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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83화 (183/200)
  • < 재앙과 재앙 사이 1 >

    강하진이 사하라의 균열을 감춘 효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확연히 효과가 드러났다.

    일단 나타나는 거대 던전의 수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덕분에 세계 각국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동안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열리는 거대 던전 때문에 디펜더스와 가디언스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자신들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내려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균열을 완벽하게 틀어막지 못해서 그런지 거대 던전이 나타나는 상황을 아예 없앨 수는 없었다.

    거대 던전은 꾸준히 나타났고, 그 때마다 다들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 또 거대 던전들이 우르르 쏟아질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불안감은 불안감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거대 던전의 수가 차츰 줄어드니 던전에서 나오는 괴물의 부산물이나 마석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러다가 아예 던전이 열리지 않게 되면 정말 곤란했다.

    던전은 이제 세상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었다. 던전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변해 버렸다.

    일단 에너지 문제가 그랬다.

    마석에서 오염 없는 강력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는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이 마석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지도 제법 되었다.

    더불어 마력과 과학이 결합된 마력공학 기술이 차츰 발전하기 시작해 예전에는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결과가 툭툭 나오곤 했다.

    그런 기술들 역시 날로 발전해 세상 깊숙이 침투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던전이 몽땅 사라져 버려도 문제였다.

    그렇게 세상에서 던전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곳이 있었다.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은 여전히 많은 던전이 나타났고, 거대 던전 역시 계속 열렸다.

    곳곳에 괴물이 들끓었고, 그로인한 위험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일본에 다시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번에는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관심이 모였다.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지배자들 사이에 던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형성된 것이다.

    그것은 더 많은 각성자를 확보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 * *

    디펜더스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사하라에서 날아온 소식에 바닥까지 떨어졌던 분위기가 윌리엄이 권속과의 계약이 끊어졌다고 외치는 바람에 더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대책을 마련해야 돼.”

    윌리엄은 이를 갈며 제이슨과 제니퍼, 스팬서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쉬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다섯이나 끊어졌어. 이대로라면 새 적합자를 찾기도 전에 모든 권속이 사라질 판이라고.”

    윌리엄의 말에는 과장이 좀 섞여 있었지만, 다들 충분히 수긍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결국 그렇게 될 테니까.

    상대는 보통 놈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강하진, 그놈이겠지?”

    “그럼 누가 있겠어?”

    “확실히 파악해야 돼. 만일 강하진이라고 판단해서 움직였는데, 그놈이 아니라 딴 놈이 원흉이면?”

    그렇게 되면 원흉이 더 꽁꽁 숨을 것이다.

    이후에는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할 테고. 숨은 적을 상대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뭐 하나 쉬운 일이 없군.”

    스팬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제이슨이 이를 갈았다.

    “우리가······ 너무 욕심을 부렸어.”

    다들 제이슨을 바라봤다. 지금 제이슨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얼른 감이 안 잡혔다.

    “욕심이야 당연히 있지.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욕심 때문에 벌이는 건데.”

    “맞아. 욕심을 안 부리려면 애초에 이따위 일을 하지 말았어야지. 우린 세상의 왕이 되려는 사람들이야.”

    제이슨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문제야. 세상의 왕.”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이슨은 단호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 생각과 달리 더 온전한 세상에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게 문제야.”

    그제야 다들 표정이 굳었다.

    사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만일 처음 디펜더스가 세웠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벌써 세상의 절반 정도는 박살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굉장히 멀쩡하다.

    물론 망한 나라도 있고, 반쯤 괴물에게 먹힌 나라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세계를 놓고 보면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런 나라들조차 제법 안정적이었다.

    각자 나름의 상황에서 괴물을 사냥하고, 또 그 상황을 이용해 각종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디언스 때문이야.”

    제이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디언스가 아니었다면 아마 세상의 절반 정도는 괴물들이 먹어치웠을 테니까.

    “그리고 가디언스 때문에 우리 발이 묶였어.”

    “그것도 그렇지. 가디언스가 오히려 우리보다 더 유명하고 사람들이 더 신뢰하니까.”

    스팬서는 피식 웃고는 도발적인 시선으로 제이슨을 노려봤다.

    “그래서?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나?”

    제이슨이 차가운 눈으로 스팬서를 바라봤다.

    스팬서는 그 시선에 입을 꾹 다물었다.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원래 계획대로 다시 수정해야지.”

    “원래 계획대로?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그거 아닌가?”

    제이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아직 세상이 멀쩡하잖아. 세상을 반쯤 부숴야겠어.”

    스팬서가 황당한 표정으로 제이슨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윌리엄과 제니퍼를 바라봤다. 뭐라고 말 좀 해보라는 뜻이었는데, 그 두 사람의 표정을 본 스팬서는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이놈들 진심인데?’

    윌리엄도 제니퍼도 진심으로 세상을 반쯤 부술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이거 뭐야?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야?”

    그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스팬서가 고개를 휙 돌려 문 쪽을 바라보니, 아쉬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좋은 아침!”

    아쉬의 해맑은 인사에 스팬서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

    아쉬가 씨익 웃으며 스팬서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스팬서의 어깨에 팔을 턱 둘렀다.

    “즐겁지. 내 손 보이지?”

    스팬서는 시선을 힐끗 내려 자신의 어깨를 두른 팔에 달린 아쉬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잘 움직이잖아. 이게 진짜 내 손이고 팔이거든. 가짜는 이렇게 섬세하게 움직이지가 않아요.”

    아쉬는 즐거운 듯 손가락을 계속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스팬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마치 칭찬이라도 하듯.

    “아주 훌륭했어. 그놈 이름이 뭐랬지? 조 뭐시기였는데?”

    “조원영. 그런데 굳이 이름을 알 필요가 있나? 어차피 곧 망할 회사의 후계자에 불과한데.”

    아쉬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니지. 내 팔이 되어준 놈인데 이름 정도는 기억해야지. 앞으로 내 팔을 부를 때는 꼭 조원영이라고 불러.”

    그렇게 말하고 씨익 웃는 아쉬를 보던 스팬서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런 미친놈이랑 엮이면 피곤해.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미친놈들이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제대로 미친놈이야.’

    아쉬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꼰 다음 좌중을 슥 둘러봤다.

    “무슨 얘기 중이었어? 오늘 내 기분이 제법 괜찮거든? 기탄없이 얘기해 봐. 혹시 알아? 내가 도움을 줄지?”

    아쉬의 태도는 불량했지만, 그의 실력이나 지식은 진짜였다. 그러니 도와주기만 한다면 나쁠 게 없었다.

    “사하라에 있던 균열을 잃었어.”

    “잃었다고? 그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지? 설마 균열이 닫힌 건 아닐 텐데? 균열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이동하지 않아.”

    제이슨은 대꾸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계속했다.

    “그리고 우리 힘도 다시 줄어드는 중이고.”

    아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균열이 안정되었다는 건데? 페이즈 드래곤의 심장을 먹은 균열이 다시 안정된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아쉬는 눈을 번득이며 제이슨을 바라봤다.

    “사하라 균열은 어떻게 잃었다는 건지 설명해 봐.”

    “모래폭풍이 균열을 덮었어. 그 전에 어떤 놈이 기습해서 구덩이를 메운 모양이고. 그리고······ 권속과의 링크가 끊어졌고.”

    마지막 말을 하면서 제이슨은 윌리엄을 힐끗 쳐다봤다.

    그것만으로 상황을 유추하기에는 충분했다.

    아쉬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맺혔다.

    “그놈이네. 일본에서 나 엿 먹인 놈. 기억나지? 일본에 있던 구멍도 결국 다시 못 찾게 된 거.”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쉬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제이슨을 노려봤다.

    “그래서 앞으로 뭘 어쩌려고 한 거지?”

    “세상을 어느 정도 부숴놓으려고. 절반 정도 부수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 정도는 힘들 것 같고······ 한 30% 정도?”

    “뭐, 어렵지 않지.”

    아쉬의 대답에 스팬서는 깜짝 놀랐다.

    ‘저게 어렵지 않다고? 저놈이 그 정도로 강한가? 아니, 이게 그저 강하다고 될 일인가?’

    스팬서의 시선을 느꼈는지 아쉬가 그를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왜? 안 될 거 같아?”

    스팬서가 눈살을 찌푸렸다.

    “되니까 그런 말을 한 거 아니었나?”

    아쉬가 키득키득 웃다가 스팬서를 보며 빙긋 웃었다.

    “마계에서 세상을 침공하는 순서가 있어. 뭐, 반드시 그 순서를 따르는 건 아니지만 마르바스처럼 수준이 떨어지는 마왕은 되도록 순서를 지키기 마련이지. 그걸 비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

    거기까지 말하자 스팬서도 이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또 뭔가 무시무시한 것이 나오나? 이번엔 또 뭐지? 엄청난 던전이라도 터지는 건가?”

    “뭐 비슷해. 던전이 아니라 괴물이 직접 나타나는 거라는 점이 약간 다르지.”

    “괴물이 직접 나타난다고?”

    “던전을 계속 열다보면 차원의 틈에 살고 있는 차원괴물들을 자극하게 되거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

    스팬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 차원괴물이라는 놈이 나타나는 모양이군.”

    “그렇지. 사실 별 거 아닌 놈이야. 차원을 찢고 나오느라 힘을 다 소진하거든. 물론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상대하기가 아주 까다롭겠지만.”

    “별 거 아니라고?”

    별 거 아닌 놈으로 대체 어떻게 세상을 부순단 말인가.

    아쉬는 스팬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씨익 웃었다.

    “별 거 아니긴 한데, 수가 좀 많아.”

    “그렇다면야······ 한 만 마리 나오나?”

    “고작 그 정도로 어떻게 세상을 부숴?”

    “그럼?”

    “원래대로라면······ 한 100만 마리쯤?”

    “뭐?”

    스팬서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시선을 옮겨 제이슨을 바라봤다. 저 말이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그 정도쯤 나온다. 하지만 세상을 부수기에는 좀 모자라지.”

    “그래서?”

    “그래서 좀 도와줄 생각이다.”

    “돕는다고?”

    “그래. 차원을 찢기 쉽도록 도와줄 거다.”

    그렇게 말한 제이슨이 스팬서 옆에 앉은 아쉬를 힐끗 쳐다봤다.

    “아쉬가 있으니까.”

    “그럼 얼마나 더 강해지는데?”

    제이슨이 고개를 저었다.

    “강해지진 않아. 솔직히 지금 각성자들 수준이라면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고.”

    “그럼?”

    “수가 많아진다. 얼마나 힘을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20배 정도 많아질 거야.”

    “20배? 2천만 마리?”

    스팬서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저 많은 괴물들이 세상을 모조리 부숴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말이다.

    “차원괴물을 쉽게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어. 너무 걱정할 거 없다.”

    “그래? 그렇다면야······.”

    스팬서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드디어 판을 뒤집을 수 있을 거라고.

    * * *

    강하진은 사하라의 일을 마무리 한 다음 바로 일본으로 갔다.

    사냥 효율이 가장 좋은 곳은 역시 일본이었다.

    다른 어떤 나라에 가도 이 정도 속도로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사냥터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일본에 도착해서 일본에 머무는 가디언스 길드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한 다음, 곧장 도시 밖으로 나갔다.

    백호가 강하진이 온 걸 알고는 얼른 달려와 근처를 맴돌았다.

    강하진은 그런 백호를 보며 빙긋 웃어주고는 강력한 괴물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강하진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백호가 무슨 일이냐는 듯 강하진을 바라봤다.

    강하진은 주위를 찬찬히 둘러봤다. 그러면서 감각을 극도로 예민하게 벼렸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벌써······ 차원괴물이 나타날 때가 된 건가?”

    강하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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