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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44화 (44/325)

44화. 새로운 발걸음 (1)

성일환의 명동 사무실.

이 양반의 사무실에 오는 건 처음이다.

구조는 황규혁의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번쩍거리는 나이트에 자리를 잡은 게 아닌 터라 시끌벅적하지도 않다. 오히려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고 해야 할까.

이 사람은 이렇게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건가?

“그런데… 총기는 안 쓰시는 게 좋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명동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민감한 얘기부터 꺼냈다.

성일환은 피 묻은 옷을 벗고 있는 와중에 봉변을 맞았다. 내 잔소리가 시작되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응? 하하. 뭐, 어때. 충분히 멋있어 보이지 않았냐? 그거면 됐지.”

이 양반이 지금 그걸 말이라고….

“괜찮아. 한 번쯤은 써 줘야 가오가 사는 거야.”

내 따가운 눈빛을 읽었는지 성일환은 머리를 긁적이며 얼버무리려고 했다.

“큰 형님께서도 허락하신 겁니까?”

“응…?”

성일환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군.

내가 아는 권용일이라면 총기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알고 있는데도 성일환은 총을 쓴 것이었다.

“다행히 그때 지나가는 순찰차가 없어서 망정이지, 경찰들이 총성을 들었다면 꽤 큰일로 번졌을 겁니다.”

“야야. 설마, 그것들이 짭새들 신경도 쓰지 않고 싸웠겠냐? 미리 다 약을 쳐 놨으니까, 나도 맘 놓고 쓴 거지.”

조폭들도 바보는 아니다.

무식하게 서로 돌진해서 싸우는 놈들이 있는 반면, 조심성을 기울이는 놈들도 있다.

한마디로 미리 경찰에게 돈을 뿌려 자신들이 싸움을 벌이는 장소에 나타나지 못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포항이 아닌가?

그리고 군부의 신경이 온통 북한에 쏠려 있는 상태에서 경찰들도 주는 돈을 꿀꺽 삼키고 모른 척했을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대룡파가 군부의 손에 찢긴 것처럼 화진파도 박살이 났을 터.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성일환은 그걸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총기 사용에 굉장히 민감하지 않습니까? 미국처럼 경찰 투입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새끼…. 일 잘 끝내고 와서 잔소리는.”

“제 말씀은 그런 게 아니라….”

“나도 알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해.”

끙. 여기까지 했으면 알아들었으려나.

괜히 이런 일로 성일환의 심기를 건드려 부딪치고 싶진 않다. 그리고 성일환도 고작 이런 거로 화를 낼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기에 나도 스스럼없이 조언해 주는 것이지 않은가?

“이거나 마셔.”

성일환은 음료수 하나를 내 앞에 놓았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형님께서 더 고생이 많으셨죠.”

“아냐. 오늘 너 아니었으면 나도 크게 다쳤을 거야.”

아까 전의 일을 말하는 건가.

확실히 성일환이 너무 무대포로 달려들긴 했다. 그걸 커버치느라 나도 오랜만에 날뛴 것이고.

“젠장. 나이가 드니까, 그 좀만 한 새끼들 상대하는 것도 점점 힘들어져. 그래서 나도 모르게 총을 꺼낸 것 같다.”

은근슬쩍 핑계를 댄다.

저것도 변명이라고….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저 나이에 아직도 저렇게 몸을 쓸 정도면, 젊었을 땐 얼마나 날아다녔을지 대충 상상이 간다.

“아무튼, 결론을 말하자면….”

성일환은 진중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설마 의리 없이 이번 일을 큰 형님께 일러바치는 건 아니겠지?”

역시, 권용일이 신경 쓰이긴 했나 보다. 그 영감이 한번 호통이라도 치는 날에는 꼼짝없이 반나절을 붙들려 있어야 하니까.

“형님께서 대룡파 일이 끝나면 큰 형님한테 직접 보고하라고 저한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성일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 그랬지.”

“그럼, 있는 그대로 보고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야. 좀 봐 줘라. 짜식, 의외로 노땅기질이 있네.”

“흐흐. 원하는 게 있으면, 상대가 원하는 걸 줘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성일환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내게 몸을 기울였다.

“새끼. 세게 나오네. 좋아, 말해 봐. 원하는 게 뭔데?”

“별거 없습니다.”

음흉한 내 미소를 읽은 성일환이 안색을 굳혔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무섭다. 뭘 원하는 거야?”

난 능청스러운 얼굴로 성일환에게 물었다.

“형님, 혹시 총기 수집하는 거 좋아하십니까?”

“총?”

“예. 아까 그 간부 다섯을 골로 보낸 것도 콜트 리볼버였잖아요.”

마음에 드는 주제가 나왔는지, 성일환의 안색이 풀렸다.

“콜트 트루퍼. 저번 달에 내가 어렵게 공수해서 가져온 거지, 흐흐.”

“다른 총도 가지고 있으시다는 거죠?”

“그래. 한 일곱 개 정도 있어. 내년에 하나 더 구해 오려고.”

싱글벙글한 얼굴을 보니, 총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게 총을 좋아하는 건가?

그럼, 내 부탁이 꽤 뼈아플 것이다.

“그중에서 하나만 저 주시면 안 될까요?”

순간, 성일환의 얼굴에 ‘빠직’ 금이 갔다. 자식새끼처럼 애지중지하던 총을 하나 달라는 말에 저 양반은 손까지 떨고 있었다.

“안 돼!”

“제가 오늘 형님 다치지 않게 몸도 막 던지고 그랬는데….”

“그래도 안 돼!”

“큰 형님이 오늘 총 쓴 거 아시면 가지고 계신 총들, 다 압수당할지도 모릅니다.”

“그, 그건….”

궁지에 몰린 성일환은 푸념하듯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이래서 음흉한 놈이 싫다니까.”

그는 자세를 고쳐 잡고 몸을 소파에 기댔다.

“이유가 뭐냐? 갑자기 총이라니. 그것도 태산이 네가?”

성일환이 저렇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할 때면 조금 무섭다.

더는 장난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나도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대룡파 일도 끝났으니, 슬슬 미국으로 넘어갈까 합니다.”

“미국?”

“예.”

내 말을 금방 알아들은 성일환이 힐끗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양키 놈들은 좀 생각 없이 총을 많이 쓰긴 하지. 그것 때문에 그런 거냐?”

우리나라 조폭들도 총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 봐야 칼이나 손도끼를 더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미국 갱스터들은 차원이 다르지 않던가?

그들은 중화기를 몸에 걸치고 다니면서 구역을 정리한다.

때에 따라서는 경찰들한테도 총알을 퍼붓는 그들이, 나 같은 동양인 깡패에게 방아쇠 당기는 걸 망설이겠는가?

“미국에서 총기를 구할 순 있겠지만, 미리 길들여 놓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전문가가 옆에 있는데 말입니다.”

성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내 어깨를 세게 쳤다.

“인마. 그런 거였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근데 내가 가지고 있는 총으로 양키 놈들이랑 뜨는 건 좀 어려워.”

“그렇습니까?”

“리볼버잖아. 총알 갈아 끼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미국 갱스터와 싸우기에는 리볼버가 실용성이 없다는 건가.

“그렇다고 큰놈을 휴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휴대용이라면 그렇지, 네가 군인도 아니고…. 하지만 대놓고 싸울 땐 그놈만 한 게 없지.”

라이플 종류는 휴대가 어렵다, 설사 미군이라도 총기를 대놓고 들고 다닐 수는 없을 텐데….

미국 경찰도 바보가 아닌 이상, ATF나 FBI까지 수사에 착수하겠지….

언제 서로 총격전을 벌일지 모르는 곳이 미국이긴 하지만, 멍청하게 그런 걸 들고 다닐 순 없는 노릇.

“근데 이번에 진짜 좋은 게 하나 나왔다. 나도 최근에 알게 된 건데, 이게 진짜 물건이더라.”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글록이라는 회사가 있어. 거기서 만든 글록 18이라는 총인데, 그놈 제원을 보니까 장난 아니더라.”

글록!

내가 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글록이란 회사는 잘 알고 있다.

아니, 밀리터리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 여자도 글록이라는 이름은 들어 봤을 거다.

대부분의 액션 영화에서 등장하는 총기 중 하나가 바로 글록.

그만큼 성능도 좋고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영화 다이하드가 글록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긴 했다.

더군다나 2007년에 미국과 한국을 충격에 빠뜨린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도 단 두 정의 글록으로 일어난 학살이다.

만일 글록이 아니라 다른 총기였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이 죽진 않았을 거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완전 자동모델로, 연사가 가능하단 말이지. 상용화 모델이 아니라서 구하기 힘들었는데, 운 좋게 구했다.”

성일환은 신이 났는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아직 글록이 유명해지지 않았을 뿐이지, 금방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건 시간문제일 거다. 그 전에 너도 하나 구해 놓자. 이놈 성능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으니까.”

“형님께서 구해 주시는 겁니까?”

“흐흐. 우리 막내가 미국 가서 향 피우면 안 되잖아. 이 형님이 그까짓 거, 하나 구해 주지 뭐.”

글록이라면 충분히 실용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거기다가 글록은 미국에서 이제 막 날개를 피고 있는 시점이다.

갱스터들이 쓰는 무기보다 성능이 좋다는 것인데, 이 정도면 내 한 몸 간수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럼, 전 입 꾹 다물고 있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입만 뻥긋해 봐. 그땐 내가 가지고 있는 총들로 한 발씩 구멍 내 줄 테니까.”

분명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왠지 정말 그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입 다물고 있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부수입으로 총까지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번에는 그냥 조용히 있자.

* * *

“야 이놈아! 내가 총은 쓰지 말라고 했지!”

“그, 그게 아니고요, 형님.”

“아니긴 뭐가 아니야! 총 남발하다가 나라님들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그 총알이 우리한테 날아오는 거야, 이놈아!”

역시, 내가 입 다물었다고 해서 숨겨질 일이 아니었다.

권용일이 바보도 아니고, 이번 전투에 참가한 조직원 중에 연락책을 껴놓지 않았겠는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이 그날 있었던 일을 권용일에게 전부 일러바쳤을 터.

“넌 이놈이 총 꺼냈을 때 말렸어야지. 뭐 하고 있었어?”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나 불똥이 내게 튀었다.

“그게….”

뭔가 변명을 해 보려고 했지만, 이글거리는 권용일의 눈빛을 보니 그냥 꼬리를 내리고 있는 게 정답인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권용일은 짧게 혀를 차며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대룡파 놈들을 잘 흡수했다기에 칭찬이라도 해 주려고 했더니, 잔소리를 하게 만들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

“알았으면 똑바로 처신해! 오늘은 대룡파 일이랑 이놈 얼굴 봐서 참는 거다. 넌 태산이한테 매일 넙죽 절하고 살아도 모자라, 인마.”

성일환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날 포항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나가봐. 이놈이랑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예, 형님.”

성일환은 엄연히 권용일의 오른팔이다. 그렇기에 권용일이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 옆에서 듣고 있어도 별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권용일은 나와 대화를 나눌 땐 아무도 집무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처음에는 성일환도 조금 서운한 눈치를 보였지만,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권용일과 독대하는 ‘존재’라는 걸 인식한 것이었다.

“목마르지?”

성일환이 나가자 거칠던 목소리가 한껏 부드러워졌다.

그는 옆에 있던 도자기 잔을 가리키며 물었다.

“차나 한잔 주랴?”

권용일이 주는 차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이 영감이 날 중독자로 만들었다.

“좀 놀랬더냐?”

내 앞에 잔을 놓고 차를 따라주던 권용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주억거렸다.

“…예?”

“성일환이가 네 눈앞에서 죄다 죽였다던데.”

아. 그러고 보니 화진파에 들어온 이후, 누가 죽는 걸 직접 본 적이 없던가?

황규혁이 여의도를 쓸어 버렸을 때 손도끼로 몇 놈을 난도질하긴 했지만, 거기서 바로 목숨을 끊어 놓은 건 아니었다.

그에 반해 성일환은 즉결 처분을 하지 않았던가.

“괜찮습니다.”

“정말이냐? 아무리 심지가 강한 놈이라도 그런 걸 보면 처음에는 좀 힘들어하긴 해.”

외상 후 스트레스, 즉 PTSD.

전쟁터에 나가서 사람이 떼거리로 죽는 걸 보면 전투에 참가한 98%의 사람에게 PTSD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정신질환이다.

설마, 이 영감이 지금 그걸 걱정하는 건가?

경험적으로는 이 영감도 그런 게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서로 칼부림을 벌이면서 상대방 뒤통수에 쇠파이프를 내려치는 게 정상적인 건 아니니까.

“정말로 괜찮습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이었다.

그것보다 더한 것도 보면서 깡패 새끼들을 내 손으로 잡고 다니지 않았던가.

“하긴. 네가 그런 거로 시달릴 놈이 아니지.”

권용일은 그럴 줄 알았다며 찻잔을 호록 들이켰다.

“이제 슬슬 가야지?”

“미국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말하는 거 보니, 준비는 했나 보지?”

“예. 비행기 표 나오는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설마 이코노미석으로 태우실 건….”

그는 내 머리를 살짝 쥐어박으며 말했다.

“나이도 어린놈이 벌써 비싼 것만 찾아요.”

“그래도 장거리 여행인데….”

“나도 알아 이놈아. 네가 소고기에 환장할 때부터 비싼 거 좋아하는 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잊을 만하면 또 소고기 타령이다.

도대체 어떤 놈이 그런 헛소문을 퍼뜨린 거야?

“너도 준비가 된 거 같고, 이제 나도 소개를 해 줘야겠구나.”

“소개요?”

“그래. 네놈 혼자 보내면 내가 불안해서 안 되겠다.”

권용일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 그래. 나다. 올라와.”

저번에 나한테 붙여 주겠다던 사람을 부르는 건가.

내심 기대가 되었다.

과연 이 영감이 내 옆에 누구를 붙여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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