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50화 (50/325)

50화. 얼얼한 뒤통수 (2)

김태산, 황규혁.

이 두 명 모두 권용일에게 신임을 받고 있는 놈들이다.

특히 김태산에 대한 권용일의 신임은 굉장하다.

만일 저 어린놈을 간부 중 누군가가 담그려고 든다면 권용일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터. 그래서 간부들도 눈엣가시 같은 놈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이만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박두기는 피고 있던 담배를 비비며 옆에 있던 덩치에게 말했다.

“이진용 형님한테 연락 넣어. 지금 바로 뵈러 간다고.”

“예, 형님.”

이 세계의 법칙은 약육강식.

약한 놈은 강한 놈에게 먹혀야 되는 곳이다.

김태산 그놈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그 어린놈이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다니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 * *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인 거 같지 않냐?”

“그런가?”

연욱이는 박두기가 선뜻 내 제안을 받아들인 게 의심스러운 모양이다.

“이상하잖아. 박두기는 이진용 쪽 사람이라며. 거기다가 네가 해외 쪽 업무를 맡으면서, 그 양반이 갖고 있던 돈줄도 네가 뺏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내가 약 주겠다고 한 거지. 그거라면 거절할 수 없을 테니까.”

마약을 건넴으로써 박두기가 거절할 수 없는 패를 던졌다. 아편굴 사건으로 지금 화진파는 약으로 돈을 쓸어 담는 중이다.

더군다나 연예계부터 정치계까지 약에 손을 댄 사람들은 화진파에 약 구걸을 하고 있지 않던가. 지금 같은 때에 약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돈을 벌게 되어 있다.

“아무튼, 인천 연합은 어떻게 하게?”

“일단, 해체하고 우리 연합에 흡수시켜야지. 나올 놈들은 나오고, 나갈 놈들은 나가도록.”

오성파에 의해 반강제로 연합에 든 학교가 몇 있다고 구교대에게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인천 연합을 강제로 해체하고 경서 연합에 흡수한다면?

오성파는 분명 강압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압박하려 하겠지만, 타이밍에 맞춰 박두기가 움직여 준다면 그들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구교대, 그놈 분명히 반항하겠지?”

“그렇겠지. 애들 모아서 우리랑 한판 뜨려고 할 거야. 그래도 그날 가서 봤잖아? 그놈들은 결속력이 없어. 경서 연합에는 상대가 안 돼.”

경서 연합은 강한 결속력으로 뭉친 연합이다. 하지만 인천 연합은 오성파가 억지로 만들어낸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90년도에 들어선 인천 연합은 그 힘이 상당했지만, 지금의 인천 연합은 아직 다듬어지지도 않은 작품이다.

이런 놈들로 우리 경서 연합과 합을 겨루겠다는 발상 자체가 글러 먹었다.

“어떻게 진행할 생각이냐?”

“구교대한테 먼저 가서 인천 연합을 경서 연합에 흡수시키라고 말할 생각이야.”

“거절하겠지?”

“그렇겠지. 그리고 그놈들이 처음부터 우리를 노리고 시작한 일이잖아. 명분 생기고 좋지.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인천 연합이 아니야.”

연욱이의 표정이 좀 안 좋다. 내가 뭘 말하는 건지 알고 있는 것이다.

“난 안 가니까, 너 알아서 해. 마약 터는 일은 영 내키지가 않는다.”

이번 원정은 인천 연합을 해체시킨다는 것도 있지만, 오성파가 이용하고 있는 마약상의 창고를 터는 일도 있다.

구교대가 오성파에게 마약을 전달받은 창고가 어디인지 이미 알아봤다. 하지만 거기는 단순히 마약을 임시로 저장한 곳일 뿐.

“그래. 넌 안 와도 돼.”

“위치는 잘 알아놨지?”

“어. 오성파한테 마약 공급하는 곳이 어디인지 찾아놨어.”

오성파나, 화진파는 마약을 제조하지 않는다.

다른 조직이 가지고 있는 마약을 강탈하거나, 혹은 딜러를 통해 조달받는다.

우리가 치려는 곳은 오성파에게 마약을 팔고 있는 딜러다. 검사 시절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적에 나섰고, 공급처가 어디인지 알아냈다.

“근데 설마 화진파 이름 운운하면서 칠 생각은 아니지?”

“그럴 리가. 내 뇌가 우동사리도 아니고.”

드러내고 칠 생각은 절대 없다.

인천에 있는 다른 조직의 이름을 빌려 딜러를 칠 생각이었다.

오성파가 화진파를 의심하긴 하겠지만…. 내가 다른 조직으로 위장해서 딜러를 공격하고 마약을 전부 강탈한다면, 화진파만 의심할 순 없을 터.

이 일로 오성파와 전혀 관계없는 다른 파와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꽤 볼만 할 것이다.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그래서 언제라고?”

“이틀 뒤에.”

“빠르네.”

“빨리해야지. 영감님이 나 언제 미국 가나 지켜보고 있는데.”

권용일이 소개를 해 준 두 사람과 제대로 대화도 나눠 보지 못했다. 인천 연합 일만 아니었으면 진작 미국에 갔을 것이다.

“애들 몇 명 모을 거야?”

“150명 정도는 있어야 해. 압도적으로 밀지 못하면, 인천 연합이 우리한테 순순히 들어오려 하지 않을 거야.”

이런 싸움은 압도적인 힘 차이를 보여 줘야 빨리 끝나고 잡음도 없다.

간소한 차이로 승리를 하게 된다면 인천 연합 쪽에서 나중에 반격을 가할지도 모른다.

저놈들이랑은 두 번 다시 싸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단단히 심어 줘야 한다.

* * *

인천으로 150명의 연합원을 무작정 데리고 갈 순 없었다. 그래서 타지에서 소풍 온 다른 지역 학생으로 위장할 계획이다. 물론 이동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동하는 방식을 택했고 말이다.

물론, 작전이 시작되면 모두 다시 사복으로 갈아입게 될 것이다.

나는 일영 고등학교를 치기 전에, 몇몇 간부들과 함께 먼저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구교대의 반이 어디인지 알기 때문에, 그놈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내 얼굴을 알아본 구교대는 몸서리를 쳤지만, 인천 연합을 해체하고 경서 연합에 들어오라는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좋게 말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아무리 개쪽을 줘도 이건 아니지, 꺼져! 애들 시켜서 죽여 버리기 전에.”

조금 세게 나오면 뭐라도 될 거라 생각했나 보지만….

“해 봐.”

“뭐?”

“애들 시켜보라고. 대신, 내 옆에 있는 애들 우습게 보지 마라. 잘못 건드리면 여기다 뒤집고도 남을 놈들이야.”

이미 저번 날 나와 내 패거리에게 호된 경험을 당한 구교대다. 내가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난 다 말했다. 그리고 네가 저번에 넘겨 준 인천 연합 학교 리스트, 아직 가지고 있어.”

구교대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 갔다.

난 그날 구교대에게 참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인천 연합에 들어가 있는 학교 수와 이름. 그리고 그곳에 주먹이 누구인지까지도.

그래서 연합원을 이끌고 인천에 오기 전까지 광범위하게 섭외를 했다.

아직 구교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인천 연합에 있는 학교 중 절반이 벌써 우리한테 넘어왔어. 그러니까 생각 잘하는 게 좋을 거야.”

“절반…?”

구교대는 놀람과 함께 살짝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물론, 이건 뻥이다.

20개 중 6개의 학교만 간신히 건졌다. 나머지 14곳은 오성파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이 활발히 사용되는 시대가 아닐뿐더러…. 설사 사실 확인을 한다고 해도, 서로에 대한 불신만 남기면 될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처신 잘해. 괜히 뒤통수 맞지 말고. 오늘 하루만 시간 준다.”

난 그 말만 남기고 교실 밖을 나왔다.

나를 노려보는 놈들이 좀 있었지만, 그 이상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여기서 싸움이 일어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저놈들도 학교 안에서 싸우는 건 껄끄러운 모양이다.

“오늘 치려는 거 아니었어?”

내 옆을 나란히 걷고 있던 정식이가 조용히 귓속말로 속삭였다.

“맞아.”

“엥? 근데 왜 하루만 시간을 준다고 했어? 그리고 인천 연합 절반을 먹었다는 게 사실이야? 난 6개라고밖에 듣지 못….”

이놈이 눈치도 없이.

난 빠르게 정식이 입을 막아 버렸다.

“입 다물고 있어.”

“아…. 응.”

내 패가 거짓이었다는 걸 정식이도 그제야 눈치를 챘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간부들은 쿡쿡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 우리 회장님이 언제 정정당당하게 싸우려고 한 적이 있냐.”

“맞아. 맨날 사람 뒤통수만 치고.”

이들 중에서 몇몇은 내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고 결국 경서 연합에 들어왔다. 그래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싸움과 전쟁에는 반칙이란 것이 없다.

정정당당함은 스포츠에나 있는 거지, 이런 싸움판에서 그런 쓸데없는 걸 찾다가는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긴다.

이길 수 있을 때 확실히 밟아 놓고, 기회가 있을 때 잡는 것이 세상의 진리다.

그건 간부들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니까 저놈들이 내 뒤를 따라와 주는 것이겠지.

“애들 준비시켜. 구교대를 내가 흔들어 놓았으니까, 저 새끼 분명 다른 학교 애들한테 찾아가 볼 거야. 그때 저놈을 먼저 밟아 놓고, 우리 제안을 거절한 놈들도 차례로 친다.”

“그래.”

모든 준비는 끝났다.

구교대 녀석은 내 말만 믿고, 다른 학교에 찾아가 난리를 피우려고 할 것이다. 그때를 노려 먼저 구교대와 그놈 패거리를 정리하고, 다른 학교도 차례로 정리하는 게 이번 원정 목표였다.

“중간부터는 정식이 네가 대신 지휘를 해 줘야 해. 난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알아. 그런데 이거 너무 빡센 거 아니냐? 연합에 들어가 있는 학교가 몇 개나 되는지 알지?”

“전부 칠 생각은 없어. 주력인 곳만 정리하면 다른 곳은 알아서 고개 숙일 거야.”

말은 그렇게 했어도 최소 다섯 군데는 굴복을 시켜 놔야 한다. 그걸 정식이도 알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한숨을 쉬는 것이다.

“일단, 가자.”

“젠장. 오늘 진짜 너 크게 쏴야 한다.”

“자장면은 물론이고 탕수육도 기본으로 넣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 그렇다면 열심히 해야지.”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역시 이놈은 정말 단순하다.

* * *

“박 사장. 갑자기 찾아와서는 그게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형님. 그 어린 것들이 날뛰는 걸 언제까지 지켜봐야 합니까? 슬슬 싹을 자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일단 진정부터 해, 박 사장. 이거 한 잔 쭉 마시고.”

이진용은 박두기에게 술잔을 건네며 흥분을 가라앉게 했다. 하지만 박두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적인 상태였다.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형님. 지금 저, 아주 멀쩡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해? 사람 간 떨어지게.”

“형님. 황규혁은 그렇다고 치고, 김태산 그놈은 빨리 정리를 해야 합니다. 언제 그놈한테 우리 목덜미를 물릴지 모릅니다.”

이진용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이 사람. 나이가 들긴 했구먼. 천하의 박두기가 겁을 다 먹고.”

“형님!”

“아이고, 귀 떨어지겠네. 나도 알아. 나도 우리 박 사장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안다고. 그런데 큰 형님이 신용하는 아이야. 그런 애를 갑자기 담가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이진용의 엄살에 박두기는 음흉하게 이빨을 드러냈다.

“그렇지 않아도 그에 대해서는 방비를 해 놓았습니다.”

“방비? 우리 박 사장이 어떤 방비를 해 놓았을까?”

“사실, 이번에 황규혁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박두기가 자신의 사람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황규혁이 도움을 청하러왔다?

이진용은 흥미가 돋았는지 박두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도움이라니?”

“애들 모아서 오성파와 당장이라도 한판 벌일 것처럼 연기해 달라고 하더군요.”

“오성파를 속여달라고? 갑자기 왜?”

“인천에서 생긴 연합이 오성파 쪽에서 만든 거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놈들이 김태산 그놈의 경서 연합을 노리는 거 같은데, 그걸 미리 방지하겠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천 연합을 만들어, 경서 연합을 친다라-.

오성파 발상이 꽤 괜찮다.

“그래서 박 사장은 뭐라고 했어?”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면박을 주다가, 그 꼬맹이 녀석이 약을 주겠다고 미끼를 살랑살랑 흔들더라고요.”

“약?”

“예. 그런데 웃긴 게 그 약이 오성파한테 있다고 합니다. 그놈들을 쳐서 얻겠다고 합디다.”

이진용은 껄껄 웃음을 터트리며 손뼉까지 쳤다.

“미친놈이구먼. 박 사장은 그래서 뭐라고 했어?”

“저야 뭐, 알겠다고 했죠. 가뜩이나 요즘 약값이 오를 대로 올라서 가루 좀 많이 가지고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래서 그놈이 약을 다 구하는 대로 뒤를 칠 생각입니다. 이미 애들도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방심한 틈을 타서 공격한 다음, 약은 약대로 챙겨서 내빼면 일석이조이지 않습니까?”

박두기는 실실 웃으며 잔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이진용은 그런 박두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박 사장. 자신 있어?”

“예. 이번에 제대로 담그고 오겠습니다. 혹시라도 오성파랑 문제 생기면 그땐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날 찾아온 건 머릿수 좀 채워 달라는 거겠지?”

이진용이 자신의 원하는 바를 정확히 꼬집자, 박두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히 말했다.

“예, 형님. 똘마니들 좀 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값은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어이쿠. 우리 욕심 많은 박 사장이 값까지 쳐 준다면야 내가 또 안 도와줄 수가 없겠네. 나도 이번에 약 좀 만져 보는 건가?”

솔직히 약을 준다는 게 아깝긴 했지만, 김태산 그 핏덩이를 처리할 수만 있다면 박두기는 괜찮은 대가라고 생각했다.

“예, 형님. 절반 드리겠습니다.”

박두기의 대답에 이진용은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어디 한 번 잘해 보자고, 박 사장.”

“감사합니다, 형님.”

박두기도 이진용의 잔에 술을 채우며 넙죽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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