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원한은 없다. (3)
“서, 성 사장. 지금 뭐, 뭐 하는 거야?”
당황한 박세훈이 성일환을 말려 보기도 전에, 다섯 번의 총성이 터져 나왔다.
총알들은 빠르게 박세훈의 양옆으로 지나갔다.
어떤 이는 머리 정중앙에, 또 어떤 이는 가슴팍에.
다섯 발의 총알이 다섯 명의 대룡파 간부들을 순식간에 관통했다.
총소리만 들어도 사람 몸이 굳어진다. 마치 천둥번개가 눈앞에서 번쩍이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모두 바닥에 쓰러지는 간부들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나도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성일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건….
“왜 그래, 박 사장?”
“이, 이게 지, 지금….”
너무나도 태연한 성일환의 표정에 박세훈은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 나도 이 상황이 황당할 진데, 박세훈은 어떻겠는가?
성일환은 짧게 혀를 차며 박세훈에게 말했다.
“우리가 원한 건 박 사장, 당신 하나였어. 다른 놈들은 그냥 소모품에 불과해. 이 바닥이 다 그렇고 그렇다는 거 알잖아?”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는 박세훈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는 조심스레 성일환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나?”
“나야 뭐, 다 끌고 가려고 했었지.”
“그렇다면….”
성일환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우리 오야지께서는 그렇지 않으시거든.”
성일환의 오야지.
이게 누굴 말하는 것이겠는가?
“권용일… 형님이?”
“그렇지. 우리 오야지 명령이라면 나는 뭐든 하는 놈이니까.
이건 전적으로 권용일의 뜻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명령을 일체 흔들림 없이 지키는 게 바로 성일환의 할 일이었다.
박세훈은 한 층 더 긴장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나는?”
성일환은 왜 당연한 걸 묻고 있느냐는 듯, 총구에서 연기가 나고 있는 트루퍼를 아래로 내렸다.
“박 사장은 이제 우리 식구잖아. 뭘 그리 걱정해?”
박세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살았다는 안도감에 젖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역시, 그랬던 건가.
처음부터 성일환은, 아니 권용일은 박세훈만 데려올 생각이었던 것이다.
핵심이 되는 간부 하나만을 남겨두고 다른 놈들은 전부 폐기한다.
이것이 화진파가 조직을 점령하는 방법이라고 해야 하나.
“크흑-. 개, 개새끼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간부 하나가 쓰러진 채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 볼 참인지, 우물쭈물하고 있는 조직원들에게 소리를 치려 했다.
“어허. 여기서 산통을 깨면 안 되지, 이 친구야.”
“이 더러운 새끼….”
성일환은 그런 그의 얼굴을 가뿐히 지르밟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처신을 잘했어야지.”
콰직-!
사람 목숨을 마치 벌레처럼 여기듯, 성일환은 망설임 없이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그동안 내가 너무 성일환의 겉모습만 보고 살았던 건가.
그의 진면목을 보게 되니,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멍청한 새끼들. 이렇게 될 거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송진운은 입술을 깨물며 치를 떨고 있었다. 고개 숙인 그의 모습에서 원통함이 전해진다.
배신을 당해도 저렇게 한심한 놈들에게 당했다는 분노가 더 클 것이다.
그런 송진운의 화를 돋우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성일환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댔다.
“송 사장도 해 먹을 건 다 해 먹었잖아. 대룡파가 고꾸라졌을 때 그냥 조용히 이재훈처럼 다른 곳으로 날지 그랬어.”
그러나 송진운은 성일환과 놀아 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어 보였다.
“입 닥치고 할 일이나 해. 어차피 내 모가지 비틀려고 온 거잖아. 더 욕보이지 말고 깨끗하게 죽여라.”
“하하. 무슨 붙잡힌 장군도 아니고. 뭘 그렇게 무게를 잡는지….”
성일환은 송진운 뒤에 있던 조직원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조직원 두 명이 송진운 뒤통수에 파이프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더는 꿈틀거리지 못하도록, 일말의 숨결도 내뱉지 못하게 만든 끔찍한 처형이었다.
송진운의 머리가 완전히 으깨지자, 그제야 조직원들도 처형식을 멈췄다.
이게 송진운이 원하던 깨끗한 죽음이려나.
“박 사장.”
성일환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박세훈을 불렀다. 이따금 몸을 움찔거리며 송진운의 처형식을 관전하던 박세훈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으응?”
“아니, 이 사람. 뭘 그렇게 놀라고 있어? 이런 거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면서.”
“그… 렇지.”
박세훈은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온 성일환의 손에 온몸을 쭈뼛쭈뼛 세웠다.
“저 똘마니들은 알아서 잘 수습해 줄 수 있지? 대룡파를 정리하려면 인력이 많이 필요하잖아.”
죽은 간부들이 끌고 왔던 조직원들을 모두 화진파에 흡수시키라는 뜻이었다.
박세훈은 바보가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성일환의 손에 간부 다섯과 송진운까지 죽었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인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조직원들을 전부 모아, 성일환과 제대로 한판 벌인다고 해도…. 승산이 없다는 걸 박세훈도 알고 있을 터.
이재훈과의 싸움으로 지칠 대로 지친 조직원들을 데리고, 아직 쌩쌩한 화진파와 싸울 수는 없다.
그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내가 알아서 처리함세.”
“하하. 박 사장은 말귀를 잘 알아먹어서 참 좋아.”
성일환은 이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송진운과 더불어 대룡파에 주축이 된 간부들이 전부 죽었으니, 이제 남은 건 한 명.
바로 이 모든 일의 단초를 제공한 이재훈이었다.
“시발…. 이런 병신 같은 새끼들. 붙을 게 없어서 하필이면 화진파에….”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는 이재훈 앞에 성일환이 쭈그려 앉았다. 그는 비웃음 섞인 어투로 이재훈의 뺨을 살짝 쳤다.
“지금 누굴 욕하는 거야? 그쪽이 우리한테 치고 들어올 빌미를 제공했잖아. 그러니까 누가 짭새 새끼들이랑 공사 치라고 했어?”
“그, 그걸 어떻게….”
구린 짓을 들켰다는 걸 안 이재훈의 얼굴이 샛노랗게 변해 갔다. 왜 이 모든 사단이 일어났는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어떻게 알긴? 우리 귀여운 막내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라서 말이야.”
갑자기 성일환인 나를 가리키자, 이재훈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어린놈이?”
“말조심해, 이 양반아. 나이는 고등학생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사장 직함 달고 있는 녀석이야.”
이재훈은 이를 물며 악에 뻗친 목소리를 냈다.
“이 새끼가 지금 누굴 놀려 먹는 거야! 뭐, 고등학생? 핏덩이 새끼가 내 계획을 눈치챘다고? 내가 저것들처럼 병신인 줄 알아!”
성일환은 피식 웃으며 내게 농담 어조로 말했다.
“태산아. 이 새끼가 안 믿는데 어떡하냐?”
그걸 말이라고….
저놈이 믿든 안 믿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저런 놈한테 가만히 욕만 듣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좀 티 나지 않게 움직이지 그러셨습니까? 사방에다 나 짭새랑 한패라며 소문내는 것도 아니고. 조심해서 움직였으면 저도 몰랐을 겁니다.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사세요. 아, 이제 그럴 기회도 없으려나.”
“이… 이 개 같은 호로 잡놈의 새끼가 감히!”
이재훈은 발악하며 쌍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화가 나긴 했나 보다. 저렇게 악바리를 쓸 정도면.
짜악-!
하지만 이재훈은 금방 입을 다물어야 했다. 성일환의 손바닥이 이재훈의 양쪽 뺨을 거침없이 휘갈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감히 누구한테….”
짜악-!
“욕을 퍼붓고 있는 거야, 응?”
짜악-!!
“벌레보다 못한 새끼가, 누가 누구한테… 어!”
처음에는 이재훈의 뺨을 내려치던 손바닥이 주먹으로 바뀌었다.
주먹이 턱을 관통할 때마다 여러 개의 이빨이 부산물로 딸려 나갔다.
저 양반, 주먹도 만만치 않게 세구나.
“됐다. 너 같은 새끼한테 내 아까운 주먹 날려서 뭐하겠냐?”
성일환은 주먹에 묻은 피를 털고 일어나 조직원들에게 고갯짓을 보냈다.
“이 새끼 끌고 가서 도축하는 애들한테 넘겨.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다 자르라고 해. 살갗도 다 벗겨놓고.”
“예, 형님!”
살벌한 명령이었다.
도축하는 애들이 무슨 뜻이겠는가?
전문적으로 가축을 도려내고, 필요한 건 전부다 빼 가는 도축업자들을 뜻하는 것이다.
국내에 유명한 도축시장이 있다.
도축업자들이 즐비해 있는 곳인데, 이들은 살점이 붙어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받는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장기매매가 판을 치게 되면서 도축시장은 단순히 가축만 파는 것이 아닌, 사람의 장기를 취급하는 녀석들도 나오기 시작한다.
지금은 그 정도로 의학이 발달한 게 아니라서 장기매매까지 발달되진 않았지만, 이처럼 누군가의 의뢰에 따라 붙잡혀 온 사람에게 고문이란 고문은 전부 행하게 된다.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전부 자르라고 하는 성일환의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보다 더 끔찍한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곳이니까.
단순히 성일환이 칼침이나 맞으라고 이재훈을 도축업자에게 보내겠는가?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라고 보내는 것이다.
“이, 이거 놔! 이 개새끼들아!”
차라리 송진운처럼 깨끗하게 파이프로 내려쳐 죽이는 건 몰라도, 마취제 하나 없이 사람 하나를 칼로 구석구석 분해하는 놈들에게 던져준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형벌을 내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까 저 이재훈이 오줌까지 지리며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자기도 그쪽 놈들이 얼마나 악랄한지 잘 알고 있으니까.
“서, 성 사장! 내가 잘못했어! 제, 제발 그놈들한테만은 보내지 말아 줘! 차라리 나도 송진운 저 새끼처럼 죽여 달라고!”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다.
“병신. 야, 저 새끼 입에 양말이라도 물려. 혀 깨물지 않게.”
성일환은 비명을 지르며 애걸하는 이재훈을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했다.
“대충 다 정리된 거 같지?”
“응? 아, 그렇지. 대충은 된 거 같네.”
성일환은 굳어 있는 박세훈의 팔을 몇 번 두드리고는 몸을 돌렸다. 할 일은 다 했다는 듯이.
“우리도 집에 가자. 모두 철수해!”
“예, 형님!”
야수의 성일환은 사라지고, 가면을 쓴 성일환으로 돌아왔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직원들은 부상당한 사람들을 둘러업고 창고 밖을 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멍하니 서 있는 박세훈을 놔두고 성일환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성일환은.
“뭘 그렇게 보냐?”
“예?”
“날 아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던데?”
“아닙니다. 안 봤습니다.”
“안 보기는. 그렇게 보다가는 눈 빠지겠다.”
그냥 잠깐 쳐다본 것뿐인데, 그걸 또 눈치를 챘나.
“태산아.”
성일환은 갑자기 목소리에 무게를 잡으며 내 어깨를 잡았다.
“난 깡패야. 쌈박질하고 필요하면 사람 죽이는 걸 업으로 삼는 놈이라는 거지. 내가 웃는 면상만 보인다고 해서 그걸 잊으면 안 된다.”
자신은 인간의 탈을 쓴 야수라는 걸 스스로 밝힌 것이었다.
저 말이 맞다.
황규혁도 그 얼굴로 손도끼를 들고 살벌하게 싸우지 않았던가?
성일환과 황규혁, 이 두 사람은 결국 조폭이다.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일에 망설임을 품지 않는 조폭. 그것이 저들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너도 무르게 살면 안 돼. 한 번 이쪽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봐 주는 건 있을 수 없어. 찌를 수 있을 때 네가 먼저 찔러야 하는 거야.”
나도 자기들처럼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침을 주는 것일까.
그 누구의 목숨이건, 내 앞길을 막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심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세계의 법칙이지 않은가?
“솔직히 저것들한테 원한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죽어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까 서로 죽이는 거야.”
저 말도 맞다.
원한은 없다.
그저 살기 위해 서로를 죽일 뿐.
이것이 바로 내가 발을 담근 조폭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