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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99화 (199/200)
  • < 가이아 >

    제이슨과 윌리엄, 스팬서는 산맥 아래에 도착했다.

    “그런데 제니퍼 말이야. 정말로 아쉬가 맞아?”

    스팬서의 물음에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아쉬야. 제니퍼는 더 이상 없다고 보는 게 맞아.”

    “무슨 그런 미친놈이 다 있어? 그럼 동료의 몸을 빼앗았다는 거잖아? 이거 우리도 위험한 거 아냐?”

    “아마 제니퍼라서 가능했을 거야.”

    “제니퍼라서 가능했다고?”

    “몸을 섞었을 테니까.”

    갑자기 스팬서의 표정이 굳었다. 안 좋은 생각이 하나 들었기 때문이다.

    “아쉬 그놈이 나한테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면 그냥 날 죽여줘. 알았지?”

    제이슨과 윌리엄이 이상한 시선으로 스팬서를 바라봤지만 스팬서는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고 다짐하듯 두 사람에게 확답을 받았다.

    “약속해. 그렇게 할 거지?”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럴 지경이 되면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지. 그렇게 할 테니 표정 좀 풀어. 이제 다 왔으니까.”

    제이슨의 말에 나머지 두 사람이 앞을 바라봤다.

    저 멀리 미궁의 입구가 보였다.

    아까 강하진이 나왔을 때와는 모양이 많이 달라졌다. 제법 그럴듯했다.

    강하진이 볼 때는 자연동굴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지금은 누가 봐도 인공미가 넘쳤다.

    반듯하게 돌을 깎아서 만든 입구였다. 주변은 온통 대리석이었고.

    “저 안에 마르바스가 있는 건가?”

    “일단은 그럴 거 같긴 한데······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마르바스를 만나 협상을 해야 한다.

    디펜더스는 마르바스가 지구에 침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마르바스는 디펜더스에 협력해 지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주고 말이다.

    그러려면 강하진이 사라져야 한다.

    강하진과 이 던전에 들어온 가디언스를 없애는 건 마르바스가 맡을 것이다.

    협상이 잘 된다면 말이다.

    “강하진은 아쉬가 죽여주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못 찾았을 경우도 생각해야 돼.”

    “아쉬도 못 찾은 걸 마르바스가 찾을 수 있나? 아쉬보다 마르바스가 강한 거 확실해?”

    “그건 나도 몰라. 내가 아는 마왕이라면 아쉬가 열 명이 동시에 덤벼도 못 이기지만, 마르바스는 비교적 약한 마왕이니까.”

    약해도 마왕은 마왕이다. 제이슨은 아무리 마르바스가 약해도 아쉬보다는 강할 거라고 믿었다.

    “지금은 그런 건 문제가 아니야. 과연 우리가 마르바스를 만날 수 있느냐가 문제지.”

    제이슨은 그렇게 말하며 산맥을 쭉 둘러봤다.

    난폭한 마력이 곳곳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산맥에 서식하는 괴물들이 들썩이는 중이었다.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

    사실 처음 지구에 왔을 때는 이렇게 일이 복잡하고 어려워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않았다.

    오히려 일이 너무 쉬울 거라고 여겼다.

    한데 일이 계속 꼬이고 있었다. 사실 마르바스가 나타나는 시기도 너무 빨랐다.

    마왕이 공 들여서 던전을 열고 차근차근 다른 세상을 공략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뜸을 들이지 않으면 온전한 힘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마왕이 제대로 다른 세상을 침공하려면 수십 년에 걸친 사전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걸 노리고 이곳 지구에 온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준비한다면 분명히 마왕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거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길 테니까.

    “아쉬는 어쩔 거야? 기다렸다가 같이 갈 건가?”

    스팬서의 물음에 제이슨이 피식 웃었다.

    “됐어. 지금은 같이 가봐야 방해만 돼. 아쉬는 강하진이나 찾으러 다니라고 해. 중간에 가디언스를 만나서 그놈들을 정리해주면 더 좋고.”

    어차피 오늘 여기 들어온 가디언스와 황수영은 살려서 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던전 밖에도 충분히 준비를 해뒀다.

    아마 던전에서 나가면 분명히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으리라.

    “자, 그럼 우리도 슬슬 바이어를 만나러 가볼까?”

    제이슨은 그렇게 말하며 미궁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윌리엄과 스팬서는 그런 제이슨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서둘러 뒤따라갔다.

    * * *

    강하진은 한참동안 가만히 선 채로 온몸에 스며드는 힘을 차분히 정리했다.

    근원의 힘이라는 걸 확실히 이해했다.

    그리고 그 힘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거기에 라파시드의 서를 몸에 받아들여 열 가지 힘을 하나로 융합했다.

    지금 하는 정리가 마무리 되면, 라파시드의 서에 담긴 열 가지 힘을 직접 쓸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정말 거대한 힘이었다.

    비록 제니퍼가 예전 아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해도 충분한 강자였다.

    그런 강자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었다.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은 어설픈 힘으로 말이다.

    그러니 이 힘을 완벽하게 얻을 수 있다면 대체 얼마나 더 강해지겠는가.

    어쩌면 마르바스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고작 그 정도가 아니야.’

    이 마르바스의 서는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다.

    또한 응용하는 방법에 따라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내는 것도 가능하다.

    강하진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힘을 조금씩 갈무리했다.

    그러고 있을 때, 갑자기 주변이 어둑어둑해졌다.

    분명히 자연스러운 변화는 아니었다. 어둠 자체에 짙은 마력이 스며들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과연 이런 일을 벌일 만한 존재가 누굴까?

    이 던전의 필드에 있는 괴물 무리는 전부 해결했다.

    산맥에 괴물이 좀 남아 있긴 하지만 그건 백호가 사냥 중이었다.

    미궁 입구를 지키던 마족, 드락 라이어는 강하진이 죽였다.

    “설마 마르바스?”

    아무리 생각해도 남은 건 마르바스뿐이었다. 아직 못 나왔을 거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빨리 나타난 모양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던 일은 마무리해야 한다.

    마르바스는 미궁 안에 있을 테니 여기까지 나오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테고 말이다.

    강하진은 심호흡을 했다. 흔들려선 안 된다.

    차분히 힘을 갈무리하던 강하진은 갑자기 뒤쪽에 나타난 강렬한 존재감에 하마터면 평정이 깨질 뻔했다.

    “마르바스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하던 일 계속 하세요.”

    듣는 순간 마음이 안정될 정도로 차분하고 나직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강하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힘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일을 계속 이어갔다.

    뒤에 나타난 사람은 굉장히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흔히 아름다운 사람에게 여신이라는 말을 쓰는데, 저 여인을 사람들이 본다면 아마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여신이라는 말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강하진은 반사적으로 엿보기부터 썼다. 던전 안에 있다는 건 각성자라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엿보기는 먹통이었다. 스킬이 사라진 게 아니라 저 여자를 상대로는 아예 통하지 않았다.

    이건 제이슨이나 윌리엄에게 엿보기가 통하지 않는 것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쓸데없는 얘기는 빼죠. 전 가이아에요.”

    가이아라는 말에 강하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범상치 않다 싶었는데, 역시나 여신이었다.

    “제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전 곧 소멸합니다.”

    강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이제 곧 죽는다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제가 나타난 이유는 당신이 지금 받아들인 힘 때문이에요.”

    “라파시드의 서?”

    “맞아요.”

    “그럼 당신이 라파시드?”

    가이아가 고개를 저었다.

    “라파시드는 제 대신 책을 엮은 사람이죠. 전 내용만 만들었어요.”

    가이아는 눈을 반짝였다.

    “누군가 그 힘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저와 연결되는 통로가 생겨나죠. 애초에 그렇게 설정된 힘이에요.”

    그렇게 설정되었다는 말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강하진은 분명히 라파시드의 서를 완벽하게 이해하면서 그 힘을 모두 자신에게 융합시켰다.

    만일 그 내용 안에 가이아와의 통로에 관한 것이 포함되었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강하진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근원의 씨앗?”

    가이아가 빙긋 미소 지었다.

    “맞아요. 그게 바로 저예요.”

    강하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가이아를 쳐다봤다.

    근원의 씨앗은 강하진이 근원의 힘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코어였다.

    풍운신공을 쓸 때 단전을 만드는 것처럼 근원의 힘도 중심이 있어야 한다. 그 중심이 바로 근원의 씨앗이었다.

    라파시드의 서를 받아들이면서 근원의 씨앗을 만들었고, 그걸 중심으로 힘을 차츰차츰 정리하는 중이었다.

    한데 그 근원의 씨앗이 바로 가이아라니 이제야 통로가 연결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가이아는 강하진의 힘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이곳에 투영한 것이다.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사실 잠들어 있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가이아는 차분히 할 말을 이어갔다.

    “원래 지금 이 세상은 한 번 망했었답니다.”

    강하진은 그 말의 의미를 대번에 알아들었다. 기대감 때문에 눈이 빛났다.

    “그렇게 망한 걸 제가 시간을 되돌려서 되살렸죠.”

    강하진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건 이미 아는 얘기다. 가이아가 시간을 돌렸을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고.

    “시간을 되돌린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전 그때 대부분의 힘을 잃었답니다.”

    이쯤 되니 강하진은 좀 의아해졌다.

    ‘설마 내가 회귀 전의 기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나?’

    지금 가이아의 태도를 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게다가 시간을 되돌리는 일에는 부작용도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몇 가지 장치를 해뒀죠.”

    그게 아마 가이아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칭호인 모양이었다.

    “다행히 장치가 잘 작동한 모양이네요. 이렇게 나와의 통로까지 열린 걸 보면.”

    사실 그게 아니었지만, 강하진은 굳이 그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았다.

    “예상하던 일이긴 했는데, 시간을 되돌리면 복원력이 작용해요. 보아하니 이번에는 그 복원력이 마르바스의 침공을 앞당기는 식으로 작용했나보네요. 잠들었던 시간이 이렇게 짧은 걸 보면······.”

    여기까지도 예상하던 바였다.

    가이아는 주위를 슥 훑어보고는 눈을 빛냈다.

    “이 근처에 타차원의 힘이 느껴지네요. 침공자 중에서 누군가가 죽었군요?”

    강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퍼가 죽었습니다.”

    “제니퍼. 위험한 서큐버스 퀸이었죠. 하지만 좀 이상하네요. 이것 역시 시간을 되돌리면서 일어난 변화일까요? 제가 알던 제니퍼보다 남은 힘의 잔상이 너무 커요.”

    강하진은 빠르게 아쉬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설명을 모두 들은 가이아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강하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제 안배가 그나마 먹혀서. 솔직히 당신을 가장 걱정했거든요. 당신이 또 그들에게 속아서 침공자와 손을 잡으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어요.”

    사실 안배가 먹힌 게 아니라 가이아가 원하던 회귀에 끼어든 이레귤러에 더 가깝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가이아 덕분에 이렇게 되긴 했다.

    “솔직히 당신이 근원의 힘을 깨우쳐 제가 남긴 씨앗을 품을 줄은 몰랐지만요. 제가 예상한 건 황수영이라는 사람이었는데.”

    확실히 황수영은 손꼽힐 정도로 대단한 재능과 잠재력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 강하진이 없었다면 황수영이 지금 이 자리를 차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윤경민도 결국은 황수영에게 갔을 테니까.

    하지만 그랬다면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어떤 식으로 흘러갔든 일이 잘 풀려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제 모든 걸 맡기고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강하진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혹시 지금 지구의 상황이 어떤지 확인은 해봤습니까?”

    그 물음에 가이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뇨. 아직이요. 하지만······ 짐작은 가능하죠. 아쉬라고 했던가요? 그런 대단한 침공자까지 합류했다면 결코 쉬운 상황이 아니었겠죠. 지구가······ 많이 망가졌나요?”

    “직접 확인할 시간도 없는 겁니까?”

    가이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그렇게 낭비할 힘이 아까워요.”

    강하진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 다음, 담담히 말을 꺼냈다.

    “일단 일본은 망했습니다.”

    “역시 그렇게 되었군요. 예전에도 일본은 상황이 어려웠죠. 마르바스가 작정하고 노린 나라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애초에 저도 버렸답니다.”

    “그리고 나머지 나라는 대체적으로 멀쩡합니다.”

    “예?”

    가이아가 깜짝 놀라 강하진을 바라봤다.

    “날아간 도시도 몇 개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멀쩡합니다. 괴물지대가 몇 군데 있지만 최근에는 던전도 줄어드는 추세니 조만간 더 안정될 겁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거짓말이 아니군요?”

    가이아는 정말 크게 놀랐다. 설마 고작 시간을 되돌리고 몇 가지 장치를 해둔 것만으로 이 정도로 일이 잘 풀릴 줄은 몰랐다.

    “그러니 정말로 안심해도 됩니다. 이제 세 놈 남았고, 마르바스만 처리하면 되니까요.”

    가이아는 신기한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일단 마르바스를 만나봐야 알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질 것 같지 않습니다.”

    가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라파시드의 서를 얻었으니 그런 자신감도 이해가 가긴 하네요. 그래도 안심해선 안 된답니다. 힘을 얻었으면 그 반작용도 있으니까요.”

    가이아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건 정말 찰나의 순간 지나가버렸다.

    강하진은 그 순간을 아주 정확히 포착했다. 그래서 좀 의문이 들었다.

    ‘설마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마르바스의 서는 인간의 몸에는 담을 수 없는 힘이었다.

    지금 가이아의 걱정은 아무래도 그 부분인 듯했다. 하지만 강하진은 이미 풍운신공을 이용해 그 부분을 해결해 버렸다.

    ‘설마 그래도 신인데······.’

    라고 생각하던 강하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도 가이아는 전지전능한 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시간을 돌린 건 신의 한수였지.’

    그거 하나는 인정할 만했다. 덕분에 강하진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아무튼······.”

    가이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더 이상 남은 미련이 없는 눈빛이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이렇게 할 가치가 있어서.”

    가이아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하진은 그녀가 정말로 여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웃음에는 초월적인 숭고함이 담겨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미소였다.

    “아마 당신이 지금 얻은 힘은 인간의 몸으로는 제대로 쓰기 어려울 거예요.”

    가이아의 말에 강하진이 눈을 빛냈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그래서 힘을 얻은 순간 통로를 만드는 안배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안배를 남기는 것보다 이게 더 중요하다고 여겼거든요.”

    가이아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제 힘을 받아들이시면 돼요. 그럼 라파시드의 서에 담긴 힘이 더욱 끈끈하게 이어질 거예요. 당연히 훨씬 안정될 거고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몸이 버티지 못해서 터져 버릴 거예요. 그러니······ 제 힘을 거부하지 말아주세요.”

    상대가 거부하면 힘이 튕겨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렇게까지 준비한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

    강하진은 놀라울 정도로 담담히 물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됩니까?”

    가이아가 빙긋 웃었다.

    “당신 안에서 살아가게 되겠죠.”

    “내 기억이 되어서?”

    가이아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자신의 존재를 연료로 써서 행하는 작업이었다.

    당연히 존재가 사라질 것이다.

    “됐습니다.”

    “예?”

    가이아가 크게 당황했다. 이건 자신이 원하던 전개가 전혀 아니었다.

    “이왕 깨어났으니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끔 조언이나 해주시면 됩니다. 그래도 명색이 신이니까.”

    “아니, 위험하다니까요? 몸이 펑하고 터져버릴 수도 있다고요!”

    강하진이 양 팔을 가볍게 벌리며 물었다.

    “그래서 제 몸이 터질 것 같습니까?”

    “어······ 아뇨. 이게 아닌데? 어? 왜 멀쩡하지? 왜 이렇게 안정적이에요?”

    강하진은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자, 그럼 갑시다. 마지막 사냥을 하러.”

    성큼성큼 걸어가는 강하진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가이아가 황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가는 방향에는 거대한 산맥이 우뚝 서 있었다.

    이제 마르바스만 남았다.

    덤으로 제이슨 일당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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