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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47화 (47/325)

47화. 인천 연합 (1)

황규혁은 거의 매일 아침부터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래도 사장 소리 들으면서 영등포를 관리하는 사람인데, 꾀를 부리지 않는다.

덕분에 나도 아침 일찍부터 황규혁을 볼 수 있었다.

“인천?”

“예. 인천에 줄 좀 닿는 곳이 있으신가요?”

황규혁은 읽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있긴 하지. 그런데 왜?”

“알아볼 게 있는데….”

나는 연욱이에게 들었던 인천 연합에 대해 설명을 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 같다는 내 추측도 빼놓지 않았다.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하네. 네가 연합 만든다고 학교를 하나씩 먹고 있을 땐, 조직에서 항상 지켜보고 있었거든. 근데 인천에서 누가 독불장군처럼 다 밀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역시, 연욱이의 말대로 경서 연합처럼 힘으로 만든 곳이 아니다.

그럼, 정말 인천에 스폰서가 제대로 붙어서 휘어잡고 있다는 건데….

문제는 주동자가 누구냐는 것이고, 스폰서가 어느 학교에 붙었느냐를 먼저 알아봐야 한다.

“이거 확실히 냄새가 나요. 스폰서가 붙지 않는 이상, 인천에서 학교들이 이렇게 잘 모일 수가 없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네가 처음에 날뛰었을 때도 우리 쪽에서는 이놈이 스폰서 잡고 연합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고 엄청 알아봤었지.”

화진파나 다른 조직들도, 단 한 번도 결성되지 않은 대연합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스폰서를 떠올렸던 것이다.

“이게 정말 스폰서 잡고 하는 짓이라면, 널 겨냥한 걸 수도 있어. 아니면 모방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예비 어깨 양성소일 수도 있고….”

황규혁도 판단력이 날카롭다.

“알아봐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우리 동생을 노리는 놈이 있다는데, 가만히 지켜만 볼 순 없지.”

든든한 지원이다.

황규혁이 알아봐 주겠다는 건 인천에 있는 연줄부터 시작해 조직원들도 움직여 준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일단, 여의도에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뭐 알아내면 알려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형님.”

“새삼스럽게 무슨…. 네가 해 준 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황규혁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사무실 밖을 나섰다.

아마 내일이면 대충 견적이 나오려나?

* * *

“대어야.”

“예?”

“인천에 일영 고등학교라고 있는데, 거기에 오성파가 붙었다. 제대로 지원을 해 준 거 같아. 들은 얘기로는 조폭까지 나서서 일영 고등학교랑 라이벌 관계였던 곳을 밀어 버렸다고 하더라.”

미국가기 전까지는 조용히 있으려고 했더니, 역시 가만히 놔두지를 않는구나.

대충 예상은 했지만, 역시 스폰서가 인천에 붙어 있었다. 그것도 화진파와 대립각을 만들고 있는 오성파가.

“이놈들이 갑자기 왜 연합을 만들려고 하는 걸까?”

황규혁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소파에 털썩 앉았다.

“형님이 어제 말씀하셨던 대로… 모방일까요?”

“일리가 있네. 네가 연합으로 영남파도 밀어냈고, 여의도에 있는 찌꺼기들도 처리했잖아. 그거 보고 혹한 걸 수도 있어.”

“고등학생들이긴 하지만 기백 명이 뭉치면 무섭거든요.”

결국, 황규혁은 술 한 병을 따고 말았다. 속이 좀 탔나 보다.

“이 새끼들은 당분간 잠잠히 있나 싶었더니, 언제 이런 걸 벌여 놓은 건지 원….”

“이거 아무래도 우리를 노리고 하는 짓이겠죠?”

“내가 알아보니까, 그 새끼들 서울을 노리고 있는 거 같더라. 너만 연합에서 몰아내면 일이 쉬워질 테니까.”

“저를요?”

젠장. 예상대로인가?

“생각해 봐. 너부터 치워 버리고 서울 연합을 통째로 삼키면, 오성파가 서울에 있는 학교들을 다 장악하는 거야. 인천에 서울까지. 거기서 나오는 인력들로 화진파를 노린다면?”

떼거리로 모여서 덤비면 곳곳에 있는 화진파의 구역들이 무너진다.

오성파 놈들이 꽤 머리를 썼다.

“그러니까 당분간 너, 몸조심해야겠다. 그 새끼들이 작정하고 너 담그러 오면 답이 없어.”

화진파 내부에 있는 간부들의 견제도 심상치 않은데, 이젠 인천에서도 날 잡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중인가.

역시, 사람이 인기가 많으면 피곤한 일이 생기는 법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것도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덕분에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뭐야?”

“…예?”

“네가 그렇게 음흉한 얼굴을 할 때마다 항상 뭔가를 꾸며 놓잖아.”

“아-.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니긴. 말해 봐. 무슨 꿍꿍이야?”

이 양반이 눈치만 늘어가지고….

그래도 숨기기보다는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난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황규혁에게 말했다.

“형님. 반대로 생각을 해 보세요.”

“뭘?”

“우리가 뒤통수 맞기 전에, 먼저 오성파의 뒤통수를 갈기는 겁니다.”

“응?”

“저쪽이 저를 갈아 치우면 서울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제가 인천 연합 꼭대기에 있는 놈을 끌어 내리면 되지 않습니까?”

황규혁은 턱 밑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선수를 치자는 거지?”

“그렇죠. 가만히 맞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음-. 선공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야.”

“이 일은 화진파 도움 없이 제 연합원으로 해결해 보겠습니다.”

“뭐?”

조직폭력배가 나서서 연합을 정리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앞으로 연합 운영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연합에 들어오는 순간, 그건 곧 이미 미래가 정해졌다는 것.

한 번 이쪽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면 쉽게 빠져나갈 수가 없다.

“못 들었냐? 그놈들 스폰서가 오성파라니까? 그놈들이 연장 들고 나서면 애들 다친다.”

“오성파가 못 움직이게 형님이 움직여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황규혁은 아직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제가 인천 쪽 연합을 정리하는 동안, 형님께서는 오성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 주시면 됩니다.”

“그걸 어떻게?”

좀 더 운을 띄워 주어야 하나.

“일영 고등학교 주변을 맡고 있는 간부가 누군지 아십니까?”

“박두기 형님이라고, 이진용 형님 쪽이랑 가깝지. 그쪽 사람이라고 보면 돼.”

젠장. 하필이면 이진용이냐.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 번 고개는 숙여봐야지.

“무리겠지만, 혹시 그분께 부탁을 드릴 수 있을까요? 같이 쇼 한번 벌여 보자고.”

“쇼?”

황규혁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무릎을 ‘탁’치며 내게 말했다.

“설마, 영등포랑 인천에 있는 우리 애들 모아서 쇼를 하자는 거냐?”

이제야 대화가 통한다.

내가 원하는 건 오성파와의 전쟁이 아니다.

긴장 구도를 극대화해, 당장이라도 화진파가 오성파로 쳐들어갈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성파는 고등학생들 따위에게 시선을 돌릴 틈이 없어진다. 그들은 언제 화진이 쳐들어올지 몰라 잔뜩 긴장한 상태로 모여 있을 터.

그때를 노려 내가 인천을 접수하는 게 시나리오였다.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데. 가능할까?”

“굉장히 어렵긴 하지만, 그만큼 굉장히 스릴 넘치는 일이 또 없을 겁니다. 이번에 오성 뒤통수를 제대로 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벌써 신나지 않습니까?”

“젠장. 네 말을 들으면 자꾸 홀라당 넘어간다니까.”

황규혁이라면 내 생각대로 해 줄 거라고 믿었다. 지금까지 오성파에게 이를 갈고 있던 사람이 바로 저 양반이었으니까.

오성파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길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것이다.

“그래. 한번 해 보자. 그 새끼들이 팔짝팔짝 뛰는 걸 내 두 눈으로 봐야겠다.”

황규혁은 벌써 피가 끓는 모양이다. 주먹을 불끈 쥐며 호기롭게 일어섰다.

“지금부터 물밑 작업해. 일단 이진용 형님부터 만나서 쇼부 볼 테니까. 너도 연합 애들 공사칠 준비해. 그리고 애들 몇몇 데리고 인천에 다녀와. 네가 직접 가서 정찰하는 게 낫지 않겠냐?”

맞는 말이다.

적이 누군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무작정 돌진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이것도 하나의 전쟁이다.

전략이 없으면 승리할 수 없는 전쟁.

“예. 애들 모아서 한번 다녀와 보겠습니다.”

“너무 눈에 띄게 다니진 말고.”

“예, 형님.”

보통 인천이라고 하면 ‘마계 도시’라고 불린다. 이런 별칭이 붙은 건, 항만산업단지로써의 기능만이 강조되던 시절 탓에 노동자들이 많았고,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악질들도 많았다.

하지만 2010년도에 들어서는 부정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4년 연속 4대 범죄 발생률 최저를 기록하게 되는 기염을 토한다.

그런데도 사건?사고의 스케일이….

범죄자들이 판을 치고 있는 곳이며, 중국에서 넘어온 칼잡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과연 어떤 놈들이 학교를 점거해서 연합을 꾸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한 번 가서 면상이나 보고 와 볼까?

* * *

“이정도 멤버면 완전히… 어벤져스 아니냐?”

내가 모은 멤버를 본 연욱의 평가였다.

“어벤져스가 뭐야, 형?”

태혁이의 물음에 연욱이는 또 실없이 설명을 하고 앉아있다.

“그런 게 있어. 한 이십 년만 있으면 너도 알게 될….”

“시끄러. 아무튼, 이 정도 데려가면 충분하겠지? 더 많으면 주목받기 딱 좋으니까.”

김태혁, 장연욱, 최정식, 그리고 나.

이 네 명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하나는 미래의 세계 챔피언. 하나는 나처럼 싸움터를 굴러다닌 싸움꾼, 다른 하나는 조직 여러 개를 혼자서 부수고 다닌 칼잡이.

내가 봐도 완벽한 라인이었다.

“인천 먹으러 간다는 게 정말이야?”

정식이는 눈빛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아무래도 연욱이 놈이 말을 부풀린 거 같은데, 설마 이 멤버로 인천을 먹으려고 하겠는가.

“그냥 정찰이야.”

“단순히 정찰만 해?”

“그래. 우리 넷이서 뭘 하려고?”

“우리 넷이 어때서? 학교 하나는 먹고 오겠다.”

단순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자신감이 높다고 해야 할지.

어차피 이놈은 내가 싸워서 꺾은 놈이 아니다. 내가 연합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나와 손을 잡게 됐다.

연합 자체에 흥미를 갖고 뛰어든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놈이랑 잘못 싸워서 엮이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진다.

훗날 최고의 칼잡이가 되는 놈이 아닌가?

“지금은 정찰만 해야 돼. 싸우고 싶어도 좀만 참아. 곧 실컷 싸우게 해 줄 거니까.”

“누가 들으면 내가 싸움에 미친놈인 줄 알겠네.”

“아니었냐?”

“아닌데. 그냥 오랜만에 몸 좀 푸는 건가 해서.”

말은 저렇게 했어도 싸움을 굉장히 좋아하는 놈이다. 그래서 권투부터 특공무술까지 두루 배우고 있긴 한데, 한 번도 스파링에서 태혁이를 꺾어본 적이 없다.

웬만하면 누군가를 칭찬하는 법이 없는 놈인데, 유독 태혁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운동 여부를 떠나, 룰이 없는 뒷세계에서의 싸움이라면 모를까. 전적으로 룰에 따른 스파링에선 태혁이의 기량이 앞선다.

뭐, 그만큼 태혁이가 괴물이라는 거겠지.

“형. 나는 왜 데려가는 거야? 정찰은 또 무슨 말이고?”

“태혁아.”

“응?”

“일 다 끝나면 소고기 사 줄게.”

“얼른 가자. 어디로 가면 돼?”

이로써 이제 안심이다.

솔직히 나랑 태혁이만 가도 상관이 없다.

태혁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안심이 되니까. 그러나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두 명을 더 보탠 것뿐이었다.

* * *

“좀 삭막하다.”

“칙칙해.”

연욱이는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인상을 구겼다. 그건 정식이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울과는 좀 이미지가 다르다 보니 나오는 소리일 것이다.

지금이야 산업단지 이미지와 범죄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 거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진 모습을 보인다.

물론, 마계 도시라는 이미지는 범죄율이 전국 최하위를 기록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일영 고등학교로 가서 누굴 잡아야 하는 건데? 어떤 놈을 족쳐야 하는지 알아야 뭘 할 거 아니야.”

정식이는 벌써 사냥꾼의 날카로운 안광을 번뜩이며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거기에 반해 태혁이는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내 대답에 연욱이가 잔뜩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 누가 거기 연합장인지도 모르고 가는 거였냐?”

“어. 이제 알아보면 되지.”

“어떻게?”

“직접 가서 물어보면 되잖아.”

“뭐?”

황규혁한테도 일영 고등학교의 연합장이 누구인지 듣진 못했다. 분명 오성파 꼭두각시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연합장으로 세울 정도면 나름대로 실력은 있지 않겠는가?

이럴수록 지나가는 학생 붙잡고 추궁을 하기보다는, 직접 학교로 쳐들어가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이틀 전에 일영 고등학교는 개학을 했다고 하니, 딱 좋은 시기에 맞춰 온 것이다.

“진짜야? 아까는 정찰만 한다고 했잖아.”

“이게 정찰이지. 으름장 놓는 건 서비스고.”

이왕 인천까지 왔는데, 단순히 정찰만 하고 가겠는가?

확실하게 상대가 누구인지 얼굴을 봐야겠다. 그리고 절대 내 얼굴을 잊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함부로 경서 연합을 넘볼 수 없게 말이다.

서울에는 나 김태산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줘야 이놈들도 섣불리 우리를 치진 못할 터.

조금 두근거리는 게, 기대가 된다.

물론, 싸울 생각은 없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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