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키산맥 정벌 2 >
회귀 전에는 두 번째 재앙 이후부터 거대 던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거대 던전이라 부를 만한 것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대부분 2미터짜리 평범한 뉴타입 던전뿐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같은 크기의 던전 중에서도 좀 덜 위험한 던전이 있고, 훨씬 위험한 던전이 있는 법이다.
지금 강하진이 가려는 던전은 2미터짜리 던전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위험한 던전이었다.
그래서 김지혜와 이지영에게는 그 던전의 반대쪽 방향에서부터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아마 차근차근 던전을 닫으면서 이동하면 이 던전은 가장 나중에 오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강하진이 닫을 생각이었고.
이 던전이 위험한 이유는 여기 나오는 괴물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강하진은 거대한 나무들 사이에 놓인 검은 구체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이곳은 베이스캠프에서도 상당히 먼 곳이었기에 괴물도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그런 괴물들은 이미 강하진의 상대가 아니었다.
강하진은 괴물을 싹 정리하고는 던전으로 들어갔다.
이 던전은 어차피 터지기 전에 닫으려고 했던 던전이었다.
아마 이번 작전이 아니었어도 보름정도 후에는 닫으러 왔을 것이다.
괴물을 싹 정리한 후, 던전에 들어간 강하진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마력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 던전의 마력은 정말 무거웠다.
그래서 마력을 이용하는 모든 스킬의 발현 속도가 더뎠다. 마력이 무거워서 잘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반면 지속적으로 마력을 쓰는 스킬의 경우 점점 그 속도가 빨라져 나중에는 컨트롤이 어려워질 정도가 된다.
그것이 이 던전에 있는 마력의 특성이었다.
이 던전은 회귀 전에도 경험했다.
당시 가디언스의 팀원들과 수많은 서포터가 함께 했었다.
그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바로 이 지랄 같은 마력 때문이었다.
회귀 전에 강하진은 이 던전을 경험한 후, 마력 컨트롤 능력이 몇 단계나 상승했다.
그건 강하진뿐 아니라 다른 가디언스의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이 던전에서 업그레이드를 했다.
강하진은 오랜만에 겪는 무거운 마력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한 번 경험해 봐서 그런 건지, 아니면 마력의 지배자가 되어서 그런 건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 몇 분 정도 이리저리 다뤄보니 금세 감이 잡혔고, 이젠 바깥과 별 차이 없이 마력을 다룰 수 있었다.
“그나저나······ 왜 거대 던전이 안 나타나는 거지?”
강하진은 주위를 살피며 이동하며 회귀 전과 달라진 현 상황에 대해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 이거다 하는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짐작 가는 바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회귀 전보다 진행이 훨씬 빨라서 이러는 것 같았다.
사실 지금은 회귀 전보다 몇 배나 진행이 빠르다.
첫 번째 재앙이 일어난 지 이제 1년 남짓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진 일은 회귀 전의 5년차와 비슷했다.
이 모든 일을 마르바스가 벌이는 거라고 가정할 때,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일을 진행하는 바람에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었다.
확실히 거대 던전을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데 러시아 던전은 그저 단순히 거대 던전을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마 남은 여력을 전부 거기에 쏟았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향후 진행되는 일은 제법 느려질 공산이 컸다.
‘뭐······ 그래봐야 전부 가정일 뿐이지만.’
예측은 이렇게 했지만, 막상 내일 당장 거대 던전이 쏟아져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니 긴장을 풀면 안 된다.
강하진의 눈에 저 멀리 거대한 성곽이 보였다.
끝없이 이어진 성곽이 쫙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성곽 위에는 병사로 보이는 자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었다.
생긴 건 그냥 사람과 똑같았다.
하지만 강하진은 알고 있다. 저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것을.
저 성곽은 철저히 이쪽에서 나타나는 적을 막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저길 넘어가면 괴물들이 서식하는 도시가 나타난다.
저 성곽은 도시를 거대하게 두르고 있는 방어진이었다.
강하진은 성곽 위에 있는 병사들의 정보를 확인해봤다.
[레이드로스의 경계병]
[레벨 : 682]
[체력 : 600000, 마력 : 200000]
[매의 눈(P), 궁술(P), 검술(P), 마력폭발(A), 보고(A)]
강하진은 병사의 정보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건 잘 눈에 안 들어왔고, 레이드로스라는 말이 뭔가 마음에 걸렸다.
지금까지 군주의 유적을 발견할 때마다 확인한 것이 그 군주의 이름 아니었던가.
강하진은 집중해서 좀 더 깊은 정보를 확인해봤다.
[레이드로스가 휘하에 있던 부하에게 권능을 씌워 만들어낸 병사.]
역시나 뭔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과거의 잔재가 아닌 건가? 왜 던전에 있는 거지?’
강하진은 레이드로스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려고 키워드를 통해 정보를 검색했다.
[레이드로스]
[마계의 군벌을 다스리는 사령관 중 하나.]
강하진은 나타난 정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계의 군벌이라고?’
마계의 군벌을 다스린다면 마족이라는 뜻인데, 강하진은 회귀 전에 이 안에서 마족을 만난 적이 없었다.
창원 던전에서 만났던 마족, 제무르처럼 인과가 뒤틀려서 생겨난 변화는 아니었다.
회귀 전에도 저 병사들은 똑같이 존재했으니까.
그리고 저 병사들은 명백히 마족이 아니었다. 오히려 괴물에 더 가까웠다.
겉모습은 그냥 인간이었고.
당연히 말은 통하지 않는다. 또한 성곽 가까이 다가가면 즉시 공격하고.
성곽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온갖 병사들이 모조리 몰려오니까.
회귀 전에는 정석에 가까운 공성전을 진행했다.
가디언스를 중심으로 서포터의 도움을 받아 성곽부터 공략하고, 성곽 위의 적을 모두 처리한 다음 내부로 진입했다.
내부에서는 굳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기다리던 온갖 병과의 병사들이 있었고, 심지어 기사단까지 있었다.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 다들 레벨과 경험이 잔뜩 쌓인 상태였는데도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결국 던전을 닫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 던전 이후 서포터를 대부분 교체했을 정도였다.
여기서 하도 죽어나가는 바람에 남은 서포터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한데 그런 던전에 혼자 왔다.
사실 강하진은 오히려 혼자가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던전을 닫는 방법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전쟁에서 승리하면 더 쉬워질 뿐, 정작 던전을 닫는 방법은 전투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저 성곽 너머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성의 옥좌가 바로 던전 코어였으니까.
그 옥좌만 부수면 된다.
그러니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하지 않겠는가. 강하진에게는 [은폐]가 있으니까.
그 생각으로 왔는데, 막상 병사의 정보를 확인하고 나니 좀 더 둘러보고 싶어졌다.
[은폐]를 쓰고 다가가는데, 갑자기 성곽 위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어마어마한 속도에 전격 속성까지 담긴 화살이었다.
강하진은 급히 화살을 피하며 뒤로 쭉 물러났다.
‘들켰어?’
성곽 위를 보니 병사 둘이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하나가 화살을 쟀고, 옆에 있던 병사가 그 화살에 속성을 부여했다.
확인해보니 병과가 다른 병사였다. 옆의 병사에게 없는 [속성부여] 스킬이 있었으니까. 대신 [궁술]이 없었다.
강하진은 더 뒤로 물러났다. 병사들의 시야 밖으로 벗어나야 했다.
시야에서 벗어나니 병사가 화살을 내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성곽의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나왔다.
말을 탄 병사들, 기마대였다.
정찰 임무를 받고 나온 모양이었다. 강하진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쩌면 저들도 [은폐]를 감지하는 스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강하진은 대체 왜 걸렸는지 생각하다가 병사들이 가진 스킬 [매의 눈]이 떠올랐다.
[매의 눈]
[멀리 넓게 볼 수 있다. 집중하면 은신과 관계된 스킬을 꿰뚫어볼 수 있다.]
무슨 이런 사기 같은 스킬이 다 있단 말인가.
강하진은 문득 과연 저들이 스킬 [은폐]가 아닌, 라파시드의 서에 있는 은폐와 왜곡도 꿰뚫어 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일단 시도해볼 만했다.
강하진은 무거운 마력을 움직여 일단 은폐를 펼쳤다.
두두두두두!
근처로 기마대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은폐 속에 있는 강하진을 발견하지 못했다.
강하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먹힌다. 그렇다면 은폐와 왜곡을 적절히 이용해 성곽에 접근하면 된다.
시간과 마력, 힘이 좀 들긴 하겠지만, 조용히 들어가고 싶었다.
* * *
성곽 안쪽에 들어간 강하진은 일단 [은폐]를 쓰고 조심해서 움직였다.
쭉 들어가니 이내 도시가 나타났다.
정말 평범한 도시였다. 다들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다만 군대가 공존할 뿐이었다.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대가 곳곳에 돌아다녔고, 도시의 중심에 있는 성으로부터 엄정한 군기가 느껴졌다.
도시 외곽 쪽을 순찰하는 순찰대도 있었다.
강하진은 반사적으로 도시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정보를 확인해봤다.
[레이드로스의 백성]
[레벨 : 289]
[체력 : 160000, 마력 : 20000]
[체술(P), 질주(A)]
낮은 레벨에 평범한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레이드로스의 백성이라는 이름이었다.
[레이드로스가 다스리던 백성에게 권능을 씌워 만들어낸 새로운 백성. 위기 상황 발생 시, 병사로 진화한다.]
강하진은 그제야 회귀 전에 왜 그렇게 많은 병사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여기 있던 백성들이 병사로 진화했던 것이다.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어쨌든 저들은 강하진의 [은폐]를 감지할 능력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강하진은 치안대를 피해 성으로 다가갔다.
목표는 저 성 안에 있었으니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아마 저 성 안에는 여러 병과의 병사는 물론이고 기사에 마법사까지 있을 테니까.
* * *
로키산맥 정벌은 굉장히 순조롭게 이어졌다.
일단 김지혜와 이지영이 이끄는 각 30명으로 구성된 뉴타입 공략조의 실력이 굉장히 뛰어났다.
그들은 뉴타입 던전에 대한 경험이 아주 풍부했다.
김지혜와 이지영은 미리 위치를 확인한 뉴타입 던전을 하나씩 닫았다.
물론 던전을 하나 닫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제법 길었지만, 그래도 하나씩 확실하게 제거했다.
다섯 명씩 조를 이룬 일반 던전 공략조 역시 경험이 많은 만큼 빠르게 산맥의 던전을 정리해 나갔다.
그 와중에 발견한 괴물을 처리하는 건 덤이었다.
물론 아주 안전한 상황에서만 괴물을 공략했다. 개체 하나가 따로 떨어진 경우나, 괴물이 먼저 발견하고 달려드는 경우에만 사냥을 했다.
그 외에는 들키지 않게 조용히 이동했고.
원래 캐나다에서 활동하던 가디언스 역시 뛰어난 활약을 했다.
그동안은 활동하던 영역보다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 사냥을 했는데, 전투병사의 힘을 최대한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싸웠다.
하지만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건 단연 요새의 전투병사들이었다.
그들은 확장된 활동범위 내의 모든 괴물을 철저히 박멸했다.
굉장히 넓은 범위를 전투병사들이 커버했기에 상대적으로 가디언스가 힘 쓸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어쨌든 가디언스가 그렇게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을 때, 산맥 아래에 진을 치고 있던 캐나다 각성자들은 정말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괴물이 많이 내려오는 건 아니었지만, 산맥의 괴물은 하나하나가 강력했다.
반면 캐나다 각성자들은 가디언스나 디펜더스에 비하면 많이 약했고.
그들은 위험을 안고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성장의 기회이기도 했다.
치열한 싸움 속에서 캐나다 각성자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또한 이런 위험한 괴물들과 싸워온 가디언스에 대한 호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렇게 로키산맥 정벌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