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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30화 (30/325)
  • 30화. 날개와 발톱 (3)

    내 의견에 따라 권용일은 잠시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오롯이 내 조언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권용일의 조심성이라고나 할까….

    “오성파는 정말 안 될 것 같냐?”

    …가 아니었군.

    역시, 말은 그렇게 했어도 노친네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가?

    “지금은 안 됩니다.”

    “정말?”

    “예.”

    “에잉, 재미없기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저 영감님은 망설이지 않고 오성파를 칠 것이다. 회의를 끝내는 순간에도 오성파가 아깝다며 입맛을 다시지 않았던가.

    하지만 서두를 필요가 없다. 분명히 내 말대로 될 테니까.

    권용일과 더불어 날 못마땅하게 보던 간부들도 대룡파가 어떻게 찢어지는지 보면 심장이 철렁일 것이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시면 날뛰는 놈들이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오히려 저는 그게 기회라고 생각되는데요?”

    “그게 기회가 된다?”

    “예. 아편굴을 빼앗겼으니, 손실 복구하려는 놈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손실을 복구할까나?”

    이 양반은 이쪽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 꼭 내게 물어보고 넘어가는 습관이라도 생긴 것 같다.

    “다른 조직들을 흡수해서 힘을 키우겠지요. 그리고 이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세력이라면….”

    “적어도 화진파와 비슷한, 아니면 삼대 조직 중 하나라는 거냐?”

    “예. 대형 조직 중 하나가 분명 움직일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권용일은 짙게 침음을 흘리며 턱을 쓸어내렸다. 내 말을 듣고 자신도 머리를 굴려보며 시나리오를 써 보고 있는 것이다.

    “네 말이 맞다면… 아마도 대룡파 정도가 되겠구나.”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였다. 저렇게 단번에 맞출 줄이야.

    다행히 내 반응을 보지 못한 것인지, 권용일은 고개를 살짝 위로 올린 채 말을 이었다.

    “오성파나 청룡파는 눈치가 좀 있는 편이야. 그리고 아편굴이 사라졌다고 무너질 놈들도 아니라서, 지금은 몸을 사리겠지. 하지만 대룡파는 다를걸? 이놈들은 약 팔아서 세력을 확장해왔으니까. 그놈들은 악을 써서라도 손실을 복구하려고 하겠지. 네 예상이 맞는다면 말이다.”

    이미 저 머릿속에 각 조직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그 정보가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짧은 시간 안에 계산해내는 통찰력까지.

    그런 사람이 왜 무모하게 오성파와 전쟁을 벌이겠다는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네 말대로 이건 일단 기다려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구나.”

    “예. 그리 긴 시일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동안 화진파는 닫았던 아편굴을 다시 열면 됩니다.”

    “가격은 한 세 배에서 다섯 배 올리고?”

    “이 주 동안 벌지 못했던 거 한꺼번에 벌어야죠, 흐흐.”

    “너처럼 똑똑하게 나쁜 새끼는 내가 살다 살다 처음 본다.”

    권용일은 기분이 좋은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이 양반이 해외 쪽의 일을 내게 전부 맡기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는데, 이건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영감님이 내게 날개와 발톱을 달아 준 건 맞지만,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날 찌르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난 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삼킨 다음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해외 업무 전체를 저한테 맡기실 줄은 몰랐습니다.”

    “왜, 막상 하려니까 걱정되냐?”

    “전 가루 파는 것만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해외 업무가 어떤 게 있는지 자세히 아는 바가 없습니다.”

    “별거 아니야. 그러니까 머리에 똥찬 놈들이 계속하고 있었던 거지.”

    아무리 그래도 전체 해외 업무를 맡긴다는 건 좀 심했다. 천천히 넘기는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넘기겠다니.

    내 굳은 얼굴을 읽었는지, 권용일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너 도와줄 사람은 이미 알아봤다. 그놈이랑 같이 손잡고 일하면 꽤 수월할 거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권용일이 뽑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평균 이상은 칠 것이다.

    “해외 업무는 주로 어디로 가면 되는 겁니까?”

    “어디로 가고 싶은데?”

    “가루 업무라면 미국이겠죠?”

    “그렇지. 그게 주된 업무니까. 그런데 짱깨 놈들이랑도 줄이 닿아 있어서, 거기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긴 해야 할 거야. 소련도 그렇고.”

    중국과 미국도 모자라 소련까지.

    권용일은 계속해서 해외에 발을 넓히려고 한다.

    “아, 쪽바리 새끼들도 있구나. 거기는 야쿠자들이 꽉 붙잡고 있으니까. 그놈들이랑도 연줄 만들면 편할 거다.”

    이제는 나를 외교관처럼 부려 먹겠다는 거구나. 교류가 별로 없는 야쿠자와도 손을 잡겠다니.

    야쿠자들이야 앞으로도 계속 일본 전체를 붙잡고 흔들 것이다. 그놈들과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벌써 한숨이 나온다. 물론, 내 계획은 한국을 넘어 해외에도 영향력을 끼치는 절대적인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몰아치는 건 부담이 된다.

    난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지, 만능 인간이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성일환이나 이진용이 나보다 수완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가만히 내 안색을 살피고 있던 권용일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맨입으로 막 일 시키는 사람은 아니야.”

    그리고 그는 수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나다. 내가 말한 거, 그래. 그거 들고 올라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원 하나가 권용일 집무실 안으로 들어와 가방 몇 개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돈이라도 넣어 놓은 건가?

    “큰 거 두 장 넣었다.”

    두 장?

    가방 수를 보니, 오천 정도 되려나.

    이 영감 보게? 겨우 이 정도로 사람을 부려 먹겠다고?

    내가 화진파에 들어와서 벌어온 돈이 2억은 넘는다.

    “괜찮습니다, 큰 형님. 이런 거 안 주셔도 됩니다.”

    그렇게 액수가 많은 것 같지도 않고, 굳이 받지 않아도 될 돈이다.

    하지만 내 음성에서 묻어 나오는 섭섭함을 느낀 것인지, 권용일은 내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이놈아. 내가 설마 작은 거 다섯 장만 넣었을 거 같냐? 천이 아니고, 억이다.”

    큰 거 두 장이 천 단위가 아니고 억 단위였다니!

    이거 생각보다 통이 크신데?

    “너한테 받은 가루도 있는데, 솔직히 두 장도 작긴 하지. 그래도 틈틈이 줄 테니까, 편하게 받아. 그리고 여기 있는 게 전부가 아니야. 아래층에 몇 개 더 있다.”

    왠지 가방 수가 좀 적다 했다. 그리고 내가 준 1톤 마약에 비하면, 2억은 정말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몇백억에 달하는 가루들이 아니던가?

    “아무튼, 이건 용돈으로 좀 써. 해외 나가면 돈 쓸 곳이 많을 거야.”

    2억이라.

    난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정도 액수라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초성처럼 나타나 해외 스포츠 도박판을 모조리 휩쓰는 아시아인.

    왕좌에 앉아 콸콸 쏟아지는 돈다발을 맞고 있는 내 모습이 벌써 그려지는 것 같았다.

    * * *

    오늘 일찍 집에 가긴 그른 건가.

    “소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며? 내가 잘하는 소고깃집 알고 있으니까, 오늘은 거기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권용일에게서 벗어났더니, 능구렁이 한 마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셔도….”

    “아냐, 아냐. 우리 태산이가 엄청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그 정도는 챙겨줘야지. 그럼.”

    이진용은 익살스러운 얼굴을 띠며 반강제로 나를 차에다 태웠다.

    젠장. 이 양반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같이 앉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었는데.

    뭐가 그리 신나 있는지, 싱글벙글한 얼굴이 사라지지 않는 이진용이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고 단둘이서 밥상에 앉는 순간, 그의 얼굴빛이 살기를 가득 품은 독사처럼 변했다.

    “우리 오야지는 말이야.”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는 음성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소름 끼치도록.

    “정복자의 기질이 다분하시지. 한시라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시는 성격이야. 그건 너도 알지?”

    권용일의 성격이야 모르는 게 이상한 거지.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가지고 계신 야망도 커. 그냥 큰 게 아니야. 나 같은 소인배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크단 말이지.”

    이진용이 엄두도 내지 못 할 정도의 야망이라.

    갑자기 이런 말을 내게 꺼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잔에 담긴 술을 쭉 들이켠 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오야지가 유독 자네에게 관심을 쏟고 있으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어. 너에게 뭘 보셨기에 그러는 걸까?”

    몰라서 묻는 건가?

    영남파, 여의도, 그리고 아편굴까지.

    모두 단기간에 내가 이뤄낸 업적들이다.

    “제가….”

    하지만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진용이 또 치고 들어왔다.

    “그건 네가 오야지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야. 난 그렇게 생각해.”

    “…예?”

    권용일과 내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네가 하는 대담한 행동들. 전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 가끔은 네가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보는 눈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정말 운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한층 더 날카로워진 독사의 눈빛이 나를 관통했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뜨끔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색하진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조금이라도 미동을 하게 된다면, 저 사람이 놓칠 리 없다.

    “뭐, 끝까지 운으로 우긴다면 나도 더는 어쩔 수 없지만.”

    역시, 이 사람은 다르구나.

    권용일을 비롯해 황규혁과 성일환은 내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다르다.

    남들과는 다른 프레임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김태산이 아닌, 알 수 없는 무언가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김태산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묵묵히 이진용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그는 그런 나를 보며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세상에는 우연이란 게 없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계산하고 움직인 결과밖에 없다는 거지.”

    내가 미심쩍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긴.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난 항상 다른 경쟁자들보다 몇 수는 앞서 있다. 그것이 이진용의 날카로운 본능을 건드린 것일지도 모른다.

    ‘저놈은 뭔가가 있다.’

    ‘저놈은 위험하다’라는 독사의 본능.

    그렇기에 독을 잔뜩 품은 이빨을 슬며시 드러내며 언제든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준비를 한다.

    내 눈에는 지금의 이진용이 그렇게 보였다.

    “아!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했나? 어서 들어. 여기 육회가 아주 끝내줘.”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그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육회가 담긴 접시를 내 앞에 놓았다.

    “많이 먹어. 앞으로 고향 땅 떠나서 일하려면 힘들 거야.”

    “…감사합니다.”

    당최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다.

    주니까 먹긴 먹겠다만, 이놈 앞에서 먹어야 하니 소화가 그리 잘 될 거 같진 않….

    아니?

    “흐흐.”

    이진용은 실소를 지으며 눈이 번쩍 뜨인 나를 바라보았다.

    “맞지? 아주 입에서 살살 녹지?”

    정말 맛있는 건 입에 넣자마자 녹아 버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됐다. 이게 정말 육회인가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입에서 녹아버렸다.

    이런 엄청난 맛집이 있었다니.

    “이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지? 여기가 육회 하나로 쇼부 봐서 유명해진 곳이야. 대통령도 이거 먹으려고 가끔 온다고 하더라.”

    대통령이 찾아오는 맛집이라-.

    이 정도 맛이면 충분히 그럴 것 같다.

    “여기 주방장이 정말 한 길만 걸어서 온 사람이야. 장사가 안 돼도 끝까지 육회만 붙잡고 살더라고.”

    “여기 가게 주인과 아시는 사이인가 봅니다.”

    “잘 알지. 내 동창이니까. 하여튼, 그놈도 참 고집을 부리면서 한쪽에만 승부수를 넣더라고.”

    뜬금없이 동창 얘기로 넘어간다. 그러려니 하고 한쪽 귀로 듣고 흘리려고 했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부터는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넌, 어느 쪽에 줄을 서고 싶냐? 어디다 승부수를 넣고 싶어?”

    살살 녹던 육회가 갑자기 목구멍에서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난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이진용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난 놈이라는 건 내가 백 번 인정한다. 그런데 주변에 적을 너무 만들면 너도 힘들고, 널 경계하는 놈들도 힘들어져. 우리는 조직이다. 그냥 말 몇 마디로 끝내고, 해고해서 끝내는 회사원들이 아니야. 내가 그랬지? 한길만 가야 한다고.”

    내가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적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이 무서워 내 발걸음을 멈출 순 없다.

    적이라면 마땅히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 주면 된다.

    누군가는 나의 적을 포옹을 하라고 하는데, 포옹보다는 굴복이 빠르다.

    두 번 다시 내게 대들지 못하도록 굴복시켜야 한다. 철저히 짓밟아서 딴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조심하겠습니다.”

    “너 기죽이려고 한 말은 아니야. 오히려 내가 도움이 되려고 그러는 거지.”

    이진용은 빙긋 웃는 얼굴을 보였다.

    독사의 미소라-.

    보면 볼수록 소름 끼친다.

    “네 능력이 뛰어나긴 하다만, 화진파는 작은 조직이 아니잖냐. 서로서로 도와야지. 그러니까 앞으로 자주 보면서 얘기도 나누고 하자고.”

    다른 간부들은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경계를 했지만, 이진용은 나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 같았다.

    이진용이 적으로 만나면 상당히 피곤해지는 놈이긴 하다. 그렇다고 아군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겉모양만 아군이면 모를까.

    “저야 형님께서 도와만 주신다면 든든할 것 같습니다. 저도 너무 밉보이는 건 아닐지 걱정했습니다.”

    “어이구. 엄살은. 간부들이야 네가 갑자기 해외 쪽 업무를 다 가져가서 토라지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네 덕분에 돈 두둑이 벌게 생겼잖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맡은 일만 잘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어. 그렇지?”

    반대로 말하자면 맡은 일을 제대로 못 할 경우, 후폭풍이 밀려올 수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괜한 걱정 하지 마라.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해내는 걸 보여 줄 참이니까. 그땐 이놈이나 다른 놈들의 반응이 어떨지 꽤 볼만 할 거다.

    권용일이 내게 달아 준 날개와 발톱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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