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마법의 가루 (3)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 말고 다른 칼잡이라니?”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 손으로 피 묻히지 말고, 다른 놈들이 칼을 휘두르는 걸 구경만 하자는 겁니다.”
“구경을 한다?”
아직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권용일과 성일환은 살짝 멍한 얼굴빛을 보였다.
“설마, 다른 조직 똘마니들 모아서 공사 치자는 거냐?”
“그런 소규모 조직들을 모은다고 한들, 오성파한테 큰 데미지를 줄 순 없죠. 조직보다 더 위에 있는 단체가 칼을 잡아 줄 겁니다.”
내 말을 조금 알아들었을까?
권용일의 낯빛이 순간 낮게 가라앉았다.
“짭새들한테 뽀찌 주고 오성파랑 해 보자는 거 같은데, 지금 제정신이냐?”
이크. 이 양반은 내가 경찰들한테 꼬리나 흔드는 놈이라고 착각을 했나 보다.
“아니요. 사실, 이번에는 화진이 할 일이 딱히 없습니다. 그냥 불구경이나 하는 거죠.”
“무슨 불구경?”
“약쟁이들과 약 파는 놈들이 불에 활활 타는 걸 구경하는 겁니다.”
“약쟁이? 거기다가 약 파는 놈들?”
이 정도 말하면 좀 알아들으려나?
권용일은 무릎을 ‘탁’ 치며 내게 다시 물었다.
“혹시 아편굴 말하는 거냐?”
이 영감은 눈치가 빠른 건지, 아니면 이렇게 빙빙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 건지 척하면 척이다.
아편굴.
약쟁이들을 한 곳에 몰아넣어, 원하는 만큼 약을 하게 해 주는 마약굴이다.
우리나라 60년대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들어온 마약들이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새롭게 법을 제정하며 마약 단속에 힘을 썼지만, 그럴 때마다 딜러들은 정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법망을 피하는 신종 마약들을 들여왔다.
그렇게 짬뽕이 된 마약들이 모여, 판매와 투약을 동시에 병행하는 곳이 바로 아편굴이다.
“예. 아편굴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화진파가 관리하는 구역 중, 아편굴이 없는 곳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마진이 좋으니까.”
“규모도 상당하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다른 놈들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을 거다.”
저 말이 맞다. 화진파가 다른 놈들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다. 더군다나 이놈들이 한국에 들여온 마약량도 상당할 것이다.
훗날 화진 그룹으로 변모해 이 더러운 짓을 다 청산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마약으로 변조될 가능성이 높아, 국제적으로 금지된 23개의 화학 약품을 합법적으로 가장 많이 수출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화진 그룹이 그곳에 일조했다는 건 검사질 조금 해 보면 모르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 천안에도 있는데 뭐.”
천안에도 아편굴이 있었단 말인가.
돈 뜯어내는 데에는 정말 지독한 사람이다.
“오성파에도 아편굴이 있겠죠?”
“있겠지.”
위치는 잘 모르겠다는 어조로 들렸다.
내 눈빛을 살핀 권용일이 손을 휘저었다.
“설마, 그게 어디냐고 물어보는 거라면 나도 잘 모른다. 아편굴이 많기도 하고 오성파가 운영하는 곳이 어딘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군요.”
“너, 설마….”
권용일은 눈을 크게 뜨며 내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짭새들한테 오성파의 아편굴이 어디 있는지 밀고라도 하려는 게야?”
경찰한테 아편굴이 어디 있는지 밀고를 한다?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일단, 조직 폭력배가 경찰과 손을 잡게 된다면 그건 파멸로 접어드는 길과도 같다.
어떤 범죄 조직이 공권력과 힘을 합칠 수 있단 말인가. 자칫 잘못했다가는 사방에서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자신의 조직과 다른 조직들까지 전부 끝장을 내려면 경찰과 몸을 섞을 순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마음을 접는 게 낫다.
그리고 경찰들이 아편굴의 위치를 몰라서 못 잡고 있는 줄 아는가?
절대 아니다.
그들은 매달 조직원들에게 상납을 받으며 아편굴의 운영을 눈감아 준다.
그러다 집중 단속 기간이라도 뜨면, 입 싹 닫고 자신들이 모른 척 하던 아편굴을 덮친다. 어차피 그들도 실적을 쌓아야 하는 공무원들이니까.
이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대도 여러 조직이 아편굴을 접지 못하는 건,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속에 걸렸다고 해서 영원히 문을 닫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다시 버젓이 오픈을 하는 게 이쪽 시스템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이쪽 사람인데, 경찰들과 몸 섞는 건 질색입니다.”
“그러면?”
“제가 굳이 공권력의 등을 떠밀지 않아도, 그놈들이 알아서 움직일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린 불구경을 하는 겁니다.”
이 영감은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일을 모른다.
내가 어떤 그림을 보고 있는지 모르니, 내가 하는 말은 다 뜬구름처럼 들릴 것이다.
“경찰들이 단속이라도 하나 본데, 그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항상 그랬듯이 잠깐 하는 척만 하다가 끝날 거다.”
알고 있다. 2000년도에도 버젓이 활동하던 아편굴을 솎아내듯이 잡아냈던 사람이 바로 나다.
이놈들이 어떤 시스템으로 굴러가는지 내가 모르겠는가?
점조직으로 움직여 경찰에 붙잡힌다고 해도 오리발을 내밀면 오성파는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
역시, 권용일은 이쪽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 반만 알고 있다.
그 누구라도 이날만은 무사히 넘길 수 없을 것이다.
1985년 7월 22일.
정부는 이날 특수 마약 단속반을 신설해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간다. 물론 권용일 말처럼, 항상 그랬듯 반짝 단속이다.
그러나 반짝 단속치고는 상당히 매서운 단속이 이어진다. 약 일주일 동안 수십 개의 조직이 운영하던 아편굴이 털리고 수백 킬로의 마약들이 정부의 손에 넘어간다.
이때 오성파를 포함해 화진파도 꽤 고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화진파는 별다른 피해 없이 정부의 손에서 풀려난다.
천성이 도와준 것일 수도 있고, 군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 중인 권용일이 손을 쓴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때 권용일은 꽤 많은 돈 지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 영감님, 운수가 트셨다.
저 두둑한 주머니가 털리지 않도록 내가 막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단속의 강도가 좀 다를 것 같습니다.”
“단속의 강도가 다르다? 무슨 근거로?”
젠장. 이 과정이 제일 귀찮다. 당장 내게 화진파 전체를 움직일 만한 힘이 없으니, 일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 줘야 한다.
그냥 간단하게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는 경찰들이 그쪽 사람들을 다 솎아낼 것처럼 잡아내더이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뽀찌 주워 먹는 거에 걸신들린 놈들이 요즘 잠잠하지 않습니까?”
아편굴 운영을 눈감아 주는 대신, 주머니 두둑이 채우는 경찰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권용일은 저절로 성일환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사실이야? 요즘 그 새끼들이 밥 달라고 안 징징대?”
“그러고 보니…. 요즈음 아편굴 때문에 뽀찌 먹였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허허. 그래? 그럴 놈들이 아닌데.”
오케이. 첫 단계는 성일환이 잘 마무리를 해 주었다. 이제 두 번째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이 영감이 내 말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저도 그게 이상해서 며칠 동안 따로 조사해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직뿐만이 아니라, 다른 조직에 있는 아편굴에도 짭새들이 얼씬거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 그 연합인가 뭐시기로 조사를 했나 보지?”
조사는 무슨. 그냥 다 아는 거지.
“예, 큰 형님.”
“네 말을 듣고 보니 뭔가 구린내가 나긴 하는구나.”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경찰인 친구들이 있는데, 요즘 뭐가 그리 바쁜지 집에도 잘 안 들어온다고 합니다.”
솔직히 아버지가 경찰인 동창이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이것도 그냥 지어낸 말이었다.
“그래서, 너는 그게 소탕 준비다? 아편굴들을 깡그리 엎으려는?”
“예. 한 번에 다 끝장을 보려고 준비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여러 시일을 쪼개서 소탕 작전을 펼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자칫하면 쥐새끼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 수도 있다.
정부는 한 번의 공격으로 끝을 보려고 한다. 절대 대비할 시간을 갖지 못하도록.
“난 아직 확신이 서질 않는구나. 갑자기 그놈들이 왜 다 잡아내려고 하는 거지? 이제까지 주머니 채우고 좋았을 텐데.”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정부의 압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윗대가리들이?”
“예. 곧 있으면 아시안 게임이 열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서민들이 마약에 찌든 모습을 보여주면 국가적 망신이니, 예방하려는 것도 있을 겁니다.”
86년에 열리는 아시안 게임은 88 서울 올림픽의 연습 무대다. 대한민국 최초로 열리게 되는 국제 스포츠 대회라, 정부는 심혈을 기울이며 준비하는 중이다.
“단지 그 이유뿐이라면 납득이 되질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미국이 우리보다 더 심해. 거기야말로 마약의 천국 아니더냐?”
생각을 좀 할 줄 아는군.
아무리 올림픽 때문이라고 해도 정부가 그렇게까지 강수를 두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
“저도 큰 형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만약 정부가 정말로 소탕 작전을 펼치는 거라면, 그들은 표면적인 이유로 올림픽을 내세울 겁니다. 하지만 진짜 의도는 따로 있겠죠.”
권용일은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거렸다.
무언가가 떠오른 것일까?
그는 갑자기 잔에 술을 따르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젠장. 그 핏덩이들이 거리에 활보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 피 보게 생겼구먼.”
이 사람의 통찰력은 역시 대단하다.
정부가 갑자기 마약과 전쟁을 벌이려는 게, 매일 같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혁명을 외치는 학생들 때문이라는 걸 금방 캐치했다.
“큰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성일환은 아직 우리 둘의 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요즘 나라님들이 좀 조용하지? 그 핏덩이들을 모함하기 위해 발악을 했던 양반들인데.”
성일환도 그게 이상하다는 듯 대답했다.
“예. 이주일 전만 하더라도 똘마니들 동원해서 다 깽판 치고 다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정부에서도 어떻게 하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거야. 그 양반들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지금 그물 던지는 거야.”
“두 마리 토끼요?”
“야이 답답한 놈아. 생각을 해 봐. 아시안 게임을 위해 아편굴을 덮쳤는데, 거기에 학생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더라고 정부가 발표하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성일환도 그제야 이해를 한 듯 보였다.
“하, 이놈들 더럽기는… 정말. 혁명을 외치던 학생들이 사실은 약쟁이였다. 꽤 그림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 지금 태산이 이 녀석이 말하는 게 바로 그거다.”
이 정도면 이 영감도 내 말을 믿어 주는 거라고 봐야 하나?
성일환은 아직 확신이 서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가 정말 그 짓을 벌일 거라고 확신하는 거냐?”
“폭풍전야라는 느낌이 듭니다. 분명 터져도 뭔가 터질 겁니다.”
큰일이 터지기 전에는 항상 징조가 따르는 법이다. 난 모든 설명을 했고, 이제 최종 결정은 권용일에게 남았다.
“나도 사실, 긴가민가하다. 그런데 네놈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정부가 당장이라도 우리 밥줄을 끊어 버리려는 것 같기도 하고….”
“딱 보름만 큰 형님께서 운영 중이신 아편굴들을 폐쇄하십시오. 제가 볼 땐 이번 주 안으로 정부가 움직일 것 같습니다.”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문을 열자?”
“예. 갈 곳 잃은 약쟁이들이 전부 큰 형님에게 모일 겁니다. 그때 얼마를 불러도 그놈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사게 될걸요?”
정부가 약 파는 놈들을 다 잡아가 버렸으니, 단 하루라도 약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약쟁이들은 미쳐나갈 것이다. 그들은 권용일이 흔드는 약을 갖기 위해 전 재산을 가져다 바칠 것이다.
“하하하-!”
권용일은 소파를 탕탕 치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약 파는 놈이 나 혼자 밖에 없는데, 가격을 세게 불러도 그 약쟁이들이 뭘 어쩌겠냐? 주는 대로 받아야지.”
“예. 그럼, 보름 동안 얻은 손해를 금방 복구할 것 같지 않습니까?”
“복구하고도 남지.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약쟁이들 돈을 다 쓸어 담게 생겼구나.”
결정이 섰는지, 권용일은 성일환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일부터 당장 아편굴 다 닫으라고 해. 보름 동안은 휴업이다.”
그러나 권용일처럼 확신이 들지 않는 성일환은 불안할 따름이었다.
“큰 형님. 너무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닙니까? 조금 더 알아보다가 결정을 내리심이….”
“이놈 말 못 들었어? 이번 주 내로 뭔가 터진다고 협박을 하잖느냐.”
“확실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확실한 거 따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돼. 베팅할 땐 화끈하게 질러야지.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 해.”
권용일의 말이 맞다. 이건 도박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권용일은 혼자 병신짓을 보름 동안 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 도박이 성공하게 되면 돌아오는 금액이 상당하다.
충분히 해 볼 만하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큰 형님.”
성일환도 결국 권용일의 뜻에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경고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다른 간부들이 널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을 거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예. 각오한 일입니다. 하지만 절대 실패할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믿어도 되냐?”
“여의도 때처럼 깔끔하게 끝날 겁니다.”
성일환은 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어린놈 때문에 요즘 들어 심장 벌렁대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네가 하도 안전한 길만 걷다 보니 그런 거야. 사람이 전투적으로 살아야 쟁취하는 거다. 아무튼, 태산이 너도 각오는 단단히 해야 돼. 일이 잘못되면 책임져야 할 사람이 필요한 법이니까.”
여의도 때도 저러더니, 이번에도 일이 잘못되면 내게 다 뒤집어씌우겠다는 소리였다. 원래 이 세계가 그렇고 그런 곳이 아니던가.
그래도 한 번 성공하게 되면 더 화끈하게 밀어주는 게 바로 권용일이다.
이 영감님. 내가 수백 킬로에 달하는 마약을 던져 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