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얼얼한 뒤통수 (3)
“모두 똑바로 꿇어, 이 새끼들아!”
연합원이 저마다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로 위협을 하자, 무릎을 꿇고 있던 구교대와 그의 패거리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디어 참 좋았어.”
야구부 복장을 입고 있는 연합원이 방망이까지 들고 있으니 정말 잘 어울렸다.
이세린은 머리끝을 배배 꼬며 대답했다.
“아, 뭐…. 별거 아니야.”
“고마워.”
세린이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세린이 이런 아이디어를 내줄 줄이야.
평소에도 연합에 별로 관심이 없던 것처럼 보였는데, 이런 쪽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모양이다.
소풍을 온 학생으로 위장을 해서 인천에 오긴 했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이세린에게서 나왔다.
이세린은 이왕 위장을 할 거면 완벽하게 하는 게 좋다고 하면서 야구부로 위장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생각해 보니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였다.
교복만 입고 있는 학생들이 단체로 야구 배트를 들고 있으면 의심쩍은 시선이 사방에서 날아오게 된다. 하지만 야구부 복장을 한 학생들이 배트를 들고 있다면?
당연히 모두가 야구부 학생이라고 생각해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게 된다.
“근데 여기 계속 있어도 괜찮아? 부모님이 걱정 안 하셔?”
“우리 부모님이야 매일 밤에 들어와. 엄마는 쇼핑만 다니고, 아빠는 일만 하고…. 집에 거의 혼자 있어.”
하긴. 그 집안이 망하려면 아직 좀 멀었지.
“아…. 그렇구나.”
“왜? 얼른 갔으면 좋겠어?”
“뭐, 이제 거의 마무리 되는 것 같기도 해서….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줍게 말하던 이세린의 목소리와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멍청한 새끼.”
“뭐?”
“몰라. 말 걸지 마. 짜증 나니까.”
이상한 여자다.
처음에는 잘 말하다가 꼭 마지막에 저런다.
그냥 성격이려니 하고 넘어가려 해도….
날 싫어하는 건가?
세린이는 뚜벅뚜벅 도도하게 내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정식이가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에휴. 병신 새끼. 넌 나보다 더 심했다.”
“뭐, 뭐가?”
“됐어. 병신아.”
세린이에 이어 이젠 정식이까지.
저 녀석들 왜 저러는 거야?
“아무튼, 마무리까지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가셔.”
정식이는 손을 휘휘 저으며 나를 내치기 바빴다.
구교대에 이어 총 세 개의 학교를 굴복시켰다.
방법은 쉬웠다.
구교대를 이용해 인천 연합에서 영향력이 있는 놈들을 조금씩 불러 모아 쓰러뜨린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패거리의 아지트를 찾아가 철저히 짓밟아 주고 왔다. 다시는 경서 연합에 반기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각서까지 받아온 터라 그놈들은 수모란 수모는 전부 겪어야 했다. 우리는 잔인하리만치 확실히 일 처리를 했다.
그러니까 경서 연합에서 잡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연합원들도 잘 알고 있으니까.
원래 공포로 통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주먹으로 사는 세계다. 그리고 적당한 공포를 이용한 존경심은 항상 득이 되는 리더십이 아니던가?
연합원도 그렇고 다른 학교들도 마찬가지…. 모두 다 날 은연중에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식이도 편하게 나를 대하긴 하지만, 이놈도 마음 한구석에선 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정식아. 이따가 연욱이 오면 여기 인수인계 좀 해.”
“연욱이? 오늘 안 오는 거 아니었어?”
“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 확실하게 하고 가려고. 그러니까 연욱이 오면 여기 맡기고 넌 애들 끌고 따로 좀 와.”
정식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애들은 몇 명이나?”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상대해야 할 사람이 조폭이거든.”
학생이 아니고 조폭이란 말에 정식이의 표정이 바뀌었다.
두려워하는 기색보다는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얼굴이었다.(@영남파 때의 일을 생각하는 듯 기대에 찬 얼굴이다.)
“그래? 알겠어. 어디로 가야 되는데?”
* * *
“오셨습니까, 형님!”
“어. 다들 와 있었네.”
내가 여의도에서 키우고 있는 조직원들이 전부 인천으로 집합했다.
그들의 숫자는 총 30명.
마약 딜러를 치기 위해서는 화진파 조직원들이 필요하다.
경서 연합원은 아직 이런 세계에 뛰어들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작전은 분명 칼이 난무하게 될 것이고, 잘하면 저쪽에서 총까지 쏠 수도 있다.
이 일로 어린 학생들의 목숨을 잃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딱히 애들이 걱정돼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놈들 중 하나라도 죽게 되면 그 뒷감당을 어찌하란 말인가?
여기 조직원 중 하나가 죽으면 알아서 조용히 처리할 방법이 많지만, 학생은 아니다. 그들은 깡패가 아니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부모의 보호를 받는 청소년이지 않은가.
이 일은 화진파가 적합하다.
망설이지 않고 딜러와 그 패거리들을 없앨 수 있는 무기가 내겐 필요하다.
“왔냐?”
“예, 형님.”
그리고 가장 마음이 든든한 건 황규혁이었다.
황규혁도 이번 일에 나 혼자 보낼 수 없다며 억지로 따라왔다. 내겐 아주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제 먹은 술 때문에 아직도 숙취가….”
“어제 술 드셨어요?”
“나야 매일 마시지.”
말은 저렇게 해도 황규혁은 손도끼를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그건 마치 잔뜩 품은 살기를 날카롭게 다듬는 것처럼 보였다.
저 양반이 시동 한 번 걸리게 되면 정말 무서워진다.
이번 작전은 문제없이 해결될 것 같다.
“위치가 어딘지는 알고 있지?”
“예. 박두기 형님이 있는 국빈관 쪽에서 가깝습니다.”
“그래? 그 새끼들 거기서 약 뿌리고 있었구먼.”
황규혁은 몸을 가볍게 풀며 나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진중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원래 공급처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잘못 걸리면 우리가 매장되거든. 딜러 건드렸다는 소리 퍼져 봐. 다른 놈들이 우리 화진이랑 거래하고 싶겠냐?”
“그것도 그러네요.”
“그것도 그러네요, 가 아니고 원래 그런 거야. 이쪽 세계가.”
맞는 말이다.
딜러를 건드리는 건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위장까지 하고 오지 않았던가?
무슨 조선 시대 자객들처럼 조직원들에게 복면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는 황규혁이 알아서 할 것이다.
“앞으로 공급책은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 이런 건 한 번만 먹히는 거지, 두 번은 안 먹힌다.”
“명심하겠습니다.”
목적지에 도착을 하자, 황규혁은 하차를 하면서 복면을 코 위까지 올렸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실컷 털고 오자.”
“예, 형님.”
조금 신나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아니면 오랜만에 싸움판에서 날뛰는 게 좋은 건가.
뭐가 어찌 되었든, 이제 저 창고 안에 있는 놈들은 전부 뭐 됐다고 봐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규혁이 손도끼를 처음부터 꺼내 들 정도면….
한두 명만 남겨두고 전부 다 죽이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들어가자!”
“예, 형님!!”
조직원들도 저마다 연장을 들고 트럭에서 내리자, 황규혁은 크게 외치며 창고 안으로 돌입했다.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 열심히 뛰어갔다. 이런 데에서 뒤처질 순 없으니까.
“뭐, 뭐야!”
“어떤 새… 크악!”
역시, 내 예상대로 황규혁은 거침없이 손도끼를 상대 정수리에 찍어버렸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상대 머리에서 뇌수가 터져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그 옆에 있던 놈들도 허접은 아닌지 곧바로 반격을 했다.
그러나 상대를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황규혁이 설마 손도끼 하나만 가져왔겠는가?
그는 재빨리 왼쪽 허리춤에 있던 칼을 꺼내, 그대로 두 명의 목을 그어 버렸다.
오랫동안 훈련과 실전 경험을 반복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깔끔한 솜씨였다.
“이 두 새끼만 놔두고 전부 다 죽여!”
“예, 형님!!”
황규혁은 딜러로 보이는 외국인 하나와 그 옆에 있던 똘마니 하나만을 살려 두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숨통을 끊어 놓으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저 두 놈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주변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난 슬며시 그들 옆으로 가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위협했다.
이때다.
지금이 기회다.
이놈들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줄 때가.
“재악 형님! 이 새끼가 자꾸 움직입니다!”
황규혁을 일부러 재악 형님이라고 불렀다.
이재악.
인천에서 세력을 내리고 있는 익산파의 간부다.
황규혁도 내 신호를 알아차렸는지, 태연하게 받아쳤다.
“뭐? 그 새끼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 놔!”
“예, 형님. 그런데 아직 성철 형님은 안 오시는 겁니까?”
김성철. 이놈 또한 익산파의 간부다.
“야 이 새끼야.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아! 죄, 죄송합니다!”
나는 슬쩍 저 두 놈을 살펴봤다.
저 외국인은 총을 소지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더군다나 어차피 한국어를 모르니 패스하고, 그 옆에 있는 놈은 이재악과 김성철을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서, 설마 익산파에서 나온 거요?”
아니나 다를까, 저놈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이제 제대로 쇼를 해 줄 때가 되었다.
“응? 우리 익산파 아니야!”
“그럼?”
“그, 그건… 아무튼 아니야! 시끄러우니까 잠자코 있어! 네놈들은 저것들 다 정리하고 따로 처리해 줄 테니까.”
이 정도 했으면 됐나? 좀 더 해야 되나?
아니다. 더 말해 봤자 의심만 살 뿐이다.
이제는 저놈들에게 구멍을 좀 열어 줄 때가 왔다.
“어어! 형님! 위험합니다!”
나는 그놈들을 묶지도 않고 황규혁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미리 조직원들에게 일러두어 창고 문도 활짝 열어 두게 했다. 그래야 저 두 놈이 도망칠 게 아닌가?
“이익-!”
과연.
내 생각대로 잘 움직여 주는군.
역시, 저 두 놈은 틈이 생기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야! 저, 저 새끼들 잡아! 도망가게 해서는 안 돼!”
난 일부러 과장되게 소리쳐 저 두 놈이 더 빨리 발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조직원들도 쫓는 시늉만 하다가 다시 금방 돌아왔다.
“잘 간 거 같냐?”
내 물음에 잠깐 추격에 나섰던 조직원 중 하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예. 살려 달라고 질질 짜면서 도망치던데요?”
“잘했어. 고생했다.”
“예, 형님.”
이러면 대충 끝난 건가.
“형님. 여긴 다 해결됐습니다.”
“어. 그래.”
싸움은 아까 끝났지만, 저 두 놈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템포를 맞춰 가던 황규혁은 꿈틀거리는 상대의 몸에 여러 번 도끼를 찍었다.
확실하게 숨통을 끊는 황규혁만의 버릇이랄까.
“잘 된 거 같냐?”
“예. 이제 오성파가 미끼를 물어야죠.”
“그래. 다행히 이 새끼들 가진 총이 없어서 빨리 해치웠네. 총 들고 설쳤으면 피곤해질 뻔했어.”
황규혁의 말대로 이놈들이 총을 갖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보통 외국계 딜러들은 총을 소지하고 있다. 언제든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에게 대항하기 위한 방편인데, 이것 때문이라도 웬만하면 외국계 딜러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게 조직들의 습성이다.
“근데 이거 좀 아깝네. 이 많은 양을 박두기, 그 양반한테 다 줘야 한다니.”
“어쩌겠어요? 약속은 약속인데. 오성파가 끼어들지 않은 덕분에 저도 연합 쪽을 잘 정리했으니까요.
인천 연합을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오성파가 개입하지 않은 탓이 컸다. 그놈들도 은근히 오성파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거 같은데, 오질 않으니 쉽게 무너진 것이었다.
박두기가 일을 잘해 준 것 같았다.
“이제 가자. 얼른 옮기고 가서 좀 쉬자. 이 덩어리들도 산에 묻어 놓으려면 할 일이 많다.”
“예, 형님.”
황규혁은 조직원들을 움직여, 먼저 마약을 트럭에 실어 놓도록 했다. 나도 조금 거들면서 얼른 일을 끝내고 연합원에게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컥-!”
밖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더니, 조직원 두 명이 창고 안으로 나뒹굴며 들어왔다.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한 흔적이 눈에 훤히 보였다.
누구지?
설마, 벌써 오성파에서 똘마니들을 보내기라도 한 건가?
“어딜 가려고?”
이건 생각지 못한 얼굴이다.
아니,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정말 저놈이 나타날 줄은….
“황 사장, 그리고 김 사장. 여기 올 땐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땐 아니야.”
박두기는 여유로운 얼굴로 창고 안에 들어왔다. 저놈이 조직원을 저렇게 잔뜩 끌고 왔다는 건 무슨 뜻이겠는가?
단순히 마약 옮기는 거 도와주기 위해 온 건 아닐 것이다.
“형님. 이거 혹시…?”
황규혁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박두기를 노려보았다. 저 돼지 같은 놈이 우리를 속였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설마, 내가 순순히 네 두 놈 말대로 할 줄 알았냐? 이런 건방진 새끼들. 너희들이 인천에 발 들이는 순간부터 저 세상 사람이었어. 알아?”
시발.
하마터면 욕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저 새끼가 우리 뒤통수를 정말 치려고 할 줄이야.
황규혁도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방금 넣어두었던 손도끼를 다시 꺼냈다.
“이런 시팔. 이거 외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