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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66화 (166/200)
  • < 균열 1 >

    아쉬는 제이슨, 윌리엄 제니퍼와 함께 사하라 사막으로 향했다.

    작열하는 태양이 네 사람의 머리위로 쏟아졌다. 하지만 거기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슬슬 느낌이 오는군.”

    아쉬의 말에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거의 다 왔어.”

    제이슨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자신들은 이 균열을 찾기 위해 정말 애썼다.

    그들이 통과한 균열은 남극에 있었는데, 그곳은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들이 통과해 왔기에 힘을 써도 모조리 빨아들이기만 할 뿐이었으니까.

    지금 남극 균열에는 디펜더스 소속 각성자들이 가 있었는데, 그들은 제이슨이나 윌리엄, 제니퍼와 전혀 관계가 없는 각성자들로만 구성 되었다.

    그들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았다면 균열을 흔드는 것보다 균열에 빼앗기는 마력이 훨씬 많아서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다른 균열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간신히 찾아낸 것이 바로 사하라의 균열이었다.

    사하라에 다른 균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로 제이슨과 윌리엄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균열을 찾아다녔다.

    그런데도 그걸 찾는 데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사하라를 샅샅이 뒤져서 간신히 찾아낸 균열이었다.

    한데 아쉬는 사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균열의 존재를 포착해냈다.

    균열을 직접 열고 들어온 존재다웠다. 하지만 그것이 제이슨의 열등감을 자극했다.

    그 열등감을 부추기기라도 하듯 아쉬는 제이슨의 안내를 무시하고 앞으로 쭉쭉 걸어갔다.

    정확히 균열이 있는 위치를 향해서.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열사의 사막에 세워진 거대한 막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하라의 균열이 위치한 곳이었다.

    아쉬는 쭉쭉 이동해 막사에 도착했다.

    막사를 지키는 자들이 기겁해서 아쉬를 막아섰지만, 아쉬는 그들을 무시하고 가볍게 지나쳐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각성자들이 쫓아가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느새 도착한 제이슨이 그들을 제지했으니까.

    제이슨과 윌리엄, 제니퍼는 서둘러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막사의 중심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 앞에 아쉬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쉬를 각성자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만! 이제 다들 가서 좀 쉬도록 해.”

    제이슨이 얼른 달려가며 외쳤다.

    그를 발견한 각성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들에게 있어서 제이슨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으니까.

    “호오. 아주 교육을 잘 시켰군. 훈련이 그저 그런 것에 비하면 괜찮은데?”

    훈련이 그저 그렇다는 말에 각성자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들이 약하다고 비웃는 말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걸 본 제이슨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다들 가서 쉬어. 저놈은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 놈이니까.”

    “······예.”

    각성자들은 마지못해 대답하고는 막사 가장자리로 물러갔다. 평소 같았으면 간이침대에 누워서 쉬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도 없는지 아쉬를 노려보고 있었다.

    “병정놀이 재미있어?”

    아쉬는 그렇게 물으며 빙긋 웃었다. 그것이 마치 비웃음 같아서 제이슨의 기분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병정놀이라니. 말이 심하군.”

    “심하긴. 내가 지금까지 만난 놈들 수준이 다 저런데. 그동안 대체 뭘 한 거야?”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으니 당연하잖아. 이나마도 나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어.”

    아쉬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구덩이 아래를 들여다봤다.

    제이슨은 자신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표하지 않은 아쉬를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래서 깨우지 않았다. 아마 디펜더스가 이 정도로 몰리지 않았다면 계획이 마무리 될 때까지 절대 깨우지 않았으리라.

    “균열은 또 왜 저모양이야?”

    “왜? 무슨 문제가 있나?”

    “너무 얌전하잖아. 대체 과거의 시스템을 얼마나 없앤 거야? 오! 지금 조금 더 안정되었어! 이야, 이거 신기한데? 방금 누군가가 과거의 시스템을 하나 없앤 모양이야!”

    어린애처럼 즐거워하는 아쉬의 모습에 제이슨이 어금니를 꽉 물었다.

    “장난 그만하고 슬슬 시작하지 그래?”

    “장난이라니, 서운하네. 난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건데 말이야. 이런 장면 보는 게 쉬운 줄 알아?”

    제이슨은 심호흡을 하면서 감정을 가라앉혔다.

    윌리엄과 제니퍼는 아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끼어들어 봐야 좋은 꼴 못 볼 것 같아서 그냥 제이슨에게 다 맡겨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지?”

    제이슨이 차분히 묻자, 아쉬가 재미없다는 듯 혀를 한 번 차고는 구덩이 아래에 선명하게 새겨진 균열을 가만히 바라봤다.

    바닥이 쫙 찢어져 있었고, 그 안에 거대한 우주가 보였다.

    하지만 아쉬는 바닥이 아니라 공간이 찢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찢어진 공간 너머는 우주처럼 보이지만, 그건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고, 실제로 저 안은 무의 공간이었다.

    “마력을 쏟아서 균열이 닫히는 걸 막고 있었군. 그럭저럭 임시방편은 되었겠어.”

    “평가는 그만하고 이제 움직이는 게 어때?”

    아쉬가 제이슨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냥 일만 하는 건 재미없으니까 우리 옛날 얘기나 좀 해볼까?”

    제이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수작이지?”

    “수작이라니. 그냥 오랜만에 깨어난 반가움 때문에 이러는 거지. 나 외로움 잘 타는 사람이거든.”

    제이슨은 개소리 하지 말라는 외침을 억지로 다시 삼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우리가 살던 세상 말이야. 이젠 사라지고 없지만.”

    “그 얘기를 굳이 지금 해야 하나?”

    아쉬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세상도 망했잖아. 여기랑 똑같은 이유로. 그렇지?”

    제이슨이 굳은 표정으로 아쉬를 노려봤다.

    윌리엄과 제니퍼도 제이슨과 비슷한 표정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그들의 세상도 마계의 공격을 받았다.

    제이슨이나 윌리엄은 그들의 세상에서도 굉장한 강자였다. 하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심지어 아쉬도 최고의 강자는 아니었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아쉬보다 강한 사람이 스물이나 있었다.

    그 스물의 강자 덕분에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마계의 힘은 강력했다.

    아니, 그들을 침범한 마계가 강력한 마계였다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도망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버틴 덕분에 마계의 침입에 대한 정보를 잔뜩 얻어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이곳 지구에서 새로운 제국을 세우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고귀한 귀족이었지만, 이쪽 세상에서는 황제가 되고자 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그렇게 이상하지?”

    “여기 지구라는 곳은 굉장히 특이한 세상이야. 내가 깨어나면서 얘기하지 않았었나? 과거에 한 번 망했었다고.”

    그게 뭐 어쨌냐고 말하려던 제이슨이 입을 다물었다. 아쉬에 대한 반감 때문에 더 빨리 알아차릴 수도 있었던 걸 간과했다.

    “이제 깨달은 모양이지?”

    “그래, 이상해. 우리 세상도 망한 적이 있었던 건가? 네 말대로라면 균열의 발생 원인이 그거 아니었었나?”

    아쉬가 제이슨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내가 어떻게 균열을 만들었을까?”

    제이슨의 표정이 더더욱 딱딱해졌다.

    “설마······ 균열을 만들 도구를 가진 건가?”

    아쉬가 손가락을 딱 튀기고는 제이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정답. 마계에서 우리 세상에 균열을 만들 때 써먹은 놈을 내가 약간 탈취했지. 알잖아? 나 제법 위험한 작전에 많이 나섰던 거.”

    “균열 봉합작전······!”

    “맞아. 그 작전을 수행할 때 얻었어. 물론 작전은 보기 좋게 실패했지만 말이야.”

    “그 도구······ 몇 번이나 쓸 수 있는 거지?”

    “음······ 도구라기보다는 마석에 가까워. 특수한 마석에 균열을 만들 수 있는 에너지원을 꽉 채운 거지.”

    아쉬가 씨익 웃었다.

    “지구는 애초에 불안정해서 새 균열을 뚫는 데 별로 힘이 안 들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남았지.”

    아쉬가 거무튀튀한 돌을 들어서 보여줬다.

    “그것이······.”

    아쉬는 씨익 웃고는 검은 돌을 균열에 휙 던졌다.

    “그냥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그럼 뭘 원했어? 그냥 지켜보기나 해.”

    제이슨의 시선이 균열로 향했다. 균열은 격렬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찢어진 대지 속에서 검은 우주가 끓어서 휙휙 넘쳤다.

    그렇게 밖으로 넘친 검은 기운이 땅에 닿을 때마다 균열이 넓어졌다.

    고작 돌멩이 하나 넣었을 뿐인데 균열의 크기가 계속해서 길어지고 넓어졌다.

    마치 누군가 강제로 균열에 손을 넣어서 찢고 있는 것 같았다.

    아쉬가 제이슨을 보며 눈을 번득였다.

    “그런데 이거 양날의 검인 건 알고 있지? 균열이 넓어지면 마르바스가 넘어오기도 쉬워져.”

    “알아. 대비책이 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돼.”

    “역시 제이슨이야. 그래, 그럼 그 대비책이 뭔지 좀 들어볼까?”

    제이슨이 담담한 눈으로 아쉬를 바라봤다.

    “너야.”

    아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장난은 사절인데?”

    “장난 아니야. 마르바스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너 말고 또 누가 있겠어? 우리는 마르바스를 죽이지 않아도 돼. 협상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해.”

    “마왕과 협상을 하겠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돼. 마르바스는 강한 마왕이 아니니까.”

    “강하지 않아도 마왕은 마왕이야. 내가 그놈을 상대할 수 있다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수련을 하고 레벨을 올려. 벽을 두 번 정도 더 넘을 각오를 하고. 그럼 할 수 있어. 마르바스는 지구에 넘어오면 제 힘을 쓰지 못할 테니까.”

    아쉬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아. 기분 거지같은데? 이것만 해주고 난 즐겁게 살 생각이었는데······.”

    제이슨이 빙긋 웃으며 아쉬에게 물었다.

    “방금 그거 남은 거 또 없어?”

    “미친 놈. 그걸 하나 더 넣으면 마르바스가 지구로 오는 시간이 더 짧아져. 절대 감당 못해.”

    “여기에 쓰려는 거 아니야.”

    아쉬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걸 본 제이슨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우리가 넘어온 균열에 쓸 거야. 우리도 힘을 제대로 쓰려면 그쪽 구멍이 넓어져야 좋지 않겠어?”

    “그건 더 위험하다는 거 알지?”

    제이슨이 씨익 웃었다.

    “조절하면 돼. 그래서 있어, 없어?”

    “방금 넣은 것보다는 훨씬 작은 놈이야.”

    제이슨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가 짙어졌다.

    * * *

    “비상! 비상 상황이다! 다들 출동 준비해!”

    던전 브레이커 본부에서 상급 각성자들이 그렇게 소리치며 각자의 팀으로 달려갔다.

    던전 브레이커는 명실상부한 한국 제일의 길드였기에 던전 관련된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출동하고 가장 열심히 뛰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었다.

    갑자기 전국적으로 던전이 쫙 생겨났다.

    물론 아직까지는 대부분 일반 던전이었지만, 언제 뉴타입 던전이 쏟아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일이 커지기 전에 서둘러 던전의 수를 줄여둬야만 한다.

    황수영은 팀장들이 다급히 움직이는 걸 보며 옆에 있던 부 길드마스터에게 말했다.

    “가디언스에 지원 요청해. 각성자 관리청에도 연락 때리고.”

    “이미 했습니다. 가디언스는 가용 가능한 길드원을 전부 투입하겠다고 확답 받았습니다.”

    “잘했네. 다른 길드들은?”

    “그놈들이야 까라면 까야죠. 지금 발바닥에 땀 날 정도로 열심히 달리고 있을 겁니다.”

    “좋아. 우리도 가보자.”

    “기다렸습니다. 흐흐흐.”

    “그렇게 웃지 마. 재수 없으니까.”

    “좋으시면서 또 괜히 이러신다. 흐흐흐.”

    “아오, 내 근처에는 왜 다 이런 놈들뿐이야.”

    황수영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우리는 어디로 가면 돼?”

    “저도 같이 가면 안 되겠죠?”

    “넌 길드 지켜야지. 나 혼자 간다.”

    “을지로로 가면 됩니다. 거기 뉴타입 하나 나왔는데, 마스터가 처리할 수 있도록 준비 다 해뒀습니다.”

    준비라는 건 각성자 관리청과의 협상이었다.

    여전히 각성자 관리청은 던전에 대한 권리를 소유했고, 그걸 분배할 권리도 있었다.

    물론 던전 브레이커가 우뚝 서는 바람에 거의 의미가 없긴 했지만.

    “좋아. 이번 기회에 레벨이나 잔뜩 올려야지. 나도 일본 가고 싶었는데. 쳇.”

    일본에 간 가디언스의 정예들이 1000레벨을 넘었다는 소식에 황수영은 불타올랐다.

    아직 그녀는 1000레벨에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던전이 많이 줄어든 것도 문제였고, 괴물의 레벨이 낮은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 던전이 잔뜩 생겨났으니 자신도 1000레벨을 넘을 수 있으리라.

    이동하는 황수영 옆에 바짝 붙은 부 길드마스터가 열심히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전 세계가 던전으로 뒤덮이다시피 한 모양입니다. 난리나 났네요. 아직 터진 곳은 없지만요.”

    “터지기 전에 다 처리해야지. 이번에 난 한국 다 정리하고 나면 외국으로 나갈 거야.”

    “안 됩니다.”

    “돼.”

    황수영은 그 말을 남기고 어느새 도착한 을지로 던전에 쑥 들어갔다.

    부 길드마스터가 황수영을 삼킨 던전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튼 정말 모시기 힘든 마스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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