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182화 (182/200)
  • < 사하라의 균열 >

    강하진은 멀찍이서 거대한 막사를 관찰했다.

    일단 거슬리는 느낌이 감각을 건드렸다. 사실 그건 여기로 오는 내내 조금씩 짙어졌다.

    그래서 저기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고.

    그 무언가가 아마 균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느낌이 남극에서와 달랐기 때문이다.

    남극에서 강하진은 분명히 균열을 직접 확인했다.

    그때 온몸을 적시던 시스템의 힘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 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느낌은 그때와 좀 달랐다.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그저 비슷한 정도라면 굳이 균열이 아니라 일본에 있었던 침식의 구멍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 역시 균열은 아니지만, 균열과 비슷한 느낌을 주니까.

    ‘그러고 보니 이 느낌, 침식의 구멍이랑 오히려 더 닮았네.’

    물론 침식의 구멍이랑도 달랐다. 그저 약간 닮은 것뿐이지.

    아무튼 그 두 가지와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는 건, 그 두 가지와 비슷한 존재라는 뜻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런 것이 균열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저기 있는 놈들 분명히 디펜더스 소속 각성자들이겠지?’

    남극에서도 디펜더스의 각성자들이 균열에 노이스네미드 기본 마력 운용법을 통해 정제한 마력을 균열에 열심히 쏟아 넣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각성자들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 않겠는가.

    ‘원래는 이보다 더 많았겠지?’

    남극에서 같은 일을 하던 디펜더스 소속 각성자들이 말해줬다. 원래는 훨씬 더 수가 많았다고.

    그러다가 아쉬의 방문 이후로 급격히 수를 줄였다.

    아쉬를 통해 균열을 확장시켰으니 수를 줄여도 상관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강하진은 일단 밤이 되길 기다렸다.

    무작정 저기에 다가가는 것보다는 일단 몰래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저곳에 있는 것이 진짜 균열인지부터 확인하고 나서 다음 수를 고민할 계획이었다.

    강하진은 [은폐]를 통해 몸을 숨긴 채, 그곳을 계속 감시했다.

    저곳의 각성자들은 정말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몇 교대로 각성자들이 안에 들어가서 균열에 마력을 쏟는 일을 반복하는 모양이었다.

    거대한 막사에서 나오는 각성자들은 너무 지쳐서 흐느적거렸다.

    반면 그들과 교대해서 안으로 들어가는 각성자들은 비교적 쌩쌩했다. 하지만 썩은 표정이었다.

    당연했다. 아마 하는 일이라고는 마력을 계속 쏟아 붓는 일일 텐데, 그걸 매일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괴롭고 지겹겠는가.

    그렇게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밤이 되었는데도 거대 막사 주변 각성자들의 생활은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시간이 되면 교대해서 거대 막사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주변에 늘어져서 최대한 체력을 회복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강하진은 밤의 어둠을 타고 막사에 다가갔다.

    막사 안쪽에는 밝은 불빛으로 가득했지만, 몰래 들어가도 들킬 염려는 크지 않았다.

    막사가 워낙 거대하기도 했고, 각성자들은 막사 중앙에 있는 거대한 구덩이 속에 있거나 막사 가장자리에 쭉 늘어서 있는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으니까.

    물론 [은폐]를 쓰고 들어갔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조심해서 들어가기만 하면 거의 들킬 일이 없을 듯했다.

    물론 막사 입구를 지키는 각성자들의 시선은 피해야하지만.

    강하진은 빠르게 중앙에 있는 구덩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안쪽을 확인했다.

    역시나 거대한 균열이 있었다. 각성자들이 그 균열을 둘러싸고 열심히 마력을 쏟는 중이었고.

    각성자들의 마력을 빨아들인 균열이 더욱 불안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시스템에 대한 감각이 깊고 예민한 강하진이나 느끼는 게 가능했다.

    저들에게는 아마 오히려 균열이 더 안정되는 듯한 착각이 들 것이다.

    그러니 디펜더스가 저들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일 테고.

    ‘그나저나 노이스네미드 마력 운용법을 쓰지 않는군,’

    생각해보니 여기서는 그걸 쓸 필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구의 각성자들이 본인의 마력을 균열로 보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아무튼 그곳의 균열을 지켜보던 강하진은 문득 무언가가 자신의 감각을 간질이는 느낌이 들었다.

    원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스템으로부터 비롯한 느낌이었으니까.

    이번에 새로 편입시킨 대결계로부터 오는 느낌이었다.

    강하진은 그 대결계의 관리자가 되었고, 대결계를 왜 만들었는지 이 균열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세 개의 대결계를 이용해 이 균열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강하진은 직감했다. 세 개의 대결계만으로 이 균열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막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 더 이상 이 균열에 마력을 공급하는 걸 막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 대결계를 펼치면 안 된다.

    그랬다간 저기 있는 각성자들이 일제히 한계까지 마력을 짜내서 다시 균열을 키울 것이다.

    남극에서처럼 저들을 포섭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남극 때와는 상황이 좀 달랐다.

    남극의 각성자들은 그들이 익힌 마력정제법이 실은 균열을 더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여기 있는 각성자들은 노이스네미드 기본 마력 운용법을 익히지 않았다.

    그러니 저들에게 그런 사실을 얘기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남극의 각성자들을 전부 데려와서 대면시키지 않는 한 설득이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설득이 가능하다는 보장이 없다. 남극의 각성자들이 배신했다고 여길 수도 있으니까.

    강하진은 일단 차분히 감시를 계속했다.

    남극에서와 달리 여기에는 권속들이 함께 있었다.

    ‘과연 저 권속들의 계약을 끊어버릴 수 있으려나?’

    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시도했다가 안 되면 곤란하니까.

    권속의 정보를 확인하지 못하니,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그저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강하진은 이곳에 있는 각성자들과 권속들, 그리고 일반인이지만 사실 일반이라기엔 위험한 군인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들의 힘과 무기를 통해 어느 정도로 강한지 가늠했다.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 만해.’

    백호가 함께 있었다면 훨씬 쉬웠겠지만, 혼자서도 저들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듯했다.

    제법 강한 각성자들이 모여 있긴 했지만, 한동안 사냥을 하지 않고 그저 마력만 기계적으로 뽑아내는 일을 반복해서 그런지 레벨이 정체되어 있었다.

    또한 딱히 위험한 스킬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수가 좀 많긴 하지만······.’

    문제는 인원이 많다는 점이었는데, 그것도 어떤 식으로 싸우느냐에 따라 별 위협이 안 되게 만들 수 있었다.

    강하진은 정면으로 저들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저들이 다시 균열에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막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강하진에게는 만능 치트키나 다름없는 라파시드의 서가 있었으니까.

    강하진은 막사 안을 둘러봤다.

    웬만한 운동장보다 넓은 막사였는데, 가장자리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운 각성자들은 전부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구덩이 안쪽에 있는 각성자들은 열심히 균열에 마력을 퍼붓는 중이었다.

    강하진은 일단 잠든 각성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을 침대 째로 들어서 조용히 밖으로 옮겼다.

    거대한 막사 주위에 크고 작은 막사들이 무수히 많았기에 그 중 한 군데에 대충 옮겨 놓기만 해도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깨어나면 문제가 되겠지만.

    강하진은 최대한 서둘렀다.

    거대 막사 내부에 있던 각성자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 다음, 라파시드의 패턴을 그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밖으로 새 나가면 곤란했다.

    일단 여기 있는 각성자들을 전부 기절시킬 생각이었으니까.

    저들은 나름대로 지구를 구하겠다고 이러고 있는데 무작정 죽여 버리는 건 좀 찜찜해서 일단 살려두기로 했다.

    소리를 차단한 강하진이 구덩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은폐]를 쓴 강하진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하진은 사각에 있는 각성자부터 차례대로 기절시켰다.

    강력한 전격을 이용해 타격을 줘서 기절시켰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기절시킨 각성자들을 한꺼번에 막사 밖으로 날랐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균열에 은폐와 왜곡을 비롯한 다양한 패턴을 펼쳐 균열의 영향이 지구에 최대한 미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 세 개의 대결계를 동시에 작동시켰다.

    우우웅!

    균열이 나직이 울음을 토해냈다.

    마치 당장 폭발하기라도 할 것처럼 균열 내부의 우주가 끓어오르고 요동쳤다.

    하지만 그저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균열이 급격히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아마 이번 조치로 인해 거대 던전이 다시 줄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끝일 리 없다.

    마르바스가 이 상태를 그대로 방치할 리 없으니까.

    아마 필시 다른 균열을 만들거나, 이 균열에 무슨 짓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걸 디펜더스가 도울 수도 있지.’

    회귀 전에도 마르바스와 손잡은 놈들이다. 이번에 또 손을 잡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 시기가 문제일 뿐.

    강하진은 구덩이에서 나간 다음, 그곳을 메워버렸다.

    주변에 모래가 잔뜩 있었으니 구덩이를 다시 메우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끝내면 나중에 다시 균열을 찾아내기가 너무 쉬워진다.

    강하진은 이곳을 없애버리기로 작정했다.

    * * *

    사하라의 균열은 윌리엄의 권속인 레놀이 관리하고 있었다.

    그가 이곳의 총 책임자였다.

    모든 일정을 관리하고 모든 각성자와 PMC의 용병들을 컨트롤했다.

    레놀은 아침이 되어 눈을 뜨자마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평소와 공기가 다른 듯한 느낌이었다.

    “뭐지?”

    레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각성자들이 곳곳에 모여서 웅성거리는 광경이 보였다.

    뭔가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야?”

    레놀은 그렇게 물었지만 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균열을 가리고 있던 거대한 막사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이게 뭐야? 대체 누가 이따위 짓을 한 거야!”

    레놀은 그렇게 소리치며 막사가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균열이 있던 구덩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누군가 구덩이를 메워버렸다.

    아주 감쪽같이.

    “하아. 대체 어떤 미친놈이······!”

    짜증과 화가 치밀었지만 불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일이 늘어난 것뿐이니까.

    구덩이야 다시 파면 된다.

    한데 그때, 각성자 하나가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모래폭풍이 옵니다!”

    레놀은 짜증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고작 모래폭풍 따위에 동요하지 마!”

    물론 사막에서 모래폭풍은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막사로 다들 들어가! 지나간 다음에 정리하고 다시 구덩이 팔 테니까!”

    레놀의 지시에 다들 막사로 들어가려고 했다. 한데 각성자 중 하나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그냥 모래폭풍이 아닙니다! 벼락이 같이 오고 있어요!”

    그 말에 다들 깜짝 놀라 저 멀리서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는 모래폭풍을 바라봤다.

    정말로 그냥 폭풍이 아니라 그 안에 무수한 벼락이 함께 몰려오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이, 일단 피해! 도망쳐!”

    레놀은 그렇게 소리치고 자신부터 먼저 달려가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도망쳤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서둘러 차에 타고 그곳을 떠났다.

    균열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베이스캠프가 버려졌다.

    하지만 누구도 진짜 이곳을 버렸다고 여기지 않았다. 저 폭풍이 지나간 뒤 다시 돌아와서 정리만 하면 될 테니까.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 * *

    모래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로 돌아온 레놀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는 거라고는 그저 끝없이 이어진 모래뿐이었다.

    근처를 미친 듯히 파헤쳐봤지만, 정말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모래폭풍과 함께 왔던 강하진이 그곳에 있던 모든 물건을 아공간에 넣었으니까.

    벼락에 휩싸인 모래폭풍은 강하진의 작품이었다.

    실제로 모래폭풍에 벼락이 섞인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도록 강하진이 스킬을 써서 벼락을 뿜어낸 것에 불과했다.

    저들을 전부 이곳에서 치우고, 라파시드의 패턴을 설치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반쯤 사기에 가까운 작전이어지만 아주 정확히 먹혀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제 이들은 균열이 어디에 있는지 절대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왜곡과 은폐의 장이 저들의 모든 감각을 교란할 테니까.

    강하진은 마지막으로 레놀을 비롯해 이곳에 남은 윌리엄의 권속들을 이쪽 시스템으로 다시 연결하고 사하라를 떠났다.

    남아있던 각성자들은 갑자기 변한 레놀 때문에 한동안 혼란에 휩싸여야만 했다.

    윌리엄의 권속도 계약을 끊음과 동시에 기억이 삭제되었다. 마치 원래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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