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191화 (191/200)

< 초거대 던전 1 >

회귀 전에 나타났던 초거대 던전의 수는 모두 72개였다.

여기서 초거대 던전이라는 것은 지름이 1킬로미터를 넘는 던전을 말한다.

굳이 그렇게 기준을 나눠서 구분한 이유는 지름이 1킬로미터가 넘어가는 던전은 그 이하의 던전과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일단 벽을 넘은 괴물이 최소한 한 마리 이상 서식하고 있었다.

물론 회귀 전에는 그게 벽을 넘은 괴물이라는 것도 몰랐지만, 다른 괴물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력한 괴물이라는 건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또한 내부에 특이한 구조물이 존재했다.

마르바스를 만났던 초거대 던전에는 거대한 산맥이 있었고, 그 산맥 속에 미궁이 펼쳐져 있었다.

마르바스도 그 미궁 안에서 만났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작 그 레벨로 벽을 넘은 괴물이 몇 마리씩이나 나오는 던전을 닫을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강하진이 엄청난 버프를 주었다고 해도, 또 수백 명의 서포터가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때는 위험하고 힘들긴 해도 그렇게까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느낀 감정이나 위험도가 그 정도였으니까.

당연히 제이슨이나 제니퍼, 윌리엄이 자신들의 힘을 속였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굳이 강하진을 속여서 마르바스에게 인계했을까?

솔직히 그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당시의 강하진 정도는 손쉽게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강하진은 그들의 정체를 파악한 뒤로 틈날 때마다 그 부분에 대해 고민했다.

혹시 자신이 놓치고 지나간 게 있으면 곤란하니까.

일단 마르바스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을 이용한 건, 분명히 특별한 버프 스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그들은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았음이 분명했다.

강하진과 함께 사냥을 하면서 차근차근 강해졌고, 초거대 던전을 닫기 위해서는 버프와 치료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전부 가정에 불과하다. 또,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일단 회귀 전과 비교해서 디펜더스가 사냥해야 할 상당한 부분을 가디언스가 가져왔다.

실제로 진행 자체가 빨라서 첫 번째 재앙이 벌어진 뒤로 얼마 지나지도 않았고.

그러니 그들이 성장할 시간이 회귀 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모자랐다.

한데 왠지 지금 분위기는 그들이 회귀 전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걸 넘어설 정도로 강해진 듯했다.

어쩌면 그건 회귀의 부작용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진짜 마르바스는 왜 제이슨이랑 손을 잡은 걸까?’

강하진이 제일 궁금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회귀 전의 실력이나 감각이 지금보다 많이 모자랐기 때문에, 당시 마르바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거의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조합해서 판단해 보면, 최소한 아쉬 정도는 되었으리라. 아니면 좀 더 강하거나.

만일 그렇다면 굳이 제이슨 일당과 손을 잡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냥 다 쓸어버리면 될 텐데 말이다.

‘뭔가 제약이 있었나?’

강하진은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

‘초거대 던전이라니. 그것도 3킬로미터짜리.’

회귀 전에 나타났던 초거대 던전 중에서 3킬로미터짜리는 딱 하나였다.

그리고 그 던전에서 마르바스가 나왔다.

강하진은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마르바스가 벌써 나타난 건 아닐까?

그럴 리 없다고 여기면서도 강하진은 서둘러 일본으로 향했다.

이건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 할 일이었다.

* * *

제이슨와 윌리엄, 제니퍼는 일본에 도착했다.

그들은 일본에 빨리 오가기 위해 미국의 거점에 공항을 지었다.

그건 지난번 일본에 있었던 사태에 대한 도움으로 디펜더스가 요구한 사항이었다.

미국에서는 최우선적으로 그것부터 해결해 주었고, 그 덕을 이번에 톡톡히 봤다.

세 사람은 미국 기지에서 일단 분위기부터 살폈다.

갑자기 일본에 나타난 초거대 던전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원래 일본은 위성으로 관측하기 쉽지 않은 나라였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얼마 전부터 뿌연 안개라도 낀 것처럼 위성사진이나 영상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초거대 던전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크기가 너무 컸다.

지름이 3킬로미터라는 건, 지상에서 던전의 높이가 3킬로미터나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사실 제이슨 일당은 그 던전이 나타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게 일본에서 열린다는 것은 미처 몰랐지만.

물론 추측은 했다. 일본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일본은 여러모로 불안정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던전도 수시로 열리는 것이고. 대신 다른 지역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지구에 열린 균열의 힘이 모조리 일본에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상황 봐서 발을 뺄 준비를 하는 것 같은데요?”

“맞아. 반쯤은 철수준비가 끝났어.”

“그러고서 우릴 불렀다고요?”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알고 있었잖아. 우린 우리가 할 일만 하면 돼.”

“기다리다가 가디언스가 던전 공략에 실패하면 보란 듯이 들어가 해결해주는 거 말인가요?”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무거웠다.

“아직 확신하지 마.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으니까. 마르바스를 믿을 수도 없고.”

“누가 믿어요? 마르바스는 마왕인데.”

마왕을 믿는 건 바보짓이다. 마왕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배신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존재니까.

항상 뒤통수를 때릴 기회만 엿볼 것이다.

그러니 이쪽도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해야 한다. 뒤통수를 맞는 것보다는 때리는 쪽이 훨씬 즐겁지 않겠는가.

“그래도 어찌어찌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에요.”

그 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이들이 한 일은 모험에 가까웠다.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진행순서를 비틀었다.

제이슨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제니퍼를 바라봤다.

“솔직히 너한테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저도 그래요. 제가 이런 쪽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마르바스의 계약자를 유혹하다니. 그게 가능할 줄이야.”

제니퍼가 요염하게 웃었다.

“저도 그게 가능할 줄 몰랐다니까요? 솔직히 제이슨의 계약자한테는 안 통했잖아요?”

“그랬었지.”

제이슨이 약간 의심스러운 눈으로 제니퍼를 스치듯 쳐다봤지만,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제이슨의 마음 한구석에 의심이 싹텄다.

과연 정말로 유혹하지 못했을까? 유혹했는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혹시 제니퍼가 마음먹으면 자신도 유혹하는 것이 가능한 게 아닐까?

이런 의심들 말이다.

“저놈들 또 오는군.”

윌리엄의 말에 제이슨과 제니퍼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기지의 사령관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디펜더스를 이곳에 상주시키고자 했다.

그 계획을 위해 수시로 찾아와 설득했다. 향후 일본이 가지게 될 가치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그건 사령관보다 오히려 디펜더스가 더 잘 아는 분야였다.

당연히 일본을 먹을 생각이었다. 그것도 디펜더스가 단독으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기지를 온전히 넘겨받을 필요가 있었다.

또한 나머지 다른 기지들은 전부 망해야 하고 말이다.

스페인 기지야 내버려 두면 자멸할 것이 분명하니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가디언스 쪽은 달랐다.

그쪽은 내버려두면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다.

물론 상대할 방법은 마련해 두었다.

‘얼른 움직여라.’

제이슨은 가디언스 거점도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지구의 왕이 될 날이.

* * *

“예? 거길 혼자서 가신다고요? 절대 안 돼요!”

김지혜가 경악한 표정으로 반대했다.

그러자 마침 함께 있던, 아니, 강하진이 온다고 해서 굳이 사냥을 하다 말고 돌아온 황수영도 결사반대를 외쳤다.

“거기가 어디라고 혼자서 가요? 저도 이제 나름 한다니까요? 분명히 도움이 될 테니까 같이 가요. 여기 김지혜 씨랑 이지영 씨도요. 아마 같이 가보시면 깜짝 놀랄 걸요?”

마찬가지로 강하진 때문에 일을 하다 말고 달려온 정아연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느낌이 좋지 않아요. 그동안 나왔던 던전이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크기도 너무 크고. 그러니 다시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녀들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의견을 내세웠다.

“백호도 놓고 가신다면서요. 그럼 정말 혼자서 가시는 건데······.”

강하진은 그 모두의 의견을 입을 다문 채 열심히 들어주었다.

물론 결정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서 뭘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둘러만 보고 올 겁니다. 정찰하는데 너무 여럿이서 몰려가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강하진의 말이 옳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반대 의견을 내 놓았다.

하지만 강하진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만일 제 추측이 맞다면······ 저 던전에서는 정말 힘든 싸움이 기다릴 겁니다.”

“그러니까 같이 가자니까요?”

강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중에 더 준비를 철저히 한 다음의 일입니다. 지금은 확인이 먼저입니다.”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강하진은 좌중을 슥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다들 준비를 해주십시오.”

“준비요?”

준비라는 말에 모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지금의 백호보다 훨씬 강한 괴물과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말에는 다들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백호가 얼마나 강한지 다들 알기 때문이다.

백호는 최근 세 번째 벽을 넘었다. 그런 백호의 힘은 괴물이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런 백호보다 훨씬 강한 괴물이라니. 대체 어떤 놈이 나온단 말인가.

“레벨을······ 지금보다 훨씬 더 올려야겠네요.”

김지혜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강하진은 담담히 물었다.

“가능하겠습니까?”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할 수 있어요! 아니, 무조건 해낼 거예요.”

강하진은 그런 그들의 반응에 빙긋 웃었다.

“일단 최소 목표를 지금의 백호로 잡고 시작하면 될 겁니다. 그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거 잊지 마십시오.”

기가 질릴 정도의 말이었지만, 그런 걸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열의에 불타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강하진은 그런 그들을 보며 짤막하게 말했다.

“믿겠습니다.”

간단한 말이었지만, 그 진심이 마음에 확 와 닿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강하진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멀어지는 강하진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 * *

거점도시를 떠난 강하진은 빠르게 던전을 향해 달려갔다.

가는 도중에 만난 괴물들은 대부분 그냥 내버려뒀다.

중간 중간 섞인 벽을 넘은 괴물들만 툭툭 처리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다보니 초거대 던전이 있던 자리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예전 이동요새 이노툴이 나타나 차원구멍을 뚫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때 뚫린 구멍이 굉장히 꺼림칙했는데, 결국 그놈이 이렇게 끝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그래서 상황이 더 좋아졌다.

그 이후로 세계의 모든 재난이 대부분 일본에 집중되고 있었으니까.

다른 지역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을 찾아갔다.

여기에는 레나트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

레나트는 끊임없이 연구를 진행해서 새로운 유적을 찾아내곤 했다.

일본에 오기 직전에도 유적 하나를 찾아 시스템에 편입시켰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과거의 잔재를 정리하다보니 점차 균열의 힘이 약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균열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그걸 억제하는 힘이 더욱 강력하게 작용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원래 터져야 할 균열의 힘이 대부분 일본으로 집중되고 있었고.

던전에 도착한 강하진은 검고 거대한 구체를 가만히 쳐다봤다.

보자마자 느낌이 확 왔다.

더 확실한 건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여긴 마르바스가 나왔던 바로 그 던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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