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문이 열리다 1 >
일본 전역에 거대 던전이 우수수 쏟아졌다.
마치 던전공습을 보는 듯했다.
거대 던전이 수백 개나 열렸고, 작은 뉴타입 던전이 각 거대 던전을 중심으로 각각 수십 개씩 열렸다.
그리고 그 뉴타입 던전을 중심으로 또 각각 수십 개의 일반 던전이 열렸다.
그러니 열린 던전의 수가 무려 수십만 개였다.
아마 일본이 망하지 않았어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망했을 것이다.
이 정도 수의 던전이 한꺼번에 열리면 누가 와도 답이 없다.
그건 강하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하진은 일본에 열린 던전 현황을 확인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예전에는 일본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데······.’
그리고 전 세계에 열린 거대 던전의 수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회귀 전과 명백히 달라진 지점이었다.
강하진이 예상하기로 다른 곳에서 열렸어야 할 던전이 일본으로 몰려온 듯했다.
그래도 이미 망한 나라에 던전이 몰려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만일 이 던전들이 전 세계에 골고루 퍼졌다면, 또 한 번 혼란이 찾아왔을 테니까.
어쩌면 이번 기회에 몇 나라는 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가디언스와 디펜더스가 나서서 잘 막아내고 있기에 그 정도로 심각한 나라는 없었다.
조금 힘들어지는 나라는 몇 군데 나올 수도 있지만.
어쨌든 강하진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일본에 지옥문이 열리면 그 안에 들어가서 레벨업을 하면 되니까.
“일단······ 도시 근처부터 정리를 시작해야겠네.”
이번 사태는 워낙 심각해서 가디언스 거점도시 내부에도 거대 던전을 비롯해서 작은 던전과 일반 던전이 무수히 열렸다.
지금 모든 각성자들이 도시 내부에 열린 던전을 닫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도시 내부의 던전은 터지기 전에 전부 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도시 바깥쪽에 열린 던전들을 전부 닫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물론 강하진이 없다면 말이다.
강하진은 품에 안은 백호를 내려놨다.
“가자.”
강하진이 밖으로 나가자, 백호가 어슬렁거리며 따라갔다.
둘은 도시 밖으로 나갔다.
도시 내부는 현재 도시에 머무는 각성자들이 알아서 정리하면 된다.
현재 가디언스 거점도시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빈틈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비교적 약한 각성자들은 일반 던전을 맡고, 그보다 좀 더 강한 각성자들은 뉴타입 던전을 맡는다.
그리고 100명의 가디언스는 적절히 분산되어 거대 던전을 닫는 중이었다.
그들은 최대한 빠르게 거대 던전을 닫은 후, 다른 각성자들이 미처 닫지 못한 다른 던전들을 닫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지만,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강하진을 믿고 있었으니까.
강하진은 그들의 믿음에 부합하듯 도시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던전을 닫고 다녔다.
언제나 백호와 함께 들어갔는데, 그래서 그런지 던전을 닫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일단 일반 던전은 1분 안에 끝난다.
백호가 한 번 힘을 쓰면 던전 안에 있던 자잘한 괴물이 싹 죽었고, 마지막 남은 보스를 강하진이 처리하고 그걸 백호가 먹는 동안 코어를 부수면 끝이었다.
경험치는 대부분 강하진이 먹고, 백호는 괴물 사체를 포식해서 경험치를 얻으니 그야말로 윈윈이었다.
뉴타입 던전이라고 해도 별다를 게 없었다.
일반 던전처럼 1분 안에 끝내지는 못하지만 던전을 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백호가 알아서 날뛰게 두고, 강하진은 그 이외의 부분을 정리하면 되니까.
거대 던전은 좀 상황이 다른데, 그래도 하나 닫는 데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규모가 거대해서 시간이 걸릴 뿐이지 어려운 던전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그 정도 던전들로는 레벨업에 그렇게까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질 대신 양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건 초반인 지금에나 그렇지 나중에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던전이 터지기 시작하면 일본 내부가 괴물로 득실거릴 것이고, 그 중에 포식을 통해 진화하는 괴물들이 다수 나타날 것이다.
모든 것이 일본의 특수성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또한 회귀 전에는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이기도 했다.
아무튼 가디언스 거점도시 근처는 그렇게 강하진과 백호가 열심히 청소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던전들이 터질 시기가 시시각각 다가왔다.
* * *
“이거 심각한 상황 아니야?”
아쉬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제이슨을 바라봤다. 제이슨은 골치 아프다는 듯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심각해.”
“그래도 여기는 내가 안전하게 지켜주지.”
제이슨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만 지켜선 의미가 없어. 우리한테 의뢰한 스페인 쪽 기지도 지켜야 돼.”
“불가능하다는 거 알지?”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지금 밖에 생겨난 던전들 보고 얘기하는 거 맞아?”
“다 확인했어. 너랑 내가 작정하고 나서면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낼 수 있어.”
제이슨의 말에 아쉬가 피식 웃었다.
“여기 있는 놈들이 전부 덜떨어져서 벌어지는 일인데 내가 왜 굳이 나서서 애써야 하지?”
“안 그러면 가디언스한테 일본을 모조리 빼앗길 테니까.”
가디언스라는 말에 아쉬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차라리 그 가디언스의 거점을 나중에 빼앗는 게 낫지 않아? 그게 더 쉬울 거 같은데?”
“여기도 못 지키면서 거길 먹겠다고?”
아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어쩌자고?”
“분신.”
분신이라는 말에 아쉬의 표정이 더욱 크게 일그러졌다.
“내가 얼마 전에 분신 하나를 잃어버린 걸 알면서도 그따위 얘기를 해?”
“아니면 방법이 있나? 분신을 보내고 제니퍼를 불러서 스페인 쪽을 정리하자고.”
분신 하나와 제니퍼가 힘을 모으면 스페인 쪽에 밀려드는 괴물들 정도는 어찌어찌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단, 방해가 없을 거라는 전제 하에 말이다.
“네 분신을 소멸시킨 놈은 강하진이 분명해. 그놈도 이번에는 나서지 못할 거다. 자기들 거점을 지키기에 급급할 테니까.”
“뭐······ 그거야 그렇겠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렇게 하자고. 우린 좀 더 증명이 필요해. 아직 우릴 완벽하게 믿는 놈들이 별로 없으니까.”
그동안 균열에 집중하느라 생겼던 공백기가 너무나 뼈아팠다.
제이슨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지금 이렇게 무리할 필요도 없었다. 솔직히 일본에 있는 다른 나라의 거점들을 그냥 방치하고 차라리 가디언스 거점도시로 가서 그놈들을 방해하는 게 훨씬 더 나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제이슨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그는 아쉬를 가만히 바라봤다.
꺼림칙한 시선을 느낀 아쉬가 인상을 썼다.
“왜 그따위 눈으로 봐?”
“분신, 하나 더 만들 수 있나?”
“뭐? 장난해?”
“아니, 우리의 힘을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쪽의 발을 한 번쯤 걸어주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서 말이지.”
“저쪽의 발을 건다고?”
아쉬는 갑자기 혹한 표정을 지었다.
분신이 소멸한 이후, 아쉬가 가디언스에게 가지는 적대감은 상당했다.
자신의 분신을 소멸시킨 존재가 강하진일 거라고 거의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아직 증거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제이슨이 생각하기에도 아쉬의 분신을 죽일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강하진이나 혈백호 정도가 나서야만 했다.
그것도 자신들이 파악한 것보다 둘이 훨씬 더 강하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설마 두 번째 벽을 넘은 건가?’
제이슨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제이슨을 보며 아쉬가 슬그머니 웃었다.
“발을 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아주 한 방 제대로 먹여줘야겠어.”
“거기에 너무 집중해서 이쪽에 소홀하면 안 돼.”
제이슨의 당부에 아쉬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어. 별 걱정을 다 하네. 내가 누군지 잊었나봐?”
“끄응.”
잊을 리가 있나. 제멋대로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아쉬라는 걸 어떻게 잊겠는가. 저놈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자, 일단······ 힘을 보충해야 하니까 마석 있으면 좀 꺼내봐.”
제이슨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아공간에서 마석을 와르르 쏟아냈다.
그동안 열심히 모았던 마석의 절반 정도나 되는 막대한 양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투자는 해야 뭔가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아쉬는 마석 무더기를 보고는 히죽 웃었다.
그리고 마석을 하나씩 쥐고 마력을 쪽쪽 빨아먹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분신을 만들었다.
“일단······ 스페인 쪽에는 이놈을 보내지.”
우둑!
아쉬는 자신의 왼손을 잡아 뜯었다.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고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진짜 손목을 뽑아내듯 아픈 건 아니었다.
이 통증이 제대로 찾아오려면 손목으로 만든 분신이 소멸해야 한다.
새끼손가락 분신이 소멸했을 때 아팠던 것처럼.
아쉬의 손이 쑥쑥 자라더니 벌거벗은 아쉬가 되었다.
제이슨은 기다렸다는 듯 미리 준비한 옷을 건넸다. 온통 새까만 옷이었다.
“그리고······ 가디언스에는 이놈을 보내도록 하지.”
꽈드득!
아쉬는 손목이 사라진 팔을 통째로 뽑아냈다.
어깨까지 도려낸 듯 뽑힌 팔의 모습에 제이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가디언스로 보낸다고? 저걸 안 보내고?”
제이슨이 검은 옷을 입은 아쉬와 막 자라나고 있는 벌거벗은 아쉬를 번갈아 가리키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새끼손가락을 이긴 놈인데 손목 정도로 되겠어? 팔 한 쪽은 보내야지. 안 그래?”
‘이 미친 놈.’
제이슨은 골치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누가 아쉬를 말리겠는가.
“후우. 마음대로 해라. 대신 맡은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야 돼.”
아쉬가 씨익 웃었다.
“내가 맡은 일에 실패한 적이······ 있었군.”
지난번에 소멸한 새끼손가락이 떠올랐다. 아쉬가 이를 갈았다.
“절대 곱게 안 죽여. 저놈이 잘 포장해서 이리로 가져올 테니 기다리라고.”
아쉬의 얼굴에 떠오른 잔혹한 미소를 보며 제이슨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아쉬가 쳤던 사고가 떠올랐다.
아마 이번에도 곱게 넘어가긴 쉽지 않을 듯했다.
* * *
시작은 일본의 중심부였다.
거대 던전 하나가 터지면서 주변을 다 휩쓸어 버렸다.
근처에 있던 던전들이 마력 폭풍에 휘말렸고, 그게 무언가 신호가 되었는지 일제히 터져 버렸다.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들이 쏟아졌고, 각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별의 별 괴물들이 다 있었다.
당연히 그 중에는 포식이 가능한 놈도 존재했다.
그걸 시작으로 일본 곳곳에서 던전이 터졌다.
일본에 거점을 마련한 나라들에 비상이 걸렸다.
그들은 지원병을 더 보내야 할지, 아니면 그곳을 포기할지 선택해야만 했다.
결정을 머뭇거리는 사이 거점들이 괴물의 습격을 받아 박살이 나 버렸다.
그나마 살아남은 거점은 영국과 스페인의 거점뿐이었다.
미국의 거점조차 지키는 데 실패했다.
영국과 스페인의 거점도 살아남긴 했지만, 완벽하게 살아남았다고 하기엔 피해가 너무 컸다.
아쉬와 제이슨, 제니퍼가 큰 활약을 했지만, 고작 한두 명의 강자로 해결하기엔 몰려드는 괴물의 수가 너무 많았다.
초기 괴물의 공세를 완벽하게 틀어막은 곳은 가디언스의 거점이 유일했다.
그나마 강하진과 백호가 주변 던전을 싹 정리했기에 버틸 수 있었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가디언스의 거점도시도 박살이 났으리라.
그래도 가디언스는 어쨌든 버텨냈다.
또한 영국과 스페인도 버텨냈다.
하지만 괴물의 공세는 이제 시작이었다. 아직은 고작 한 번 막아낸 것에 불과했다.
일본 전역에 나타난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들이 곳곳에서 대이동을 시작했다.
슬슬 두 번째 괴물의 공세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