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167화 (167/200)
  • < 균열 2 >

    쏟아지듯 나타난 던전 때문에 전 세계가 몸살을 앓았다.

    그동안 새로운 던전이 나타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어서 이제 조만간 이 던전과의 싸움이 끝나는 게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그래도 그동안 쌓은 힘과 경험이 있었기에 심각할 정도로 큰 혼란은 없었다.

    각국은 차분히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물론 가디언스의 힘이 없었다면 이렇게 차분히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디언스는 날이 갈수록 더 강해졌다.

    인원도 꾸준히 늘었고, 각 길드원의 실력도 빠르게 성장했다.

    아무튼 대부분의 나라가 이번 일을 잘 봉합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그런 건 아니었다.

    괴물에게 영토를 빼앗긴 나라들은 상황이 심각했다.

    이번 일의 핵심은 왕창 쏟아진 던전을 빠르게 닫는 것이었는데, 괴물의 영토 안에서 발생한 던전은 그저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 던전을 제 때 처리하지 못하면 터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괴물의 밀도가 높아져 끝났던 괴물과의 영토전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그걸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필리핀 정도?

    그나마 필리핀도 가디언스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갖추고 있으니 막아낼 수 있는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그저 눈 뜨고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디언스는 최소한의 피해로 이번 이를 막아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쏟았다.

    하지만 정작 큰 사고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바로 일본이었다.

    더 정확히는 가디언스의 일본진출을 보고 그걸 따라한 나라들이었다.

    * * *

    일본에 진출한 나라는 가디언스를 제외하고 5개국이었다.

    각각 영국, 미국, 독일, 스페인, 인도였다.

    이 중에서 인도는 엄청난 수의 각성자를 투입해서 주변을 싹 쓸어 버렸다.

    가디언스가 한 차례 일본을 휩쓸고 지나갔기에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른 나라들 역시 마찬가지로 자리를 잘 잡았다.

    강력한 각성자는 물론이고 최신 설비와 돈을 쏟아서 일본에 거점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그건 던전 사태가 터지기 전의 일이었다.

    던전이 갑자기 쏟아지자, 다들 당황했다.

    무차별적으로 살포된 던전은 그들의 거점 내에도 상당수 등장했다.

    일단 그것부터 정리하고 주변에 있는 던전을 정리했지만, 그들만으로 처리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았다.

    거기에서 자유로운 거점은 오직 가디언스의 거점뿐이었다.

    마침 일본 지사에 남아 있던 100명의 핵심멤버들이 이때다 하고 나서서 주변 던전을 말 그대로 쓸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워낙 레벨이 높고 강했는지라 혼자서 던전 하나를 처리하는 데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

    100명이 나서서 한 사람당 던전을 하나씩 닫은 것만으로도 거점 내부와 근처의 던전이 싹 사라졌다.

    그들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더 멀리까지 진출해서 던전이 터지기 전에 닫아 버렸다.

    그들만 움직인 게 아니라 거점에 머무는 모든 각성자들이 비상 상황임을 인지하고 열심히 사냥을 했기에 가디언스의 거점은 비교적 빠르게 안전을 확보했다.

    하지만 나머지 다른 나라의 거점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은 거점 내에 발생한 던전을 처리하는 것에 급급해서 주변 던전까지는 아예 손도 못 대고 있었다.

    가디언스가 워낙 쉽게 던전을 처리해서 그렇지 이번에 나타난 던전들은 기존보다 훨씬 강력한 괴물들을 품고 있었다.

    예전 생각으로 덤빈 각성자들이 던전 안에서 낭패를 겪곤 했다.

    일본에 진출한 나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다급해졌다. 그리고 맹렬한 위기감이 들었다.

    그런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 * *

    강하진은 한국에 있는 가디언스 본부에서 윤경민을 만나고 있었다.

    “다섯 나라에서 동시에 지원요청이 들어왔다고요?”

    “네. 다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지 아주 다급해 보였습니다. 뭐······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요.”

    “상황이 묘하게 됐네요.”

    “뭐, 우리로서는 잘 된 일이죠. 그들 덕분에 괴물이 분산되었으니까요.”

    “일본에서 던전이 몇 개나 터졌습니까?”

    “아직 몇 개 안 터졌습니다. 확인 가능한 건 17개 정도였습니다.”

    “우리 쪽에서 터진 건 아니죠?”

    “네. 절반은 중심지에서 터졌고, 나머지는 대부분 독일 쪽에서 터졌습니다.”

    “잘 막았습니까?”

    “독일이 생각보다 저력 있더군요. 사상자 없이 막아냈습니다. 시설은 좀 부서졌지만요.”

    “돈이야 많을 테니 시설은 문제가 안 될 테고······ 뭘 도와달라는 건지 모르겠군요.”

    “던전이 너무 많아서 주변정리가 불가능한 모양입니다. 우리 가디언스야 던전이 쏟아지자마자 닫아서 별다른 위기감이 없지만, 다른 나라는 안 그러니까요.”

    실제로 미국이나 영국 쪽 거점에서는 본국에 매일 지원 요청을 보내는 중이었다.

    거점 근처에 있는 던전들을 아직 20%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던전이 일제히 터지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었다고 보면 된다.

    “이번에 나타난 던전들이 유독 위험하기도 하고······ 또,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던전이 훨씬 많이 열리기도 해서 두려운 거죠.”

    “일본이 좀 특이하긴 하군요.”

    강하진은 그렇게 말했지만 짐작 가는 일이 하나 있긴 했다.

    일본에는 침식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직 그 구멍은 완벽하게 메워지지 않았다. 그게 다 메워지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그 와중에 이런 일이 터졌으니 상대적으로 일본 쪽에 던전이 훨씬 많이 나타난 것이다.

    아무래도 그쪽이 불안정하니 말이다.

    ‘그나저나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진행이 멈췄던 반발 때문에 이러는 건가?’

    한동안 진행이 멈추다시피 해서 던전 발생률이 극도로 낮은 상태가 계속 되었었다.

    마르바스가 가만히 있었을 리 없으니 그쪽에는 계속 힘이 축적되었을 것이고.

    아마 둑이 터지면서 그게 확 밀려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상정한 범위 내의 일이다.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었다.

    벽도 넘었고 말이다.

    “윤경민 씨 의견은 어떻습니까?”

    “일단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났으니 가디언스는 그쪽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리고 일본 거점을 포기할 수도 없으니 그곳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것 역시 맞는 말이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일본이 제일 위험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일본에 있는 분들이 당분간 머물면서 도와줬으면 합니다.”

    “그건 그렇게 하죠. 그나저나 그렇게 되면 남는 인원이 없어서 일본에 진출한 다른 나라의 거점은 그냥 방치할 수밖에 없겠군요.”

    윤경민이 씨익 웃으며 강하진을 바라봤다.

    “남는 인원이 왜 없습니까? 이렇게 제 앞에 만부부당의 인력이 있는데.”

    “저 말입니까?”

    강하진은 순간 자신은 유적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유적이야 좀 나중에 찾아도 되지만 지금 벌어진 일을 방치하면 사람이 죽어 나가니까.

    윤경민의 시선이 강하진의 품에 안겨 있는 백호에게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마스터와 백호 둘이면 거점 하나 정도는 청소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강하진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만 않는다면 거점 하나 정도 청소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던전이 터지기 전에 거점을 완벽하게 청소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일단 거점 한 군데 정도는 얼른 청소해주시고, 그 다음에는 구조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게 어떻습니까?”

    “청소할 거점은 정하신 겁니까?”

    윤경민이 음흉하게 웃었다.

    “이제부터 협상을 해봐야지요. 시간이 별로 없으니 협상도 아주 금방 끝날 겁니다. 제 생각에······ 미국 쪽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염두에 두고 계십시오.”

    아마 단단히 뜯어낼 작정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전화기 꼭 들고 다니시고요. 청소는 미국 쪽 거점에서 진행하더라도 그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으니까요.”

    강하진은 이번에 일본으로 진출한 다섯 나라에 약간의 애도를 보냈다.

    * * *

    남극에 있는 균열에 도착한 제이슨 일행은 잠시 쉬면서 마력을 다스렸다.

    이 근처의 마력은 굉장히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균열의 영향인 것 같은데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진 못했다.

    “서포터들은?”

    제이슨의 물음에 윌리엄이 대답했다.

    “일단 일주일 동안 기지에서 쉬라고 했어. 다들 마력이 바닥나서 죽기 일보직전이더군.”

    “지구를 구하는 일이라고 하니 몸을 아끼지 않은 모양이야.”

    “일부러 그런 놈들로만 뽑아왔잖아. 정의로운 히어로에 열광하는 놈들.”

    “아무튼 마력 좀 어떻게 해봐. 이거 대체 왜 이래? 올 때마다 더 심해지는 거 같은데?”

    제이슨의 말에 대답한 사람은 아쉬였다.

    “당연한 일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

    “당연하다고?”

    “우리가 나온 균열이잖아. 그러니 우리가 근처에 오면 문제가 생기는 거지.”

    “우리가 나온 균열이라서 그렇다고?”

    “그래. 시스템의 복원력이지. 우릴 원래 있던 세상으로 돌려놓기 위한 작용이라고 보면 돼.”

    그 말에 제이슨의 표정이 확 굳었다.

    원래 세상으로 돌아간다니, 상상도 하기 싫었다.

    제이슨을 비롯해 윌리엄과 제니퍼가 걸음을 멈추자 아쉬가 피식 웃었다.

    “뭐야, 이제 와서 무서워? 큭큭큭큭.”

    아쉬는 균열이 있는 구덩이로 훌쩍 뛰어내렸다.

    아무리 대단한 마력이 휘몰아치고 있어도 그들을 원래 세상으로 돌려보내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란 힘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자, 계획한 사람이 직접 해야지. 얼른 들어와.”

    그제야 제이슨이 훌쩍 뛰어서 아쉬 옆에 착지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쪽 세상에서는 균열이나 다름없어. 아마 마르바스도 우리 덕분에 손쉽게 균열을 뚫었을 거야.”

    아쉬는 품에서 작고 검은 돌조각을 꺼내 제이슨에게 휙 던졌다.

    그걸 받은 제이슨이 돌조각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게 대체 뭐지?”

    “페이즈 드래곤의 심장.”

    “페이즈 드래곤? 그게 정말 존재하는 거였어?”

    “마룡은 대부분 페이즈 드래곤이야. 아주 빌어먹을 정도로 강한 놈이지. 그래서 강력한 마왕이 아니면 잡을 엄두도 못 내는 거고.”

    제이슨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돌조각을 손가락으로 집은 채 이리저리 굴렸다.

    얘기를 듣고 보니 확실히 용의 심장 같았다.

    원래 용의 심장은 강력한 마력의 원천이다. 이 돌조각에 깃든 힘을 생각하면 충분히 용의 심장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 작은 조각이 아니라 원래의 크기여야겠지만 말이다.

    “그건 정말 극히 작은 조각이야. 원래 용의 심장은 웬만한 어른보다 크다는 거 알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아쉬가 씨익 웃으며 균열 쪽으로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얼른 그쪽으로 가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제이슨은 그런 아쉬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왠지 아쉬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듣고 보고 하면, 꼭 자신을 비웃고 놀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정말 안 좋았다.

    “후우.”

    제이슨은 균열 앞에서 잠시 호흡을 다스리고는 조각을 균열에 휙 던졌다.

    조각을 삼킨 균열이 갑자기 요동쳤다.

    사하라에서보다 훨씬 격렬한 반응이었다.

    제이슨이 당황해 얼른 아쉬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쉬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어느새 구덩이 밖으로 나간 것도 모자라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제야 위기감이 든 제이슨이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아아!

    그 순간 어마어마한 흡입력이 제이슨을 덮쳤다.

    균열에서 뻗어 나온 힘이 제이슨을 확 잡아당겼다.

    제이슨은 이를 악물고 마력을 일으켜 절벽에 꽉 달라붙었다.

    하지만 제이슨이 일으킨 마력은 너무나 간단히 균열에 빨려 들어갔다.

    제이슨은 마력을 다시 갈무리했다. 그리고 순수한 근력과 근성만으로 절벽을 기어 올라갔다.

    엄청난 흡력이 계속 제이슨을 끌어당겼지만, 그 모든 걸 이겨내고 한 발 한 발 위로 올라갔다.

    이내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제이슨을 향해 아쉬가 손뼉을 쳤다.

    짝! 짝! 짝! 짝! 짝!

    조롱하듯 느릿느릿 치는 손뼉 소리를 들으며 제이슨이 이를 갈았다.

    그리고 위협적인 걸음으로 아쉬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아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어때? 이제 힘이 좀 강해진 것 같나?”

    아쉬의 물음에 제이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차피 싸워봐야 이기지도 못한다. 화를 내면 오히려 자신이 바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돌아가자.”

    제이슨이 냉정한 표정으로 아쉬를 지나쳐갔다.

    아쉬는 그런 제이슨의 뒷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