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존의 유적 2 >
강하진은 일단 유적 주변을 돌아봤다.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괴물을 잡았는지 모른다.
아마존의 괴물들은 특이한 놈이 많았다.
강하진은 [은폐]를 써서 많은 괴물과 한꺼번에 마주치는 일을 되도록 피했다.
한데 아마존의 괴물 중에는 굉장히 뛰어난 은신 능력을 가진 놈들이 있었다.
또한 그 은신을 파악하는 파동을 발산하는 괴물도 있었다.
당연히 그 파동은 강하진의 [은폐]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력의 파동에 닿는 순간 스킬이 깨졌고, 모습이 드러났다.
그렇게 되면 근처에 있는 괴물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괴물과 싸우다보면 소음 때문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괴물들까지 몰려왔고, 결국 그놈들을 싹 정리하기 전까지 계속 싸울 수밖에 없었다.
강하진을 난감하게 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은신 능력을 가진 괴물은 은폐를 깨뜨리는 파동을 내뿜는 괴물보다 더 까다로웠다.
몸 자체가 거대한 그물 모양으로 이루어진 괴물이었는데, 그걸 은신으로 감추고 있는 것이다.
먹잇감이 안에 들어오면 그물을 조이고 마력이 섞인 소화액을 내뿜어 녹여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놈이었다.
문제는 그물이 정말 크다는 점이었다.
또한 은신 능력이 어찌나 뛰어난지 강하진의 감각에도 걸려들지 않았다.
강하진은 몇 번이나 그물에 걸려 은폐가 깨지고 그물이 온몸을 꽁꽁 옥죄어 오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괴물의 소화액은 정말 지독했는데, 아무리 빠르게 대처를 해도 피부가 녹아내리는 걸 피할 수가 없었다.
그 외에 딱히 다른 공격 스킬이 있거나 하는 건 아니었기에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금세 그물을 가닥가닥 끊어버릴 수 있었지만, 어쨌든 정말 까다로운 괴물이었다.
강하진은 그 괴물의 사체를 꼼꼼히 아공간에 담아 챙겼다.
아무래도 특별한 은신 능력이 괴물의 가죽에 깃들어 있는 것 같았고, 그물 내부에 이어진 관 속에 존재하는 소화액 역시 향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듯했다.
이걸 좀 더 개량하면 나중에 마족을 상대할 때도 제법 쓸모가 있지 않을까?
그밖에도 땅속에 숨어 있다가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오는 괴물이나 나무로 위장해서 서 있다가 독액과 독가스를 뿜어내는 괴물도 있었다.
하나같이 신경 쓰이고 상대하기가 짜증나는 놈들이었다.
그렇게 괴물들에게 시달렸기에 유적 근처도 아주 꼼꼼하게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유적 주변에도 무수히 많은 괴물들이 숨어 있었다.
강하진은 그동안 쌓였던 짜증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괴물들을 거의 분해하듯 해체해 버렸다.
유적 주변에는 지금까지 나왔던 모든 괴물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왠지 그놈들이 이 유적 근처에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이 유적 때문이겠지?’
이 유적이 과거의 잔재라는 건 근처에 오자마자 알 수 있었다. 워낙 유적이 뿜어내는 존재감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한데 묘하게도 그 존재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강하진은 유적 안쪽으로 들어갔다.
유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우선 겉 부분이었다.
유적 초입에서부터 안쪽 깊숙한 곳까지 다양한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마치 이곳을 신전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제단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신화의 한 장면을 깎아놓은 듯한 부조도 곳곳에 보였다.
그리고 안쪽 깊숙한 곳에 들어가니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양식의 구조물이 서 있었다.
새까만 재질의 돌로 된 거대한 기둥이 열 개나 둥글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작은 샘이 하나 있었다.
저것이 바로 생명의 샘인 모양이었다.
강하진은 가까이 다가가 일단 기둥부터 살펴봤다. 손바닥으로 쓸어보기도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표면이 정말 매끄러웠다. 유리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절대 유리는 아니었다.
열 개의 기둥은 각각 지름이 2미터쯤 되는 크기였는데, 정작 그 기둥들이 감싸고 있는 샘은 그보다 훨씬 작았다.
강하진은 샘으로 다가가 손으로 물을 떠올렸다.
그냥 평범한 물이었다.
엿보기 스킬을 써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정보도 나오지 않았다.
물도 그랬고 샘 자체도 그랬고, 기둥도 그랬다.
일단 중심을 먼저 찾아야 한다.
처음에는 이 샘이 당연히 시스템의 중심일 거라 여겼는데, 막상 와보니 아니었다.
이 근처에는 아예 시스템의 힘 자체가 흐르지 않았다.
시스템의 힘은 철저히 이 내부에 있는 열 개의 기둥 바깥쪽으로만 흘러 다녔다.
마치 일부러 여길 따돌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과거의 잔재라는 건 전부 특이한 놈들뿐이로군.’
강하진은 일단 힘의 흐름을 차근차근 짚어 가기로 했다. 그러다보면 결국 중심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기둥 밖으로 나온 강하진은 근처에 흐르는 힘의 자락을 파악한 후, 찬찬히 그걸 따라 걸어갔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렇게 흐름을 따라 모든 부분을 확인하면 결국 원하는 걸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강하진은 그렇게 확신했다.
* * *
확신이 의심으로 바뀌는 데까지 여섯 시간이 걸렸다. 유적지 전체에 펼쳐진 힘의 흐름을 두 바퀴나 짚어간 뒤의 일이었다.
또한 그 의심이 불신으로 바뀌는 데까지 여섯 시간이 더 걸렸다.
두 번이나 해본 일이기에 더욱 세심히 파악하면서도 네 바퀴나 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힘의 중심을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이 유적 전체에 흐르는 힘은 놀라울 정도로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힘의 흐름도 어느 한 군데 치우치지 않고 정확한 위치에서 정확한 속도로만 흘러 다녔다.
결국 강하진이 다시 찾은 곳은 샘이 있는 곳이었다.
“이 샘이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게 분명하긴 한데······.”
한데 이 근처에서는 시스템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주변을 흐르는 힘의 흐름이 너무 균일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곳이 과거의 잔재인 건 확실하다. 그리고 과거의 잔재는 현 시스템의 힘을 갈취하는 존재다.
즉, 이곳 어딘가에서 지속적으로 시스템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 벌어지는 이 상황은 굉장히 이상하다. 대체 그 많은 힘이 전부 어디로 갔을까?
강하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레나트는 이 샘물을 마셔봤다고 했다. 하여튼 그 사람도 보통이 아니다. 이게 어떤 물일 줄 알고 그걸 마신단 말인가.
물론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다. 철저히 물을 떠다가 조사했지만 그냥 아마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했다.
강하진은 물끄러미 샘물을 쳐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물괴물 은신하는 것도 아니고······!”
강하진은 여기까지 오면서 가장 많이 상대했던 그물괴물을 떠올리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과거의 잔재 근처에 있는 괴물들은 유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로키 산맥에 있는 세레트로프의 요새 근처에 있던 괴물은 철벽방어라는 스킬에 지휘할 수 있는 스킬까지 보유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는 건 그물괴물의 은신 능력 역시 이 유적의 영향으로 인해 생겨난 스킬일 가능성이 높았다.
강하진은 주위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둘러봤다.
“은신, 은신이라······.”
그냥 평범한 은신이 아니라 시스템의 힘을 감출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은신이었다.
강하진의 시선이 거대한 열 개의 기둥에 꽂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을 만한 구조물은 저 검은 기둥뿐이었다.
강하진은 잠시 고민했다.
‘저걸 부숴버려야 하나?’
부수는 선택지도 있지만, 왠지 그렇게 하면 과거의 잔재 역시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한 잔재를 시스템에 편입시켜야 그걸 관리할 자격도 생기는 법이다.
부수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아마 어딘가에는 분명히 부서져서 능력을 잃은 과거의 잔재 역시 존재할 것이다.
아무튼 부수는 건 최후의 최후에나 선택할 방법이었다.
한동안 기둥을 노려보던 강하진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기둥 외부에 있는 유적지 쪽을 쳐다봤다.
강하진이 주목하는 것은 그곳에 흐르는 시스템의 힘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는 힘 말이다.
그 힘은 그야말로 완벽한 통제 속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면, 대체 왜 저런 걸 만들어 뒀을까?
강하진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저거였군.”
저 균일한 힘의 흐름에 뭔가가 있었다. 아마 저것이 거대한 시스템의 힘을 감추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리라.
강하진은 손을 흔들어 흐름을 휘저어봤다.
물론 아무 변화도 없었다. 힘의 흐름도 그대로였고, 강하진의 영향력이 전혀 거기에 반영되지도 않았다.
강하진은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답 하나를 찾았다.
바로 흉내였다.
저 흐름과 똑같은 걸 만들어보면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시작은 마력이었다.
저 시스템의 힘이 흐르는 곳에 자신의 마력을 덧씌웠다.
그리고 똑같은 흐름을 만들려고 애썼다.
당연히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마력 컨트롤 능력이 뛰어난 강하진이라고 해도 저 정도로 완벽한 통제 속에서 움직이는 균일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길이 하나 보였으면 그 길을 따라 우직하게 가면 된다.
길이 끝날 때까지.
강하진은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처음 여기 와서 흐름을 짚어서 유적지를 빙글빙글 돌 때보다 이것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마력은 그저 내뿜기만 하면 다 흩어져버린다. 그러니 그걸 이렇게 허공에 고정시키려면 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지만 결국 해냈고, 일단 되기 시작하니 그 뒤로는 점점 마력을 고정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상당한 훈련이 되었다.
안 그래도 뛰어나던 강하진의 마력 컨트롤 능력이 거기서 더욱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시스템의 패턴을 완벽하게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마력은 허공에 고정되어 있을 뿐, 흘러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정된 마력 전부 강하진의 것이니 그걸 움직이는 것 역시 가능했다.
물론 그것 또한 쉽지는 않았지만.
강하진은 그조차 성공했다. 이번엔 시행착오도 없었다. 늘어난 실력 덕분에 단번에 해냈다.
마력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강하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게 분명한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살펴보고 나서야 비로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강하진이 보유한 마력의 존재감이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다.
자신이 가진 마력이었는지라 그걸 확인하는 데 오래 걸린 것이다.
‘역시 이 패턴과 흐름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던 거였어.’
이제 그 의미를 파악하면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는 그걸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다.
강하진은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있다는 다른 유적부터 가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모든 유적을 다 돌아보고 나면 무언가 답이 나올 것 같았다.
* * *
레나트의 분석은 제법 정확했다. 고작 유적 하나만으로 뽑아낸 정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유적들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냈다.
강하진은 그저 레나트가 준 정보만으로 나머지 다른 유적을 전부 찾아낼 수 있었다.
유적은 총 일곱 개였다.
처음 강하진이 도착했던 그 유적이 중심에 있고, 나머지 여섯 유적이 일정 거리를 두고 샘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였다.
샘을 둘러싼 여섯 개의 유적은 모두 똑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름이 10미터쯤 되는 거대한 기둥이 세워져 있고, 그 기둥을 중심으로 지름 2미터 정도의 기둥 열 개가 둥글게 서 있었다.
중앙 유적에 있는 샘만 거대한 기둥으로 바꾸면 정확히 일치한다.
물론 샘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강하진은 각 유적에서 처음 유적과 마찬가지로 주변을 감싸고 있는 패턴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나 비슷한 패턴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다만, 이곳에 있는 패턴은 시스템의 힘이 아닌,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달랐다.
강하진은 일단 각 유적마다 그려진 패턴을 마력으로 똑같이 복제했다.
그 때마다 조금씩 패턴이 가진 규칙성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게 일곱 군데의 패턴을 모두 확인하고 복제했을 때, 강하진의 망막에 정보 하나가 떠올랐다.
[라파시드의 패턴을 등록했습니다.]
[라파시드의 서 제 1장을 획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