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드로스 >
로키 산맥 정벌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캐나다 정부는, 정벌이 초반부를 지났을 때, 가능성을 확인하고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캐나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각성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산맥 정벌에 동원되었다.
물론 전부 캐나다 정부가 지급한 돈을 보고 달려온 용병 각성자들이었다.
용병은 보통 각성자건 일반인이건 거칠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은 가디언스의 지시를 철저히 따랐다.
아무리 제 잘난 맛에 사는 용병 각성자라 해도 가디언스가 얼마나 강하고 대단한지 다 알고 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길드가 바로 가디언스였다.
그들이 가디언스의 지휘에 따라 우르르 움직이는 광경은 그것대로 또 장관이었다.
가디언스는 용병 각성자들이 투입된 순간부터 인력이 모자라 미처 손쓰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싹 챙길 수 있었다.
당연히 산맥 정벌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그때부터 여기 어떻게든 숟가락이라고 하나 올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캐나다 정부는 적당히 밀당을 하면서 그들 중 몇을 끼워줬다.
사실 가디언스가 끼어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안전도가 대폭 올라간다.
그러니 안전한 사냥을 통해 각성자를 성장시키고, 잡은 괴물 사체를 확보할 수 있으며, 캐나다 로키 산맥 정벌에 공헌했다는 이력까지 챙길 수 있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산맥 정벌 속도가 빨라지니 그 전에 끼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캐나다 정부로서는 가디언스 덕분에 정치적 밀당까지 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윤경민이 슬그머니 발을 들이밀었다.
캐나다 정부와 가디언스 사이에 아주 좋은 관계가 형성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로키 산맥 정벌은 굉장히 순조롭게 이어졌다.
특히 새로 사방에서 각성자들이 투입되면서 산맥 내부에 있던 던전 공략 속도도 대폭 향상되었다.
가디언스는 산맥 내부의 사냥에서 조금씩 인원을 빼서 던전 쪽에 투입했다.
물론 산맥 내부의 사냥에서 아예 손을 뗄 수는 없었다. 전체적으로 사냥을 지휘하고 조절해야 하니까.
어쨌든 그렇게 로키산맥 정벌은 이제 마무리만 남은 상태였다.
김지혜는 마지막 남은 뉴타입 던전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그녀 옆에는 이지영이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뒤로 58명의 각성자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마스터는 또 어디에 가서 이렇게 안 보이는 걸까요?”
“그러게. 분명히 뭔가 하고 계시는 건 확실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네.”
“혹시 우리가 지금 가는 그 던전에 있는 거 아닐까요?”
“고작 던전 하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공략한다고? 우리 마스터가?”
“아, 그건 아니겠다.”
험한 산지를 이동하는데도 그녀들을 비롯한 각성자들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간 것처럼 편안히 걸었다.
“그나저나 그 말 들으셨어요? 산맥 안에 유적이 있었대요. 다섯 개나요.”
김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긴 들었어. 똑같은 유적이 다섯 개나 있었다고 했지?”
“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나 봐요. 폭약을 준비한다고 한 것 같은데, 별 일 없으려나 모르겠어요.”
“뭐, 알아서 하겠지. 유적에 우리가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우리 것도 아닌데.”
“그렇죠. 그래야 하는데······.”
이지영의 표정이 좀 어두워졌다. 그걸 본 김지혜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너도 그래?”
“예? 뭐가요? 어? 언니도?”
김지혜와 이지영은 왠지 그 유적을 부수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이 들었다.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 유적을 부순다고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마음이 안 좋았다.
“우리, 이번 산맥 정벌하고 나면, 그 유적에 대한 지분을 요구해볼까?”
“네?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윤경민 씨한테 부탁도 좀 드리고.”
윤경민이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이지영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 우리 윤 이사님이라면 가능하겠네요.”
그녀들 역시 윤경민과 처음부터 함께 했기에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이뤄왔는지 알고 있었다.
윤경민에 대한 믿음은 강하진에 대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사실 그 윤경민이 미리 유적에 대한 일을 처리했다는 걸 알면 이렇게 걱정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윤경민 역시 유적을 부순다는 얘기에 굉장히 신경이 쓰여서 우선적으로 유적에 대한 권리부터 찾았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이동하던 김지혜가 뒤쪽에서 따라오는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거의 다 왔어요.”
그러니 긴장 좀 하라는 뜻이었다.
다들 찰떡같이 알아듣고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이제 마지막 던전만 닫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물론 돌아가더라도 열심히 사냥을 하면서 더 강해지는 데 몰두하겠지만 말이다.
지금 산길을 타고 가는 중이었는데, 곧 꼭대기에 오른다. 거길 넘으면 바로 던전이 보일 것이다.
꼭대기에 오른 김지혜는 아래쪽을 내려다보자마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저게······ 뭐지?”
김지혜와 나란히 걷던 이지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이내 뒤따라온 모든 길드원들 역시 똑같은 표정이 되었다.
산 아래, 거대한 성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분명히 던전이 있어야 할 자리였는데.
* * *
강하진은 성의 중심부에 위치한 옥좌에 앉아 망막에 떠오르고 있는 정보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자애의 군주 레이드로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칭호, ‘자애의 군주’를 획득했습니다.]
[레이드로스의 자애를 입은 병사와 기사, 마법사들이 휘하 전투병사에 등록됩니다.]
[레이드로스의 자애에 감복한 시민들이 휘하에 합류합니다. 그들을 전투병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세 군주의 자격을 모았습니다. 자격의 통합이 이뤄집니다.]
[칭호 ‘군주 수집가’를 획득했습니다.]
[레이드로스 성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습니다.]
“많기도 하다.”
옥좌에 앉은 강하진의 모습은 피투성이였다.
정말 힘든 싸움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
성 안에 들어오자마자 달려드는 기사와 마법사들 때문에 정말 피 튀기는 싸움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래도 성곽에서부터 싸우지 않은 게 어디인가.
아마 성곽에서부터 싸웠다면 여기까지 이렇게 도착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성 내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병사를 벽으로 세우고 덤비면 정말 골치 아팠을 테니까.
그래도 이렇게 옥좌에 앉았다.
성을 얻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옥좌를 보자마자 여기 앉으면 상황이 끝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한데 앉은 이후가 문제였다.
그때부터가 진짜 시험의 시작이었다.
레이드로스의 인정을 받아야만 했으니까.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되니까.
문제는 앉아 있는 동안 기사와 마법사들이 여전히 공격을 계속했다는 점이었다.
강하진은 옥좌에 앉아서 그 모든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당연히 피가 튀고 살이 탔다가 얼었고,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뼈가 잘리는 건 당연했고.
반격해서도 안 되고 옥좌에서 일어나서도 안 된다. 그래서 그냥 다 몸으로 받아냈다.
한데 그렇게 당했는데도 죽지 않았다.
강하진은 이것이 정신 공격의 일종이라는 걸 깨달았다.
모든 기사와 마법사의 공격이 한 번씩 이어졌고, 그 이후 언제 들어왔는지 병사들의 공격까지 이어졌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도시에 사는 모든 시민들이 들어왔다.
사실 옥좌에 앉을 때까지의 시간은 별 거 아니었는데, 이 도시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의 공격을 받아내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 강하진은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렸다.
그저 고통을 받아들이고 참는 일에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마력과 체력, 몸의 전체적인 능력치가 한 계단 올랐다.
물론 레벨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얻어낸 자격이고 성이었다.
“이걸 여기다 버리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네.”
강하진은 모든 자격을 얻은 순간, 던전이 깨졌고, 이 성이 지구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감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시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구로 왔다.
물론 그들은 진짜 사람이 아니다. 레이드로스의 권능을 입은 과거의 사람일 뿐이었다.
강하진은 마지막 작업을 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이 옥좌를 시스템에 편입시켰다.
목록에 레이드로스의 성이 등록되었다.
모든 능력치가 각각 200씩 올랐고, [영역선포]라는 스킬이 새로 생겼다.
강하진은 일단 치료부터 했다.
빛 무리가 일어나며 상처가 말끔히 사라졌다.
이제 전리품을 확인할 차례였다. 가장 즐거운 시간 중 하나였다.
[자애의 군주]
[자애의 군주 레이드로스의 인정을 받거나, 그의 유산을 받은 자, 혹은 그 둘 모두를 이룬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정신력+100, 자애의 빛]
좋은 칭호였다. 특히 스킬이 마음에 들었다.
[자애의 빛(A)]
[빛이 닿는 모든 영역 내의 상태이상을 제거한다. 약간의 치료효과가 있다. 빛의 효과가 남아있는 동안 효과가 지속된다. 효과 시속 시간은 숙련도에 따른다. 최대 45분. 1시간에 한 번씩 쓸 수 있다.]
상태이상 제거와 도트힐을 동시에 쓸 수 있는 스킬 아닌가. 게다가 숙련도에 따라 지속시간이 늘어난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현재는 지속시간이 고작 10분에 불과했지만, 최대 45분까지 가능하다니, 앞으로 정말 열심히 쓰고 다닐 생각이었다.
저 스킬 역시 강하진이 가진 스킬 효율 증가에 영향을 받는다. 그걸 다 합하면 나중에는 거의 쿨타임 없이 쓸 수도 있는 스킬이 될 것이다.
[군주 수집가]
[셋 이상의 군주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그들의 유산을 획득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수집한 군주의 수가 많을수록 각 군주의 힘이 더욱 강해진다.]
이것 역시 좋은 칭호였다. 다른 조건은 필요 없었다. 각 군주의 힘 자체가 대단했으니까.
이제 이 성 자체의 힘을 확인할 차례였다.
철벽의 군주는 인장을 남겼고, 생명의 군주는 라파시드의 서를 남겼다.
그리고 자애의 군주는 이 성을 남겼다.
[레이드로스의 성]
[성 내부에 자애의 빛이 항상 머문다. 군주가 쓰는 자애의 빛과 중복해서 효과가 적용된다. 성 주변, 군주의 영역 내에서는 휘하 모든 부하의 능력치가 대폭 향상된다. 방어 병기, ‘멸절의 빛’을 보유 중이다.]
‘방어 병기?’
당연히 뭔지 확인해야 한다.
[멸절의 빛]
[레이드로스 성의 방어 병기. 레이드로스가 적이었던 멸절의 마왕을 죽이고, 그 심장을 이용해 만든 병기. 일정 지역 내의 모든 것을 소멸하는 빛을 소환한다.]
물론 말이 소멸이지 진짜 모든 걸 소멸시키진 않을 것이다. 그만큼 공격력이 대단하다는 뜻이리라.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확인하면 된다.
[영역 선포(A)]
[일정 지역을 군주의 영역으로 선포한다. 영역 내에서 군주의 성을 소환할 수 있다. 선포된 영역은 성의 영역과 일치한다. 3개월에 한 번 쓸 수 있다. 한 번 소환한 성은 1년이 지나기 전에는 다시 소환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스킬이 나왔다.
성을 이동할 수 있다니.
이걸 두고 어떻게 가나 피눈물을 흘릴 뻔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 성에 살고 있는 수많은 부하들을 방치하지 않아도 돼서 또 다행이었고.
강하진은 천천히 옥좌에서 일어났다.
이제 밖으로 나가서 로키산맥 정벌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강하진이 옥좌가 있는 홀에서 나가자, 좌우로 쭉 도열한 기사와 마법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장관이네.’
기사는 모두 200명이었고, 마법사 역시 200명이었다.
맞아봐서 아는데, 다들 실력이 아주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기사, 마법사는 물론이고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강하진은 복도를 쭉 지나쳐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성을 둘러싼 성벽이 보였다.
성벽 위에는 병사들이 있었다. 또한 성과 성벽 사이에 있는 거대한 공간 곳곳에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강하진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 정중히 예를 표했다.
강하진은 기분 좋게 그들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리고 성문을 열었다.
그저 생각만으로 성문이 천천히, 그리고 위압감을 뿌리며 열렸다.
열린 성문을 통해 밖의 전경이 보였다.
거기에는 아주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김지혜 씨?”
김지혜를 비롯한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이 성문 밖에 서서 강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입을 어찌나 크게 벌리고 있는지, 거의 찢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마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반가움에 지었던 강하진의 미소가 살짝 어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