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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69화 (169/200)
  • < 균열 확장 2 >

    일본에 자리 잡은 미국의 거점은 조용했다.

    요 며칠 사이 끊임없이 괴물이 공격하는 바람에 다들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혹사당했다.

    괴물과의 싸움으로 피해를 크게 입지는 않았지만, 좀 쉴 만하면 다시 괴물들이 몰려오는 통에 편안히 쉬는 건 불가능했다.

    한데 어제 오늘은 정말 끝내줬다.

    괴물이 한 번도 습격을 하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그야말로 꿀잠을 잤다.

    그건 기지의 사령관도 마찬가지였다.

    사령관은 막사를 나서서 기지를 둘러봤다.

    곳곳에서 훈련을 하거나 쉬는 각성자와 군인들이 보였다.

    “그나저나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한데······.”

    사령관은 강하진이 함께 할 각성자를 구하기 위해 기지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들어온 보고는 없었다.

    일단 강하진이 함께 사냥하자고 제안하면 무조건 거절하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러니 강하진은 기지 어딘가에 있어야 했다.

    한데 아무리 기지를 둘러봐도 강하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사령관의 눈에 각성자 부대를 이끄는 마이클이 보였다.

    “마이클.”

    “아, 사령관님.”

    마이클은 사령관을 보며 반색했다. 마이클 역시 푹 잔 덕분에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혹시 가디언스의 마스터가 어디 있는지 아나?”

    “예? 그 사람이라면 아까 아침 일찍 기지에서 나갔습니다만······ 사령관님이 지시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기지에서 나갔다고?”

    “예. 아침에 나가는 걸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인사까지 나눴으니 잘못 봤을 리도 없습니다.”

    사령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어제는 강하진이 뭐 했는지 혹시 아나? 어제 일은 따로 보고 받은 적이 없어서 말이야.”

    “어제도 사령관님을 뵙자마자 바로 기지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것도 사령관님 지시가 아니었습니까?”

    당연히 아니다. 그저 계약대로 하라고 했을 뿐이었으니까.

    “다른 각성자들 아무도 안 데리고 혼자서 나갔단 말인가?”

    “예. 원래 가디언스 마스터는 혼자 움직이는 걸로 유명합니다. 뭐······ 정찰이라도 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주변 괴물을 좀 정리했을 수도 있고요.”

    “그럼 어제부터 계속 괴물이 안 보이는 게 강하진 때문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린 어제부터 쭉 쉬고 있었으니까요. 솔직히 그동안 너무 무리해서 당분간 쉬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습니다.”

    사령관의 표정은 풀리지가 않았다.

    ‘혼자 나갔다고? 설마 정말로 그 많은 던전을 혼자서 닫으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지금 이 근처에 나타난 던전들은 전부 굉장히 위험했다.

    던전 안에 서식하는 괴물들이 기존 던전과는 궤를 달리할 정도로 강력했으니까.

    한데 그런 던전을 혼자서 들어간다?

    물론 혼자 괴물을 싹 죽이고 던전을 닫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한두 개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무려 300개나 되는 던전을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시간제한이 없다면 모를까, 조만간 던전이 터질 테니 시간도 아주 빠듯했다.

    사령관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도 안 되는······.”

    만일 강하진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면, 또 그래서 이곳 미국 기지에 일말의 피해라도 온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령관의 눈에 은은한 분노가 어렸다.

    그는 몸을 휙 돌려 다시 막사로 돌아갔다.

    그런 사령관의 뒷모습을 마이클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 * *

    미국 기지의 사령관은 황당한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끝났다니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강하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지도를 내밀었다.

    “지도에 표시된 던전은 전부 닫았습니다.”

    사령관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강하진을 바라봤다.

    “그 지도를 받아간 지 이제 고작 2일 지났을 뿐입니다. 설마 지금 저랑 장난 하자는 건 아닐 테고······ 도무지 의도를 모르겠군요.”

    사령관이 이렇게 반응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오늘 아침에도 기지 주변을 둘러봤다. 던전은 대부분 그대로 있었다.

    괴물이 몰려오지 않는 건 분명히 강하진 덕분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던전은 건드리지도 않았음이 분명했다.

    한데 난데없이 찾아와서 일이 다 끝났다고 우기니 황당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 지경이었다.

    “의도는 없습니다. 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사령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해주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갑시다. 뭐가 문제인지 직접 눈으로 보면서 설명해드릴 테니.”

    사령관이 성큼성큼 앞장서서 막사를 나섰다.

    강하진은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며 피식 웃었다.

    막사를 나선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기지 밖을 향해 이동했다.

    기지의 경계에 다가가던 사령관은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봤던 익숙한 광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 이, 이게 무슨······!”

    아무리 둘러봐도 던전이 보이지 않았다. 사령관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는 원래 던전이 있어야 할 장소를 계속 찾아다녔다. 하지만 단 하나의 던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어느새 따라붙은 강하진이 설명했다.

    “바깥쪽에 있는 던전부터 차근차근 닫았습니다. 이제 확인이 끝났으면 슬슬 떠나고 싶군요. 아시다시피 일정이 밀려 있어서요.”

    강하진의 말에 사령관은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단어만 떠오를 뿐이었다.

    ‘괴물.’

    가디언스의 마스터는 자신이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고작 버퍼와 힐러 취급을 했다니, 과거의 자신을 만나면 뺨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일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여러모로 불안정합니다. 그러니 대비를 철저히 해두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강하진은 사령관에게 친절한 충고까지 해주었다.

    그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모르지만, 사령관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미국 기지에서 할 일은 이제 끝났다.

    생각보다 던전의 수가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최대한 힘을 아끼지 않고 뽑아냈는데도 그랬다.

    덕분에 레벨은 좀 올릴 수 있었지만.

    강하진은 살짝 다급해져 빠르게 이동했다.

    * * *

    던전이 터지는 시기는 각 던전마다 다르다. 어떤 던전은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데 오랫동안 안 터지기도 하고, 또 굉장히 위험한데도 금방 터지는 던전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던전에 서식하는 괴물의 수준에 따라 던전이 터지는 시기가 결정된다.

    한데 일본에 생긴 던전은 다른 지역과 좀 달랐다.

    던전에 서식하는 괴물은 굉장히 레벨이 높고 위험한데, 정작 던전이 터지는 시기는 빨랐다.

    이동요새 이노툴이 뚫어놓은 구멍 때문에 불안정해져서 그렇다.

    그건 실질적으로 균열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일본에 나타난 무수한 던전들이 하나씩 터지기 시작했다.

    초기에 나타났던 던전들이 거의 동시에 터져 버린 것이다.

    그 던전에서 쏟아져 나온 괴물이 일본 전역을 휩쓸기 시작했다.

    일본의 불안정성 때문에 튀어나온 괴물 중에서 변이를 일으키는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그 중에 포식이 가능한 괴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갑자기 일본의 괴물 밀도가 극도로 높아졌다. 그리고 그것은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이어졌다.

    인간들이 만든 거점에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들이 달려들었다.

    가디언스의 거점은 아주 훌륭히 그걸 막아냈다.

    아직도 100명의 핵심 길드원이 남아 있는 상태였기에 사실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해일처럼 몰려오는 괴물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각성자들은 이런 기회를 절대 놓칠 생각이 없었다.

    강력한 동료와 함께 하는 사냥 기회를 왜 그냥 버린단 말인가.

    덕분에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괴물의 공격이 끝나 버렸다.

    하지만 다른 거점은 얘기가 좀 달랐다.

    다들 제법 강력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몰려드는 괴물의 수가 너무 많았다.

    또한 괴물 하나하나가 정말로 강력했다.

    그 와중에 포식을 통해 벽을 넘은 괴물이 한두 마리 섞여 있기까지 했다.

    그래도 어쨌든 다수의 강력한 각성자들이 포진해 있기에 괴물의 공격을 어찌어찌 막아내긴 했다.

    하지만 입은 피해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이대로 공격 한두 번 더 받으면 거점이 싹 날아가 버리는 걸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였다.

    그리고 괴물의 공격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모든 던전이 터진 게 아니라 첫 번째 던전들만 터진 거였으니까.

    아직 두 번째, 세 번째 폭발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첫 번째보다 더 강하고 많은 괴물이 몰려들지도 모를 공격이 말이다.

    강하진은 각 나라의 거점을 돌아다니면서 주변의 던전을 싹 정리해 주었다.

    아마 그게 아니었다면 괴물의 공격이 훨씬 무시무시해졌을 것이다.

    강하진이 정리한 던전이 각각 수백 개에 달했으니까.

    고작 이틀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수백 개의 던전을 닫을 수 있었던 건, 강하진이 잠도 자지 않고 밥도 싸우면서 먹을 정도로 시간을 아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투병사 소환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 훨씬 컸다.

    레벨이 올라가면서 소환할 수 있는 전투병사의 수가 대폭 늘어났다. 100명 이상의 전투병사를 소환하면 던전 하나 쓸어버리는 건 몇 분이면 충분했다.

    뉴타입 던전이라면 시간이 오래 걸렸겠지만, 강하진이 닫은 건 전부 일반 던전이었다.

    일반 던전은 핵심적인 괴물만 싹 죽여 버리면 바로 닫을 수 있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이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계약에 따라 각 거점에 한 번씩 도움을 준 강하진은 던전이 마구 터져나갈 때, 백호가 지키고 있는 곳에 있었다.

    사실 마음에 드는 거점으로 가서 그들을 도와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백호가 있는 곳에 온 이유는 느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백호가 지키는 구멍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던전이 마구 터져 나가면서 마력이 불안정해졌고, 그 불안정한 마력으로 인해 구멍의 상태도 안 좋아졌다.

    “어째 구멍이 닫히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네.”

    라파시드의 패턴으로 제법 잘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걸 어쩐다······.”

    강하진은 구멍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방에서 괴물이 마구 몰려왔다. 그리고 그 괴물들을 백호가 열심히 사냥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닫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미 흐름을 탔다. 이걸 거스르는 건 오히려 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강하진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진행을 늦추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진행을 늦추기 위해 강하진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강하진은 라파시드의 패턴을 준비했다.

    보아하니 던전이 터지면서 쏟아진 마력도 문제가 되는 듯했다. 그러니 그것도 차단해야만 한다.

    강하진은 몇 겹이나 되는 패턴으로 구멍을 감쌌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되돌리는 건 당연했고, 외부에서 이쪽으로 오는 마력도 모조리 차단해 버렸다.

    주변에 왜곡과 은신의 장을 펼쳐서 눈에 띄지 않게 조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레벨이 오르고 라파시드의 서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늘어나면서 또 예전과 실력이 달라졌다.

    강하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한 다음, 주변을 둘러봤다.

    여전히 무수히 많은 괴물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백호가 그걸 사냥 중이었고.

    강하진은 괴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근처의 괴물이 모조리 정리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강하진과 백호는 주변뿐 아니라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의 괴물들까지 싹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그곳을 떠났다.

    이 구멍이 나중에 더 커질 것이고, 이 때문에 마르바스의 침략이 더 빨라질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에 집착하느라 다른 일을 못하는 건 바보짓이었으니까.

    차라리 그 시간에 레벨을 올리고 유적을 찾아다니는 편이 나았다.

    강하진은 괴물을 싹 정리하고는 가디언스의 거점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괴물을 많이 잡아도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뭔가 묘한 불안감이 잔상처럼 계속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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