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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9화 (19/325)

19화. 뒤통수치기 (3)

“고생들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여의도 일이 끝난 뒤, 연합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물론, 가면서 뭐라도 먹으라고 돈 몇 푼씩 쥐어 주긴 했다.

겉모습은 영락없이 깡패지만, 학생은 학생이다.

고작 몇 푼 쥐어 준 것만으로도 입이 헤벌쭉 늘어난다.

원했던 여의도도 얻었으니, 이제 뭘 하면 될까? 아직 이렇다 할 생각이 떠오르진 않았다.

몇 가지 계획해 둔 일이 있지만, 오늘부터 그것을 붙잡고 생각하기에는 몸이 피곤했다.

맞지도 않는 의적 노릇을 하려니, 빨리 지칠 수밖에.

어차피 내일은 토요일이기도 하니, 잠이나 실컷 자볼까?

이럴 땐 영화 프로그램을 돌려 보면서 맥주 한 잔 마시는 게 딱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케이블 채널이 없는 시대다.

그냥 오늘부터 주말까지 푹 쉬어야겠다.

요즘 일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아 제대로 잠도 못 잤는데, 이번 기회에 몰린 피로를 다 풀 생각이다.

* * *

“아직도 쳐 자고 있냐?”

그럼 그렇지. 이 새끼가 날 가만히 자게 내버려 둘 리가 없지.

이놈은 아침 해가 뜨자마자, 집으로 쳐들어온 건가.

연욱이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툭툭 흔들었다.

“일어나.”

“좀만 더 자게.”

“일어나.”

“좀만 더 잔다니까?”

“일어나.”

“….”

내가 일어날 때까지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너무 피곤한데.

그냥 무시하고 잘까?

팍-!

“소중한 아침 해도 떴고, 주말이기도 하니, 가볍게 운동이라도 나갈까?”

하지만 이놈은 내가 눈 감을 틈도 주지 않는다.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단번에 뺏어 버리곤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젠장. 빨리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 네놈 새끼가 안 오지.”

조금 천천히 알아보려고 했는데, 이놈 때문이라도 하루빨리 아파트를 마련해야겠다.

“어디로 갈 건데?”

“안 알려 줘.”

“보나 마나 목동이겠지, 뭐.”

순간 굳어 버린 내 얼굴을 본 연욱이는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야! 내가 너를 어릴 때부터 봐왔다. 네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굴만 봐도 다 알아. 넌, 완전히 내 손바닥 안이라니깐?”

40년 지기 친구니, 이놈이 나에 대해서 모르는 건 거의 없겠지. 하지만 내가 생각해 둔 곳이 목동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곧 있으면 목동에 아파트가 완공되잖아. 거기 아니면 어디로 갈 건데? 위치도 알맞고. 아파트 퀄리티도 괜찮고. 안성맞춤이네.”

때려 맞춘 건가.

감이 좋다.

“강남도 있잖아.”

“거긴 너무 멀지 않냐? 학교 때려치울 거야? 그리고 영등포랑 가까운 곳은 여기잖아.”

“네놈한테서 벗어나려면 강남으로 가야겠다.”

“시답잖은 소리는 됐고, 얼른 나오기나 해라. 어머님이 벌써 아침밥 다 만드셨더라.”

“아침밥은 너희 집 가서 먹어!”

“우리 엄마는 요리 못하는 거 알잖아!”

연욱이 어머님은 확실히 요리에는 재능이 없으시다. 그래서 이놈 집에 놀러 가서 밥을 먹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놈은 버릇처럼 우리 집에 찾아와, 밥을 먹고 가는 식충이 됐다.

“어? 형 왔어?”

“오! 태혁이. 몸이 더 좋아진 거 같다?”

“말도 마. 요즘 운동 빡새게 하느라 힘들어.”

“들었다. 이놈이 그렇게 운동하라고 닦달을 한다며?”

“그러니까. 하루 쉬는 꼴을 못 보더라고. 언제는 운동 안 해도 괜찮으니까, 편하게 있으라고 하더니.”

이 두 콤비가 또 만났군.

회귀 전에도 저러더니, 여기서도 저놈들은 여전히 죽이 참 잘 맞는다.

“그럴 거면 난 옆에다 치워 놓고 둘이서 형, 아우 하지 그러냐?”

“얘, 내 동생 아니었냐? 태혁아 내 말이 틀렸냐?”

“그럼.”

이것들은 날 놀려 먹는 게 유일한 낙인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가자. 엄마가 밥 다 해 놨어.”

“냄새를 보니까, 된장찌개?”

“맞아. 거기다가 돼지고기도 넣었어!”

“크-! 어머님 요리는 언제 먹어도 예술이지. 가자!”

태혁이와 연욱이는 나를 놔두고 둘이서만 부엌으로 달려갔다.

이 자식들. 이따가 두고 보자.

좀 더 자려 했지만, 저놈들 때문에 잠이 깼다.

거기다 어머니가 해 주신 아침밥을 나도 놓칠 순 없지.

대충 세수를 하고 밖을 나오니, 이미 저 두 놈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밥을 퍼먹고 있었다.

수저로 얼마나 밥그릇을 파고 있는지, 저러다가 그릇이 깨지는 건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다.

“우리 태산이 잘 잤니? 어서 와서 앉으렴.”

황규혁을 식당에서 만난 이후로, 어머니는 더욱 나를 살갑게 대해 주셨다.

하지만 아직도 고된 식당일을 계속하고 계신다. 내가 돈을 건네 드려도 거의 쓰질 않으시니, 나로서는 답답할 지경이었다.

이번에 아파트를 산다고 말씀드린다면 분명 크게 반대를 하실 텐데.

“뭐해? 국 식는다. 어서 와서 먹어.”

연욱이 저놈은 안방 주인이라도 된 마냥 나를 재촉했다.

“연욱이도 많이 먹어라. 요즘 도통 안 오는 것 같아서 걱정했다.”

“아이고, 어머니. 말도 마세요. 요즘 법학 공부에 매달리느라 죽겠습니다.”

연욱이 이놈은 또 엄살을 부리고 있다. 문제는 태혁이도 같이 거든다는 것이었다.

“맞아. 연욱이 형이 얼마나 고생하는데. 그래도 오늘은 놀 수 있지?”

“그럼. 오늘은 다 같이 가야지.”

난 자리에 털썩 앉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가다니? 어디를?”

“어디긴? 63빌딩이지.”

“뭐?”

헤벌쭉 벌려진 이놈들의 얼굴을 보니, 나 몰래 주말 계획을 잡아 버린 것 같다.

* * *

생각보다 63빌딩이 빠르게 오픈했다.

여의도에서 재범파와 양양파가 사라지자마자, 완공식을 거행하고 오픈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해 버렸다.

“우리나라가 정말 많이 발전하긴 했구나. 이렇게 높은 빌딩을 세우다니….”

어머니는 목이 뒤로 넘어갈 듯이 63빌딩 꼭대기를 바라보고 계셨다.

신기하실 거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에는 저런 빌딩을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할 때였으니까.

“이미 표는 다 끊어놨습니다. 그리고 안에 정말 맛있는 레스토랑도 있으니, 이따 점심은 거기서 먹어요.”

“아이구. 그런 비싼 곳에서 먹을 생각 없다. 여기 표 끊고 들어가는 것도 손이 떨리는데….”

“괜찮아요, 어머니. 태산이가 다 알아서 할 겁니다.”

내가 말해야 할 대사를 연욱이가 가로챘다.

“넌 왜 따라왔어?”

“나도 오랜만에 목에 기름칠 좀 하려고.”

“그런 레스토랑은 나중에 네가 돈 벌어서 가.”

“허허. 지금은 친구 덕 좀 봐야겠다.”

연욱이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어머니 뒤로 쌩 달려가 버렸다.

“어후. 근데 오늘 사람이 많네?”

빌딩 밖은 그닥 사람이 많지 않아, 오늘은 좀 한산한가 싶었더니…. 내 생각이 틀렸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사실, 63빌딩이라고 해서 크게 볼거리는 없다. 그냥 수족관 좀 관람하고, 망원경으로 서울 전경을 구경하는 게 전부다.

아직 유명한 놀이공원들이 생기지 않은 탓에, 가족 나들이를 63빌딩으로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모든 게 신기하신 듯하다.

매번 눈을 반짝이시면서 총총걸음으로 뛰어다니시는 게 마치 10대 소녀를 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이런 곳이 내겐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긴 하나. 저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힘이 솟는다.

“태혁이 저놈도 신났네.”

연욱이는 나와 나란히 걸으며, 앞서가고 있는 어머니와 태혁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그러고 보니, 여기도 좀 있으면 화진한테 넘어가지?”

“그렇지.”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다.

63빌딩을 지은 건 대하 건설이다. 하지만 1997년에 대하 생명이 해체되면서 화진이 흡수하게 되는데, 63빌딩까지 덤으로 갖게 되었다.

감회가 좀 새롭다고나 해야 할까. 곧 있으면 이곳이 화진의 소유가 된다니. 내가 화진을 손에 넣게 되는 순간, 이 빌딩도 내 소유가 된다는 것인가?

항상 입버릇처럼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언젠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식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내가 이 빌딩을 가지게 되면…. 어머니 이름으로 레스토랑 하나를 오픈하며, 선물로 드리면 되지 않을까?

맘 같아선 이 빌딩에 화진그룹이 아닌, 어머니의 이름을 새겨 놓고 싶었다.

“뭘 그렇게 실실 쪼개고 있냐?”

“응? 아냐. 아무것도. 슬슬 밥이나 먹으러 갈까?”

생각만 해도 뿌듯한 기분이 든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꼭 만들어 드리고 싶다. 어머니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레스토랑을.

* * *

토요일은 63빌딩을 다녀오느라, 제대로 쉬질 못했다. 그래서 일요일에는 좀 쉬려고 했더니, 이놈의 화진파가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하긴. 여의도를 점령했으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것이다.

저번에 들어보니, 권용일은 내게 여의도를 맡긴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학생이기도 해서, 내가 졸업할 때까진 성일환과 황규혁에게 대리를 맡겼다.

그 둘이 나 때문에 여러 곳을 동시에 관리하게 생긴 것이다.

워낙 구역이 넓다 보니 진절머리도 날 테지만, 그만큼 떨어지는 꿀도 많다.

교통의 메카로 변화하고 있는 영등포.

2000년대에 들어서면 이곳에 많은 백화점이 들어서게 된다. 물론, 거의 한 기업이 독점하다시피 영등포를 꾸역꾸역 삼키게 되지만.

그러나 80년대와 다르지 않게, 2000년도에도 조직폭력배가 활개 치는 공간이 된다는 건 변함이 없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길을 지나고 있으면, 나를 알아보는 조직원들이 깍듯하게 인사부터 올린다.

영남파와 여의도 일 때문에 그런지, 영등포에 있는 모든 화진파 조직원이 나를 알아본다.

거기다가 권용일이 내게 여의도 관리를 맡기지 않았던가? 그 뜻은 나도 황규혁처럼 사장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나이는 고등학생에 불과하지만, 화진파에서는 나이로 사람을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이 내게 인사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황규혁의 엄한 명령도 한 몫 거들긴 했다.

나를 보면 무조건 인사부터 올리란 황규혁의 명령을 똘마니들이 무시할 순 없지 않은가?

“형님. 어디로 가십니까?”

“황규혁 형님이 계신 곳으로. 어디 계신지 알아?”

“예. 지금 사무실에 계십니다. 모셔드릴까요?”

“괜찮아. 일 보고 있어.”

“예, 형님. 살펴 가십시오.”

영남파 일이 있을 때는 조직원들도 나를 상대하기 꺼려했다. 아니, 대부분 녀석이 나를 무시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나이도 어린 것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 난리를 쳤으니, 나를 곱게 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들의 눈빛에는 희미하게나마 나를 두려워하는 기색까지 보인다.

“부르셨습니까?”

“왔냐? 거기 앉아라.”

자리에 앉자, 황규혁은 내게 음료수가 담긴 잔을 건넸다.

“좀 쉬었냐?”

“쉬려고 했죠.”

“그런데?”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못 쉬고 나왔습니다.”

내가 좀 볼멘 목소리로 말했더니, 황규혁은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내 이마를 살짝 때렸다.

“내가 토요일은 가만히 놔뒀잖아. 그 정도면 잘 쉰 거지, 뭐. 나 봐라. 새벽부터 여기 나와서 일 보고 있지 않냐?”

“형님도 고생하셨는데, 좀 쉬시지….”

“아냐. 네놈이 일 벌인 거 해결하려면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재범파와 양양파가 기존에 주름 잡고 있던 구역까지 청소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긴 할 것이다.

새 주인이 앞으로 여의도를 다스리게 될 것이란 걸 알려야 하지 않은가?

재범파와 양양파의 발 앞에 무릎 꿇던 영업주들도 이제 고개를 숙여야 할 방향이 바뀐 것을 알 때다.

“재범파랑 양양파 새끼들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싸우는 바람에 업주들도 지쳤던 모양이야. 우리한테 꽤 협조적인 거 같다.”

영토 주인이 하루에 한 번씩 바뀌는 곳에서, 영업하기란 쉽지가 않다. 업주들도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춰야 하는지 모르니, 답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골머리를 썩이던 재범파와 양양파가 동시에 사라졌다. 업주들은 우리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도 될 것이다.

누군가의 속박 아래 묶여 영업을 하고 싶다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조직의 사슬에 자유로운 곳은 별로 없다. 이들도 그것을 알기에 순응하는 것이다.

“업주들이 잘 따라와 주는 건 다행이긴 한데, 문제는 천성이다. 이놈들이 이 정도로 포기하진 않을 테니까.”

우리의 기습 공격으로 천성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있지 않은가?

넘치는 돈으로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원한다면 대형 조직들을 끌어들여 여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난리를 쳐 놓으면 정부가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의 눈치도 봐야 하니, 섣불리 움직이진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63빌딩 완공도 됐고. 언론도 집중해서 63빌딩을 띄어 주고 있으니…. 천성이 여기서 초를 칠 순 없겠지.”

“방심해선 안 됩니다. 상대가 천성 아닙니까? 돈 지랄이 특기인 놈들이니, 그 돈으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릅니다.”

“젠장. 하여튼, 너 때문에 내가 제 명에 못 죽을 거 같다.”

“하하. 저 덕분에 호강하실 지도 모르는데요?”

“그건 두고 봐야 알지.”

황규혁은 투덜거리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주먹질보단 머리 써야 하는 일이 많아지니, 피곤할 것이다.

그런데 천성이 슬슬 움직일 때가 되긴 했는데.

설마, 정부의 눈치를 본다고 가만히 웅크려 있진 않을 터.

이놈들이 과연 언제 움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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