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197화 (197/200)
  • < 가디언스대 디펜더스 >

    “저기 있군.”

    제이슨은 저 멀리 무리지어 있는 가디언스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이동을 멈췄다.

    아직 거리가 멀어서 저길 발견한 사람은 제이슨이 유일했다.

    윌리엄과 제니퍼도 그저 어렴풋이 거기 뭔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뿐이었다.

    다른 디펜더스 각성자들의 눈에는 지평선만 보였다.

    그들은 그저 끝없이 이어진 황무지 중간에 멈춰서 잠깐 쉰다고 여겼다.

    제이슨은 윌리엄과 제니퍼, 스팬서를 불러 모았다.

    나머지 각성자들은 각자 알아서 쉬고 있었다.

    던전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일이 없었기에 긴장이 살짝 풀어진 상태였다.

    괴물이라도 한 번 만났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벌써 10시간이 넘게 지났는데도 괴물은커녕 짐승 한 마리 못 봤다.

    제이슨은 마력을 이용해 소리를 차단했다.

    “가디언스가 보여. 알겠지만 우리의 이동경로를 다 꿰고 있어.”

    “우리가 노린다는 것도 얼추 눈치챈 것 같고.”

    “슬슬 미리 노쿨라를 활성화 시키는 게 나으려나?”

    “뭐 하러. 본 다음에 써도 돼. 미리 쓰면 컨트롤해서 저기까지 데려가는 중간에 변수가 생길 수 있어.”

    “하긴.”

    “암흑용 쪽은? 싸우다보면 암흑용이 달려올지도 모르는데.”

    그 말에 제이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가 마족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텐데, 암흑용이라서 문제였다.

    “거리가 좀 가깝긴 하지만, 뭐 상황 봐서 적절히 처리하도록 하지. 아니면 누가 나서서 암흑용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도 되고.”

    그게 제일 합리적인 방안 같았다.

    “제가 맡죠.”

    제니퍼가 살짝 손을 들고 말했다.

    다들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서큐버스 퀸인 제니퍼라면 암흑용과 괴물 무리를 가장 잘 유인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좋아. 그럼 암흑용은 제니퍼가 알아서 하는 걸로 하고 우린 가디언스에 집중하지.”

    제이슨이 그렇게 말하며 가디언스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일단 가디언스를 박살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들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그건 지구의 각성자들 사이에서나 그렇다.

    보아하니 다들 벽을 넘은 것 같지만, 고작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황수영도 있었군.’

    가디언스 사이에 있는 황수영의 모습이 보였다.

    잘하면 던전 브레이커까지 손아귀에 넣을 수도 있을 듯했다. 황수영만 없다면 어떻게 되지 않겠는가.

    제이슨의 머릿속에서 이후의 계획들이 차근차근 이어졌다.

    일단 이 던전에 들어온 사람은 전부 죽어야 한다.

    디펜더스의 멤버인 자신과 윌리엄, 제니퍼와 스팬서를 제외한 모두가.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가디언스를 장악한 윤경민을 포섭하거나 죽인 후, 수뇌부를 싹 정리해 버리면 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디언스에 합류하면 끝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디언스는 제이슨의 것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리고 완벽하게 가디언스을 장악한 순간이 세계의 왕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이 될 것이다.

    이후의 일을 상상하는 제이슨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맺혔다.

    그러려면 첫 단추를 잘 꿰는 게 중요했다.

    저기서 디펜더스를 기다리고 있는 가디언스를 압도적인 격차로 박살을 내버려야 한다.

    “자, 슬슬 가볼까?”

    모든 생각을 마무리한 제이슨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이 전부 그 뒤를 따랐다.

    이내 다른 각성자들의 눈에도 가디언스가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어? 저기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디언스 같은데요?”

    가디언스를 발견한 각성자들이 저마다 말을 꺼냈다.

    “잘 됐네요. 가디언스는 강력한 길드인데 이런 초거대 던전에서 함께 하면 큰 힘이 될 겁니다.”

    각성자들은 다들 가디언스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디펜더스의 서포터는 이익을 위해 뭉치긴 했지만, 지구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이 훨씬 중요했다.

    그들은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니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가디언스를 굳이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가디언스를 싫어할 때는 이익에 방해가 될 때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곳에서 더없이 든든한 존재가 바로 가디언스였다.

    윌리엄과 스팬서가 제이슨에게 눈치를 주었다. 얼른 노쿨라를 활성화 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제이슨은 그러지 않았다.

    서로가 더 가까워질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디펜더스 각성자들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에 반가움이 떠오른 순간, 제이슨이 노쿨라를 활성화 시켰다.

    강력한 환각 작용이 디펜더스의 각성자들을 덮쳤다.

    물론 처음에는 다들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가디언스가 괴물로 변해 버렸으니까.

    그걸 얼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노쿨라의 힘은 그 위화감을 짓눌러 버렸다.

    디펜더스 각성자들의 표정과 눈빛이 확 달라졌다.

    받아들이지 못한 현실을 비틀어 기억을 왜곡해 버린 것이다.

    “괴물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명령만 내려 주시면 바로 공격하겠습니다.”

    갑자기 투지를 불태우는 디펜더스 각성자들을 보며 스팬서는 정말 놀랐다.

    “끝내주네.”

    왠지 평소보다 파이팅이 훨씬 넘치는 것 같은 건 그저 기분 탓일까?

    “노쿨라는 단순 환각제가 아니야. 일종의 버프 포션이기도 하다고. 어쨌든 마력을 기반으로 만든 약이니까.”

    약효가 끝날 때까지 공격적 성향을 높여주고 통증을 완화시키며 반응속도를 높여준다.

    당연히 평소보다 부상 위험이 훨씬 높아지고, 대신 단기간에 큰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싹 죽여. 어차피 지구에 해악만 끼치는 놈들이니까. 공격!”

    제이슨의 명령에 디펜더스 각성자들이 빠르게 돌진했다.

    기합이나 함성도 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무기를 움켜쥐고 오직 괴물만 노려보며 달려갔다.

    이내 싸움이 벌어졌다.

    꽈과과과광!

    폭음이 울렸고, 사방으로 마력폭풍이 쏟아져나갔다.

    디펜더스 각성자들의 실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저 중 30%가 벽을 넘었다. 물론 거기에는 제이슨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디언스를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제이슨은 양 옆에 있는 윌리엄과 스팬서를 한 번씩 바라봤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싸움터를 향해 달려갔다.

    제이슨은 가장 마지막에 움직였다. 가디언스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강하진을 찾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강하진은 보이지 않았다.

    ‘미궁에 들어갔을 테니까.’

    제이슨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 싸움은 이미 이긴 거나 다름없었다.

    * * *

    제이슨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건, 황수영 때문이었다.

    황수영과 싸운 건 윌리엄이었는데, 전투 스타일이 미묘하게 달랐다.

    또한 쓰는 스킬이 예상과 많이 달랐다.

    결정적으로 제이슨이 예상했던 것보다 지나칠 정도로 강했다.

    한 번 이상하다고 여기니 사방에서 이상한 점들이 하나둘 발견되었다.

    일단 가디언스가 너무 조용했다.

    다들 입을 앙다물고 전투에 집중했다. 사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황수영이나 김지혜가 전투 지시를 몇 번은 내릴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싸웠다.

    그래서 이 전투 현장은 오직 디펜더스들의 외침과 기합, 비명으로만 가득 채워졌다.

    가디언스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았다.

    제이슨이 가진 가디언스에 대한 정보는 그들의 전투 스타일이나 가진 능력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였으니까.

    예를 들면 재산 현황이라거나 사업적 움직임, 정치인들과의 관계 같은 것들 말이다.

    아니면 주요 인물의 가족관계나 인간관계라거나.

    당연했다. 디펜더스에게 있어서 가디언스의 전투적 역량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나중에 상황이 어떻게 되건 가디언스를 상대로 모든 걸 걸고 싸울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제이슨이 전투적 역량을 주목한 사람은 강하진이 거의 유일했다.

    그나마 황수영이나 김지혜, 이지영 정도에 약간 관심을 가진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엔 그녀들이 보유하지 않은 스킬을 쓰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의심스러웠다.

    제이슨은 일단 윌리엄과 스팬서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지시했다.

    싸우다 물러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기에 두 사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전투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왔다.

    “왜 그래? 빨리 안 도와주면 저기서 날뛰는 황수영한테 우리 애들 다 죽어.”

    “그래? 의외네. 김지혜나 이지영은 별 거 없던데. 솔직히 그동안 너무 과대평가했어.”

    둘의 대화에 제이슨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뭔가 이상해.”

    “뭐가 그렇게 이상한데? 일단 저놈들부터 다 죽이고 시작하자고. 우리 애들 다 죽기 전에 가디언스는 치워야지. 안 그래?”

    제이슨은 다급히 말했다.

    “아무래도 저놈들 가디언스가 아닌 것 같아.”

    “무슨 개소리야. 그따위 얘기 하려면 난 간다.”

    스팬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가디언스를 향해 달려갔다.

    제이슨이나 윌리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상당한 강자였기에 금세 가디언스 길드원 몇 명을 동시에 압박하며 밀어냈다.

    하지만 윌리엄은 스팬서보다 훨씬 신중했다. 그리고 제이슨을 잘 알았다.

    그가 아는 제이슨은 절대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렇게 중요한 싸움 중에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지?”

    “황수영. 내가 들은 정보랑 너무 달라.”

    윌리엄의 시선이 황수영에게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그녀와 싸우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러고 보니······ 창을 쓰긴 하는데, 창 같지 않은 느낌이긴 했지.”

    윌리엄도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위화감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그의 표정이 확 변했다.

    “설마? 우리 환각에 당하고 있는 건가?”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았다.

    “환각에 당했다고?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일단 저놈들부터 싹 정리하자고. 우리가 환각에 당했건, 저들이 가디언스가 아니건, 지금은 안 중요해.”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수긍했다.

    맞는 말이었다. 일단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은.

    제이슨도 본격적으로 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디펜더스가 거의 일방적으로 가디언스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제이슨은 굳이 힘을 아끼지 않고 마구 쏟아냈다.

    일단 이 싸움을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적을 80%쯤 죽여 버렸을 때, 갑자기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전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콰아아아아!

    그냥 마력의 파동이 아니었다. 근원의 힘이 잔뜩 담긴 파동이었다.

    제이슨은 흠칫 놀라 전투를 멈췄다.

    그리고 주변이 차근차근 깨져 나가는 광경이 보였다.

    강력한 근원의 힘이 디펜더스를 둘러싼 환상을 깨뜨린 것이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을 다들 멍하니 바라봤다.

    사방에 죽은 괴물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윌리엄이 방금 죽인, 황수영인 줄 알았던 존재는 다름 아닌 암흑용이었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그들이 상대하던 괴물들이었다.

    “크워어어어어!”

    괴성을 지르며 남은 괴물들이 달려들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디펜더스는 이를 악물고 괴물과 싸웠다.

    전투는 금세 끝났다.

    디펜더스의 승리였다. 하지만 승리라고 말할 수 없는 승리렸다.

    제이슨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방금 마력 파동을 뿜어낸 존재를 바라봤다.

    거기에 서 있는 사람은 제니퍼였다.

    “쯧, 벌써 이렇게나 당해 버린 거야?”

    제이슨은 그런 제니퍼를 멍하니 바라봤다.

    저기 있는 제니퍼는 제니퍼이지만 제니퍼가 아니었다.

    어떤 감각이 제이슨의 뇌리를 강렬하게 울렸다.

    “설마······ 아쉬?”

    제이슨의 말을 들은 제니퍼의 얼굴에 매혹적인 미소가 맺혔다.

    * * *

    강하진과 가디언스는 디펜더스의 전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다들 너무 놀라서 입을 꾹 다문 채, 디펜더스의 싸움만 지켜봤다.

    그들을 처음 놀라게 했던 건, 암흑용을 비롯한 괴물 무리가 자신들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점이었다.

    정말 너무 똑같아서 도저히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괴물의 수가 가디언스보다 훨씬 많아서 여기에 없는 다른 길드원들이 더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강하진이 쓰는 라파시드의 서가 가진 힘은 정말 대단했다. 이런 대규모 인식 왜곡까지 가능할 정도가 되었으니까.

    물론 순수하게 라파시드의 서만 이용한 건 아니었다. 거기에 강하진의 스킬이 약간 덧씌워졌다.

    강하진에게도 [환영살포]라는 환상 계열의 스킬이 있었다. 그걸 좀 가미한 것만으로 아주 훌륭한 환상이 완성되었다.

    가디언스가 두 번째로 놀란 것은 디펜더스의 행동이었다.

    그들은 처음에 가디언스를 보고 분명히 안도했다. 그들의 말과 태도를 멀리서나마 지켜볼 수 있었는데, 이대로 가면 그들과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한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니 괴물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가디언스의 모습을 한 괴물들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다만 강하진은 훨씬 냉정한 눈으로 디펜더스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묘한 마력반응이 일어나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 마력은 그들의 뇌를 녹이고 그 자리를 대체했다.

    아마 그것이 환상을 보게 만드는 듯했다.

    “특수한 환각제를 먹은 모양입니다. 아니면 그 비슷한 스킬에 당했거나.”

    강하진의 말을 들으면서도 가디언스는 디펜더스의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일이 벌어졌다.

    강한 마력 파동이 일어나면서 환상이 깨진 것이다.

    가디언스의 눈에도 다시 괴물이 보였다.

    하지만 정작 강하진은 괴물을 보고 있지 않았다. 강하진의 시선은 온통 방금 나타난 제니퍼에게 꽂혀 있었다.

    제니퍼를 본 강하진의 뇌리에 한 사람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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