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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64화 (164/200)
  • < 아쉬 >

    디펜더스에서는 굉장히 비밀스럽게 관리하는 빌딩이 하나 있었다.

    시카고에 있는 100층짜리 고층빌딩이었다.

    지하10층부터 지상 100층까지는 굉장히 평범하게 운영되는 빌딩이었다.

    몇 개의 큰 회사가 층을 나눠서 건물을 쓰고 있었고, 지하는 대부분 주차장이었다.

    그 빌딩에 지하 11층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오직 세 사람뿐이었다.

    심지어 지하11층을 설계한 사람이나 기초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싹 죽여 버린 것이다.

    물론 한 명씩 은밀한 감시 속에서 의문사 당했다. 비밀을 토설할 기회도 없이 말이다.

    이 빌딩의 지하 11층은 지하10층에서도 아래로 10미터는 더 내려가야 있는 장소였고, 지하10층과의 사이는 온통 콘크리트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곳을 아는 사람은 오직 제이슨, 윌리엄, 제니퍼뿐이었다.

    그리고 그 세 사람이 지금 그곳에 있었다.

    지하 11층은 거대한 공간이었는데, 기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한가운데 투명한 관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투명한 관 안에는 남자 한 명이 눈을 감고 누워 있었는데, 잠들었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투명한 관 주위에 제이슨과 윌리엄, 제니퍼가 빙 둘러 서 있었다.

    “설마 아쉬를 깨우게 될 줄이야.”

    윌리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사실 그는 아쉬가 잠든 것을 가장 반긴 사람이었다.

    이곳으로 넘어오기 위해 그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기에 함께 하긴 했지만, 계속 꺼림칙했다.

    그리고 그건 제니퍼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긴장한 표정으로 투명한 관 속에 잠들어 있는 아쉬를 내려다봤다.

    “이게 정말 잘 하는 짓일까?”

    윌리엄이 다시 한 번 제이슨을 보며 물었다. 결정한 이후 벌써 열 번도 넘게 한 질문이었다.

    제이슨은 여전히 확고했다.

    “균열이 닫히는 속도가 더 빨라졌어. 그래서 새로 뽑은 서포터는 전부 균열 쪽으로 돌렸고. 이대로 진행되면 1년 안에 균열이 닫힐 거야.”

    “믿을 수가 없군.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균열을 만들었던 요인이 사라진 거겠지.”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그 물음에 제이슨이 고개를 내려 투명한 관 속의 아쉬를 바라봤다.

    “그건 나도 모르지만······ 혹시 아쉬라면 알지도 모르지.”

    그 말에 윌리엄과 제니퍼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이리로 데려온 것도 아쉬의 힘이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잠든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 아마 아쉬라면 그 원인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걸 알고자 해서 아쉬를 깨우는 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디펜더스는 고사해 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가디언스는 이러는 와중에도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전 세계에 가디언스가 미치는 영향력은 예전 디펜더스를 만들면서 그들이 원했던 수준을 넘어선 상태였다.

    “방심하지 마. 깨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제이슨은 그렇게 경고하며 윌리엄과 제니퍼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잖아. 이제 시작하자고. 운명에 날 던지는 일은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좋겠군.”

    윌리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 빛나는 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빛의 선이 바닥에 죽죽 그어지며 거대한 문양을 만들어냈다.

    그 선은 바닥뿐 아니라 벽과 천장, 기둥에도 빼곡하게 새겨졌다.

    군데군데 빛이 뭉친 부분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마석이 박혀 있었다.

    그동안 디펜더스가 열심히 모아온 마석 중에서 크기가 큰 것은 전부 가져왔다.

    아쉬가 잠든 이유는 힘을 너무 많이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 힘을 채워주지 않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사방이 빛으로 꽉 찼다. 그리고 그 빛이 서서히 흐르기 시작했다.

    빛은 투명한 관을 향해 흘러갔다.

    마석이 끊임없이 빛을 토해냈고, 그렇게 토해낸 빛이 선을 따라 흐르며 투명한 관을 채웠다.

    관 속이 빛으로 꽉 찼다.

    하지만 생각보다 관 속의 빛은 밝지 않았다.

    빛을 아쉬가 대부분 흡수해 버려서 막상 밖으로 흘러나온 빛의 양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에서 멀리 있는 곳에 위치한 마석의 빛이 퍽 하고 꺼졌다. 빛이 꺼진 마석은 부스러져 가루가 되었다.

    퍽! 퍽! 퍽! 퍽!

    마석이 부서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이 공간에 박아 놓은 마석의 수가 무려 천 개인데, 순식간에 그 절반이 꺼졌다.

    “마석 잡아먹는 속도가 너무 빠른데? 이거 모자라는 거 아냐?”

    “모자라면 우리 힘을 쏟아야 되니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

    제이슨의 담담한 말에 윌리엄과 제니퍼가 기가 찬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힘을 주다가 잘못되면 온몸의 마력이 쪽 빨려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 무서운 일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새삼 제이슨이 무서워졌다.

    퍽! 퍽! 퍽! 퍽!

    그러는 사이에도 빛이 꺼지며 부서지는 마석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이내 마지막 마석이 부서졌다.

    퍽!

    하지만 아쉬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제이슨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을 관에 갖다 댔다.

    우우웅!

    강한 빛이 제이슨의 손바닥에서 쏟아져나갔다. 그 빛은 고스란히 관 속으로 스며들었다.

    윌리엄과 제니퍼가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관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힘이 쭉쭉 빨려나갔다.

    세 사람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몸이 마치 체액이라도 빨리는 것처럼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몸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때, 투명한 관이 깨졌다.

    쩡!

    세 사람은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나체의 남자를 바라봤다.

    마치 희대의 예술가가 조각해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남자였다.

    몸은 물론이고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나신의 남자, 아쉬는 자신의 동료 세 사람을 슥 둘러보고는 씨익 웃었다.

    “오랜만인 것 같아서 장난 좀 쳐봤는데, 재미있었어?”

    “장······난?”

    제니퍼는 장난이라는 말에 대체 무슨 장난을 친 건지 머리를 굴리다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일부러 우리가 손을 대게 만든 거야?”

    아쉬가 즐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깨어난 건 아마······ 여기 있는 마석이 절반쯤 부서졌을 때쯤이려나?”

    세 사람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누구도 아쉬에게 뭐라고 하지 못했다.

    그가 강해서이기도 했지만, 그에게 저지른 짓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균열을 열어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게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아쉬였는데, 그런 아쉬를 깨우지 않고 방치했으니까.

    사실 오자마자 깨웠다면 이렇게 많은 마석이 들어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선물 받은 힘은 내가 아주 잘 써줄게. 날 깨운 걸 보니 일이 생각처럼 잘 안 돌아간 모양인데. 맞지?”

    그저 자신을 깨운 것만으로 상황을 끼워 맞추는 아쉬를 보며 세 사람은 침음을 삼켰다.

    아쉬는 기분 좋게 웃으며 세 사람을 한 번씩 바라봤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코로 크게 숨을 들이켰다.

    “흐으읍. 마력의 향이 생각보다 짙은데? 진행 자체는 많이 됐네?”

    아쉬가 다시 세 사람을 둘러봤다.

    “자, 그럼 문제가 정확히 뭔지 들어볼까?”

    “균열이 닫히고 있어.”

    아쉬가 손뼉을 짝 쳤다.

    “오, 그럼 좋은 거 아닌가? 균열이 커지면 구멍이 숭숭 뚫려서 괴물이 계속 올 텐데. 이쪽에 눈독을 들인 놈이······ 마르바스였지?”

    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답을 구하는 심정으로 아쉬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균열이 왜 생기는 건줄 알아?”

    “우리가 이쪽으로 넘어왔으니까 생긴 거잖아.”

    “그렇지. 잘 아네. 그럼 그걸 더 키우고 유지하는 건 왜 그런 건지 알아?”

    “글쎄. 난 마르바스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이번 일을 겪고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더라고.”

    제이슨의 대답에 아쉬가 피식 웃었다.

    윌리엄과 제니퍼는 한 발 떨어져서 두 사람의 대화를 그저 듣기만 했다.

    “잘 들어. 균열을 유지하는 건 불안정성이야.”

    “불안정성?”

    “시스템과 괴리된 힘이 불안정성의 원인이고.”

    “시스템과 괴리된 힘······ 그건 우리 아닌가? 우린 이쪽 시스템에 속하지 않은 존재니까.”

    아쉬가 고개를 저었다.

    “이쪽 세상의 존재가 아니니까 균열을 만들 수 있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더욱 불안정성의 원인은 아니지. 어쨌든 우리도 시스템에 속해 있잖아.”

    그 말에 제이슨의 눈이 커졌다.

    “그럼 시스템에 속하지 않은 존재가 있다는 뜻인가?”

    “그래. 내가 왜 굳이 이곳을 목표로 했는지 알아?”

    제이슨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모른다. 자신은 그저 아쉬가 균열을 만들어내는 걸 도왔을 뿐이니까.

    “여긴 시스템이 한 번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진 곳이거든.”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졌다고?”

    “보통 그런 경우 과거의 시스템은 유적취급을 받지.”

    “과거의 시스템······ 설마 이쪽 세상은 한 번 멸망을 겪었던 건가?”

    “정답.”

    아쉬는 손가락을 하나 올리며 반짝이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세상이 멸망하긴 했지만, 잔재가 좀 남아있거든. 그게 불안정성을 만드는 거야. 사실 균열이 열리지 않았으면 아무 문제도 없지. 하지만 일단 균열이 열린 이상, 그것들이 작용해서 점점 균열이 커지는 거야. 불안정성이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

    제이슨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그럼······ 누군가 그 불안정성을 없애고 있다는 뜻이로군.”

    그리고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대충 예상이 갔다.

    강하진,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놈이었다. 적어도 디펜더스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아쉬가 그런 제이슨을 보며 양 팔을 활짝 펼쳤다.

    “자, 이제 내가 뭘 하면 좋을지 얘기해 봐. 깨워준 보답으로 한 번쯤은 너희가 원하는 일을 들어줄 테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쉬의 말에 제이슨은 물론이고 윌리엄과 제니퍼의 눈도 반짝반짝 빛났다.

    * * *

    가디언스에서 만든 일본의 거점은 날로 번창해갔다.

    일단 가디언스에서 던전을 닫기 위해 넘어온 길드원들이 아직 아무도 돌아가지 않고 일본 내에서 괴물을 사냥한다는 사실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주기적으로 몇 명이 거점에 와서 그동안 사냥한 괴물의 사체와 마석을 주고 가는데, 그 양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양만 문제가 아니라, 사냥한 괴물의 종류도 특이하거나 강력한 놈이었기에 일본 거점에 와서 그걸 구해가려는 사람이 끊임없이 유입되었다.

    게다가 초기에 일본 던전을 닫겠다고 왔던 각성자들이 거점 주변을 말끔히 청소해준 덕분에 주변에서 괴물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전을 확보했다.

    그들 중 절반 정도는 돌아갔지만, 나머지 절반은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서의 사냥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고 눌러 앉았다.

    가디언스는 끊임없이 공사를 벌였다.

    거점에 새로운 빌딩이 매일 올라갔고, 심지어 주거지역까지 생겨났다.

    거대한 주상복합단지가 조성되었고, 문화생활을 위한 시설이 지어졌다.

    거점의 범위가 점점 더 넓어졌으며, 점점 더 좋은 시설이 들어섰다.

    그 모든 시설과 건물의 주인은 당연히 가디언스였다.

    가디언스는 이곳 일본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강하진도 일본에 남았다.

    강하진은 특유의 빠른 이동속도를 이용해 거점과 사냥터를 왕복하며 굉장한 속도로 사냥을 이어갔다.

    모든 것은 레벨업을 위해서였다.

    첫 번째 목표인 레벨1000을 넘기기 전에는 절대 일본을 뜰 생각이 없었다.

    던전 공습 이후부터 방치되다시피 한 일본은 기형적으로 강력해진 괴물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 놈들만 골라서 사냥해도 레벨이 쭉쭉 올랐다.

    강하진은 되도록 김지혜가 이끄는 길드원들과는 마주치지 않도록 애썼다.

    그들은 그들대로 레벨을 올리고 있었다. 마주쳐봐야 방해만 될 것이다.

    강하진은 2000레벨을 돌파한 백호를 쓰다듬으며 무너진 콘크리트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백호는 구더기 괴물을 먹어치우고서 2000레벨을 돌파했다.

    정확히는 2002레벨이 되었다.

    2000레벨의 벽을 돌파한 백호에게 새로운 스킬이 생겨났는데, [감지]라는 스킬이었다.

    [감지]

    [넓은 범위에 감각을 덧씌워 특이한 점을 알아낸다.]

    설명이 굉장히 모호했다. 한데 막상 함께 다니다보니 그게 어떤 건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일단 그걸 통해 괴물의 분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특이한 힘을 가진 괴물을 특정할 수 있었고, 괴물뿐 아니라 특이한 힘을 품은 물건을 파악할 수도 있었다.

    강하진은 백호가 그 힘을 쓰는 걸 지켜보면서 굉장히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묘한 느낌을 확실히 파악하기에는 자신의 레벨이 모자라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레벨업에 더 집중했다.

    그리고 이제 곧 그 결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구구구구구구!

    저 멀리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바닥을 질질 끌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건물의 잔해가 넘어지고 부서지고 가루가 되었다.

    강하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저놈만 잡으면 레벨이 1000을 돌파할 것이다.

    두근거리는 심정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걸음을 옮겼다.

    “백호, 가자.”

    강하진과 백호가 거대한 괴물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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