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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46화 (46/325)
  • 46화. 새로운 발걸음 (3)

    “술에도 무게가 있는 법이야. 큰 형님을 봐라. 회의 중에 그분이 위스키라도 따게 되면, 간부들이 얼마나 긴장하는지 아냐?”

    “그렇습니까?”

    “그래. 큰 형님이 위스키를 땄다는 건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뜻이거든. 그땐 간부 중 하나는 죽었다고 봐야 해.”

    권용일이 회의 중에 술을 마시는 건 본적이 없었다.

    시가를 피는 건 몇 번 봤지만, 그 영감님이 차가 아니고 술을 마신 다라….

    “대신, 큰 형님이 술 말고 시가를 피우실 때는 간부들의 얼굴도 편안해져. 그분이 시가를 피운다는 건 그만큼 흥미가 있다는 소리거든.”

    술에도 무게가 있다는 말이 바로 이거였나?

    때에 따라서 리더가 무슨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간부들은 긴장을 하거나 마음을 편하게 먹는다.

    지금 황규혁은 묵시적인 행동이 가져오는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네가 높은 사람이 되면, 이런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네가 어떤 술을 따느냐에 따라서 부하들이 경각심을 갖는 거지. 네가 기분이 좋을 땐 맥캘란을 따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로얄샬루트를 딴다거나…. 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황규혁이 이런 걸 내게 가르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한테 그토록 술을 권했던 건가? 나중에 써먹으라고?

    조직의 리더가 어떤 술을 마시느냐에 따라서 그날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건 꽤 괜찮은 방법이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간부들이 알아서 고개를 숙일 테니까.

    이건 참고할 만한 가르침인 것 같았다.

    “큰 형님처럼 시가를 펴도 괜찮아. 이것도 뭐 너한테 달린 일이지만.”

    시가라-.

    담배는 입에 대지 않지만, 그것도 고려해 봐야 하나.

    “어찌 됐든, 이건 다 네가 나중에 대가리가 커졌을 때 하는 거니까 그때 가서 생각해.”

    “예. 감사합니다.”

    “겨우 이 정도로 뭘. 한 잔 더 할까?”

    난 황규혁이 주는 잔을 거부하지 못했다.

    단순히 예의 때문이 아니라는 건 스스로 부정 못 할 사실이었다.

    그렇게 우린 순식간에 비싼 맥캘란 병을 다 비우고 말았다.

    * * *

    “미국에 가자고?”

    어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젓가락으로 들고 계신 음식은 벌써 잊으신 모양이다.

    “예. 한 이주일 정도 가려고 하는데, 어떠세요?”

    “이, 이주일이나?”

    “예. 제가 일 때문에 가는 건데, 어머니랑 태혁이도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옛날부터 미국 구경은 한번 해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오래전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한다.

    죽기 전에 미국은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고.

    그래서 검사가 되면 돈 좀 모아서 어머니의 꿈을 이뤄드리고 싶었는데, 결국 그러질 못하지 않았던가.

    그때의 한을 이번 생에서는 반드시 풀 것이다.

    “아니다, 태산아. 이 어미가 그냥 해 본 말이지. 무슨 이 팔자에 미국을 가겠다고….”

    기겁을 하시는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아 드렸다.

    “어머니. 괜찮아요. 이제까지 제대로 여행을 가본 적도 없으시잖아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다녀와요, 우리.”

    “아무리 그래도 우리 셋이 가려면 비행기표 값이….”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희… 회사에서 다 지원해 줄 겁니다.”

    “정말이니?”

    “예. 제가 이번에 일을 잘해서 다 지원해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일하러 가는 거잖아요. 당연히 비행기표는 해 주죠.”

    권용일과는 이미 얘기가 끝난 일이다.

    비행기표 세 장, 그것도 퍼스트 클래스로 끊어 준다고 했다.

    물론, 내 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긴 해도 조직에서 지원해 주는 걸 마다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이구. 우리 아들 때문에 이 어미가 호강을 다 하게 생겼네.”

    어머니는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벌써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게 정말 가보고 싶으셨나 보다.

    말씀드리길 잘한 것 같다.

    “그리고… 상의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상의할 게 있다고?”

    “예. 어머니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 서요.”

    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태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 미국으로 어머니와 태혁이를 데려가는 이유는 여행도 있지만, 태혁이의 미래를 위한 것도 있어요.”

    어머니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태혁이는 조금 눈치를 챈 것 같았다.

    “태혁이가 미국으로 가서 정식으로 훈련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태혁이 정도면 충분히 미국 스포츠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태혁이를 미국에 혼자 놔두고 우리끼리 돌아와야 한다는 거니?”

    “…예.”

    막내아들과 생이별을 당하게 생겼으니, 어머니가 선뜻 내 제안을 받아들이실 것 같지 않았다.

    “태혁아.”

    “응, 엄마.”

    “넌 미국에 가고 싶니? 정말 권투로 성공을 해 보고 싶어?”

    “…응.”

    태혁이의 대답에 어머니는 눈에 힘을 주고 다시 물었다.

    “그럼, 엄마 말에 잘 대답해 봐. 미국에 가서 권투를 배우면, 진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도 바보는 아니야.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성공하면 좋은 일이지, 하지만 네가 그 나라 사람도 아니고 이방인인데, 그 사람들이 정말 널 받아줄 거 같니?”

    긍정과 부정을 섞으시며 꽤 강하게 나가신다. 설마, 태혁이의 의지를 저렇게 꺾어 버리시려는 건가.

    그런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이 일어나는 건 비일비재하지 않던가.

    지금은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는다.

    “괜찮아. 내가 실력으로 다 고개 숙이게 할 거야.”

    순간,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강렬한 확신이 차 있는 저 눈빛.

    대단한 자신감이다. 저번에는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모습을 보여서 좀 걱정을 했는데….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붙었다고 볼 수 있다.

    남들보다 훨씬 강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걱정되지만, 막내의 뜻이 그렇다면야….”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씀하셨다.

    “태혁이가 원하는 대로 해 주자. 한평생 해준 것도 없이 키웠는데, 스스로 가는 앞길마저 막을 수는 없지 않겠니.”

    “이놈은 충분히 잘해 낼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맞아, 엄마. 내가 전부 다 쓰러뜨리고 올게.”

    태혁이의 말에 어머니는 서글픈 눈동자를 지으셨다. 겉으로는 시원하게 허락을 하신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얼마나 걱정을 하시겠는가?

    그것도 막내아들이 타지로 나가서 혼자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마라. 괜히 다쳐서 오면 안 된다. 알겠지?”

    “응.”

    태혁이는 해맑게 웃으며 음식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

    저럴 때는 참 나이에 걸맞은 모습인데, 한 번 링 위에 올라가거나 싸움이 시작되면 180도 달라진다.

    그런 달라진 모습이 익숙해지긴 했어도, 막상 눈앞에서 보면 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만약 이놈이 정말 진지하게 조직에 발을 들였다면, 난 이놈 하나만 믿고 다른 조직들을 다 부수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맛있냐?”

    “어. 엄청 맛있어.”

    “그래. 많이 먹어.”

    난 태혁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 녀석은 반드시 세계를 놀라게 할 선수가 될 것이다.

    * * *

    “결국, 가는 거냐.”

    “응. 너무 오래 끌긴 했잖아.”

    연욱이는 불퉁거리며 책을 덮었다.

    “젠장. 누구는 책에 파묻혀서 살고 있는데….”

    “흐흐. 너도 나중에 실컷 데려가 줄 테니까, 지금은 도 닦고 있어라.”

    “끙. 지랄하지 말고, 올 때 그거나 꼭 잊지 말고 사와.”

    잠깐 잊고 있었다.

    이 자식. 나한테 몇만 달러를 갈취하려 했지?

    “새끼. 취향이 하필이면 그런 비싼 쪽이냐.”

    “야. 곧 있으면 기백 억을 만질 새끼가 할 말이냐?”

    “그거야 뭐…. 가 봐야 아는 거고.”

    “어디서 밑장 빼기야? 너 옛날에 그 바쁜 와중에도 권투 경기는 다 챙겨 봤었잖아. 네가 모르는 경기가 어디 있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권투 경기를 보는 걸 좋아해, 라디오나 TV에서 해 주는 경기는 빼 먹지 않고 봤으니까. 더군다나 해외 권투 경기 소식도 매일 신문으로 확인을 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인터넷을 통해 경기를 찾아 시청했다. 하지만 권투 선수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태혁이를 보고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저런 괴물 같은 녀석이 있는데, 나 같은 놈이 무슨 권투를 하냐는 생각 때문이리라.

    “그런데… 왜 천성에서 너한테 연락이 없는 거냐?”

    그게 좀 이상한 일이긴 하다.

    대룡파 일을 해결해 줬으면서 막상 천성에서는 나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놈들, 네 아이디어만 쏙 뺀 건가?”

    만약 그렇다면 다행이다.

    귀찮은 일이 하나 줄어든 거니까.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상황을 보면 납득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랑 선뜻 손을 잡으려고 하진 않겠지. 투자를 할 만한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일본이랑은 외교도 그렇지만, 비즈니스로도 교류가 많진 않아서 몇 달 걸릴 거야.”

    현재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당연히 수익 모델로는 점수가 낮다는 것.

    아무리 천성이라는 대기업이 손을 뻗는다고 해도, 일본 입장에서는 안중에 없는 기업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들과 딜을 하려면 천성에서 꽤 고생을 해야 할 터.

    적어도 몇 달은 걸릴 일이다.

    그것 때문이라도 천성은 아직 내게 연락을 취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뭐, 정말로 내 생각만 쏙 빼 간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언제 가려고?”

    “그 영감이 한 달 안에는 가라고 하던데.”

    “늦어도 9월 안에는 가겠네?”

    “그렇지.”

    “학교는 어쩌려고?”

    곧 있으면 개학이다.

    학교를 빼놓고 가야 한다는 건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이미 권용일과 이야기를 마친 상태였다.

    “권용일이 의외로 경서 고등학교 교장이랑 친분이 있더라고. 알아서 잘 해결해 주겠다고 했어.”

    “어이구. 그 영감님, 아주 할 건 다 해 주네.”

    “흐흐. 비행기표도 퍼스트로 받아왔다.”

    “퍼스트? 미친놈. 아주 호강을 하네, 호강을.”

    나와 연욱이는 비즈니스 이상을 타 본적이 없다. 그런데 내 팔자에 퍼스트라고 하니, 저 녀석은 부럽다며 짧게 신음을 뱉었다.

    “나중에 나도 퍼스트 티켓 하나 줘라. 경험이라도 해 보자.”

    “너 합격하면 한 번 보내 줄게.”

    “야. 합격하는 순간부터 내 시간이란 게 사라진다는 거 모르냐?”

    틀린 말은 아니다.

    사법시험 합격이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합격한 다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그 지옥 같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 고생했던 생각을 하면 아직도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런 곳에 내가 다시 연욱이를 집어넣으려는 것이니, 나도 참 모진 놈이다.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하도 싸돌아다녀서 말을 못 했는데….”

    “뭘?”

    “인천 쪽에서 자꾸 잡음이 생기는 것 같다.”

    “무슨 잡음?”

    “아무래도 조만간 인천에서 거대 연합이 생길 것 같다.”

    뜬금없이 인천이라니.

    그곳에 왜 갑자기 거대 연합이 생긴단 말인가?

    “연합이라면 우리 같은?”

    “그렇지. 그런데 너무 갑작스러워. 가만히 있던 놈들이 서로 손잡고 모였단 말이지. 우리처럼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 버린 것도 아니야.”

    나와 연욱이가 경서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서울 전역에 영향력을 뻗쳤을 땐, 진짜 저 말대로 무식하게 밀어붙였다.

    그것 말고는 빠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울은 통합하기가 어려운 곳이었기에, 누구도 연합 창립의 시도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와 연욱이가 그 어려운 것을 해내지 않았는가?

    덕분에 나는 유명세를 타서 화진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

    “그런데 인천이?”

    서울보다 혼잡도는 낮겠지만, 세상은 넓고 대한민국도 그리 작은 땅은 아니다.

    워낙 위아래에 무식하게 덩치만 큰 녀석들이 있어서 그렇지, 코딱지만 하다고 욕먹을 곳은 아니라는 것.

    “나도 자세한 건 잘 모르겠다. 알아보고 있긴 한데, 인천이다 보니 손닿는 곳이 없네.”

    인천이라-.

    그것도 우리와 똑같이 연합을 만들었다?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90년도였지? 인천 연합이라는 게 처음 생기는 거.”

    “기억하는구나.”

    90년도에 창설된 인천연합은 고등학생들이 만든 범죄조직으로 조직폭력배까지 쓸어버리는 무서움을 보였다.

    인천연합에 속한 고등학생들이 폭력, 협박, 살인 등을 저질러 사회적으로도 매우 문제가 되었는데, 워낙 문제가 심각해지자 대통령이 직접 명령을 내려 경찰들이 인천연합을 강제로 해체했다.

    아무리 거대한 연합이라도 공권력이 투입되면 해체되는 건 순식간.

    그래서 나도 연합을 움직일 때 매우 조심스러웠다.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공권력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고등학생들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 형이 알아봐 줄까?”

    연욱이는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네가? 어떻게?”

    이놈은 가끔 날 너무 무시한다.

    “우리 조직원들 쓰면 되지. 연합은 한계가 있잖아.”

    그제야 이놈이 손뼉을 크게 쳤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인천에도 화진파가 있을 거 아니야.”

    “그래. 거기에 있는 애들한테 알아보라고 해 보게.”

    “출세했네, 새끼. 근데… 너도 느꼈지? 이거 냄새가 난다는 거.”

    연욱이도 감이 좋은 녀석이다. 이게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이것들이 아직 우리한테 위협을 가한 적은 없지?”

    “그렇긴 한데, 초기 단계잖아. 언제 그것들이 발톱을 드러낼지 모르지.”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90년도에 만들어져야 할 연합이 5년이나 앞당겨져서 창설이 됐다. 그것도 누군가가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인 게 아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

    제대로 된 스폰서 하나가 붙지 않는 이상, 이 정도로 순탄하게 연합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어떤 새끼일까?”

    “모르지. 네 사방에 적이 워낙 많아서, 다 나열하기도 귀찮다.”

    연욱이의 말이 맞다. 지금 내 주변에 널린 게 적이다.

    이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곳에 짓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묘하게 촉이 온다.

    이건 마치 나와 내 연합을 노린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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