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원 괴물 1 >
가디언스는 강하진의 지시를 받은 이후, 굉장히 은밀하고 조용하게 차원괴물을 상대할 준비를 해 나갔다.
차원괴물이 나타날 때까지 완벽하게 비밀을 유지하는 건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밀을 완벽하게 유지하기에는 가디언스 소속 길드원의 수가 너무 많았다.
인성을 최우선으로 뽑은 길드원들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중 몇 명 정도는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굳이 비밀을 누설하고자 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실수 때문에 비밀이 흘러나갈 수도 있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비밀이 늦게 나가도록 애썼다.
디펜더스에 이쪽 소식이 늦게 들어가면 늦게 들어갈수록 차원괴물을 막아내기가 용이해질 테니까.
이 모든 일을 지휘하는 사람은 강하진이 아니라 윤경민이었다.
윤경민은 차원괴물의 수가 1억이라고 가정하고 준비를 진행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1억이나 되는 강력한 괴물을 가디언스만의 힘으로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즐거웠다. 이런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면 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희열과 성취감이 찾아올지 상상도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가디언스가 준비하는 동안, 강하진은 레벨업에 매진했다.
강하진은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야 변수를 최대한 차단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최근에는 강함에 대한 열망이 더더욱 커졌다.
아쉬의 분신과 싸운 이후로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진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동안 디펜더스를 막기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쉬를 이기고 마르바스를 이겨낼 힘을 얻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모든 것이 허무해질 것이다.
그러니 일단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했다.
설사 혼자서 이겨내지 못해도 괜찮다. 동료들과 함께 싸워서 이길 수 있을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그조차 불투명했다.
적어도 강하진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강하진은 일단 레벨부터 올리기로 했다.
목표는 두 번째 벽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차원괴물이 나타나기 전에 두 번째 벽을 넘으면 답이 보일 것 같았다.
회의를 할 때는 윤경민이 1억이라는 숫자를 꺼내는 바람에 정말 당황했다.
강하진의 예상과 너무 차이가 많이 났으니까.
하지만 사냥을 하면서 계속 상황을 곱씹다보니,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하진은 회귀 전의 기억을 기준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회귀 전과 명백히 달라지지 않았던가.
차원괴물을 디펜더스에서 이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랬고, 아쉬라는 존재가 디펜더스에 끼어들었다는 사실도 그랬다.
그렇다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는데, 자신이 너무 무르게 판단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레벨업에 매달리게 되었다.
레벨을 올리면서도 강하진은 상황을 파악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동할 때나, 전투와 전투 사이 잠깐의 빈틈이 생기면 바로바로 태블릿을 꺼내 상황을 확인했다.
혹시 차원괴물이 나타나지 않았는지, 또 가디언스의 준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말이다.
회의를 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는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가디언스 소속 각성자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레벨을 올리고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가디언스 휘하에 있는 연구소들이 개발한 새로운 장비를 제작해 길드원들에게 순차적으로 지급하고 있었다.
준비 자체는 정말로 순조로웠다.
한데 오늘, 좀 다른 보고가 섞여 있었다.
명인혁이 보낸 보고였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확인하던 강하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건 디펜더스에 대한 정보였다.
디펜더스에서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여서 추적 중이라는 보고였고, 지금까지 구한 정보를 토대로 유추한 내용이 있었다.
‘아쉬가 따로 움직이고 있다고?’
그리고 아쉬의 움직임 뒤에는 디펜더스에서 강하진의 위치를 확인 중이라는 내용이 따라붙어 있었다.
그 두 가지 사실만 놓고 보면, 아쉬가 강하진을 찾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도 차원괴물이 나올 때가 거의 다 되어서 말이다.
강하진은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일 아쉬가 정말로 움직인다면 고작 이런 식으로 레벨 몇 개 올리는 정도로는 안 된다.
아쉬의 분신과 싸울 때도 생사를 넘나들었는데, 만일 본체와 싸운다면 절대 이길 수 없었다.
돌아가는 정황을 보면 차원괴물이 나올 때, 아쉬가 강하진을 처리하겠다는 심산인 듯했다.
강하진은 태블릿을 아공간에 넣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괴물을 노려봤다.
‘그냥 당해줄 수는 없지.’
강하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힘도 기술도 아쉬가 위였다. 게다가 어떤 스킬을 더 숨기고 있는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아쉬 역시 강하진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또한 강하진이 습격에 대비할 거라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아니, 알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자신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면 아쉬가 이쪽으로 올 테니까.
‘싸움터는 내가 고른다.’
강하진에게는 싸움터만 고를 수 있다면 강력한 상대와 싸울 비법이 있지 않은가.
‘그 전에 레벨업이 먼저다. 벽을 넘지 못하면 아무리 라파시드의 서를 써도 어림없어.’
강하진은 더욱 열의에 불타서 사냥을 시작했다.
차원괴물이 나오기 전에 무조건 두 번째 벽을 넘을 것이다.
결의에 찬 강하진의 마력이 더없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 * *
황수영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었다.
물론 혼자가 아니었다. 던전 브레이커의 신입 길드원들과 함께였다.
원래 황수영은 항상 핵심 길드원들과 함께 사냥을 했다.
하지만 차원괴물에 대한 얘기를 들은 이후부터 방식을 바꿨다.
강한 길드원들을 분산시켰다.
그들은 차원괴물에 대한 비밀을 아는 자들이었다.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자들을 엄선해서 그들에게 길드원들을 분배한 것이다.
나중에 혹시 일이 터졌을 때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던전 브레이커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단연 황수영이었다.
그래서 황수영은 자신이 신입 길드원들을 맡았다.
버스도 좀 태워줄 겸, 전투 교육도 좀 시킬 겸, 보호도 해줄 겸해서.
지금 황수영은 최근 새로 나타난 뉴타입 던전에서 사냥을 진행 중이었다.
신입 길드원들도 이제 제법 손발이 맞고, 레벨이 올라서 그럭저럭 쓸 만했다.
그렇게 뉴타입 던전을 닫고 막 나왔을 때, 황수영의 표정이 확 굳었다.
“왜 그러십니까?”
황수영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신입이 아닌 길드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좀 이상하지 않아?”
“예?”
“공기가 평소보다 무거워.”
진짜 공기가 무거워진 게 아니라 마력의 흐름이 무거워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황수영의 말에 가만히 감각을 집중하던 길드원의 눈이 살짝 커졌다.
“어? 정말로 그런 거 같습니다. 아······ 이거 혹시!”
그 역시 차원괴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황수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시작될 모양이야. 준비 좀 부탁해.”
“예. 알겠습니다.”
길드원이 서둘러 신입 길드원들을 지휘했다. 다들 영문을 몰랐지만 시키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던전 브레이커의 신입 길드원들은 다시 무기를 꺼내고 전투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력이 더욱 무거워졌다. 아니, 그저 무거워진 걸로 끝나지 않았다. 마력이 은은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황수영이 마력을 담아 외쳤다. 그리고 눈을 번득이며 과연 어디서 차원괴물이 나타날지 살폈다.
“어! 저기 괴물입니다!”
길드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괴물 한 마리가 보였다.
모양은 상어와 비슷했는데, 온몸에서 화염이 섞인 전격을 뿜어내고 있었다.
차원을 찢고 나타난다기에 공간이 갈라지고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허공에 점이 찍히듯 툭툭 나타났다.
괴물들이 무더기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가 많습니다!”
다들 신입이라서 그런지 크게 당황하고 동요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황수영은 크게 기합을 내질렀다.
“하아압!”
엄청난 마력이 담긴 기합이었다.
주변을 마력이 쫙 휩쓸고 지나갔다.
그제야 다들 동요를 멈추고 황수영을 바라봤다.
“약점 설명할 테니 똑똑히 들어. 이제부터 저놈들을 우리가 모조리 해치운다. 알겠나!”
“예!”
신입 길드원들은 군기 바짝 든 목소리로 크게 대답했다.
“저놈들 콧구멍 보이나?”
“예! 보입니다!”
“그게 약점이다.”
“예?”
“콧구멍에 칼을 찌르고 마력을 회전시켜서 뿜어내라. 잘 하면 한 방에 죽일 수도 있으니까.”
그 말에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그게 가능할지 의심스러웠다. 저렇게 무시무시한 괴물을 상대로 말이다.
“그게 안 되면 그걸 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싸우면 된다. 두 번째 약점은 둔기다.”
둔기라는 말에 신입 길드원들은 각자 가진 무기를 한 번씩 바라봤다.
둔기를 가진 사람은 반도 채 되지 않았다.
“둔기로 등을 찍어라. 찰나지만 기회가 올 것이다.”
둔기로 내리치면 허공에 뜬 차원괴물이 아래로 약간 떨어지면서 순간적으로 경직된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긴 하지만 빈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황수영은 그런 식으로 약간이지만 효과를 볼 수 있는 약점들을 계속 말해줬다.
그러는 사이 엄청나게 수가 불어난 차원괴물들이 허공을 유영하며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절대 죽지 마라.”
황수영은 그 말을 끝으로 차원괴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이 시선을 끌어줘야 다른 길드원들이 싸우기 편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첫 번째 차원괴물과의 전투는 황수영의 차지였다.
* * *
전 세계에 차원괴물이 나타났다.
어마어마한 수였다.
하지만 윤경민이 예상했던 것처럼 1억 마리나 나온 건 아니었다.
사실 그보다 수가 훨씬 적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약점을 안다고 해도 워낙 강력한 괴물이었기에 방심하다 한 순간에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워낙 준비를 탄탄하게 해둔 탓에 가디언스는 아주 효과적으로 차원괴물들을 처리해 나갔다.
물론 차원괴물이 나타나자마자 각국 정부에 연락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단 나타난 이상, 약점을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처리하기가 수월해질 테니까.
물론 겸사겸사 그들에게 빚도 좀 지워두고 말이다.
가디언스가 어찌나 신속하게 대응했는지, 차원괴물이 그렇게 많이 나타났는데도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차원괴물의 공격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시작은 잘 막아냈지만,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어쨌든 가디언스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차원괴물을 막아내는 중이었다.
당연히 디펜더스에는 비상이 걸렸다.
제이슨은 한껏 굳은 표정으로 상황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허, 나 참.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제 슬슬 가디언스라는 길드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지금 일어나는 일은 제이슨이 가진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 버렸다.
“이게 말이 돼?”
말이 안 된다. 가디언스는 차원괴물의 정확한 약점을 공개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제이슨이 모르고 있던 차원괴물의 약점까지 공유했다.
그건 차원괴물을 직접적으로 죽이긴 어려운 약점이었지만, 비교적 약한 각성자들이 차원괴물을 상대하기 훨씬 수월해지게 해주는 약점이었다.
오히려 제이슨이 알고 있던 약점보다 훨씬 쓸모 있는 약점이었다.
제이슨은 굳은 표정으로 상황판을 노려봤다.
거대한 화면에 커다란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그것은 디펜더스에서 파악한 강하진의 위치였다.
그리고 지금 아쉬가 그곳으로 이동 중이었다.
“강하진이라도 없애지 않으면 이번 일······ 너무 손해가 큰데?”
차원괴물을 이용하기 위해 디펜더스가 쓴 물자가 너무 막대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마석을 이번 일에 쏟았다.
아마 당분간 마석을 이용해서 하는 모든 일에 제동이 걸릴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뭐 하나라도 얻어야만 했다.
상황판을 노려보는 제이슨의 표정이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