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화진파에 들어가다.
황규혁.
고작 26살이란 나이에 화진파 행동대장이 된 사람이다.
기업으로 치면 과장급이라는 건데, 말 그대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것.
화진 그룹이 생긴 후에도 꽤 머리가 좋았던 황규혁은 어떤 일이라도 잘 해냈다.
내가 이 사람을 잘 알고 있는 건 화진파를 조사했을 당시, 이 남자에 대해서도 자세히 파고들었던 탓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왜 이 남자가 조폭이 되었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폭들끼리 의리를 지킨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다 개소리다. 제일 의리 없는 놈들이 바로 조폭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의리 하나를 무슨 목숨처럼 여겼던 모양이다.
특이하게도 황규혁은 별로 욕심이 많지가 않았다. 원래 자신의 영향력을 위협할 만한 후배가 들어오면 경계를 하는 게 정상일 텐데, 오히려 황규혁은 그 후배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중에는 일부러 부사장으로 내려가고, 자신의 후배를 사장으로 세우기까지 했다.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니, 당연히 위에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던데…. 허수아비를 세운 뒤 실리를 챙기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황규혁은 전적으로 후배를 도와 화진 그룹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
참 어이가 없는 사람이다.
능력은 좋은데 욕심은 없고, 의리는 충만한 사람.
왜 이런 인재가 조폭이 됐을까? 그야말로 인력 낭비였다.
아무튼, 황규혁이 날 찾아온 건 정말 큰 행운이다.
“혹시 화진파라고 들어 봤어?”
“예. 우리나라에서는 꽤 큰 조직이 아닙니까?”
이때 당시 화진파는 점점 세력을 키우는 중이었다. 아직은 대한민국 삼대 조직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조만간 여러 조직을 통합해 최고의 조직이 된다.
“학교가 학교라서 그런가? 그런 건 잘 아는구나. 그래, 내가 거기서 일하거든.”
“식구라는 것이 화진파의 식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도전적인 내 물음에 황규혁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변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네가 이 정도로 능력을 보여 주었으니, 분명 다른 조직들도 널 스카웃 하려고 할 거야.”
이 사람은 아마 모르겠지만, 몇몇 개의 조직이 벌써 내게 손을 뻗었었다. 그러나 난 그들의 제의를 전부 거절하고 화진이 내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
잠시 내가 시간을 끌자, 황규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순순히 받아들이긴 힘들겠지. 그래도 네가 연합을 만들었다는 건, 처음부터 이 길을 가려고 작정한 거 아니었나?”
내 연합이라-
그래 봐야 이놈들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등학생들이다. 조폭의 세계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십 대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곳이 아닌가?
지금 시대는 조폭들이 마음껏 활개를 치는 시기다.
18년간 독재자로 대한민국을 군림했던 박영환 대통령이 군인들을 동원해 조폭들을 탈탈 털어 버리긴 했지만, 몇 년 있으면 대통령이 될 노일영처럼 작정하고 그들을 도려내진 않았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마다 관례처럼 조폭들을 잡아 들였다. 그들이 그렇게 물밑 작업을 않았다면 멕시코처럼 마피아가 국가를 휘어잡는 불상사가 발생했을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대한민국 조폭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산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거리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시절이다.
한창 절정의 시기를 맞이한 조폭들을 고등학생들이 상대할 순 없다.
“계속 말이 없는 거 보니 마음에 들지 않은가 봐?”
마음에 들지 않다니. 그럴 리가. 단지 생각을 하는 중이다.
“제가 만약 승낙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황규혁은 재밌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개 이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면 누구는 들뜬 모습을 보이거나, 누구는 황규혁의 뒤에 있는 조폭들에게 주눅이 들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락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이들이 나에게 무슨 계획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나도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것이 아닌가?
“일단 말단 식구가 되는 거야. 하지만 좀 특별한 말단이랄까? 네가 졸업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네가 지금 연합을 어떻게 하든 상관 않는다. 너도 그걸 걱정하는 거였지?”
전혀 아니다. 연합을 건드리든 말든, 솔직히 상관없다. 화진파를 내 앞에 끌고 오기 위해 만든 미끼일 뿐이니까.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맞구만. 걱정 마라. 네가 졸업한 다음에도 연합을 건드릴 일은 없을 거다. 특별히 너는 우리가 봐 줄게. 솔직히 전국구에 이렇게 강력한 연합이 나온 건 처음이라서 다들 좀 놀랐지.”
내 침묵을 황규혁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나 보다. 그래도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내 이름이 여러 조직에 뿌려진 모양이다.
하긴, 전국구를 빠른 속도로 통합하고 있는 연합이다.
이제까지 여러 연합이 있었지만, 서울 절반을 통합시킨 연합은 경서 연합이 처음이다.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연합이니, 조폭들도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불똥이 튈까 경계하는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연합에서 너한테 돈도 나오지? 그것도 건드릴 생각 없어.”
서울 절반을 먹은 연합이니 당연, 돈이 나온다. 수금이라고 해서 학교마다 학생들이 내는 일종의 상납금이다. 쉽게 말해서 삥 뜯은 돈을 내게 바치는 것이다.
“안 받습니다.”
“그래. 꽤 수입이 짭짤… 뭐라고?”
“연합에서 돈을 받지 않습니다.”
“굳이 나한테 숨기지 않아도 돼. 그게 뭐 쪽팔린 일이라고.”
“정말입니다.”
“뭐?”
어지간히 놀랬나 보다. 항상 여유 있는 미소만 보여주던 그가 지금은 눈과 입을 크게 벌렸다. 나도 모르게 조금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도, 도대체 왜?”
“그냥… 먼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씀드리죠.”
“먼 미래?”
“예.”
조금 전 발로 담배를 비벼 껐으면서 또 새로 담배를 꺼내 무는 황규혁이었다.
“하하. 오늘 참 재밌는 놈을 만났네. 그래. 먼 미래라고? 나 같이 다음 수를 보는 눈이 좁은 사람은 네 말을 이해하기가 힘든데?”
그럴 것이다. 이들의 눈으로는 내가 멍청한 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연합으로 삼켜버린 학교 중에서, 특히나 약자로 취급받는 놈 중에서 능력 있는 판검사들이 분명 나온다.
썩은 판검사들도 있고, 정의로운 판검사들도 있다. 내게 필요한 건 썩은 판검사 중에서 가장 큰 힘을 얻게 되는 놈들. 그리고 지위와 힘은 약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정의로운 판검사들이다.
이미 내게는 훗날 이 두 종류 중 하나가 되는 인원들의 리스트가 있었다.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사도가 되어야 했다.
약자를 보호하는, 보기 드문 히어로가 바로 내 역할이다.
“의심이 되신다면 알아보십시오. 제 연합에 들어온 이상 다른 학생 주머니 터는 놈들은 제가 가만두지 않습니다. 쓸 돈이 있으면 스스로 벌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터는 놈들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연합 대표인 내가 이렇게 엄포를 놓았으니, 예전보다는 확실히 돈을 털리는 일들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옛날 성질이 여전히 남아 있는 터라, 여전히 나는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한다.
황규혁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어차피 넌 졸업하면 연합에서 아웃이야. 계속 학생 놀이는 할 수 없다고. 지금이라도 돈을 좀 받아 놔야 편하지 않겠어?”
“글쎄요. 졸업하고 나서도 후배들과 연락을 끊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모두 잘 지내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괜히 수금으로 압박을 주면 분란만 일어납니다.”
“흠-. 반란을 걱정하는 거구나.”
털도 다 자라지 않은 어린놈들의 반란이라-.
듣고 보니 웃긴 말이었다. 하지만 저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이런 연합의 규모도 처음이다 보니 당연히 수금에 압박을 받는 학교가 나올 테고, 그 일로 인해 서로의 관계가 금이 가서 반기를 들 수도 있다. 그럼, 골치 아픈 일들이 여러 생기게 된다.
두 번째 담배를 거의 다 핀 황규혁이 긴 연기와 함께 말을 꺼냈다.
“아무튼, 그건 네가 알아서 해. 우린 네가 졸업하면 바로 공부를 시킬 예정이다.”
“공부요?”
난 모른 척하며 황규혁의 말에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래. 공부. 웃기지? 조폭이 공부라니. 하지만 우리 큰 형님께서는 교육을 제대로 받은 엘리트 조직원들을 원하셔. 물론 공부 잘하는 놈들을 따로 뽑아 직원처럼 부릴 수 있겠지만, 그놈들은 그냥 직원이잖아. 우리 식구가 아니고.”
아무리 80년대 이름을 날렸던 조직이라도 여러 대통령이 일으킨 범죄와의 전쟁 덕분에 대부분이 분해됐다.
하지만 화진파는 처음부터 움직임이 달랐다. 화진파의 대부 권용일은 시대를 읽는 눈이 뛰어나, 조직원들에게 공부를 시켰다.
이때부터 화진파를 화진 그룹으로, 조폭을 기업으로 만들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깡패 새끼인 건 다름없지만, 권용일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 쓰레기 조폭 화진 그룹을 대기업 수준으로 끌어 올린 초대 회장 권용일.
확실히 그는 조폭으로 썩을 만한 인재가 아니었다는 걸 스스로가 증명해낸 전설 같은 인물이다.
사진으로밖에 얼굴을 본 적이 없어서 권용일이란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내가 화진 그룹을 털었을 땐 이미 죽은 사람이었고.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사업 수완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매일 주먹만 쓰는 놈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니까 거북하지?”
아무래도 이 남자는 나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좀 실망인데?
“저, 공부 잘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하하하!”
뭐가 웃긴지 황규혁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 공부를 잘 할 수밖에.
내가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는 걸 알면 아마 이놈 뒤집어질 거다.
“이거, 오랜만에 대단한 놈이 들어올 거 같은데? 날범생이었구만.”
“제가 화진파에 들어간다고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렇지. 그래. 잘 생각해 봐. 그리고 이거 받아.”
황규혁은 양복 주머니에서 휜 봉투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건….”
“스카웃 비용이라고 하자.”
그는 한쪽 눈을 찡긋 이며 내 손에 억지로 봉투를 넘겼다.
“내일 또 보자.”
그리고 자산의 할 말만 남긴 뒤, 차를 타고 사라졌다. 난 한적한 바람만 불고 있는 교문 앞을 바라보다 봉투에 시선을 내렸다.
스카우트 비용이라-.
정말 에이스급 애들을 스카웃할 때만 이런 비용을 지급 한다고 들었다. 화진파는 돈을 뿌리면서까지 날 붙잡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과연 이들이 내게 제시한 액수는 얼마일까?
봉투를 열어 확인을 해보니 1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지금 시대로 따지면 대기업 월급보다 많은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 3,000만원인 80년대가 아니던가?
고등학생에게, 그것도 시작은 말단 조직원이 될 놈에게 100만원을 줄 정도면 꽤 선심을 보인 것이다.
봉투를 쥔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날 돈으로 유혹해 화진파로 끌고 올 생각인가?
어차피 걱정하지 마라. 굳이 이런 돈을 주지 않았어도 너희들한테 갈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네놈들 모두를 내 앞에 무릎 꿇릴 것이다.
그땐 너희들은 내게 살려 달라 애원하며 매달리겠지만, 난 절대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네놈들을 불구덩이에 처넣을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