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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49화 (49/325)

49화. 얼얼한 뒤통수 (1)

인천에 자리를 잡고 있는 박두기의 나이트.

황규혁은 길게 심호흡을 하며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체크했다. 이런 쓸데없는 걸로 트집을 잡기도 하니까. 그만큼 고급간부들에게는 황규혁의 이미지가 썩 좋지 않았다.

나이도 어린놈이 벌써 영등포를 맡아 사장 소리를 듣고 앉아 있으니, 배알이 꼴릴 수밖에 없을 터.

그런데 황규혁보다 더 어린, 그것도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녀석이 여의도를 꿀꺽 삼켰다. 게다가 해외까지 손을 뻗친 바람에 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중이다.

한 번.

딱 한 번의 실수하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

박두기도 나와 황규혁에게 쌓인 감정이 많은 사람이라 과연 협력을 해 줄지도 의문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라.”

“저보다는 형님이 더….”

“아냐. 난 아무렇지도 않아.”

아닌 척하긴 하지만, 황규혁에게는 껄끄러운 상대이니 당연 긴장이 될 것이다.

“넌 안 와도 된다니까. 왜 괜히 따라와서 고생을 해?”

“형님 뒤에서 받쳐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다. 오히려 박두기 그 양반 화만 더 돋우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 사람, 너 엄청 싫어할걸?”

황규혁의 말이 맞다.

박두기도 해외 업무 중 일부를 맡고 있었는데, 그걸 내가 강탈하지 않았던가.

날 보자마자 칼부터 꺼내지 않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들어가자.”

“예, 형님.”

난 황규혁을 따라 인천의 유일한 국빈관 나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나이트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벌써 따갑다. 몇몇 중에는 진한 살기마저 느껴진다. 여기가 정말 화진파의 구역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긴장을 했지만, 겉으론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으로 황규혁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박두기는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며 허리를 숙이고 있는 황규혁을 바라보았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우리 황 사장이 나한테 다 찾아오고.”

박두기는 날 슬쩍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다가 우리 잘나신 핏덩이도 같이?”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형님.”

“어차피 서로 볼일 없는 사이라는 건 다 아는 거니까, 입 발린 소리하지 말고 앉기나 해.”

역시, 예상대로 박두기는 우리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왕래가 없던 사이에, 갑자기 황규혁과 내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요점만 말해. 왜 왔어?”

차라리 이런 대화가 낫다.

쓸데없는 신변잡기나 말을 돌리기보다는 요점만 말하면 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니까.

“형님께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도움? 무슨 도움?”

“그게… 혹시 인천에 있는 조직원 전부를 모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장이라도 오성파 구역을 칠 것처럼 긴장 구도를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박두기는 나와 황규혁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헛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찾아와서는 뜬금없이 뭔 개소리야? 오성파랑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냐?”

“아닙니다. 전쟁을 하자는 게 아니고, 그럴 것처럼 보여만 주는 겁니다. 오성파 놈들이 놀라서 전부 모일 정도로요.”

영문 모를 소리만 늘어놓고 있으니, 박두기의 안색이 매우 불편하게 보였다.

“황 사장. 그리고 너, 핏덩이.”

“예, 형님.”

“지금 나랑 뭐하자는 거야?”

박두기는 일그러진 얼굴로 우리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야 이 새끼들아. 지금 눈깔에 뵈는 게 없어? 큰 형님이 오냐오냐하고 키워 주니까, 화진파를 너희 두 새끼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인 줄 알아!”

결국, 박두기는 벌떡 일어나 상까지 뒤엎었다.

이런 전개를 예상 못 한 건 아니지만, 이 새끼는 어지간히 다혈질이다.

그러니까 네가 우리 둘한테 먹히는 거야.

“형님. 그게 아니고….”

나는 해명을 하려 드는 황규혁을 제지했다. 지금은 황규혁보다 내가 나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이럴 거라고 예상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지.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씩씩거리며 화를 분출하고 있던 박두기는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말해 봐. 대신, 시원찮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되지도 않는 협박을 하고 있다. 저런 놈에게 말까지 높이면서 설득을 해야 하다니. 하지만 참는 건 이번뿐이다. 나중에 반드시 이놈이 내게 고개를 숙이도록 만들면 되지 않은가.

“가루, 그러니까 약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뭐?”

“이번 일을 도와주시면 주머니를 채워 줄 마약을 드리겠습니다. 그리 작은 양이 아닙니다.”

“야. 지금 뭔 지랄을 하고 있는….”

“형님.”

난 눈을 번뜩이며 박두기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전 형님께 거래를 제안하는 겁니다. 절대 일방적인 도움을 받고자 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번 일은 형님께 더 이득이지 않습니까? 그냥 똘마니들을 모아놓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럼, 당분간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 줄 가루가 생기는 겁니다.”

처음에는 박두기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섰다. 하지만 그의 붉던 얼굴은 금방 가라앉았다.

“내가 너희 장단에 놀아나 주면 약을 주겠다?”

“예. 정확히 얼마의 양인지는 모릅니다만, 실망하시진 않을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거래에 내놓을 약의 무게가 얼마인지도 모르다니.”

난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약이 사실은 저한테 있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있거든요. 정확히는 오성파에게 말이죠.”

박두기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

“지금 오성파 곳간을 털겠다는 거냐? 아니, 이런 미친 새….”

“그 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형님께서는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는 겁니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야 이 새끼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쥐뿔도 없는 새끼인 네가 뭔데 책임을 져?”

“정말요? 제가 정말 쥐뿔도 없는 놈입니까?”

나의 반박에 박두기는 말문이 막혔다.

틀린 말이 아니지 않은가.

여의도를 관장하고 있는 내가 아무 힘도 없다고 말할 순 없다. 더군다나 대룡파도 내 작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화진파 내부에 없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모든 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어차피 이 일이 실패해도 형님께는 아무런 불이익도 없을 겁니다.”

박두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 얼굴을 보니, 머리로 주판을 튕기고 있는 것 같다.

병신인가?

이런 좋은 기회를 덥석 물어야지 왜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물론, 나와 황규혁이 개수작을 부리려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긴 할 것이다. 너무 파격적인 조건이긴 하니까.

하지만 굳이 길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우리 두 사람이 그런 미친 짓을 할 리 없다는 건 알 것이다.

“오성파가 오해해서 진짜 쳐들어오면? 그리고 네가 오성파 마약을 털어봐. 그 새끼들이 우리를 가만둘 거 같냐?”

“그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화진파를 의심하긴 하겠지만, 확증은 못 할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아니다. 됐다. 나머지 일은 네놈 새끼가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확실히 해라. 이번 일에 대해서는 난 아무것도 모르는 거다.”

“예. 결과만 알고 과정은 알지 못한다. 그게 바로 화진파의 모토 아닙니까?”

권용일이 자주 내뱉는 말이다.

박두기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박수를 쳤다.

거래가 성립된 것인가?

“악수나 하지, 김 사장.”

난 박두기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형님.”

지금은 내가 너한테 고개를 숙이지만, 잊지 마라.

가까운 시일에 반드시 네가 내게 고개를, 아니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 * *

황규혁은 박두기의 나이트에서 나와, 차에 타기 전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엉덩이를 좌석에 붙이기 무섭게 숨을 크게 내뱉으며 내 어깨를 세게 쳤다.

“야! 너 이 새끼!”

“왜 그러세요, 갑자기?”

“몰라서 물어, 인마? 그게 다 무슨 소리야! 마약이라니?”

“아-. 사실, 그 카드를 꺼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근데 박두기 형님이 워낙 완강해서 말이죠. 그래서 임기응변으로 한 겁니다.”

“임기응변? 그럼, 없는 걸 있다고 뺑끼친 거야?”

내가 설마 그런 멍청한 짓을 했겠는가.

“그럴 리가요. 저, 그렇게 무모한 놈 아닙니다.”

“그렇긴 하겠지. 근데 그 마약을 어디서 구한다는 거야?”

“아까 듣지 않으셨어요? 오성파한테 있다니까요.”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오성파 새끼들이 가진 걸 뺏는다는 게 말이 돼? 괜한 짓 하지 마라. 그러다 진짜….”

“진짜 전쟁이 난다는 거죠? 그럴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황규혁은 여전히 못 미덥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결과만 보여주면 된다.

박두기에게도 말하지 않았던가.

과정은 모르고 결과만 안다.

이것이 화진파의 모토다.

“당최 무슨 생각인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언제 일 망친 적이 있습니까?”

“그렇긴 한데…. 너무 자만하지 마라.”

“자만이 아니라 자신감입니다. 믿어 주세요.”

“내가 널 못 믿겠냐? 그래도 너무 막 나가지 마. 네가 모르는 곳에서 비수가 날아올 수도 있는 게 이쪽 세상이야.”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절대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저건 정말 나를 걱정해서 해 주는 조언이라는 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형님. 역시, 여기서 저 생각해 주는 사람은 형님밖에 없습니다.”

“새끼. 또 오바 한다.”

“하하. 그런가요?”

물론, 황규혁이 걱정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문제없이 잘 해결될 것이다.

이미 인천 연합회장이라는 놈도 굴복을 시키지 않았던가?

그런 놈을 상대로 백 번 싸워도 이길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의 인천 연합은 우리 경서처럼 끈끈하게 엮여 있는 놈들이 아니다.

아무리 오성파가 도와준다고 해도 그놈들은 우리 경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박두기, 그 양반이 좀 순순히 받아들인 거 같아서 걸리긴 해.”

“약을 던져준다고 했으니, 덥석 받은 거 아니겠어요?”

“그렇긴 하지. 누구라도 그 제안을 뿌리치진 못했을 거야. 근데 그 사람은 길게 고민하지도 않았어. 만약에 우리가 부탁하는 상대가 이진용 형님이라고 생각해 봐. 어땠을 거 같냐?”

생각만 해도 싫은 전개다.

그놈에게는 절대 부탁이라는 걸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 더 많은 걸 요구했을지도 모르죠. 아니면 확답을 주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잘 아네. 그 형님이 유독 의심이 많긴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도 선뜻 받아들이진 않을 거야. 왜냐하면, 상대가 내건 조건이 너무 좋거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는 건 그만큼 급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인천 연합을 하루빨리 정리하고 미국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내가 급히 움직인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박두기에게 건넨 제안은 결코 나쁘지 않았고, 나쁘지 않았기에 박두기가 순순히 손을 잡아 준 것이었다.

그러나 황규혁은 그게 의심스러운 모양이다.

“뭐, 내가 과민 하는 걸 수도 있겠지.”

“예. 워낙 휙휙 일이 진행됐으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안 해, 인마.”

어느덧 영등포에 도착하자 황규혁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술이나 한잔 하자. 일이 잘 풀리라고 기원주는 마셔야지. 혹시, 술 마시기 싫으면 안 마셔도 되고.”

난 잠시 뜸을 들이다 조심스레 황규혁에게 물었다.

“로얄 샬루트 20년산… 있나요?”

* * *

“건방진 새끼.”

박두기는 그 두 사람이 나간 사무실 입구를 빤히 쳐다보며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언제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이다.

나이도 어리고,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것들이 화진파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는 게 아직도 분통이 터졌다.

조직의 양대 고급 간부인 이진용과 성일환의 위세는, 아직까지는 성일환이 우세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일환도 성일환이지만….

권용일은 저 핏덩이들마저 양어깨에 끼고 사는 것이 아닌가….

이해할 수가 없는 늙은이다.

하루빨리 뒤지기라도 할 것이지, 그 영감은 생긴 대로 호랑이 기운이 펄펄 넘친다. 그래서 간부들도 저 두 놈을 건드리지 못했다.

저 새끼들이 고꾸라지는 걸 봐야 적성이 풀릴 거 같은데….

과연 어떻게 엿을 먹여 줘야 하는 걸까?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던 박두기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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