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180화 (180/200)

< 유적에 대하여 1 >

제이슨은 질린 표정으로 아쉬를 바라봤다.

간이침대에 걸터앉은 아쉬의 온몸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한창 괴물과 싸우던 와중에 갑자기 아쉬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으니까.

제이슨은 달려드는 괴물들을 대충 정리하면서 아쉬를 보호했다.

그때 볼 수 있었다. 아쉬의 팔 하나가 사라진 것을.

아쉬의 분신이 또 당한 것이다.

손목도 아니고 팔을 재료로 만든 분신이 당했다는 건 상대의 실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솔직히 제이슨도 팔 하나를 투자해 만든 아쉬의 분신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하니까.

아쉬는 간신히 고통에서 벗어난 뒤 달려드는 괴물을 쓸어 버렸다.

분신을 잃은 분노를 괴물에 쏟은 것이다.

덕분에 영국 거점은 예상보다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반면 스페인 쪽 거점은 피해가 너무 커서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아쉬는 스페인 쪽에 보냈던 분신을 회수한 상태였다.

그 뒤로 계속 저 상태였다.

가만히 앉아서 살기만 뿌리는데, 근처에 다가가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제이슨은 흠칫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제니퍼, 꼭 필요한 거 아니지?”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제이슨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인상을 확 쓰고 소리쳤다.

하지만 아쉬의 표정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아, 권속 때문에 좀 곤란하긴 하겠군.”

“무슨 소리냐니까!”

아쉬가 고개를 저었다.

“별 거 아니야. 어차피 벌어지지도 않을 일, 괜히 얘기할 필요 있나?”

아쉬는 여전히 같은 표정, 같은 눈빛으로 제이슨을 보며 물었다.

“아. 그 스팬서라는 놈은 어때? 쓸모 있는 놈인가?”

“그걸 말이라고 해?”

아쉬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곤란한데······ 쓸 만한 놈 없어? 스팬서쯤 되는 놈으로.”

“무슨 뜻인지 정확히 말해.”

“내가 이번에 팔을 잃었잖아. 그럼 어떻게 되겠어?”

제이슨의 표정이 굳었다.

“힘이 많이 줄어들었나?”

“힘도 힘인데······ 감각이 비틀렸어. 이대로라면 내 원래 전투력의 반도 내기 힘들어. 그러니 그걸 바로잡을 도구가 필요한데······.”

제이슨은 순간 피가 싹 식어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그 도구로 제니퍼를 쓰려고 했던 거야?”

“아니라니까? 스팬서는 몰라도 제니퍼는 쓸모 있잖아?”

“이······ 미친놈!”

제이슨은 미친놈이라고 욕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스팬서의 대체재를 찾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후우. 기다려 봐. 내가 조달해 볼 테니까.”

“오, 진짜? 역시 제이슨이야. 하여튼 철저하다니까?”

“닥쳐, 이 미친 싸이코패스야.”

“큭큭큭. 넌 아니고?”

아쉬는 키득거리며 웃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상쾌한 표정으로 막사를 나섰다.

“그럼 기념으로 제니퍼나 만나러 갈까? 아무래도 분신만으로는 성에 안 찬단 말이지.”

분신을 다시 몸으로 흡수하는 순간 경험까지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본체로 경험한 것과는 질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쉬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막사에서 멀어져갔다.

제이슨은 그런 아쉬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 스팬서? 혹시 네 친구 연락 되나? 그 조원영이라는 친구 말이야.”

* * *

강하진은 찌뿌드드한 표정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꿈속에서 내내 아쉬의 분신과 싸웠다.

이번에는 라파시드의 서도 쓰지 않은 채 오직 실력만으로 싸워야 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죽었는지 모른다.

라파시드의 서 없이 오직 힘과 실력만으로 아쉬의 분신을 죽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강하진이 꿈에서 깬 건, 100번이 넘게 죽은 뒤, 간신히 한 번 아쉬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은 다음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 멍한 표정으로 꿈을 떠올린 강하진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번 꿈은 지난번보다 훨씬 더 생생했다.

그래도 죽는 경험은 진짜 죽음보다 못했다. 진짜 죽을 때의 느낌은 이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그 꿈을 버텨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건 뭐지? 저주 같은 건가?’

사실 저주라기보다는 훈련의 느낌이 더 강했지만, 만일 아쉬를 죽이기 전에는 꿈에서 깰 수 없다면 그건 정말 저주일 것이다.

지금이야 아쉬의 분신이니 간신히 이길 수 있었지만, 아쉬의 본체와도 이런 일을 또 겪어야 한다면 그때는 진짜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이번 경험 덕분에 전투 기술이 크게 늘었다.

어쩌면 진짜 아쉬와 만나도 압도적으로 밀리지 않을지 모른다.

강하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태블릿을 들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일본 상황이었다.

‘영국이랑 스페인만 남았군.’

그나마 스페인 쪽은 거의 무너지다시피 해서 계속 거점을 유지할지도 불투명했다.

영국 쪽은 상황이 좀 나았지만, 거기도 피해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래도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명인혁이 보내준 정보를 추가로 확인해보니 디펜더스에서 각성자를 추가로 파견할 거라고 한다.

분위기를 보니 영국과 스페인 양쪽을 다 살리려는 모양이었다.

‘뭐······ 두 군데 다 살리면 이쪽이야 편하지.’

거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디언스 쪽이 안전해진다. 어쨌든 괴물이 분산될 테니까.

하지만 저들이 전부 철수해 버리면, 결국 가디언스에 가해지는 부담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한쪽에서 괴물의 밀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밀도가 낮은 쪽으로 괴물이 밀려날 테니까.

강하진은 한동안 일본 상황을 체크하고는 태블릿을 내려놨다.

일본 전체의 괴물 밀도가 한껏 높아졌다.

하지만 당분간 이번처럼 대대적인 괴물의 공세는 없을 듯했다.

이제부터는 차근차근 주변을 정리하고 각성자들을 동원해 사냥을 진행하면 될 듯했다.

아쉬가 어떻게 나올지 좀 걱정되긴 하지만, 가디언스 거점도시로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난장을 피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이쪽에 사람이 너무 많았으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강하진은 침대 아래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백호를 내려다봤다.

혹시 모르니 백호를 여기에 남겨두고 갈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백호의 성장 환경은 이곳 일본이 가장 좋았다.

일단 무한한 괴물이 있고, 벽을 넘은 괴물도 많다. 또한 나중에는 두 번째 벽을 넘은 괴물이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 괴물들을 잡아먹으면서 성장하다보면 백호도 언젠가 세 번째 벽을 넘을 수 있지 않겠는가.

도시 근처가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냥하면 도시의 각성자들이 사냥에도 큰 영향을 안 미칠 테고 말이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도시를 보호할 수 있으니 백호를 데려가기보다는 여기 남기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다.

‘그럼 다음은······.’

이제 일본 다음의 일을 정해야 한다.

사실 유적을 찾아 시스템에 편입시키는 일도 꾸준히 진행해야 하지만, 지금은 어딘가에 있을 균열 쪽에 더 신경이 쓰였다.

남극의 균열은 처리를 했지만, 만일 제이슨 일당이 눈치라도 채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남극의 균열은 현재 지구에 던전을 여는 시작점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핵심은 아니었다.

진짜 열쇠가 되는 균열은 따로 있는 것이다.

‘사하라일 가능성이 높긴 한데······.’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모았다. 남극에 있던 디펜더스의 각성자들이 아는 사소한 정보부터 명인혁과 명인수가 바닥부터 긁어낸 정보들까지 종합해서 내린 결론이 바로 사하라였다.

하지만 정확히 사하라 어디쯤에 있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위성을 통해 샅샅이 훑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직접 가봐야 하나?’

사실 남극의 균열도 근처에 유적을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아마 그게 아니라 균열을 찾기 위해 남극을 헤매고 돌아다녔으면 아직도 못 찾고 헤매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필요한 일인데.

‘거기에도 유적 같은 게 하나 있으면 좋겠네.’

겸사겸사 움직이게 말이다.

* * *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강하진은 서둘러 움직였다.

더 이상 일본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이번 일 이후 각성자들의 실력이 크게 오르면서 세계 곳곳의 각성자들이 가디언스의 거점도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움직임을 볼 때, 조만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각성자들이 몰려올 가능성이 높았다.

각성자들의 안전을 확보해주는 일은 상대적으로 힘들어지겠지만, 도시 내의 안전은 훨씬 단단해질 것이다.

한국행 비행기에 탄 강하진은 디펜더스의 멤버들 역시 일본을 떠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시름 놨네.’

저들이 일본에 머물렀다면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아쉬는 정말로 거슬리는 존재였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놈이었으니까.

디펜더스는 멤버를 일본에서 빼고 다수의 서포터를 동원해 거점을 단단히 다지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영국과 스페인 정부의 지원을 듬뿍 받았고 말이다.

그 두 나라는 일본 거점을 디펜더스와 기꺼이 나누기로 했다.

디펜더스는 더욱 적극적으로 각성자와 지원물자를 보냈고, 두 나라에서도 훨씬 많은 인력과 자금을 지원했다.

그렇게 다시 영국과 스페인 거점이 활기를 찾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강하진은 그걸 보며 차라리 잘 됐다고 여겼다.

가디언스 거점도시 홀로 일본에서 버티는 건 솔직히 버거운 일이었다.

물론 불가능할 건 없지만,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거점도시가 두 군데 정도 더 있으면 분산효과로 인해 훨씬 더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한 강하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레나트를 만났다.

레나트는 강하진이 온다는 말에 가디언스 본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현재 가디언스 본부는 파주에 있는 레이드로스 성으로 이전한 상황이었다.

레이드로스 성의 기사와 마법사, 병사들이 성을 단단히 지키고 있기에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고 보안이 철저한 장소가 되었다.

그 성의 정원을 서성이던 레나트는 강하진을 발견하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달려가 맞이했다.

간단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에 마주앉았다.

“일본 일은 잘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상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대단하십니다.”

“다들 역량이 뛰어나지 않습니까.”

강하진의 대답에 레나트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살폈다.

“그나저나······ 백호가 안 보이는군요.”

“백호는 당분간 일본에 남기로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레나트의 표정이 어찌나 안타까운지 강하진이 움찔할 정도였다.

“일본 일이 마무리되면 백호부터 부르겠습니다.”

그제야 레나트의 표정이 환해졌다.

“기다리겠습니다.”

레나트는 다시 정색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보다 이번에 제가 특이한 걸 발견했습니다.”

강하진의 관심을 확 끄는 말이었다.

레나트가 발견했다는 게 뭐겠는가. 당연히 유적일 것이다. 거기에 특이하다고까지 말했으니 무언가 더욱 특별한 유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전 그동안 제가 모았던 자료와 마스터가 새로 구한 자료를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살펴봤습니다.”

레나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정말로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는 강하진의 눈도 밝게 빛났다.

뭔가 중요한 정보가 나올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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