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163화 (163/200)
  • < 침식의 흔적 >

    꽈드득! 꽈드득! 꽈드득!

    뒤쪽에서 백호가 블랙 스켈레톤 사령관을 씹어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강하진은 그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동요새 이노툴과 연결이 끊어진 사령관은 정말 별 거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블랙 스켈레톤 나이트보다 훨씬 못했다.

    사령관은 평범한 블랙 스켈레톤과 비슷한 정도의 능력치를 가졌다.

    강하진이 얻어야 할 건 지금 눈앞에 떠 있는 거대한 마석이었다.

    강하진은 마석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파지직!

    스파크가 튀며 마석이 강하진의 손을 밀어냈다.

    굉장히 강력한 반발력이었다.

    억지로 손을 밀었지만, 마석의 반발력을 쉽게 이겨낼 수 없었다.

    확실히 레벨 값을 하는 놈이었다.

    “여기서 막히네.”

    강하진이 피식 웃었다.

    물론 진짜 막힌 건 아니었다. 그저 쉽게 갈 수 없을 뿐이지.

    강하진은 마력을 손에 집중하고 다시 마석을 쥐려고 다가갔다.

    파지지직!

    강한 반발력이 일어났지만, 강하진은 그걸 무시하고 손을 더욱 뻗었다.

    꽈르르릉!

    스파크가 벼락으로 바뀌었다.

    그 벼락이 강하진의 몸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강하진은 그걸 태연히 흘려냈다.

    제법 강력한 전격 공격이었지만 고작 그 정도로 강하진에게 피해를 주긴 어려웠다.

    강하진에게 피해를 주려면 지금 일어난 벼락보다 최소 네 배는 더 강해야 한다.

    의미 있는 피해를 주려면 더 강해야 하고.

    이동요새 이노툴의 주 속성이 전격인 점이 오히려 강하진에게는 호재가 된 셈이었다.

    강하진은 결국 마석을 손에 쥐었다.

    그 순간 마석을 중심으로 펼쳐진 무수한 마력의 선이 강하진의 뇌리에 펼쳐졌다.

    그것은 이동요새 이노툴의 구조였다.

    이노툴을 이루는 건 이 거대한 구더기 괴물이 아니었다.

    그 안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마력 그 자체가 바로 이노툴이었다.

    거대한 구더기 괴물은 이노툴의 힘을 담는 그릇일 뿐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릇이라도 이렇게 거대한 힘을 담아야 하기에 그 역시 평범하진 않았지만.

    강하진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이토툴의 마력 구조를 하나하나 파악해 나갔다.

    이것은 일종의 마력 패턴이었다.

    라파시드의 서를 얻지 못했다면 아마 이것이 마력 패턴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강하진은 이노툴의 마력 패턴을 완벽하게 기억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마석을 떼어냈다.

    파지직!

    가벼운 스파크와 함께 마석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강하진이 빼내는 대로 따라왔다.

    우르르르르르!

    마석을 빼내자마자 사방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대로 두면 곧 무너질 것 같았다.

    구더기 괴물의 거대한 몸체를 유지하던 의지가 사라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강하진은 블랙 스켈레톤 사령관을 다 먹고 강하진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백호를 향해 말했다.

    “백호, 가자.”

    -크아아앙!

    백호가 포효하며 벽을 향해 냅다 돌진했다.

    꽈아아아아아앙!

    그렇게 두꺼운 살덩이가 퍽 터지며, 백호가 밖으로 튀어나갔다.

    강하진은 백호가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아직도 싸움이 한창이었다.

    강하진은 일단 치료폭탄을 주고 버프를 걸었다.

    정신없이 밀리던 가디언스와 요새의 전투병사가 갑자기 힘을 내더니 블랙 스켈레톤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전투의 우위가 바뀌었다.

    거기에 백호가 난입했다.

    -크아아아앙!

    백호는 다른 블랙 스켈레톤은 건드리지 않고 오직 나이트만 공격했다.

    블랙 스켈레톤 나이트가 그나마 백호의 눈에 찼다.

    그래도 레벨이 1000을 넘는 놈들이었으니까.

    백호가 싸움에 끼어들자, 전투 양상이 압도적으로 변했다.

    가디언스는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당한 수모를 갚아주었다.

    블랙 스켈레톤들이 하나하나 부서졌고, 이내 마지막 놈이 후두둑 무너졌다.

    “하아. 하아.”

    김지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숙여 손으로 무릎을 짚었다.

    이렇게 힘든 싸움을 해본 것이 언제쯤일까?

    아마 최근에는 이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새삼 자신이 얼마나 안전한 상황에서 보호 받으며 성장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생겼다.

    “고생 많았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강하진의 말에 김지혜가 허리를 펴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강하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분간 일본에 남겠어요.”

    아까 강하진이 같은 제안을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랐다.

    “레벨 1000을 넘으라고 했죠? 넘을 거예요. 저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가디언스 전부. 혹시 그 다음도 있나요?”

    김지혜의 물음에 강하진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있습니다. 두 번째 벽은 2000이죠. 아마······ 백호가 조만간 넘을 것 같네요.”

    강하진의 말에 김지혜의 시선이 백호에게로 돌아갔다.

    백호는 저 거대한 구더기 괴물에 달라붙어서 그걸 열심히 씹어먹는 중이었다.

    김지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였고, 이내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2000도 넘을 거예요. 그 위는 분명히 3000이겠죠? 그것도 넘을 거고요.”

    강하진이 빙긋 웃었다.

    “응원하겠습니다.”

    * * *

    거대 던전에는 이동요새 이노툴과 요새가 싣고 있던 블랙 스켈레톤 말고 다른 괴물은 한 마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이노툴은 이곳에서 마계와의 통로를 뚫는 작업 중이었다.

    그래서 뚫다 만 구멍이 남아 있었다.

    첫 번째 재앙 때 나왔던 혼돈의 괴물이 뚫던 침식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이노툴이 얼마나 대단한 괴물인지는 뚫린 구멍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강하진은 던전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검은 포탈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소우주 같았다.

    새까만 우주 속에서 반짝이는 별무리가 거대한 회전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보기에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구멍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힘은 절대 아름답지 않았다.

    “많이도 뚫었네.”

    길지 않은 시간을 작업했음에도 침식이 상당히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상대 쪽의 힘이 이쪽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다는 건 좋지 않은 징조였다.

    웬만큼 침식이 진행되지 않고서는 힘이 지속적으로 흘러올 수가 없었다.

    강하진은 급한 김에 라파시드의 서를 이용해 구멍에서 나오는 힘을 막고 있었다.

    반사와 왜곡을 이용해 나오는 힘을 다시 되돌리는 방식을 썼다.

    애초에 그쪽에서 온 힘이었고, 아직 구멍이 굉장히 불안정했기에 그렇게 힘을 되돌리기만 해도 반대쪽으로 남김없이 빨려 들어갔다.

    이렇게 힘을 되돌리는 것만으로 구멍이 조금씩 닫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구멍을 완벽하게 닫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건 저쪽에도 시간을 주는 셈이었다.

    만일 다른 괴물이 이 통로를 넓히려는 시도라도 한다면 통로가 다시 넓어질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이쪽에 침식이 가능한 괴물을 넘겨야 하는데······.’

    문제는 그 괴물이 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주 작은 벌레 같은 놈도 상관없었다. 그저 침식만 가능하면 된다.

    사실 지금 이 통로를 통해 저쪽에서 할 수 있는 일도 고작 그 정도가 한계였다.

    아무튼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둬야 한다.

    지금 강하진이 여기에서 믿을 건 라파시드의 서뿐이었다.

    ‘작은 벌레 같은 놈들만 잡으면 되니까······.’

    이럴 때 쓰라고 절단의 장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강하진은 반사와 왜곡에 절단을 추가했다.

    아마 작은 벌레든 힘이든 일단 나오는 건 전부 잘라내고 볼 것이다.

    죽은 벌레를 다시 되돌려 보내면 안 되기에 분해의 장을 썼다.

    벌레를 되돌리더라도 분해해서 되돌리면 저쪽에서 알아차리기 어려울 테니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이 통로가 닫힐 시간을 말이다.

    “던전도 감시해야겠네.”

    누군가 던전에 들어가 분탕질을 치면 곤란하니 이제 이 던전도 관리해야 한다.

    이래저래 일이 늘어났지만, 어쨌든 감수해야 한다.

    던전을 당장 닫을 수도 없었다. 던전을 여기서 강제로 닫아 버리면 이 구멍이 지구로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던전을 통하는 게 아니라 지구와 저쪽 세상이 강제로 연결된다.

    “가만, 그게 오히려 나은 거 아닌가?”

    이 던전을 유지하는 것도 문제였다. 아마 던전을 방치하면 가디언스가 던전을 못 닫았다고 여길 테니까.

    지금 이 던전은 세계가 주목하는 던전이었다.

    강하진은 한동안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 * *

    “이게······ 대체 뭔가요?”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던전을 닫았더니 그 안에 있던 구멍이 지구와 연결된 것이다.

    물론 강하진이 펼친 라파시드의 패턴도 고스란히 함께 넘어왔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이 구멍을 확실히 감시해야 한다.

    어쩌면 이곳으로 괴물들이 몰려들지도 모른다.

    그 중에 침식이 가능한 놈이 있을지도 모르고.

    애초에 침식이라는 스킬이 없더라도 괴물의 능력에 따라 구멍을 넓히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아예 아무 괴물도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 일을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해줘야 한다.

    “이건 구멍입니다. 던전에 있던 구더기 괴물이 뚫고 있었죠.”

    “구멍······ 이요?”

    “괴물이 사는 세상과 지구를 연결시키는 구멍이죠.”

    김지혜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가디언스의 동료들을 바라봤다. 전부 그녀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제가 적당한 조치를 해서 시간이 지나면 닫힐 겁니다.”

    “······ 다행이네요.”

    “한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겁니다. 속도를 대충 가늠해보면······.”

    강하진은 구멍에서 힘이 흘러나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걸 지켜보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면밀히 확인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확인한 다음 결론을 내렸다.

    “두 달 정도 걸리겠네요.”

    “두 달······.”

    “그 동안 이쪽으로 괴물이 오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강하진의 말에 김지혜와 가디언스는 자신들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저희가 해야겠군요.”

    “일단은요. 하지만 계속해서 지원군을 보낼 겁니다.”

    김지혜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할게요. 마침 레벨도 올려야 하니 잘됐네요. 하다가 버거우면 저희가 알아서 지원을 요청할게요. 일본에 진출하실 계획이시죠?”

    김지혜의 눈을 본 강하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결심 어린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김지혜는 목표 레벨을 1001로 잡았다. 그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생각이었다.

    “돌아가셔서 보급만 책임져 주세요. 저희는 사냥에 올인할 테니까요. 이 주변에서 괴물 씨를 말려버리겠습니다.”

    강하진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김지혜 뒤에 서 있는 가디언스를 보니, 그들 역시 마찬가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이번 던전에서의 싸움이 그들에게 뭔가 변화를 가져다 준 모양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이들은 가디언스의 핵심 멤버들이다.

    이제 이들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나만 잘하면 되겠네.’

    강하진은 이번에 레벨이 700을 넘어섰다.

    아직 첫 번째 벽을 넘지도 못한 것이다. 아마 얼마 전에 격이 한 번 상승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블랙 스켈레톤 사령관과의 싸움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첫 번째 벽을 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사실 늦었지.’

    강하진은 머릿속으로 윤경민이 전해준 일본의 정보를 떠올렸다.

    아직 강하진이 처리해야 할 괴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럼 두 달 후에 봅시다.”

    강하진은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이제 레벨업의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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