 땐 쓸 수 있다는 소리군.

“그럼, 양을 좀 늘릴까요?”

“응?”

“200만 달러로 늘릴 수 있겠습니까?”

“200만?”

로이는 어깨를 들썩이는 김아름에게 윙크를 날리며 내게 말했다.

“저 레이디는 네 결정에 불만을 가진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지금 결정권을 가진 건 저 하나니까요.”

김아름이 통역을 해 주면서 이들과 여러 번 마약 거래를 주도했다는 건 나도 알겠다. 하지만 지금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김아름과 강철중은 내 보조를 맞춰 주기 위해 따라온 사람들일 뿐.

로이는 내 대답에 흥미롭다는 듯 턱을 매만졌다.

“우리야 많이 팔면 좋은데… 갑자기 10배로 불려도 괜찮은 거야? 그쪽 보스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제 말이라면 100배도 가능하게 해 주실 분입니다.”

한 번 더 로이는 움찔하는 김아름을 슬쩍 바라보다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역시, 보스는 이쪽이었구나.”

그리고 내게 손을 건네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리틀 보스.”

이놈도 이제 누가 결정권을 가졌는지 명확히 알게 된 것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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