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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35화 (135/200)

< 유적 사냥꾼 1 >

제프리는 유적 발굴팀에 참여했던 각성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몰려오는 괴물들 때문에 유적에 갇혔다가 디펜더스의 구조대와 함께 이곳 베이스캠프에 합류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디펜더스에 의해 목숨을 구원받은 셈이었지만, 그는 물론이고 함께 구조된 동료들 모두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디펜더스가 아닌, 가디언스의 마스터인 강하진에게 구원받았다고 여겼으니까.

실제로도 그랬다. 그때 강하진이 유적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다들 죽었을 테니까.

그래서 여기까지 오는 내내 디펜더스와는 일정 선을 유지했다.

디펜더스의 리더라던 스티븐이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제프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각성자들 전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차라리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디펜더스와 더 친하게 지냈다. 물론 그들 역시 일정한 선을 넘지 않았지만.

결국 스티븐은 산맥 아래에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다.

이번 유적 발굴팀에 함께 한 각성자들은 다들 실력이 뛰어났다.

그런 각성자만을 모았으니 당연했다.

그러니 아마 스티븐도 굉장히 욕심이 났을 것이다. 그들을 한꺼번에 디펜더스에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전력이 급상승할 테니까.

그리고 결국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는 모두 가디언스 쪽에 합류해 버렸다.

허탈한 표정을 짓던 스티븐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소한 마음은 편해야 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강하진이 그들을 구해준 이후, 왠지 모르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안전하게 산맥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더 디펜더스에 대한 고마움이 희석되었는지도 모른다.

제프리는 막사 밖에 마련된 연병장을 몇 바퀴 뛰면서 몸을 풀었다.

사실 요즘 제프리를 계속 신경 쓰이게 하는 건 디펜더스도 가디언스도 아니었다.

여기 오다가 중간에 겪었던, 아니, 저질렀던 일이었다.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계속 참다가 결국 냅다 괴성을 내질렀는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하던 동료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난데없는 행동에 솔직히 좀 부끄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온몸에 힘이 끓어 넘치는 바람에 더 부끄러워 할 시간도 없었다.

계속 그 일이 마음에 걸려서 요즘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사실 이제 슬슬 여길 떠나서 다시 각성자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는 것도 반쯤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뿐만이 아니라, 그때 함께 했던 동료들 전부 마찬가지였다.

연병장에서 몸을 푼 제프리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우와아악!”

있는 힘을 다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아무 변화도 없었다.

힘이 끓어오르지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자신감도 생겨나지 않았다.

그냥 목만 좀 아팠다.

저 멀리서 가디언스의 각성자들이 이쪽을 슬쩍 힐끔거렸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는지라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저 또 저러네,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프리가 이런 짓을 하는 게 벌써 일곱 번째였고, 제프리만 이러는 게 아니라 그의 동료들 전부 같은 짓을 해왔다.

그러니 다들 담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특별할 일도 아니었으니까.

제프리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막사로 돌아갔다.

* * *

강하진은 조용히 로키산맥 아래쪽에 있는 가디언스의 베이스 캠프에 복귀했다.

원래는 아무도 모르게 복귀했다가 캐나다를 뜨려고 했다.

한데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기이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우와아아악!”

강하진은 가디언스의 막사에 들어서다가 갑자기 들려온 괴성에 깜짝 놀랐다.

연병장에서 누군가 악을 쓰고 있었다.

‘대체 저건 뭐 하는 거지?’

강하진은 그가 가디언스의 각성자가 아니라 유적에 있던 각성자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를 보자마자 그가 자신의 전투병사로 등록되어 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설마 전장의 함성?’

강하진의 뇌리에 얼마 전에 시험 삼아 전투병사들에게 [전장의 함성]을 써봤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모든 전투병사들이 일제히 소리치는 것까지 [창공의 눈]으로 확인했었다.

모든 능력치와 사기가 올라가는 버프를 맞았으니 얼마나 힘과 용기가 끓어올랐겠는가.

아마 그 경험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제프리의 함성이, 바로 떠나려던 강하진의 발걸음을 잡았다.

* * *

“오! 무사히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레나트가 강하진을 보자마자 양 손을 활짝 펼치며 격렬하게 환영했다.

강하진이 다가갔다면 덥석 끌어안기라도 할 기세였다.

물론 강하진이 그걸 원하지 않았기에 살짝 거리를 뒀다.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습니다.”

“하하하. 은인의 얼굴은 보고 가야지요. 저 친구들 지켜보는 것도 제법 흥미로운 일이었고 말이죠.”

레나트가 약간 떨어진 곳에서 흥분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각성자들을 힐끗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글쎄요. 딱히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군요. 무슨 일이 있다고 하기엔 좀 애매해서.”

레나트는 묘한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막사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의례적인 인사말 몇 마디를 나누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혹시 다른 유적을 더 발견하셨습니까?”

레나트의 물음에 강하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개의 유적을 더 발견했습니다.”

“역시!”

레나트가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다.

그걸 본 강하진이 눈을 빛냈다.

“예상하신 겁니까?”

레나트가 태블릿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화면을 열었다.

“유적 내부의 문양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의미를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왠지 문자로 의심되는 것들이 있더란 말이죠.”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강하진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번에 발견된 유적의 흔적이 굉장히 생소해 보이지만,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비슷한 흔적을 조금이나마 품고 있는 유적들이 제법 있습니다. 이걸 보시죠.”

태블릿에 사진 몇 장이 떠올랐다.

“아마존이로군요.”

항공사진도 포함되어 있기에 아마존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밀림 안에서 발견한 유적입니다.”

슥슥 화면을 넘기며 사진을 보여줬는데, 몇 개의 사진은 그냥 넘기지 않고 따로 빼냈다.

문양을 찍어놓은 사진이었다.

“이 유적 역시 마찬가지로 의미를 알기 어려운 문양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죠. 이 문양들 보이십니까?”

산맥의 유적에 있던 문양과 겹치는 것들이 있었다.

“이걸 보면 이 문양들은 문자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레나트가 강하진을 보며 씨익 웃었다.

“유적 연구만 30년째입니다. 혹시 제 별명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강하진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레나트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유적 사냥꾼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사냥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뿐인데 이상한 별명을 갖다 붙여놓더군요. 뭐, 덕분에 이번 유적 발굴팀에도 들어갈 수 있었으니, 그냥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여러모로 도움이 되거든요.”

거기까지 말한 레나트가 손가락 하나를 들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고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자, 그래서 이 문자를 보시면 이건 숫자를 의미합니다. 1이라는 뜻이죠.”

그 부분에서 강하진은 감탄했다. 그때 이들이 있던 곳이 1번 요새 아닌가.

“그리고 이 숫자는 5를 의미합니다.”

레나트가 강하진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총 다섯 개 중에서 첫 번째라는 뜻이죠. 어떻습니까? 제법 그럴듯하지요?”

그럴 듯한 정도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하다. 대체 저 문자가 숫자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데 나머지 네 군데 유적을 다 보고 오셨다니 정말 감탄했습니다. 어땠습니까, 그 유적들은? 구조는 아마 똑같았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강하진을 슬쩍 보는 레나트의 눈에서 마치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짐작하신 대로입니다. 똑같은 유적이더군요.”

“그 유적의 위치가 혹시 이런 식으로 되어 있지 않던가요?”

레나트가 태블릿에 지도를 띄우더니 손가락으로 툭툭 짚었다.

완벽한 위치는 아니었지만 대충 비슷한 지점이었다. 중요한 건, 다섯 요새가 원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비슷합니다.”

레나트가 간절한 눈빛으로 강하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이 유적들의 중심, 그러니까 이 지점에 가보셨습니까?”

강하진은 레나트를 쳐다봤다. 속으로는 좀 놀랐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표도 내지 않았다.

“이 가운데 지점에 분명히 뭔가가 있습니다. 그걸 확인하고 왔어야 하는데 아직도 후회가 됩니다. 혼자서라도 강하진 씨를 따라갔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요.”

“갔었습니다.”

“오오오! 어, 어땠습니까! 거기에 뭐가 있었습니까! 혹시 왕의 흔적이 있었던 거 아닙니까?”

강하진이 묘한 눈으로 레나트를 쳐다봤다.

대체 이 사람은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강하진의 눈빛을 본 레나트는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걸 깨닫고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흠, 흠. 너무 흥분했군요. 이거 민망합니다. 그런데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강하진은 과연 이 사람에게 어디까지 얘기해줘도 될지 고민이 되었다.

망설이는 모습을 본 레나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너무 일방적으로 제 요구만 쏟아냈군요. 아무래도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시간, 괜찮으십니까?”

강하진도 이미 레나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상태였는지라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제가 왜 이렇게 유적에 관심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부터 얘기를 드려야 할 것 같군요.”

레나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강하진을 보며 물었다.

“강하진 씨는,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갑자기 그렇게 물으시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레나트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었다.

“유적 중에는 굉장히 특이한 종류가 있습니다.”

이번엔 강하진이 눈을 빛낼 차례였다. 지금 레나트가 한 말이 과거의 잔재라는 걸 짐작했다.

“유물을 꾸준히 연구하다보면 나름대로 흘러가는 걸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연속성이랄까요.”

레나트는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한데 그 중에 가끔 정말 말도 안 되는 놈이 툭 튀어나오곤 합니다. 제가 관심을 가진 건 그 부분이었지요.”

잠시 뜸을 들이던 레나트가 말을 이었다.

“전 그걸 시스템의 흔적이라고 부릅니다.”

“시스템의 흔적이요?”

레나트는 자신이 그동안 연구했던 걸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유적과 시스템과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적에 쓰인 문자를 어느 정도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문자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연구는 더더욱 깊어졌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게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찾아낸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증거만 찾아낸다면 레나트의 연구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이번 로키산맥의 유적도 그런 종류였습니다.”

“정확히 거기서 알아낸 게 어떤 겁니까?”

“그 유적은 왕을 지키는 요새였습니다. 아마······ 뭔가 특이한 능력을 가진 부족이 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특이한 능력을 가진 부족이 바로 이종족이었다.

“나머지 요새와 그 요새들이 지키는 것까지 다 확인해보면 뭔가 좀 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레나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강렬하게 바라는 눈빛이었다.

강하진은 지금이 레나트를 끌어안을 순간이라는 걸 확신했다.

“한 번 가보시겠습니까?”

레나트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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