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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48화 (48/325)

48화. 인천 연합 (1)

일영 고등학교는 경서 고등학교의 모습과 비슷하다.

경서 고등학교가 서울에서 가장 질 나쁜 곳으로 취급 받는 것처럼, 일영 고등학교도 인천에서 질 안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경서 고등학교에서 졸업하는 많은 이들이 조폭으로 빠지듯, 일영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라는 것.

주먹질 좀 한다는 놈들만 바글바글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바로 들어갈 거냐?”

연욱, 이놈이 멍청한 소리를 한다.

“아니. 무슨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그런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쇠파이프 하나 들고 복도에 있는 창문들을 부수면서 돌아다니는 건 멍청한 짓이다. 괜히 경찰 손에 끌려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학교가 끝나고 애들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오는 애들마다 왜 다 불량스럽게 보이는 거지?”

학교가 끝나자 학생들이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저 중 누굴 잡아야 정보를 얻을 수 있느냐였다.

정식이 말대로 애들이 죄다 학생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정식이도 만만치 않긴 하지만.

“저기 애들 보이지? 저것들이다.”

연욱이는 내 등을 톡톡 치더니, 다섯 명끼리 무리를 지어서 걷고 있는 남학생들을 가리켰다.

“어떻게 알아?”

“그냥 알아. 원래 도둑놈은 도둑놈처럼 생겼다잖아.”

척 보면 다 안다는 강력반 형사들의 인기 있는 대사.

연욱이도 강력반 형사들 못지않은 직감의 소유자다. 이놈도 이런 종류의 냄새를 매우 잘 맡아, 검사 시절 나도 도움을 받은 적이 꽤 있었다.

이번에도 분명 연욱이의 감이 맞을 거로 생각했다.

우리는 그들을 몰래 뒤따라갔다.

오랜만에 미행을 해서 그런지 약간의 스릴감이 느껴진다.

“저것들 인적이 드문 데로 가는 거 같은데?”

“네 생각이 맞았다는 소리겠지.”

연욱이의 말대로 길을 걷는 사람이 점점 보이지 않았다.

언뜻 봐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없는 장소로 가고 있지 않은가.

“저놈들 아지트인가?”

마침내 저 무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버려진 어느 폐공장이었다.

이곳이 저놈들의 아지트라는 건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맞겠지. 이런 곳에 마실 나온 건 아닐 거 아니야.”

연욱이 말이 맞다. 이런 퀴퀴한 곳에 놀러 올 일은 없을 테고.

뭔가 구린 일을 하러 왔거나, 나름 폼 좀 잡아 보려고 아지트라는 걸 만들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들어가도 되나?”

“몰래 들어가자.”

생각 없이 정문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 안에 몇 놈이 있을 줄 알고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이럴 때는 뒷구멍이나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다.

다행히 정문 옆에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저곳으로 올라가 위층에서 안을 염탐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조용히…. 조심해서….”

다들 숨을 죽인 채 내 뒤를 따라 계단을 밟았다. 내 예상대로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낡은 문이 있었다. 문제는 이게 철문이라서 정말 조심스럽게 열어야 한다는 것.

난 슬며시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끼릭’ 부식된 철끼리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다행히 그리 크진 않았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래서 내가 말이야. 그 새끼 멱살을 잡고….”

안에 들어가니, 어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놈이 자신의 무용담을 열심히 동료들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식이는 뒤에서 지랄을 한다며 킥 웃음을 터트렸고, 연욱이도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열둘… 정도 되나?”

“맞아.”

한 남학생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있던 학생들 수가 총 열두 명.

덕담이나 하자고 모인 건 아닐 테고, 과연 이놈들은 무엇을 위해 모인 것일까?

“자, 잘 나눠 가져라.”

무용담이 끝났는지, 북한 돌격부대마냥 머리를 허옇게 밀어 버린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 여러 개를 가운데에 던졌다.

둘러앉아 있던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가방을 열어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챙겼다.

“설마… 저거….”

나와 연욱이는 동시에 눈이 커졌다.

저 가방 안에서 나오는 내용물들은 단순히 돈뭉치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학생들 중 몇몇이 작은 쌀자루에 손을 넣고 빼더니 하얀 가루가 부스러기처럼 다시 안으로 떨어졌다.

저게 무엇이겠는가.

바로 마약이다.

설마 저 어린 것들이 마약을, 그것도 저 정도의 양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어떡해야 하지. 좀만 더 기다려 봤다가 행동에 들어가야 하는 건가?

“아니, 이런 미친 새끼들이!”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이 터졌다.

갑자기 꼭지가 돌은 건지, 연욱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만 것이었다.

“뭐, 뭐야!”

“저 새끼들,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야!”

당황한 아래층 무리가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리며 소리쳤다.

이런. 하필이면 이럴 때 연욱이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감히 뭘 만지고 있는 거야! 돌았냐, 이 새끼들아!”

“뭐야!? 이 새끼가!”

“저것들 잡아서 끌고 와!”

연욱이는 더욱 흥분한 목소리로 삿대질을 해댔다.

“내가 알아서 내려갈 거니까 도망치지 말고 거기서 딱 기다려, 이 호로 새끼들아!”

아래층으로 슝 내려가는 연욱이를 우리 셋은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애써 조용히 숨어서 들어왔더니, 연욱이가 모두 헛수고로 돌려 버렸다. 이 자식은 여기 와서 갑자기 쓸데없는 정의감에 사로잡히기라도 한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정문으로 갔을 텐데.

“야 이 새끼들아. 그게 뭔지 알고 겁도 없이 갖고 다니는 거야?”

눈앞에 있는 저 열두 명이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무리 저것들이 덩치가 크고 웬만한 깡패들처럼 보인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는 것.

수많은 아수라장을 헤치고 온 녀석이니,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저 녀석을 혼자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 셋도 후다닥 내려와 연욱이 옆에 섰다.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어디서 훈계 질이야? 딱 보니까 우리 또래인 거 같은데, 너희들 뭐 하는 새끼들이냐?”

저놈이 우두머리인가?

마약을 학생들에게 던져 주었던 녀석이 옆에 있던 긴 막대기를 하나 들고 건들거렸다.

연욱이는 그 모습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아….

이러려고 온 건 아닌데.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콰직-!

무식하게 돌진해서 두 다리를 대차게 뻗는 드롭킥!

연욱이 저 녀석의 전매특허라고 해야 할까.

회귀 전에도, 현장을 같이 돌 때면 항상 저놈이 제일 먼저 치고 들어갔다.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그래도 저걸 맞고 한 번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놈을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저 새끼 막아!”

“이런 미친 새끼!”

당황한 학생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쓰러진 녀석의 멱살을 잡고 있는 연욱이에게 달려들었다. 저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우리 셋도 연욱이를 지키기 위해 나서면서 싸움이 개싸움으로 번졌다. 하지만 승패는 생각보다 빨리 결정이 되었다.

태혁이가 혼자서 여섯 명을 쓰러뜨리면서 승기가 완전히 우리 쪽을 넘어온 것이었다. 덕분에 치열할 줄 알았던 개싸움이 금방 마무리됐다.

“장연욱,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난 숨을 고르고 있는 연욱이의 뒤통수를 갈겨 버렸다

“아! 왜 때려!?”

“갑자기 그렇게 뛰어들면 어떡해! 위험했잖아.”

“아니. 이것들이 하는 짓이 돌았잖아. 지금 나이가 몇인데 벌써 마약으로 장난을 치려고 해?”

순간, 내 입에서 ‘그럼 나는?’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연욱이는 내 눈빛만 봐도 다 알겠다는 듯이 내 이마를 살짝 때렸다.

“넌 그냥 이용하는 거고. 이것들은 자기들이 하려는 거잖아.”

“그렇게 따지면 내가 더 나쁜 놈이지. 이런 애들이 약을 할 수 있도록 조달하는 게 내가 하는 짓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저놈들은 마약으로 스스로 인생을 파멸시킬 뿐이지만, 나는 수천, 수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백 킬로에 달하는 마약을 이 땅에 들이고, 사방 곳곳에 뿌리는 것만큼 쳐죽일 짓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됐어. 그렇다고 내가 널 때릴 순 없잖아.”

“때리려고 했었냐?”

“시끄러. 그리고 네가 나한테 했던 약속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네 손으로 이 나라에 있는 악을 뿌리째 뽑아서 내 앞에 놔 주겠다고.”

이 나라에 있는 악이란 악은 전부 뽑아서 연욱이 앞에 내놓는다.

이것이 내가 가진 원대한 목표 중 하나였다.

허황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텐데, 이 녀석은 내가 꼭 이룰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

“잡담 끝났으면 여기도 좀 해결해 보지?”

정식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몇몇은 태혁의 주먹을 맞아 기절했고…. 나머지는 정신이 멀쩡하긴 했지만, 얼굴 멀쩡한 놈이 없었다.

“이놈들을 어떡해야 한다….”

“어쩌긴. 그냥 보내. 화진파처럼 다 묻어 버릴 것도 아니잖아.”

“일단,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연욱이는 자신에게 반 죽을 듯이 맞은 녀석을 일으켰다. 그리고 예전 버릇대로 앞에 쭈그려 앉은 채 신문(訊問)을 시작했다.

“이름?”

“…뭐?”

“이름!”

반문을 하기 무섭게 연욱이는 상대방 머리를 내려쳤다.

“구… 교대.”

“이게 어디서 말을 짧게 하고 있어.”

연욱이는 또 한 번 상대의 머리를 내려친 다음, 계속해서 물음을 이어 갔다.

“네가 인천연합 회장이야?”

구교대는 수치심과 분노가 섞인 눈빛으로 두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반항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 보이는 흔한 현상이었다.

“예”

“그래? 너 같은 새끼가 회장을 할 정도면 연합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안 봐도 알겠다.”

이번에는 주먹을 꽉 쥐며 연욱이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욱이는 구교대와 이마를 맞댄 다음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 대 치겠다?”

“….”

“치고 싶으면 쳐. 대신, 그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약속하겠는데, 내가 너 두 번 다시 못 걷도록 그 두 다리 다 분질러 버릴 거야.”

저놈이 저러는 건 진짜 오랜만에 보는군.

취조 때도 저렇게 도발적으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은 터라 변호사들에게 클레임을 많이 받긴 했었지. 그만큼 직접 당하는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라는 것이다.

“야…. 연욱이 원래 저랬냐?”

정식이는 내 옆구리를 툭 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태혁이도 저런 연욱이의 모습은 처음 보는지 꽤 놀란 눈치였다.

“저건 반도 안 한 거야. 저놈이 화나면 진짜 무서워.”

“저 새끼도 어지간히 또라이였네.”

“그… 렇지.”

그런가. 저런 걸 두고 또라이라고 하던가.

경찰들 사이에서는 또라이라고 불리기보다는 호랑이 검사라고 불렸는데…. 아니, 잘 생각해보니 또라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협조 잘해라. 그래야 나도 일찍 퇴근하지.”

“에, 예.”

구교대는 완전히 연욱이 페이스에 걸려 버렸다. 이때 기세를 몰아서 밀어붙일 좋은 기회다.

“인천연합, 학교 몇 개야?”

“그….”

구교대가 말을 끌자 참는 기색도 없이 연욱이는 바로 상대 머리를 갈겼다.

“묻는 말에 바로바로 답해. 또 그러면 이번에는 얼굴에 날아간다.”

구교대는 고개를 몇 번이나 위아래로 흔들었다.

“몇 개야?”

“20개입니다.”

연욱이는 슬쩍 내게 시선을 보냈다. 저놈도 생각보다 인천연합에 가입한 학교 수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서 연합에 가입되어 있는 학교 수가 무려 35개다.

“꽤 많네? 연합이 생긴 지 별로 안 되지 않았나?”

“사, 삼 개월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벌써 20개나 모았다고?”

“예….”

연욱이는 결국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자기가 고등학생이란 자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행동이었다. 아직도 지가 검사인 줄 아는 건가?

“오성이냐?”

“…예?”

“얼굴이라고 했지!”

“그, 그게….”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아 오성이 확실하긴 한가 보다.

“그 새끼들 등에 업고 인천 정복하고 다니니까, 기분 좋았냐?”

“….”

“그럼, 솔직하게 말해 봐. 아까 너희들 말하는 거 보니까 우리 경서 연합을 서울에서 밀어내려고 하는 거 같던데. 이것도 오성 아이디어냐?”

구교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우, 우리 경서 연합?”

“아직도 모르고 있었냐? 네가 다 쓸어버리겠다고 자신 있게 소리친 경서 연합이 바로 우리야.”

그제야 이놈도 상황 파악이 되는 거 같다.

지금까지 이놈은 우리가 인천 어느 고등학교에서 나온 놈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그럼 혹시 그쪽이 경서 연합회장 김태산?”

“그쪽?”

“그, 그러니까….”

“나 아니야. 우리 회장님은 저기 있지.”

구교대는 연욱이의 손을 따라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내가 나설 때인가.

“이름이… 구교대라고 했지?”

“아, 예….”

이놈이 자기 똘마니들한테 마약을 던질 때부터 줄곧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너 이 가루, 어디서 갖고 온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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