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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93화 (193/200)
  • < 초거대 던전 3 >

    강하진은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백호부터 찾았다.

    백호를 데려온 이유가 시선을 돌리게 한 다음 자신이 미궁에 들어가기 위함이었는데, 이렇게 혼자 가버리면 어쩐단 말인가.

    일단 계약의 끈을 활용해 백호의 위치부터 파악해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백호는 지금 산맥으로 맹렬히 달려가는 중이었다.

    아마 산맥에 서식하는 수많은 괴물들이 내뿜는 마력의 향을 맡은 모양이었다.

    전부 벽을 넘은 괴물들이니 백호 입장에서는 얼마나 진수성찬이겠는가.

    이렇게 되면 굳이 의념으로 다시 부를 필요도 없어진다.

    어차피 백호에게 시킬 게 그거였으니까.

    “이러면 윈윈이네.”

    백호가 남은 아쉬의 잔해에 대한 미련을 끊었으니 이제 더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겸사겸사 미궁을 지키는 드락 라이어의 시선을 끌어줄 것이고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길드원들 전부 데려올 걸 그랬네.’

    생각해보면 길드원들을 전부 데려오고 전투병사를 소환해서 붙여주면 이 안에 있는 괴물 무리를 상대하는 데 별 무리가 없다.

    괴물 무리를 이끄는 마족은 황수영과 김지혜, 이지영이 힘을 모아서 상대하면 되고 말이다.

    버거울 수도 있지만, 가디언스에는 그 세 명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난 각성자가 수십 명이나 있다.

    아마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안팎으로 흔들어주면 훨씬 수월하게 미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봐야 늦었다.

    이미 백호를 데리고 들어왔으니까.

    강하진은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산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 때, 방금 강하진이 떠올렸던 사람들이 이곳 던전을 향해 대이동을 감행하는 중이었다.

    * * *

    “그런데 이렇게 우리 마음대로 움직여도 될까요?”

    김지혜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란히 이동하던 황수영이 그 말을 듣고 씨익 웃었다.

    “어차피 어떻게 하라는 지시는 특별히 없었잖아요? 그냥 자기 혼자 가겠다고 했을 뿐이지.”

    “그건 그렇지만······.”

    “우리도 그냥 그 던전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것뿐이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우리 말고도 강한 사람들 이제 많잖아요. 도시는 걱정 안 해도 돼요.”

    최근 던전 브레이커도 더욱 성장해서 이제 한국에서 모든 각성자를 소화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황수영은 가디언스와 협의해서 던전 브레이커의 상위 각성자들을 순차적으로 일본으로 데려왔다.

    지금 가디언스 거점도시에는 가디언스의 중위권 각성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거기에 던전 브레이커의 각성자들도 합류했다.

    물론 지금 초거대 던전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보다야 전력이 약하겠지만, 그래도 근처의 괴물들로부터 도시를 지키기에는 충분했다.

    “그건 저도 걱정 안 해요. 다만······.”

    “에이,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요? 강하진 씨도 괜찮을 거예요. 혹시 모르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럴 리가요.”

    김지혜가 헛웃음을 지었다.

    강하진이 뭐가 아쉬워 자신들을 기다린단 말인가. 혼자서도 얼마든지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인데.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좋은 생각이 좋은 운을 가져오는 법이라니까요?”

    김지혜는 황수영의 저 끝없는 긍정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함께 있으면 자신도 거기 전염되어서 잔걱정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으니까.

    “알았어요.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마스터도 좋아할 게 분명해요.”

    “바로 그거예요!”

    그렇게 가디언스와 황수영이 초거대 던전에 도착했다.

    사실 거점도시에서 굉장히 먼 곳에 있었지만, 이들의 속도도 만만치 않아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리 금방이라고 해도 몇 시간은 걸렸지만.

    “우리, 이 정도면 웬만한 스포츠카보다 빠른 거 아닌가요?”

    “훨씬 낫죠. 우린 지형에 상관없이 이 정도 속도를 내잖아요.”

    황수영과 이지영은 그런 얘기를 하며 죽이 맞아서 서로 낄낄대며 웃었다.

    “그나저나 초거대라고 하더니 직접 보니 위압감이 장난 아니네요.”

    “그래봐야 던전이죠. 안에 들어가서 싹 쓸어버리면 끝이에요.”

    “그건 그렇죠.”

    “자, 그럼 들어가 볼까요?”

    황수영이 그렇게 말하며 김지혜를 바라봤다. 김지혜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무겁게 끄덕였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안에 들어갔다.

    300명이 넘는 대인원이었다.

    가디언스의 핵심 길드원 전원과 그 바로 아래에 위치하는 상위 길드원 217명, 그리고 황수영이었다.

    * * *

    산맥으로 달려가던 강하진은 갑자기 던전의 마력 흐름이 달라지는 걸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멈췄다.

    이렇게 급격히 마력 흐름이 달라지려면 던전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마르바스가 미궁에서 나왔거나, 아니면 큰 전투가 벌어졌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큰 마력을 품은 자들이 대규모로 던전에 진입한 경우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강하진은 감각을 집중해 마력 흐름을 뒤트는 근원을 찾아갔다.

    방향이 던전 입구 쪽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누군가 이 던전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대규모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디펜더스라면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강하진은 다시 입구 쪽으로 되돌아갔다. [은폐]를 쓰고 있기에 디펜더스 정도면 들킬 염려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 안에 아쉬가 끼어있다면 모를까.

    하지만 아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강하진에게 죽었으니까.

    강하진은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력을 이용해 던전에 진입한 자들을 파악했다.

    그들이 누군지 확인하고 나니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강하진은 스킬을 취소해 모습을 드러낸 채 그들에게 다가갔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강하진은 굳이 그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온 건지 이해했다.

    입장을 바꿔서 자신이 저들과 똑같은 상황이었어도 저랬을 테니까.

    “어쩐 일이긴요. 던전에 각성자가 들어오면 당연히 사냥이죠. 여기 좀 어떤가요? 쓸 만한 괴물들 좀 있나요?”

    황수영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강하진에게 다가갔다. 일단 분위기를 잘 풀어놓는 게 중요했다.

    만일 강하진이 화를 내거나 정색하면 정말 곤란해진다. 그래서 눈치를 좀 살폈는데, 의외로 강하진의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황수영은 속으로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더욱 환하게 웃으며 강하진에게 바짝 다가갔다.

    “혹시 우리가 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하고 계신 거 아니었어요?”

    “맞습니다.”

    강하진이 담담히 대답하자, 황수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설마 강하진이 저런 대답을 해줄 줄은 몰랐다.

    그건 황수영뿐 아니라 함께 온 가디언스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 정말이라고요?”

    강하진이 빙긋 웃었다.

    “왜요? 제가 화라도 낼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어······ 그럴 리가요. 당연히 좋아하실 거라고 믿었죠.”

    “그런 말은 눈을 보면서 하셔야죠. 그렇게 시선을 피하면서 말하면 누가 봐도 거짓말이라는 게 티가 나잖습니까.”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었다.

    “이거 아무래도 이미지 관리를 좀 해야겠네요.”

    “아니라니까요? 진짜로 믿었어요. 진짜로.”

    황수영은 그 말을 하면서도 강하진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강하진은 또 픽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왕 오셨으니 이 던전 닫아보죠.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말에 다들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그동안 그들이 봐온 강하진은 절대 저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가짐도 그렇고 실력도 그렇고 어떤 던전이 나타나든 확실히 닫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강하진 아닌가.

    새삼 이 던전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들 긴장했다.

    “그렇게 긴장할 거 없습니다. 충분히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강하진은 그렇게 말한 다음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이곳에 있는 세 개의 괴물 무리를 사냥하는 일이었다.

    각 괴물 무리의 위치를 알려주고, 그 괴물 무리를 지휘하는 마족의 존재도 알려주었다.

    얘기를 모두 듣고 나자, 다들 눈을 빛냈다.

    “다들 상당히 떨어져 있기에 전투 중에 다른 무리가 끼어드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 부분도 염두에 두고 작전을 짜야 할 겁니다.”

    강하진의 말에 김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벌써부터 몇 개의 작전이 착착 떠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이런 대규모 전투는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해왔다.

    다만, 이번에는 적이 강할 뿐이었다.

    “괴물들도 그렇고 지휘한다는 마족도 그렇고 정말 만만치 않겠네요.”

    “그래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아, 이들도 데려가십시오.”

    강하진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백 명의 전투병사가 나타났다.

    마치 병풍을 펼치듯 촤르륵 늘어서며 나타났는데, 그걸 본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지혜 씨라면 이들까지 전부 잘 이용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김지혜가 자신의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맡겨주세요. 임무 확실히 완수하겠습니다.”

    그 모습이 제법 믿음직스러워 강하진이 빙긋 웃었다.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요.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시죠?”

    “물론입니다.”

    김지혜도 그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모든 작전에는 안전에 관한 사항이 반드시 포함되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뭔가 변수가 생기면 던전에서 빠져나가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여러분들만 믿고 저도 가보겠습니다. 백호가 기다려서요.”

    백호라는 말에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백호도 온 건가요?”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산맥을 힐끗 쳐다봤다.

    모두의 시선이 산맥 쪽으로 향했다.

    강하진은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그곳을 떠났다.

    산맥에 벽을 넘은 괴물들이 우글거린다거나 저 안에 미궁이 있고, 강한 마족이 있다는 얘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해봐야 걱정밖에 더 하겠는가.

    강하진이 떠나가자, 남은 사람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진형을 갖췄다.

    “자, 그럼 우리도 싸우러 가볼까요? 제일 먼저 여기부터 치겠습니다.”

    김지혜가 선택한 것은 마족이 이끄는 괴물 무리였다.

    세 괴물 무리는 각각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강한 마족과 비교적 약한 괴물들로 이루어졌다.

    다른 하나는 비교적 약한 마족과 강한 괴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암흑용이 이끄는 괴물들은 전부 용종이었다.

    그 중에서 김지혜가 선택한 것은 강한 마족과 약한 괴물이었다.

    * * *

    강하진은 산맥으로 가는 내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뭔가 마음이 딱딱 맞아 떨어진 느낌이 정말 좋았다.

    타이밍까지 맞았다. 만일 강하진이 산맥에 들어간 이후 저들이 던전에 들어왔다면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산맥을 둘러싼 마력패턴 때문에 던전 내의 마력 흐름 변화를 민감하게 캐치하지 못했을 테니까.

    아무튼 이제 산맥 바깥쪽에 있는 괴물 무리는 가디언스에 맡기면 된다.

    저들은 정말 잘 해낼 것이다.

    ‘변수가 있다면······ 디펜더스인가?’

    만일 디펜더스가 난입한다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까 가디언스를 만나러 갔을 때 나름 조치를 해두었다.

    아까 가디언스가 들어온 순간 마력 흐름이 달라졌을 때,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펜더스가 난입할 수도 있는데 아무 대비도 없이 무작정 백호만 데리고 왔으니 말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가디언스 덕분에 적절히 조치할 수 있었다.

    완벽한 대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빈틈을 찔려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왠지 예감이 좋아.’

    순차적으로 일이 착착 풀리는 느낌이었다.

    강하진은 더 속도를 내서 산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백호를 찾아갔다.

    백호는 한창 괴물 한 마리와 맹렬히 싸우는 중이었다.

    한데 묘하게 제대로 못 싸우고 있었다.

    원인은 마력패턴이었다.

    산맥에 들어오면서 몸에 마력패턴을 뒤집어썼는데, 그걸 떨쳐내지 않은 채 괴물과 싸우고 있어서 움직임이 어딘가 어색하고 삐걱거렸다.

    보아하니 상대하는 괴물도 벽을 두 번이나 넘은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강하진은 일단 괴물의 정수리에 낙뢰를 꽂았다.

    꽈르릉!

    백호와 한창 싸우다가 정통으로 벼락에 맞은 괴물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틈을 타서 강하진은 백호의 몸을 감싼 디버프 마력패턴을 벗겨냈다.

    쩡!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나며 백호의 몸에서 거친 마력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크아아아앙!”

    백호가 포효하며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괴물을 박살 냈다.

    강하진은 괴물을 와득와득 뜯어먹는 백호에게 다가갔다.

    “우리, 자리 좀 옮기자.”

    이제 드락 라이어의 신경을 건드릴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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