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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7화 (17/325)
  • 17화. 뒤통수치기 (1)

    150명을 여의도까지 한꺼번에 옮기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녔다. 그래도 다행인 건 화진파가 도와줘서 그나마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디서 빌렸는지, 대형 버스를 몇 대를 가지고 와서 우리를 태우고 여의도까지 데려다주었다.

    여의도는 한창 개발 중이어서 그런지 공사 차량이 많이들 보인다.

    5월 30일, 드디어 63빌딩이 완공됐다. 하지만 완공식은 6월 2일로 미뤄진 상태.

    천성이 미리 손을 써둔 것이다.

    밖을 보니, 인부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대행사 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뜩이나 험악하게 생긴 놈들이 밖으로 우르르 나오면 주목을 받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모두 버스에 대기시킨 뒤, 나는 연합 간부들과 같이 밖으로 나왔다.

    현재 시각이 오후 5시.

    지금쯤이면 슬슬 결판이 났을 시간이다. 언제쯤 황규혁한테 연락이 올까?

    “김태산 형님이십니까?”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싸구려 와이셔츠를 입은 몇 명이 내게 다가왔다.

    보아하니 화진파에서 보낸 똘마니들 같았다.

    “제가 김태산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처음 보는 놈들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다가와서 인사부터 올리다니.

    “황규혁 형님이 보내셨습니다. 앞으로 태산 형님을 잘 모시라고 말입니다.”

    황규혁이 보낸 연락책인가?

    “아. 그래요? 지금 형님은 어디 계십니까?”

    “곧 있으면 오실 겁니다. 그리고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딱 봐도 나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사람들한테 말을 놓자니 좀 익숙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많아질 테니,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다.

    “그럼, 편히 말할게. 재범파와 양양파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나?”

    내가 바로 말을 놓았지만, 이들은 어떤 거부감도 나타내지 않았다.

    “저희가 출발하기 전 소식이 왔는데, 재범파가 양양파를 밀어냈다고 합니다.”

    역시, 미래는 변하지 않았다. 재범파가 성공적으로 양양파를 몰아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곧 있으면 천성 그룹이 치고 들어온다.

    “황규혁 형님이 몇 명이나 데려오셨어?”

    “스무 명입니다, 형님.”

    스무 명이면 충분하다. 솔직히 황규혁 혼자와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천성 그룹 똘마니들이 왔을 때 앞에서 어깨 세울 놈들이 필요하지 않은가?

    성일환한테 최대한 덩치 큰 놈들로 뽑아 달라고 했으니, 아마 내 말대로 했을 것이다.

    “일단 여기서 기다려. 애들 데리고 나올 테니까.”

    “예, 형님.”

    난 그들을 놔두고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저놈들과 내가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던 간부 녀석들은 그제야 호들갑을 떨었다.

    “야, 우리 회장님 출세하셨네.”

    “들었냐? 앞으로 태산 형님을 잘 모시라고 말입니다, 라고 말이야. 조직에서 따까리도 꽂아주네.”

    “크. 새끼들 잔뜩 쫄아서 빌빌거리는 거 봤냐?”

    덕분에 버스 안에 있는 애들도 무슨 영웅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들떠 있었다.

    이럴 땐 참 애들다운 모습인데, 싸움이 벌어지면 완전히 달라진다.

    경서 고등학교 다음으로 잘 나가는 대명 고등학교를 칠 때도 이랬다. 이놈들은 진짜 살벌하게 싸운다. 물론, 진짜 세계에서의 싸움과 비교하면 아직은 부족하다.

    이 연합 간부 녀석들도 내가 직접 선별해서 뽑았다. 이들 중 몇 명은 내가 검사 시절 때 잡아본 놈들이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라니.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그래도 그때 조직에서 한 가닥 하는 놈들로만 뽑았으니, 실력만큼은 의심할 게 없다.

    “이제 가자. 늦었다.”

    “오케이!”

    다른 버스에 대기하고 있던 애들도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 이목이 집중되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이번 일에 경찰이 눈감고 넘어간다지만, 기백 명의 인원이 밖에서 활보하는 걸 그냥 묵과할 순 없을 것이다.

    역사적인 날이 코앞에 있지 않은가?

    * * *

    “어, 왔냐?”

    “예, 형님.”

    접선 장소로 가니, 황규혁은 이미 와 있었다.

    “내가 보낸 똘마니들 봤지?”

    “예. 좀 놀랐습니다.”

    “다섯 명이니까, 잘 데리고 다녀. 필요한 거 있으면 그놈들한테 말하고.”

    내 편의를 위해 붙여 준 거겠지만, 저놈들은 날 감시하는 연락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도 있으니, 형님 땡큐.

    “양양파 새끼들은 거의 전멸이야. 재범파 새끼들, 아주 칼을 갈았더구만. 근데 그 새끼들 피해도 만만치 않아.”

    내가 알기론 재범파는 양양파에게 계속 밀리는 추세였다. 그러다 일발 역전으로 양양파를 몰아냈다. 하지만 얻은 게 있는 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그것 때문에 천성 그룹이 순식간에 여의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천성 그룹이 가져갈 전리품을 이제 내가 빼앗을 것이다.

    앞으로 얻게 될 전리품의 가치는 크다. 다른 곳도 아닌 여의도 아닌가?

    “그래서 두 개로 나눠야 할 거 같다. 한쪽은 재범파한테 가고, 한쪽은 양양파한테 가는 식으로.”

    황규혁은 정석대로 가려고 한다. 그러나 천성 그룹이 온다는 걸 계산에 넣는다면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둘로 나눌 필요 없습니다. 재범파 하나로 가시죠.”

    “왜?”

    “잔챙이들 처리는 천성이 해 줄 겁니다.”

    “천성한테 쓰레기 처리를 맡기자?”

    굳이 둘로 나눌 필요가 없지 않은가?

    천성이 알아서 양양파를 정리해 줄 텐데 말이다.

    “예. 어차피 천성은 똘마니들을 두 개로 나눠서 재범파와 양양파를 동시에 칠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재범파를 정리하고 천성이 보낸 새끼들까지 밟아버리면 게임 끝이라는 거지?”

    역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다. 이럴 땐 설명하기가 참 편하다.

    “예. 우린 쪽수로 밀어붙이는 거 아닙니까? 둘보단 하나로 뭉쳐 있는 게 더 효과가 있죠.”

    천성 그룹이 여의도를 포기하게 만들려면 쪽수로 밀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숫자가 훨씬 많다는 걸 보여 줘야 천성에 붙어먹은 조직들도 딴생각을 품지 못할 것이다.

    재범파를 쓸어버리고 천성 그룹에서 보낸 놈들이 왔을 땐, 화진파의 어깨들을 앞에 내세울 생각이다.

    어깨들 뒤에 버티고 있는 150명의 연합원을 보면 제깟 놈들이 뭘 어쩌겠는가?

    분명 꼬리를 내리고 도망칠 놈들이다.

    “네 말대로 하는 게 낫겠다. 양양파한테 찍소리도 못한 새끼들이 천성이 도와준다니까 신나서 날뛰겠네.”

    “그놈들이 우리한테 왔을 때 어떤 표정 지을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 새끼들 똥 씹은 표정 보자고 내가 여기까지 온 거잖아, 하하!”

    꿈도 꾸지 못한 여의도를 갖는 일이다. 당연히 흥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규혁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재범파가 있는 곳으로 진격했다.

    * * *

    전쟁을 마친 재범파는 부상병들을 데리고 자신들의 본거지인 물류창고로 돌아갔다. 아마 지금쯤 서로 축배를 들며 자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오늘 제대로 산통을 깨줘야겠다.

    콰앙-!

    선봉에 선 건 황규혁이었다.

    물류창고 입구가 철문으로 되어 있어서 덩치들과 함께 거친 발길질로 문을 열었다.

    “뭐야?!”

    황규혁은 반 정도 피떡이 된 재범파 조직원들을 둘러보더니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놈들은 그냥 거저먹기란 걸 아는 것이다.

    “쓸어버려!”

    “예, 형님!”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20명의 화진파 조직원들이 각자 연장을 들고 돌진했다. 하지만 내 연합원 중 누구도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나의 사람들이지, 황규혁의 똘마니가 아니다.

    난 가볍게 손을 까닥였다.

    “엎어.”

    그제야 연합원도 사슬 풀린 맹수처럼 저돌적으로 변했다.

    이번 판에서는 호랑이 같은 맹수가 필요하지 않다. 다 죽어가는 놈들을 잡는 하이에나가 필요할 뿐이다.

    수백 명에 달하는 적들이 갑작스레 나타나자, 당황한 재범파 놈들은 빠르게 대처를 하지 못했다.

    “이, 이 새끼들 어디서 온… 크악!”

    콰직-! 뻐억-!

    사방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굳이 나와 황규혁이 나설 필요가 없다.

    숫자도 압도적이고, 반쯤 곤죽이 된 놈들 아닌가?

    내 연합원과 화진파의 조직원이 하이에나처럼 저놈들을 물어뜯기만 하면 된다.

    황규혁과 나는 천천히 쓰러진 재범파 놈들을 밟고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위층에 재범파 두목과 간부들이 있을 터. 넋이 나간 저놈들 얼굴이 눈에 선하다.

    이층에 올라가 보니 작은 사무실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간부들 사이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그 안에 보였다.

    그의 곁에 있는 놈들은 우리에게 덤빌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미 포기한 것이다.

    이 많은 숫자를 저놈들이 어떻게 뒤집는단 말인가.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영토를 짓밟는 대장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 같았다.

    “너, 너는….”

    “오랜만입니다, 형님.”

    분명 저 사람이 재범파 보스 이재범일 것이다.

    황규혁과 면식이 있는지 이재범은 그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금방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시발. 누군가 했더니, 화진이었냐?”

    “여전히 입 하나는 험하시네, 우리 형님.”

    이재범은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발악했다.

    “영등포에서 쥐 죽은 듯이 살던 놈들이 감히 내 뒤통수를 쳐? 권용일 그 새끼가 아주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나 봐?”

    권용일이란 이름이 나오자, 황규혁의 얼굴도 무섭게 바뀌었다.

    “말조심하시지. 지금 감히 큰 형님 이름을….”

    “입 닥쳐, 이 개새끼야. 후회할 짓 하지 말고 꺼져.”

    되지도 않는 가오를 잡아 보겠다는 건가? 이런 놈은 그냥 쪽수로 밀어서 협박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일어난 일은 나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형님께서 윗대가리 피는 최대한 보지 말라고 하셨는데, 네 새끼는 안 되겠다.”

    황규혁이 품 안에 있던 손도끼를 꺼내더니, 갑자기 이재범을 향해 달려드는 게 아닌가?

    “이 좀만 한 새끼가!”

    자신들의 보스를 지켜야 하는 간부들이 깜짝 놀라, 저마다 연장을 꺼내 황규혁을 찌르려 했다.

    젠장. 내가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이렇게 되면 나도 싸움판에 끼어들어야 하지 않은가.

    “죽어, 이 새끼야!”

    평소에는 워낙 차분해 보여서, 황규혁 저 사람이 과연 주먹질은 제대로 할 수는 있을까 싶었다.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꼭지가 돌아도 제대로 돈 황규혁은 인사불성이었다.

    마구잡이로 도끼를 휘두르는 바람에, 이재범은 벌써 피범벅이 되었다. 거기다가 그를 저지하기 위해 달려든 간부들마저 픽픽 쓰러지고 있는 상황.

    이건 뭐, 내가 나설 틈도 없었다.

    황규혁과 합심한 따까리들까지 나서서 저놈들을 전부 눕혀 버렸다.

    설마, 다 죽은 건가?

    “에이. 어제 새로 산 옷인데.”

    그 난리를 쳐놓고 황규혁은 다시 덤덤한 얼굴이었다.

    그는 피로 질펀해진 도끼를 던져 놓고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우리 둘을 따라온 연합 간부들은 꽤 놀랐는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것으로 이들에게 좋은 공부가 되었을 것이다.

    어른들 세계의 주먹질은 높낮이가 없다는 것을.

    먼저 연장 들고 찌르는 놈이 이기는 게 바로 이쪽 세계다.

    두렵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두어야 하고, 그런데도 이 길을 가겠다면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 * *

    “그래도 죽이진 않으셨네요.”

    어느 정도 황규혁이 진정돼, 나는 쓰러진 놈들의 생사부터 확인했다.

    다들 죽진 않았지만,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수준이었다.

    “놔둬. 이따 한꺼번에 묻어 버리게.”

    역시,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게 이쪽 세계다. 황규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흉기를 휘두르지 않았던가?

    이놈들 묻는 것쯤은 양심의 가책도 못 느낄 것이다.

    “밖은 대충 정리됐나?”

    황규혁은 쓰러진 놈들에게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야…, 이거 장난 아닌데?”

    “아까 묻는다는 게 진짜 주, 죽인다는 거야?”

    “짭새 뜨면 이거 다 잡혀가는 거 아니냐?”

    그제야 숨을 쉴 수 있게 된 간부 놈들이 봇물 터지듯 질문을 던졌다

    아직 이놈들은 어리다.

    괜히 이놈들을 데리고 왔나 싶었지만, 어차피 나중에 저놈들도 손에 피를 묻힐 터.

    물론, 엉뚱한 곳에 피를 묻히게 할 생각은 없다. 이들은 나중에 나를 위해 칼을 휘둘러야 할 친위대가 될 것이다.

    “여기 있으려나.”

    이곳 물류창고가 재범파의 본거지라고 들었다. 이런 작은 사무실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여기 어딘가에 돈이 묻혀 있다는 건데.

    “뭐 찾아?”

    내가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하자 애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

    “응?”

    난 다 죽어가는 놈들을 지나 테이블 밑으로 다가갔다. 대부분 이런 곳에 금고를 놓지 않던가?

    아니나 다를까, 이재범이 쓰는 것처럼 보이는 개인용 금고가 있었다.

    번호로 여는 거면 곤란했겠지만, 다행히 이걸 열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했다.

    열쇠는 쓰러진 이재범에게 있지 않겠는가?

    난 이재범의 옷을 샅샅이 뒤졌다.

    “이번에는 또 뭐해?”

    “루팅.”

    “뭐?”

    어디 보자. 이놈의 주머니가 참 더럽게도 많다.

    빙고!

    왼쪽 속주머니에서 열쇠 뭉치 하나가 짜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잡혔다. 아마 이걸로 다른 금고도 열 수 있으리라.

    자, 이제 이 안에 얼마나 있는지 한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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