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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68화 (168/200)
  • < 균열 확장 1 >

    일본 가디언스의 거점에 있는 공항에 비행기 한 대가 착륙했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였는데, 그 안에는 몇몇 각성자와 일본에서 일하기로 한 일반인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가디언스와 계약한 자들로, 일본에서 각종 공사에 투입되거나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온 자들이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사냥하고자 하는 각성자들도 일부 타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던전이 잔뜩 나타난 상황이었기에 일본으로 오는 각성자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일반인은 더 늘어나는 추세였다.

    일단 사업을 벌이기 쉬웠다.

    새로 지어진 도시니 일거리가 얼마나 많겠는가. 또, 얼마나 사업할 거리가 많겠는가.

    게다가 여기는 가디언스의 영역이다.

    세계 제일의 길드인 가디언스와 인연을 맺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 당연하다.

    비행기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꿈과 계획, 기대를 안고 온 일반인이었다.

    그리고 그 일반인 틈에 강하진이 끼어 있었다.

    강하진은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설 때까지 주변을 열심히 둘러봤다.

    일본의 마력은 확실히 한국과 달랐다.

    굉장히 불안정했다.

    강하진은 일단 거대 던전이 있던 그 자리부터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뚫렸던 구멍이 완벽하게 닫히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멍이 있을 때는 계속해서 그곳을 감시했다. 그리고 구멍이 막힌 걸 확인하고서야 손을 뗐다.

    한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너무 성급하게 판단한 듯했다.

    원래라면 일단 가디언스 일본 지사부터 들러야 하지만, 강하진은 도시를 빠져나갔다.

    도시를 빙 둘러 철조망이 쳐져 있었지만, 강하진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철조망을 훌쩍 넘어서 예전 거대 던전이 있던 바로 그 자리를 향해 달려갔다.

    가디언스의 거점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기 전까지는 괴물이나 던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한데 몇 킬로미터 정도 이동하고 나니, 무수한 던전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다 닫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강하진이 작정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조만간 일본은 한 번 더 난리가 날 것이다.

    저 던전들이 모조리 터지면 쏟아져 나올 괴물의 수가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되었다.

    일본은 다른 나라와 달리 돌연변이 괴물들이 많았다.

    강하진이 가디언스와 함께 한 번 싹 쓸었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돌연변이 괴물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니 이 많은 던전에서 나온 괴물들이 나중에 얼마나 기괴하게 변하겠는가.

    벽을 넘은 강하진의 입장에서 레벨이 높은 괴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어쩌면 일본은 벽을 넘은 각성자들의 천국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일본 거점은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강하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빠르게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괴물은 모조리 사냥했다.

    사실 강하진이 자주 나설 필요도 없었다. 함께 온 백호가 알아서 사냥을 하고 괴물을 잡아먹었으니까.

    벽을 넘은 뒤로 강하진의 이동속도는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이제 웬만한 스포츠카보다 더 빠를 정도였다.

    물론 아직까지 비행기와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두 번째 벽을 넘고 나면, 어쩌면 그것 역시 가능할지도 모른다.

    ‘벽을 넘을 때마다 인간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하면 좀 오버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동하다보니 어느새 예전 거대 던전이 있던 자리에 도착했다.

    “역시.”

    강하진의 예상대로 그곳에는 막혔던 구멍이 다시 생겨나 있었다.

    마침 그 구멍을 발견한 순간, 근처에 있던 괴물 하나를 구멍이 날름 삼켰다.

    우우웅!

    구멍이 진동하더니 소용돌이가 약간 빨라졌다.

    괴물을 삼킬 때마다 구멍이 더욱 크고 깊어지는 모양이었다.

    이런 걸 방치했으니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것이다.

    강하진이 열심히 펼쳐뒀던 라파시드의 패턴도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괴물들 때문에 패턴도 망가지고, 그 패턴을 이루고 있던 힘까지 모조리 저 구멍이 삼킨 모양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구멍이 안 커져서 다행이네.”

    처음 여기 뚫렸던 구멍보다는 현저히 작았다.

    아마 다시 이렇게 뚫린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었다.

    강하진은 다시 라파시드의 패턴을 새겼다. 구멍에서 나오는 힘을 다시 되돌리는 패턴이었다.

    그리고 구멍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작은 벌레 괴물을 분해해서 되돌리는 패턴도 섞었다.

    벽을 넘기 전보다 라파시드의 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익숙해졌기에 훨씬 빠르고 정확하고 강력한 패턴을 새길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좀 더 확실히 여길 지켜야겠는데······.”

    강하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던전이 어딜 보든 눈에 들어왔다.

    “백호야. 당분간 네가 고생 좀 해야겠다.”

    강하진의 말에 백호가 눈을 번득였다. 그리고 구멍 근처에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이제부터 여기에 다가오는 괴물은 모조리 백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리라.

    강하진은 그렇게 백호에게 구멍을 맡겨놓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던전으로 향했다.

    일단 근처의 던전만이라도 정리하기로 했다.

    일정이 약간 늦춰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길 방치하면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 * *

    “여기가 미국 쪽 거점인가?”

    강하진은 미리 윤경민에게 전달 받은 지도를 통해 미국 거점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만든 거점은 상당히 규모가 컸다.

    이번 일이 터졌을 때, 왜 그렇게 난감해 하고 안절부절못했는지 거점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렇게 규모가 크니 저기를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전 수준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던전이 왕창 나타나고, 그것들이 하나씩 터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커진다.

    지금도 미국 거점 근처에 있던 던전 하나가 터진 건지 괴물들과 각성자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미국 쪽 각성자들은 제대로 된 진형도 갖추지 못한 채 싸우느라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저런 싸움에 끼어드는 건 강하진의 특기였다.

    일단 시작은 치료폭탄이다.

    화아악!

    새하얀 빛이 확 퍼지며 싸우던 각성자들의 상처를 싹 치료하고 체력을 채웠다.

    다들 깜짝 놀랐지만 가디언스의 마스터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었기에 반색하며 힘을 냈다.

    치료에 이어 버프가 들어갔다.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있어서 덜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버프가 워낙 강력해서 다들 깜짝 놀랐다.

    강하진은 그렇게 치료와 버프를 던진 다음 전투에 끼어들었다.

    버프를 준 것만으로도 괴물을 처리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는 전투를 빨리 끝내는 게 나았다.

    이내 전투가 끝났다.

    미국 측 각성자들이 서둘러 전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강하진에게 다가갔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디언스의 마스터이십니까?”

    “맞습니다.”

    강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마이클입니다. 이곳 기지의 각성자를 이끌고 있습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솔직히 철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상부에서 허락을 해주지 않네요.”

    강하진은 미국 측 거점을 슥 둘러봤다.

    규모도 컸지만, 시설도 제법 괜찮았다. 상당히 공을 들인 티가 났다.

    “여기 들어간 돈도 많고 얽힌 사람도 많아서 아마 쉽게 철수 결정을 못 내리는 모양입니다.”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아쉽게도 전 결정권이 없으니 책임자에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마이클은 그렇게 말하고 강하진을 기지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트럭이나 지프에서부터 장갑차까지 보였다. 심지어 탱크나 미사일, 헬기까지 있었다.

    정말 작정을 하고 왔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물론 저런 무기는 괴물들에게 잘 통하지 않으니 큰 쓸모는 없었지만.

    기지에 세워진 건물은 대부분 조립식 건물이었다.

    가디언스도 처음 일본에 진출할 때는 이런 건물을 가져와서 썼다.

    지금이야 다양하고 튼튼한 건물로 꽉 채워져 있지만 말이다.

    마이클은 가장 안쪽에 세워진 큼직한 막사로 강하진을 데려갔다.

    그곳은 사령관의 막사였다.

    사령관은 이미 연락을 받았는지 강하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갑게 다가갔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소파에 앉은 사령관은 잠시 강하진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정말로 혼자 오셨습니까?”

    이미 협상을 할 때 강하진 혼자 온다는 걸 확인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솔직히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고작 한 명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는 어려웠으니까.

    그나마 강하진이 굉장한 버퍼이기에 약간의 희망을 갖고 있긴 했다.

    하지만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사령관의 표정에도 강하진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저런 사람들의 행동에 일일이 반응하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다.

    그저 주어진 일만 딱딱 끝내고 돌아가는 편이 나았다.

    강하진이 가만히 사령관을 쳐다보자, 사령관은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희가 원하는 건 이 기지의 안전을 확보하는 겁니다.”

    사령관의 말에 강하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계약 사항은 그게 아닌 걸로 압니다.”

    “대가는 충분히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계약도 중요하지만 여기 지내는 사람들의 생명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강하진은 자신을 오랫동안 부려먹고 싶어 하는 사령관의 노골적인 욕심에 피식 웃었다.

    “생명을 생각하신다면 철수하는 것이 최선이죠.”

    “하하하.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여기까지 들어간 물자와 인력이 얼마나 많은데 얻은 것도 없이 철수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구해야 할 사람이 워낙 많아서요. 미국만 여기에 기지를 세운 게 아니지 않습니까.”

    사령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어느 정도 대가를 제시하고 잘 구슬리면 될 줄 알았다.

    여긴 미국의 기지니까.

    상대가 가디언스의 마스터라는 건 안다. 또한 강하진이 굉장히 뛰어난 버퍼이자 힐러라는 것도 안다.

    가디언스는 굉장히 강력한 길드였다. 그건 사령관도 인정했다.

    또한 가디언스의 마스터인 강하진 역시 굉장한 강자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혼자였다.

    사령관은 오랫동안 군대를 지휘한 경력이 있었다. 그리고 각성자 부대를 지휘하고 관리한 경험도 아주 풍부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강력한 각성자라고 해도 혼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버퍼와 힐러는 함께 하는 동료가 있어야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도 아주 잘 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약대로 진행하죠.”

    윤경민이 미국 측과 협상한 계약은 미국의 기지를 중심으로 반경 3킬로미터 내에 있는 일반 던전 중에서 300개의 던전을 닫아주는 거였다.

    실제로 그 안에 존재하는 던전의 수는 400개가 좀 넘는다.

    미국 기지 근처는 던전의 밀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굉장히 높았다.

    사령관은 지도를 펼쳤다. 미국 기지 근처를 드론으로 촬영해서 제작한 지도였다. 당연히 그 지도에는 던전도 나타나 있었다.

    “닫아야 할 던전을 표시해 두었으니 그걸 닫으면 됩니다.”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고 기대 어린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협력할 각성자를 지원해 달라는 말을 기다린 것이다.

    강하진이 먼저 그 말을 꺼내면 그걸 빌미로 다른 요구 사항을 제안할 작정이었다.

    어차피 계약에는 지원할 각성자에 대한 조항이 없었기에 떠올린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이 아무리 기다려도 강하진은 그저 지도만 살필 뿐이었다.

    “이 지도, 가져가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강하진은 지도를 챙기고는 막사에서 나가 버렸다.

    사령관은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우리 각성자가 따라붙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건가? 어이가 없군.”

    사령관은 자리에 앉아 즐거운 마음으로 강하진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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