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삼대 조직 (1)
“그럼, 이제 해외로 나가는 거야?”
“그렇게 됐어. 차라리 잘됐지. 그렇지 않아도 나갈 건덕지를 찾고 있었는데.”
“그러게. 그런데 그 해외 업무라는 게 뭐야? 약팔이냐?”
약팔이라는 말은 검사들 사이에서 쓰던 말이었다. 흔히 마약상들을 약장수라고 부르고, 마약 거래는 약팔이라고 불렀다.
“주된 업무는 그거지.”
“걸리면 아주 좆되는 것들을 맡게 된 거네.”
“반대로 말하면 조직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업무를 내가 맡게 된 거지. 해외 업무 전체를 맡긴다고 권용일이 말했으니까.”
권용일은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가? 해외 업무 전체를 내게 맡기겠다고 말이다. 그건 곧 화진파의 핵심 업무를 총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화진파가 미래에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군부. 다른 하나는 해외라는 것.
미국, 중국, 소련, 그리고 일본까지 손을 뻗친 권용일은 그들과 원활한 교류를 이어가 더욱 세력을 넓혔다.
마피아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나아가 그들을 내 발밑에 둘 수만 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하지만 리턴이 큰 만큼, 리스크도 크다.
“아무튼, 조심해라. 그러다 잘못 걸려서 훅 가지 말고.”
“그런 일 없어.”
“너무 자신만만해 있지도 말고.”
“안 그래.”
연욱이는 짧게 웃으며 법학책을 펼치다가 문득 생각나던 게 있던지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아, 맞다. 그런데 네 어머니 있잖아.”
“어머니가 왜?”
“다시 일하시냐?”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내가 일은 다 그만두게 했지.”
“그래? 그런데 우리 애들이 네 어머니가 식당에서 일하는 걸 봤다고 하던데?”
“뭐? 잘못 본 거 아니야?”
“글쎄. 인사까지 드렸다고 하던데….”
이런. 잠깐 마음을 놓고 있던 사이에 어머니가 또 그새를 못 참고 일을 하러 가셨던 건가?
대충 짐작이 갔다. 어머니가 나 몰래 또 일을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아침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니, 그사이에 일을 하시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태혁이가 모르지 않을 텐데?
“태혁이 이 새끼는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뻔하지. 네 어머니가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태혁이에게 단단히 일러두셨겠지.”
“젠장.”
연욱이는 책을 덮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네 어머니답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건 생활이 나아져도 똑같구먼.”
연욱이의 말대로 어머니는 쉬지 않고 일을 하신다. 그렇게 해서 나를 대학까지 보내시지 않았던가. 나와 태혁이만 잘된다면 당신의 몸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신다. 그래서 나도 죽도록 공부만 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 최고라고 불리는 대학교에 들어간다면, 세상에서 가장 기뻐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말이다.
“그러실 때마다 내 마음도 아프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만 하시다가 너 대학교 합격장 날아왔을 때….”
푸념하던 연욱이는 급히 말을 끊었다. 말실수를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미안하다. 괜한 말을 했네.”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사과했다. 하지만 굳이 사과받을 일은 아니었다.
“괜찮아.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서울대 법대 합격장이 날아왔을 때, 나는 어머니가 일하고 계시던 식당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끝내 들으실 수 없었다.
내가 도착했을 땐, 어머니는 이미 뇌졸중으로 쓰러져 숨을 거두셨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걸 직감하신 것처럼, 무겁디무거운 짐을 그제야 내려놓으신 것이었다.
“저기….”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눈치를 보던 연욱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충격으로 내가 한 달 가까이 식음을 전폐했다는 걸 알고 있는 녀석이다.
난 무겁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담배 있냐?”
“뭐?”
연욱이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내 뒤통수를 살짝 쳤다.
“미친놈. 이게 지금 우리가 나이 오십 먹은 노땅인 줄 아나. 자각이라는 걸 좀 해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이놈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담뱃갑 하나를 꺼냈다.
난 황당한 얼굴로 연욱이를 바라보았다.
잠깐 잊고 있었다. 이놈, 엄청난 골초였지.
“미친 새끼. 아직도 못 끊었냐? 그렇게 담배 피우다가 뒤지면 어쩌려고 그래?”
“담배 따위에 뒤질 거였으면 이렇게 다시 살아나지도 않았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병 걸려서 죽을 놈이었으면 다시 살아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 마음껏 펴라. 난 됐다.”
“싱겁기는.”
연욱이는 거리낌 없이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연기를 내뿜더니, 내게 말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그렇게 되시지 않도록 하자. 네 어머니이긴 하지만, 내게도 어머니 같은 분이시니까.”
내게 얼굴을 비치진 않았지만, 연욱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울컥해진 녀석의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가 있었다.
“그럴게.”
연욱이의 말대로다. 나와 연욱이는 이 나라의 미래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전에 어머니의 미래부터 바꿀 것이다.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삶을 사실 수 있도록 말이다.
* * *
“여기야?”
“으… 응.”
“다음에 또 이런 거 숨기면 그땐 진짜 죽는다.”
태혁이는 눈을 내린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도 어머니가 계속 일을 하고 계시던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식당들이 주변에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일손이 부족한 식당을 찾아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 물론,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몰래 취직을 하는 철두철미함까지 보이셨다.
아들이 이렇게 돈도 잘 벌어오고 있는데, 왜 자꾸 일을 하려고 하시는 건지.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이게 다 자식새끼들 잘되라고 시작하신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마음이 더 무겁다.
내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홀에서 서빙 중이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다정하게 웃으며 테이블에 반찬을 세팅하고 계셨다. 그런데 저 뒷모습이 매우 눈에 익었다.
“형님?”
“응? 태산이 아니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황규혁이 목동에 있는 걸까?
난 어머니와 황규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라시며 태혁이에게 따가운 눈길을 보내셨다.
“형님이 여기엔 어떻게….”
황규혁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우연히 네 어머니가 여기 일하고 계신 거 알고, 자주 들리게 되었다. 국밥이 맛있기도 하고.”
저번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상하게 황규혁은 어머니에게 잘해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어른들에게 예의가 바른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유독 어머니에게만 관심을 쏟는 것 같기도 하다.
이유가 뭘까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어머니. 제가 이제 일은 그만두시라고 했잖아요. 몸도 돌보시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셔도 돼요.”
나를 보고 놀라셨던 어머니였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말씀하셨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자식새끼가 뼈 빠지게 일해서 벌고 온 돈을 헤프게 쓰는 년이 되고 싶진 않다.”
“어, 어머니. 지금까지 저와 태혁이를 혼자서 잘 키우셨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히 할 일을 다 하신 겁니다.”
“시끄럽다. 일단 나가라. 남의 식당에서 이러는 건 예의가 아니다. 손님들도 계시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니?”
어머니는 막무가내이셨다.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강제로 내쫓으려고 하시는 걸 황규혁이 만류했다.
“어머니. 태산이랑 태산이 동생이 이렇게 왔으니까, 제가 밥 한 끼 사겠습니다. 괜찮죠?”
“어휴. 아니에요, 황 사장님.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아닙니다. 그리고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편하게 말하세요.”
황규혁은 나와 태혁이 팔을 붙잡고 자리에 앉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 양반 때문에 한고비를 넘겼다.
“국밥 두 개 더 주십시오, 어머니.”
어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고맙습니다, 형님.”
“아니다. 겨우 밥 한 끼 사는 건데, 뭐. 그나저나 이쪽이 네 동생?”
“예. 얼른 인사드려.”
태혁이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김태혁이라고 합니다.”
“그래그래. 반갑다. 네 형처럼 인물이 확 살아 있네.”
“감사합니다.”
황규혁은 간단하게 태혁이와 인사를 나눈 뒤, 수저를 들었다. 하는 행동을 보니, 이 식당에 단골인 것 같았다.
“형님께서는 여기에 어쩐 일이십니까?”
그는 들고 있던 수저를 다시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나갈까? 태혁이는 국밥 나오면 먼저 먹고 있어.”
황규혁은 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함께 식당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지폈다.
“앞으로 어머니 계실 때는 형님이 아니라 사장님이라고 불러. 어머니는 네가 이쪽 세상에서 일한다는 걸 모르시니까.”
나름, 배려라면 배려랄까. 이럴 땐 고마운 사람이다.
“네 동생은 네가 무슨 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냐?”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 아무튼, 네 어머님 계실 땐 조심하자.”
“감사합니다, 형님.”
“아니야.”
왜 황규혁이 어머니에게 잘해 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내게는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목동에는 어쩐 일로 오셨던 겁니까?”
“아파트도 줄지어 들어서고 있잖으냐. 한창 개발되고 있는 곳이니까, 그냥 염탐하러 온 거였어. 어떤 놈들이 여기서 활개를 치고 있나 봐 둬야지.”
목동은 곧 있으면 알부자들의 땅이 되는 곳이다. 그만큼 조직들의 눈이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목동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까지는 논밭들이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강서구 개발이 시작되면서, 논밭들이 사라지고 아파트들과 학교들이 자리를 잡게 된다.
“요즘 대룡파 새끼들이 심상치가 않아. 짭새들이 마약굴을 죄다 털어버리니까, 뭐 마려운 강아지 같더구만. 목동에 세력을 확장하려고 애들을 뿌리고 있어. 그래서 여기가 걱정이 좀 되더라고.”
대룡파가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것인가. 성질도 급한 놈들이다.
하긴, 정부가 제들 밥그릇을 뺏어가지 않았던가? 지금쯤 목이 바짝 타서 되는 대로 발을 담가 보는 것이리라. 하지만 황규혁이 걱정했다는 게 설마 우리 어머니를 뜻하는 건가?
내 눈빛을 읽었는지, 황규혁은 담배를 끄며 말했다.
“네 나이 때쯤,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인지 네 어머니를 보면, 자꾸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더라. 나도 모르게 자꾸 여기에 발걸음을 하게 되더라고. 기분 상한 건 아니지?”
내 나이 때라면, 고등학생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다는 뜻이다. 그 마음,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는다. 어린 나이에 잃은 어머니이니, 보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아닙니다. 제 어머니에게 그렇게 잘해 주시는데,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리고 어머님께 잘해드려. 돌아가시고 후회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더라.”
경험담인가.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방금 어머니 모습 보니까 여기 일을 금방 그만두실 거 같진 않더라. 천천히 설득해서 몸에 무리 가지 않도록 해드려. 나도 자주 올 테니까.”
“감사합니다, 형님.”
“들어가자. 너랑 할 이야기가 많긴 한데, 그건 내일 사무실에서 이야기하자.”
“예, 형님.”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웬 덩치들이 나와 황규혁을 거칠게 밀쳤다.
“뭐야?!”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황규혁을 본 척도 하지 않고, 덩치 중 하나가 식당 입구를 강하게 발로 차서 열었다.
“여기 사장 누구야!?”
다짜고짜 사장을 찾다니. 이놈들은 또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