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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95화 (195/200)
  • < 마르바스의 미궁 2 >

    “어그로 튀었어요! 조심해요!”

    뒤에서 들려온 외침에 김지혜는 눈을 번득이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녀의 앞에는 어두운 기운을 풀풀 날리고 있는 마족이 칼처럼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채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그 마족과 좀 떨어진 곳에 이지영과 황수영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중이었다.

    김지혜가 달려들자, 황수영과 이지영도 그녀에게 맞춰 움직였다.

    황수영이 먼저 창을 찔러 넣었다. 빈틈을 완벽하게 노린 찌르기였다.

    쩡!

    하지만 마족은 너무나도 손쉽게 그 공격을 막아냈다.

    이지영이 그런 마족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쉬쉬쉭!

    빠르게 이어진 세 번의 검격을 마족이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피해냈다.

    정확히 그 타이밍에 돌진하던 김지혜가 마족에게 도달했다.

    마족이 김지혜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김지혜는 거기에 맞서지 않고 훌쩍 뛰어서 마족을 넘어가 버렸다.

    김지혜가 위로 올라간 찰나의 순간 뒤에서 달려오던 괴물이 마족을 덮쳤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김지혜의 등을 공격하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마족은 당연히 그것까지 예상하고 있었기에 달려드는 괴물에게 자신의 손톱을 콱 박았다.

    꽈득!

    그 순간 마족은 갑자기 정수리가 서늘해져서 다급히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꽈드드득!

    김지혜의 검이 마족의 어깨를 깊이 파고들었다.

    지금까지 싸우면서 처음으로 마족에게 준 상처였다.

    마족이 인상을 쓰면서 거칠게 팔을 휘둘러 김지혜를 쳐냈다. 아니, 쳐내려고 했다.

    그 순간 타이밍 좋게 끼어든 황수영만 아니었다면.

    쩌어어어어어엉!

    황수영의 창이 마족의 손과 충돌하며 거대한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황수영은 이를 악물고 그걸 버텨냈다.

    그 잠깐의 멈춤이 김지혜가 빠져나갈 수 있게 해 주었고, 이지영이 기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촤아아아악!

    이지영의 검이 마족의 허벅지를 길게 베고 지나갔다.

    “크아아아아아아!”

    마족은 괴성을 지르며 온몸으로 힘을 내뿜었다.

    세 사람은 다급히 거리를 벌렸다.

    피가 줄줄 흐르던 허벅지가 급격히 아물었다.

    하지만 어깨는 그렇게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상처가 너무 깊어서 회복에 시간이 좀 필요했다.

    김지혜는 그럴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건 황수영이나 이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은 다시 마족에게 달려들었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정교한 협공이 계속 이어졌다.

    마족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늘어났다.

    보통은 바로바로 회복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상처 회복 속도가 차츰 느려졌다.

    그러면서 움직임도 둔해졌다.

    이지영과 황수영, 김지혜도 상처를 입지 않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김지혜는 힐러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마족이 쓰러졌다.

    쿠웅.

    바닥에 쓰러진 마족의 눈에 좀 떨어진 곳에서 괴물 무리와 싸우는 가디언스 길드원들이 보였다.

    당하는 괴물들의 모습이 꼭 자신 같았다.

    ‘쉽지 않겠어.’

    그게 마족이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 * *

    첫 번째 마족을 무사히 죽인 가디언스는 한동안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다른 괴물 무리가 여기까지 올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마족이 강한 놈이라고 했죠?”

    “맞아요. 그러니 다음은 좀 더 수월하겠죠. 대신 저기 있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겠지만.”

    황수영이 약간 떨어진 곳에서 쉬고 있는 가디언스 길드원들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이쪽에는 전투병사도 있잖아요. 아까 보셨죠? 장난 아닌 거.”

    이번 전투에서 강하진이 보내준 전투병사가 한 역할은 미미했다.

    그들에게 김지혜가 맡긴 건 견제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전투병사의 강함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한데 뭉쳐서 나오는 병사들의 힘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아마 괴물 무리가 좀 더 강하더라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이에 자신들이 마족을 처리하고 합류하면 훨씬 쉽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나저나······ 저 마족이 아까 하던 일, 보셨죠?”

    이지영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두 사람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꼭 무슨 의식 같아 보이지 않았어요?”

    이지영의 물음에 황수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에요. 아까 그놈은 구멍을 뚫고 있었던 거예요.”

    “구멍이요?”

    이지영과 김지혜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구멍이라는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떠올린 생각이 있었다.

    일본에서 싸웠던 구더기 괴물이었다.

    그 구더기 괴물이 차원의 구멍을 뚫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일본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

    황수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오랜만에 퀘스트가 하나 떴거든요.”

    “예? 퀘스트요?”

    “네. 퀘스트. 구멍 뚫는 마족을 죽이라네요. 대가도 없으면서. 쳇.”

    김지혜와 이지영은 멍하니 황수영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

    “설마 다른 마족도 이러고 있는 거예요?”

    “아마도요? 그러니 퀘스트가 떴겠죠?”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구멍을 막았는데도 일본에 지옥문이 열렸다. 한데 만일 구멍이 제대로 뚫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쩌면 세계에 지옥문이 열릴지도 모른다.

    “얼른 가죠. 구멍 뚫기 전에 처리하지 않으면 큰일 날지도 몰라요.”

    황수영은 두 사람이 자신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자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데 보아하니 서두르는 사람이 이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가디언스의 핵심 멤버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두 번째 마족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 * *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그냥 우리끼리 가는 게 어때?”

    윌리엄의 표정에는 약간의 염려가 깃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들이 하려는 짓은 엄연히 뒤치기였다.

    한데 거기에 디펜더스의 서포터들을 저렇게 주렁주렁 달고 가면 나중에 그 수습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벌써부터 수습할 일이 생각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상관없어. 어차피 다들 돌아가지 못할 테니까.”

    “못 돌아간다고?”

    윌리엄이 놀란 표정으로 제이슨과 뒤따라오는 각성자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지금 따라오는 각성자의 수가 무려 200명이었다.

    그것도 그냥 각성자가 아니라 디펜더스 최상위 각성자로만 200명이었다.

    실질적으로 제이슨을 비롯한 진짜 디펜더스 멤버를 제외하면 저들이 디펜더스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중요한 각성자들이었다.

    한데 그들을 모두 소모품으로 써먹는다고?

    윌리엄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말이 돼? 디펜더스를 여기서 끝장 내버릴 생각이야?”

    제이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는 배를 갈아탈 거야.”

    “배를 갈아탄다고?”

    “디펜더스에서 가디언스로. 어차피 처음에 이름을 정할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원래는 우리가 가디언스라는 이름을 쓰려고 했었지. 그놈들이 그렇게 단 기간에 유명해지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빼앗을 수 있었을 텐데.”

    “됐어. 어차피 지난 일이고, 이젠 이름뿐 아니라 나머지도 싹 가져야겠어.”

    “뭐······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굳이 저들을 소모할 필요가 있을까?”

    “고작 우리 넷이서 가디언스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제이슨이 차가운 눈으로 윌리엄을 쳐다보며 물었다.

    윌리엄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마르바스의 던전에 들어간 가디언스의 전력을 가늠해봤다. 그리고 그걸 자신들과 비교해봤다.

    만일 마르바스라는 존재가 없다면 자신들의 필패였다.

    지금의 강하진은 그 정도로 강했다.

    자그마치 아쉬를 이긴 놈 아닌가.

    “그런데 강하진이 정말로 아쉬를 이긴 걸까?”

    “모르지. 우린 과정을 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는 법이야.”

    맞는 말이다. 어쨌든 강하진을 잡겠다고 간 아쉬는 사라졌고, 강하진은 멀쩡하게 복귀했다.

    아쉬가 죽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저들은 던전 안에 있을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을 상대하게 될 거야.”

    “말을 들을까?”

    어쨌든 디펜더스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한데 같은 목적으로 행동하는 가디언스를 디펜더스의 각성자들이 과연 공격하려고 할까?

    “들을 거야. 저들의 눈에 가디언스가 괴물처럼 보일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어차피 버릴 놈들이잖아. 노쿨라를 주사했어.”

    “뭐? 노쿨라? 그건 또 어떻게 구했어?”

    제이슨이 피식 웃었다.

    “아쉬가 제작법을 보유하고 있더라고. 재료 구하기가 좀 까다롭긴 했는데, 그것도 아쉬가 대부분 해결해줬지.”

    윌리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쉬가 아무 대가도 없이 그런 걸 알려주고 해줄 놈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쉬가 그 대가로 뭘 가져갔지?”

    제이슨이 제니퍼 쪽을 힐끗 쳐다봤다. 그걸 본 윌리엄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두 사람 주변을 마력의 막이 감쌌다. 윌리엄이 소리를 차단한 것이다.

    “제니퍼를 아쉬한테 넘겼다고? 너 제정신이야?”

    “어쨌든 아쉬는 죽었고, 제니퍼는 멀쩡하잖아? 그럼 된 거지.”

    윌리엄은 입을 다물었다. 결과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심각한 균열이 일어났다.

    동료를 팔아먹는 순간, 제이슨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도 노쿨라를 썼다니 디펜더스 문제는 해결된 셈이었다.

    노쿨라는 마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강력한 환각제였다.

    그것도 주입하는 사람이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방식으로 환각을 보여줄 수 있는 굉장히 세밀하고 뛰어난 환각제였다.

    그거라면 가디언스를 괴물로 보이게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윌리엄은 제니퍼 쪽을 힐끗 쳐다봤다.

    제니퍼는 디펜더스를 떠날 수 없다. 아니, 제이슨을 떠날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하다. 제이슨이 제니퍼의 코어를 가지고 있으니까.

    즉, 제이슨과 제니퍼는 정확히는 계약 관계였다.

    물론 일방적으로 제이슨에게 유리한 관계였다. 지구에 넘어오기 전에 제니퍼의 목숨과 맞바꾼 계약이었으니까.

    그 계약의 코어를 아쉬에게 넘긴 것이 분명했다.

    윌리엄은 머리가 복잡해져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갑자기 두통이 찾아왔다.

    * * *

    강하진은 점점 번져나가는 미궁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러면서 그 본질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쉽지 않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현재 강하진이 가진 감각은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강하진이 그동안 꾸준히 써온 스킬 [당당하게 엿보기]가 지속적으로 감각을 자극한 덕에 감각이 굉장히 발달했다.

    또한 열심히 시스템의 힘을 감지하려고 애쓴 덕분에 근원의 힘에 관한 감각도 굉장히 날카로워졌다.

    그 모든 감각을 동원하니 미궁의 변화가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저건 차원 침식의 일종이었다.

    저게 그냥 가능할 리 없었다. 뭔가 가능하게 만들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강하진은 그게 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밖에 있는 마족들이구나.’

    어쩐지 마족들이 회귀 전에 비해 너무 안 왔다 싶었는데, 저놈들은 그저 선발대에 불과했다.

    차원구멍을 뚫어 마르바스의 미궁을 이곳 던전에 덧씌우기 위한 선발대 말이다.

    ‘그럼 마르바스는 아직 못 온 건가?’

    강하진은 직감적으로 저 미궁이 완성되면 마르바스가 이곳으로 넘어올 토대가 완성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상황에서 강하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차원이 차원을 덮어씌우는 과정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강하진이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라파시드의 서가 유일했다.

    급한 대로 그것부터 펼쳤다.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그동안 꾸준히 숙련도를 높인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강하진은 진행이 확연히 느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꾸물꾸물 변해가는 미궁의 모습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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