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190화 (190/200)

< 성장의 시간 2 >

열 명의 연구원이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고, 눈은 불안에 흔들렸다.

그들은 디펜더스에서 빠져나온 연구원들이었다.

사실 다른 연구원들도 함께 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감시의 빈틈을 타고 도망칠 수 있었던 건 오직 그들뿐이었으니까.

디펜더스는 연구원들을 가둬두고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들은 디펜더스가 얼마나 무서운 조직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끔은 연구 성과를 위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기도 했고,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실험을 하는 광경도 심심찮게 목격했다.

그나마 여기 있는 연구원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쨌든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온전히 그들만의 힘으로 나온 건 아니었지만.

또한 그들에게 가족이 없다는 것도 행운이었다.

다른 연구원들은 가족을 볼모로 그곳의 생활을 견디고 있었으니까.

물론 생활 자체는 호화로웠다.

자유가 없고, 무지막지하게 갈려 나간다는 걸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런 생활이 이어지는데 호화로운 게 뭐 중요하겠는가.

가족이 있는 연구원들은 그나마 좀 나았다. 가족들이라도 풍족하게 살 수 있으니까.

물론 자유가 없고,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지만.

아무튼 그런 곳을 빠져나왔으니 불안한 게 당연했다. 그들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놈들이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들이 갈 곳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니까요.”

“그게 어디입니까? 설마 알카트라즈 같은 곳에 가는 건 아니겠지요?”

“하하하하. 재미있는 농담이로군요. 당연히 아닙니다. 아, 마침 목적지가 보이는군요. 저곳입니다.”

안내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연구원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곳에는 새하얗고 웅장한 성이 우뚝 서 있었다.

“레이드로스 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 *

레이드로스 성에 들어온 연구원들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밖에서 보면 그냥 성인데, 막상 성벽 안쪽으로 들어오니 거대한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그냥 도시도 아니고 마치 중세를 옮겨 놓은 듯한 도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진한 삶의 향기가 느껴졌다.

“여긴······ 대체 뭡니까?”

연구원 중 하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레이드로스 성입니다. 가디언스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죠. 저기 성벽 위에 있는 병사들 보이십니까?”

안내인의 말에 고개를 돌려 성벽 위를 바라본 연구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속으로는 정말 놀랐다.

아까 성에 들어오기 전에는 성벽에 분명히 아무도 없었으니까.

안과 밖이 철저히 다른 공간이었다.

“저 병사들의 실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그리고 저쪽을 보시죠. 기사와 마법사들 보이십니까?”

누가 봐도 나 기사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생긴 사람 몇 명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또 그들과 좀 떨어진 곳에서 로브를 뒤집어 쓴 사람 몇 명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저들이 이 성을 굳건히 지켜줄 겁니다. 정말정말 대단한 실력을 가진 분들이거든요.”

안내인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가디언스의 마스터께서는 세계 제일이니까요.”

연구원들의 표정이 좀 편안해졌다.

“그러니 안심하고 연구에 매진하시면 됩니다. 조만간 이 성 바깥쪽을 마음껏 활보하고 다니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게······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연구원 중 하나가 풀 죽은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안내인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디펜더스가 사라지면 그렇게 될 거 아닙니까.”

연구원들의 눈이 번쩍 떠질 만한 대답이었다.

과연 정말로 그렇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희망이 생겼다.

연구원들은 처음 여기 올 때보다 훨씬 밝아진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진짜 자유를 얻기 위해서라도 온몸을 불살라 연구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가디언스 소속 연구원들이 하나둘 레이드로스 성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 * *

차원괴물 소탕 이후, 가디언스 소속 모든 길드원에게 지시 하나가 내려왔다.

마스터인 강하진이 직접 내린 지시였다.

녹음한 음성까지 동원해서 내린 지시였기에 다들 충실히 따랐다.

가디언스는 차원괴물 사태 이후, 모든 초점을 레벨업에 맞췄다.

심지어 돈을 버는 것보다 레벨업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는 세 번째 재앙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레벨업을 하는 데 가장 좋은 장소는 단연 일본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사냥을 하려면 일단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각성자들처럼 거점도시 근처에서 깔짝깔짝 사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사냥일 뿐, 성장에는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그럴 거면 다른 나라에 있는 던전을 닫으러 돌아다니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래서 윤경민은 길드원들을 둘로 나누었다. 일본에서 사냥이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아슬아슬한 사람은 과감히 일본에서 뺐다.

레벨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세상에 나와 있는 던전을 닫고 괴물을 사냥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강하진은 다른 길드원보다 먼저 일본에 들어왔다.

다른 그 누구보다 레벨업에 목마른 사람이 바로 강하진이었다.

강하진의 목표는 세 번째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세 번째 벽을 넘는 것이었다.

일본에 도착해서 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

가디언스 거점도시는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었지만, 가디언스의 핵심 길드원들이 빠진 빈자리가 너무나도 컸던 모양이다.

도시 주변에서 사냥하는 각성자들이 예전과 달리 사냥에 제대로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강한 괴물들이 너무 많아졌다.

아마 도시에서 멀어지면 더 강한 괴물이 훨씬 많이 서식하고 있을 것이다.

차원괴물의 여파가 분명했다.

한데 그 여파가 모조리 일본에 집중된 듯한 모양새였다.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백호를 남겨두고 왔으니까.

백호에게 도시 주변을 돌면서 강한 괴물을 처리하라고 했는데, 어디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좀 당황스러웠다.

원래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백호가 강하진에게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한데 아무런 조짐도 없이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강하진은 일단 도시 주변정리부터 시작했다. 도착하자마자 쉬지도 않고 바로 움직인 것이다.

그만큼 이 근처의 상황이 아슬아슬했다.

빠르게 도시를 한 바퀴 돌면서 괴물을 싹 정리했다.

그러는 사이 멀리 있던 괴물들이 조금씩 다가왔다.

강하진은 그 괴물들 중에서 현재 도시에 남은 각성자들이 상대하기 버거운 괴물만 골라서 죽여 버렸다.

그렇게 한 다음에야 백호를 찾았다.

백호는 거점도시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강하진이 연결된 계약의 끈을 통해 신호를 보내니 바로 응답이 왔다.

그리고 이놈이 왜 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원인은 아쉬였다.

백호는 지금 강하진이 아쉬와 싸우던 곳에 가 있었다.

그곳에서 아쉬의 잔해를 찾아서 먹고 있는 중이었다.

워낙 잘게 찢어졌고, 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날아갔기 때문에 하나하나 찾아내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살점을 하나 찾아서 먹을 때마다 백호는 확실하게 성장했다.

“대체 거긴 어떻게 알고 찾아간 거야?”

보아하니 싸움이 끝나고 바로 찾아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이곳 거점도시가 이렇게 멀쩡할 리 없었다.

이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최근에 그곳으로 간 듯했다.

아쉬의 잔해가 풍기는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강하진은 일단 백호가 있는 쪽으로 향해 이동했다.

가면서 눈에 띄거나 감각에 걸려드는 괴물들 중에서 좀 강하다 싶은 놈들은 싹 정리했다.

레벨업도 레벨업이지만 나중에 일본에 들어올 길드원들을 생각해서이기도 했다.

그들 역시 강한 괴물과 싸워야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강한 놈이 우글거리면 굉장히 위험하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고 나서야 백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백호는 여전히 아쉬의 살점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근처에 다가오는 괴물들을 남김없이 죽이면서.

다가오는 괴물들 역시 목적은 아쉬의 잔해였다. 즉, 여기 다가오는 괴물은 대부분 포식이 가능한 놈들이었다.

당연히 다들 강력했다.

그래서 그런지 백호의 상태가 장난 아니었다.

“이거 세 번째 벽도 곧 넘겠는데?”

그 정도로 급격히 성장했다. 차원괴물을 사냥한 걸로는 백호의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백호는 차원괴물 사태가 터졌을 때도 차원괴물보다는 일반 괴물 위주로 사냥을 하게 했다.

차원괴물도 중요하지만 일반괴물도 방치하면 나중에 굉장히 위험해지니까.

아무튼 그래서 성장에 약간 정체기가 왔었는데, 아쉬의 시체 잔해를 찾아먹기 시작하면서 거기에서 벗어나 다시 성장 중이었다.

“그래, 그럼 넌 그렇게 해라.”

강하진은 백호를 남겨두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여기 말고도 사냥할 만한 장소는 얼마든지 있었다.

굳이 여기서 백호와 함께 사냥을 해서 효율을 떨어뜨릴 이유가 없었다.

강하진은 백호를 내버려두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감각을 넓게 펼쳤다. 사냥하기 좋은 장소를 찾는 것보다는 좋은 사냥감을 찾아 빠르게 이동하면서 닥치는 대로 사냥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진짜 게임처럼 괴물이 계속 리젠되는 것이 아니니까.

강한 괴물 위주로 사냥을 하면서 끊임없이 돌아다니던 강하진은 문득 회귀 전에 있었던 세 번째 재앙이 떠올랐다.

세 번째 재앙은 본격적으로 마르바스와의 전쟁을 시작하는 신호와도 같았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초거대 던전이 등장하기 시작하니까.

마르바스가 나왔던 던전은 지름이 3킬로미터에 달하는 던전이었다.

당연히 그 전에는 그보다는 작아도 지름 1킬로미터가 넘는 던전이 제법 나왔고.

사실 세 번째 재앙이라는 것도 초거대 던전과 관계된 사태였다.

지름 2킬로미터짜리 초거대 던전이 세계 곳곳에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세 번째 재앙이었다.

사실 지금은 그것이 과연 세 번째 재앙이라고 칭할 수 있을지 살짝 의문이었다.

회귀 전과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때는 초거대 던전이 하나만 나와도 그걸 어떻게 처리할지 전전긍긍했다.

초거대 던전을 처리할 수 있는 건 결과적으로 당시의 가디언스뿐이었다.

하지만 과연 지금은 어떨까?

가디언스의 핵심 길드원 100명이라면 웬만한 초거대 던전을 닫는 데에 별 문제 없을 것이다.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사실 회귀 전에는 벽을 넘은 각성자가 한 명도 없었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가디언스에만 해도 수백 명이 첫 번째 벽을 넘었거나 넘는 과정에 있었다.

그들을 잘 구성하면 수십 명 정도로 초거대 던전에 도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 각 나라마다 초거대 던전이 하나씩 생기더라도 별다른 사건이 없다면 무난하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가디언스만 벽을 넘은 각성자를 보유한 게 아니라 다른 길드들에도 하나둘 그런 각성자가 나올 기미가 보였다.

즉, 전체적인 인류의 전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어쩌면 이번 재앙은 오히려 차원괴물보다 더 싱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 *

한동안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강하진은 명인혁에게 디펜더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라고 지시해뒀다.

아무래도 아쉬가 사라졌으니 그쪽도 타격이 제법 있을 테니 뭔가 움직임을 취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디펜더스는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강하진은 그들이 반드시 뭔가 일을 벌일 거라고 여겼다.

이대로 세 번째 재앙이 시작되면 더 이상은 디펜더스에게 기회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도 너무 조용했다.

명인혁이 따로 디펜더스에 너무 아무 일도 없는 점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보고를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초거대 던전이 덜컥 나타났다.

한데 회귀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때는 여러 개의 초거대 던전이 세계 각국에 툭툭 튀어나왔었다.

한데 이번엔 단 하나의 던전만 나타났다.

문제는 던전의 크기였다.

반경 3킬로미터짜리였다.

그리고 나타난 장소는 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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