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정의란 승자의 것.
“아주 난리구먼.”
“그러게. 장난 아닌데?”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분노의 촛불집회를 보며 나는 짧게 혀를 찼다. 그리고 내 옆에는 장연욱 검사가 함께 있었다.
나처럼 청렴함과 정의를 앞세우며 끈질기게 검찰청에서 버틴 내 유일한 동지였고,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9월부터 대한일보에서 오르 재단에 대한 비리를 터트리면서 줄지어 언론들이 전경련과 대통령, 그리고 최영일에 대한 뇌물 문제를 파고들었다.
마치 이번 일을 오랫동안 준비한 것처럼, 일사천리로 각종 비리가 폭로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이 사실은 허수아비였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분노의 불길이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정해진 순서대로 10월에는 야당에서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이제 나는 여론의 힘을 빌려 수사에 박차를 가할 차례였다.
“확실히 정리한 거 맞지?”
연욱은 내게 다시 한번 확인하는 듯 물었다. 항상 이런 일 처리는 깔끔하게 했던 터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이번 일만큼은 총장도 함부로 말하지 못해. 국회에서도, 그리고 보수 쪽에서도 이미 지금 정권에 등을 돌렸으니까.”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위스키라도 한 병 따서 마시고 싶었다. 인내와 고난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승리의 순간은 달콤했다.
내 수사권을 계속해서 불허하던 총장은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주었다.
이제 내 칼에 죽어 나갈 적들을 생각하면 환희가 밀려오면서도 씁쓸했다. 이 거대한 피바람이 곧 검찰까지 휩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려. 고생했다.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우린 대한민국의 정의를 위해 있는 사람들이니까.”
내 마음을 헤아린다는 듯 연욱은 내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술이나 한잔할까? 축배를 들어야지.”
“글쎄다. 축배를 들 만한 기분은 아니다.”
“야야. 그래도 우리가 고생한 세월이 얼만데. 곧 있으면 우리도 인생 피고 사는 거 아니야?”
난 잠시 연욱이를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 친구가 아니었으면 나도 여기까지 못 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 때가 많다.
“그래. 오랜만에 끝까지 달려보자.”
우린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밖으로 나와, 단골 식당에서 진탕 나게 술잔을 들이켰다.
오늘은 맘껏 마시고 취할 생각이었다.
조만간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쁠 것이다. 이렇게 회포를 풀 시간이 당분간 없을 테니,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놀고 마셨다.
그렇게 노래방까지 가서 목이 터지라고 노래를 부른 다음에, 우리는 대리를 불러 차에 탔다. 오랜만에 취기가 가득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나는 눈을 떴다.
삼십 분 정도 지난 걸까?
신도림에 벌써 도착해야 할 차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저기, 기사님? 제가 가려는 곳은 신도림인데 여긴….”
“그러게요. 검사까지 되신 분이 왜 그렇게 험하게 사셔가지고….”
“예?”
음산한 목소리에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놈은 얼굴에 검은 마스크까지 했다. 대리기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다, 당신 누구야?”
“뭐긴. 당신 무덤으로 데려가 주는 저승사자지.”
“뭐야?!”
내 높아진 목소리에 연욱이도 정신을 차렸는지 부스스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당장 차 세워!”
“그렇지 않아도 세울 참이었습니다, 검사님. 성질도 급하시네.”
이 정체불명의 남자는 한적한 골목에 차를 세운 뒤 차 문을 열었다.
“아무튼, 내 일은 여기까지니까 나머지는 뒤에 오는 놈들에게 말하쇼.”
부리나케 어디론가 뛰어가는 놈을 잡으려고 했지만, 취기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술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이 정도로 몸이 벌써 삐걱대는 건가?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저놈이 말했던 뒤에 오는 놈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뭐해? 검사님들 빨리 밖으로 모셔라.”
검은 양복을 입은 떡대들이, 나와 연욱을 밖으로 잡아당겼다.
“살살 모셔라. 귀한 분들이니까.”
놈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사내의 얼굴이 익숙했다.
“너는….”
“어이쿠. 절 다 기억해 주시고, 이거 영광입니다.”
화진파, 아니지. 지금은 화진 그룹으로 탈바꿈한 쓰레기 새끼들.
이놈은 화진 물산의 부장이자, 과거 화진파의 행동대장이었던 이형렬이다.
“이게 지금 무슨….”
“무슨 짓이냐고요? 별거 아닙니다. 그냥 항상 하던 일을 하는 거죠, 뭐.”
놈들은 나와 연욱이를 붙잡은 뒤 주사기를 가지고 와 양쪽 팔에 꽂았다.
제기랄!
척 봐도 이건 마약이다. 그리고 이놈들이 다음으로 할 짓이 뭔지 대충 상상이 갔다.
“사고사로 위장할 거면 집어치워!”
“하하. 눈치 하나 빠르시네. 그런데 왜 일은 그따위로 하셨어요? 그냥 조용히 천성 그룹에서 던져 주는 고기만 잘 먹었으면 됐잖아?”
점점 말이 짧아지는 이형렬이었다.
“사냥개가 주인이 원하는 사냥감만 물면 되지, 왜 엄한 주인을 물려고 해? 그러니까 이런 험한 꼴을 당하는 거야.”
화진 그룹도 최영일 게이트에 관련이 되어 있다. 천성 그룹과는 동맹 관계.
이들은 내가 칼자루를 원하는 방향으로 쥐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네놈한테 악감정은 없어. 솔직히 대단해. 정의롭게 사는 검사는 흔치 않은데 말이야. 하지만 이 양반아. 이 세상에 정의가 어디 있어? 힘센 놈이 정의라는 걸 아직도 몰라?”
사회 쓰레기 새끼가 감히 얻다 대고 설교 질인가? 마음 같아서는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이미 시야도 점점 흐릿하게 변하고 있었다.
몸이 점점 붕 뜬 느낌이 들 때쯤, 이형렬은 킥킥거리며 내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그래도 기분은 좋게 죽을 거야. 그게 진짜 훅 가는 약이거든. 뭐하냐? 다시 차에 태워 드려라. 황천길 가시는데 섭섭잖게 보내드려.”
나는 운전석에, 연욱은 조수석에 차례로 태운 뒤 놈들은 태블릿으로 뭔가를 끄적이더니 차에 시동이 저절로 걸렸다.
젠장! 이래서 내가 스마트 시대를 싫어한다니까.
운전석 창문 사이로 저놈이 끝까지 내 화를 돋워 놓는다.
“부디 다음 생에는 좀 융통성 있게 살아. 원래 세상은 나쁜 놈들만 잘 먹고 잘사는 거 알잖아?”
부르릉-!
엔진 소리가 들리면서 차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안간힘을 다해 운전대를 잡아 보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연욱이는 정신이 나간 듯 실실 웃고 있었다.
콰앙-!
그리고 고속도로에 들어선 차는 펜스를 박고 도로 아래 절벽으로 낙하했다.
아무리 약에 취해 있다고는 하지만, 순식간에 주마등이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직 정의를, 또 정의를 위해 살아온 한평생.
언제나 정의가 승리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정의라는 것은 결국, 승리하는 자들의 것이 아니던가?
침통했다. 억울했다.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 하늘이란 것이 있다면 왜 이런 부당한 일들을 가만히 지켜만 본단 말인가?
어쩌면 이 세상의 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선한 신이 아닌, 악의 신이 아닐까? 이 세상을 더욱 타락시키는 게 신의 계획이 아닐까?
퍼엉-!
차가 물에 잠기면서 나는 간신히 붙들고 있던 정신을 놓았다.
이제 난 죽어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만일 신과 만날 기회가 있다면 멱살을 잡고 생각나는 모든 욕을 뱉어 줄 생각이었다.
* * *
“태산아. 김태산?”
“허억-!”
악몽에서 깨어난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반응에 놀란 연욱이는 식은땀으로 젖은 내 등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아?”
“어? 으응.”
꿈이었나.
꿈이지만 기분이 참 더럽다. 1년 전에 일어난 그 일을 꿈으로 또 겪다니. 아니, 차라리 잘 된 건가? 내 의지를 더욱 확고하게 다 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설마, 또 그 꿈이냐?”
나를 깨웠던 연욱이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어….”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연욱이도 나와 같이 시대를 뛰어넘어 다시 눈을 뜬 사람이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야? 벌써 점심시간 끝난 거야?”
“누가 널 찾아와서.”
“날 찾아와? 누가?”
“모르겠어. 조폭들인 건 맞는데, 그놈들인지 아닌지는 몰라.”
드디어 그들이 온 건가? 아니면 다른 놈들인가?
직접 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겠냐?”
연욱이는 정말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몸이 허약하고 소심한 놈이 이십 년 후에 어떻게 호랑이 검사가 됐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괜찮아. 그놈들 어디에 있는데?”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난 연욱이와 함께 교실 밖을 나가 정문 쪽으로 발걸음을 했다.
지금 시대는 1985년 5월, 내 나이 18살.
2016년에 사고사로 위장 당해 죽은 내가 어떻게 31년, 아니 32년 전으로 돌아온 건지는 알 수 없다.
신의 장난질인지, 아니면 내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첫 영혼인지. 솔직히 나도 그 답을 알고 싶을 뿐이다.
절벽 아래로 떨어져 정신을 잃은 뒤, 곧바로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눈을 뜬 곳은 32년 전 내가 살았던 판잣집이었다.
내 비명에 놀라 일어나신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을 봤을 때 얼마나 오열을 했던지, 아직도 그 일만 생각하면 벅찬 감동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 몸은 17살 때의 몸이었고, 모든 것이 1984년도로 돌아와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다. 생각해 보라. 당신이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근데 난 10년이 아니고 32년이다.
하지만 젊어진 탓인지 오래된 기억들이 빠르게 복구가 되었고 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아니 그 이상의 힘을 되찾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같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연욱이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는 것.
나와 연욱이는 죽음에서 돌아온 것이었다.
“머리 꼴이 이게 뭐야! 네놈들은 여기 놀러 왔어? 그리고 누가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가라고 했어?”
점심시간 동안 학교 밖을 몰래 빠져나갔던 놈들이 다시 들어오다가 걸린 모양이었다.
학주는 훈계를 늘어놓으며 혼을 내고 있었지만, 학생들은 그런 학주를 비웃고 있었다.
그들의 비웃음을 느꼈는지, 학주는 더 강하게 나갔다.
“다 엎드려! 이 새끼들이 지금 말이 말 같지가 않아!”
엎드리라는 말에도 학생들은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이 학교가 워낙 꼴통들이 모인 곳이라 고분고분하지 않다.
“이, 이것들이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거야!”
학주가 언성을 높여도 학생들은 킥킥 웃음을 터트리며 대놓고 무시를 했다.
열이 뻗친 학주가 손을 올리자 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디 칠 수 있으면 쳐 보라는 저 겁도 없는 당당함.
되도 않는 가오만 잡을 줄 아는 놈들이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손찌검을 하려는 학주도 아니고 저 불량아들도 아니었다. 검은 중형차에서 내린 정장 차림을 한 남성이었다. 그의 곁으로 세 명의 떡대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난 저 남자가 누군지 금방 알아보았다.
화진 그룹, 아니지. 지금은 아직 화진 그룹이 세워지기 전이니 화진파라고 불러야 한다. 그리고 저 남자는 화진파에서 행동대장 중 하나인 황규혁.
훗날 화진 그룹의 금융 계열사 부사장을 맡는 사람이다.
이번 생은 내가 운이 좋은 건가? 저 남자가 날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내가 원했던 화진파가 이렇게 직접 내 앞에 나타나 준 건 아주 좋은 기회다.
저 남자의 눈에 들 기회.
그리고 날 위한 무대도 이미 앞에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선생님.”
나는 황규혁을 못 본 체하며 학주에게 다가갔다. 저 불량한 학생들은 날 보자마자 큰 목소리로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놈들은 1학년인가?
“무슨 일이십니까, 선생님?”
허리도 펴지 않은 채 바짝 조아리고 있는 학생들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던 학주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놈들이 점심시간에 학교를 이탈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놈들 머리 꼬락서니 좀 봐라. 이게 학생이냐?”
확실히 이놈들이 잘못한 게 맞았다.
난 볼멘 목소리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몇 학년 몇 반이야?”
“1학년 3반입니다, 선배님!”
“그래? 김학태가 있는 교실이지?”
“그, 그렇습니다.”
“내가 분명 학교 규정에 따르라고 했을 텐데? 잘 몰랐던 거야 아니면, 그냥 날 무시한 거야? 학태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
1학년 3반 통의 이름을 말하자 그들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내 말 한마디면 1학년 3반 전체가 집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후에 일어날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할 것이다.
상황판단이 된 것인지, 이놈들은 내게 용서를 구걸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나한테 사과를 왜 해? 그리고 누가 버릇없게 선생님께 눈 똑바로 뜨고 따박따박 말대꾸하라고 했어?”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 용서해 주실 때까지 빌어. 안 그러면….”
굳이 뒷말을 끝맺진 않았다. 이 정도 말했으면 저놈들도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험악하게 돌아가던 상황이 한 번에 정리가 되자 학주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 정도 했으면 되겠지?
난 슬쩍 이 상황을 처음부터 담담히 지켜보고 있던 황규혁을 바라보았다. 내 계획이 성공한 걸까? 그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걸려 있다.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신호가 분명하다.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가벼운 묵례도 하지 않은 채 내가 당당히 말을 걸자, 황규혁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언뜻 봐도 자신이 조폭이라는 것을 알 텐데, 전혀 주눅이 들지 않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든 것일까?
“네가 김태산이냐?”
“예.”
“얘기는 많이 들었다.”
“얘기라면….”
“서울에서 가장 꼴통이라는 이 학교를 세 달 만에 정리하고, 지금은 서울 전 지역 학교들을 통합하고 있다며? 그것도 1년 만에.”
1년. 내가 계획한 건 7개월이었는데, 그 안에 서울에 있는 전국 학교들을 통합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아직 절반밖에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서 고등학교에서 졸업한 학생 중 약 70%가 조폭으로 빠진다. 그만큼 이 학교가 막장이라는 것이고, 주먹으로는 전국구에서 최고였다.
그런 이 꼴통 학교에 내가 자퇴하지 않고 더 나아가 통합 통에 오른 것은, 조폭들의 귀에 내 이름이 퍼지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꽤 많은 사람이 이곳 경서 고등학교 출신이니까.
물론, 화진파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경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특히 더 인상 깊었던 건, 네가 이 꼴통 학교를 모범적인 학교로 만들어 간다는 거야. 일정한 성적이 나오지 않은 학생들을 밤에도 공부를 시킨다며? 또 선생에게 대드는 놈들은 네가 직접 손보고.”
이들에게는 참 신선했을 것이다. 통합 통이 된 녀석이 교장 선생보다도 더 학교를 위해 학생들을 관리하고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이곳 학교의 선생들은 날 무척이나 좋아한다. 내 덕분에 그들도 더는 이 불량 학생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학교 안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놈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학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었을 뿐입니다.”
“하하하! 이거, 진짜 웃긴 놈이네? 소문대로 특이하구만, 마음에 들어.”
그는 담배를 꺼내 문 뒤 불을 붙였다.
“너, 내가 어디 학교 나왔는지 알고 있냐?”
당연히 알고 있다. 칠 년 전 이곳 경서 고등학교의 통을 차지한 사람이 바로 이 남자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진 않았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황규혁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내가 네 대선배야. 여기 칠 년 전에 졸업했어.”
난 곧바로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후배가 선배님을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하하.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인사를 받으니까 기분이 좋네.”
황규혁은 잠시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난 그의 다음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김태산.”
“예, 선배님.”
그리고 내가 무려 1년 동안 기다렸던 제안을 황규혁이 건넸다.
“너, 우리 식구 해 볼 생각 없냐?”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향한 제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